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193화 (194/374)

193. 급발작(1)

아카데미 부속 종합병원.

영종도 아카데미는 생도의 건강관리와 응급치료를 위해 종합병원을 따로 운영했다. 병원의 운영 비용이 많이 들기는 하나, 생도 하나하나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다. 실상 후작급 생도 1명만 나와도 남는 장사긴 했다.

교류전에서 패한 미츠키 공주는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 물약을 처방받은 후, MRI를 비롯한 각종 검사를 받았다. 오래 걸리진 않았으나, 검사가 끝난 후에도 정신을 차리진 못했다.

검사 결과는 처참하게 망가진 외형과는 달리 정상이었다. 자칫 심각한 상태였다면 일본과 국제적인 마찰을 고려해야 했던 정부로선 안도했다.

“멀쩡하다면서 어째서 깨어나지 않는 겁니까?”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간혹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정말 아무 이상이 없는 거겠지요?”

“원하신다면 검사 자료를 일본에 건네겠습니다. 일본의 의사에게 보여 주시면 됩니다.”

“쓰미마셍, 의심을 한 건 아닙니다. 중요한 분이라, 결례를 범했습니다.”

“괜찮습니다. 환자분과 친분이 두터운 친지나 일행이라면 그럴 수 있습니다.”

의사는 딱히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환자는 물론, 환자의 일행과 실랑이를 벌이는 건 의사로선 해선 안 되는 행위였다. 의문이 든다면 충분히 납득할 때까지 설명해 주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신의(神醫), 임자성은 각성자이면서 뛰어난 의사로 인성과 덕망을 두루 갖춘 인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아카데미 병원에서 썩을 실력이 아님에도, 생도들을 위해 남았다고 하여 더욱 신망이 두텁다.

일본 관계자와 일행도 신의의 설명에 더는 토를 달진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도 드물게 뛰어나고, 인성을 갖춘 의사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공주가 깨어나기를 얌전히 기다릴 때였다.

특실에 옮겨진 공주를 살피던 관계자들도 시간이 되자 돌아갔다. 병실에는 하야토만 남았다.

“다 갔으니까, 그만 눈 뜨십시오.”

“재미없네.”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고 의식불명에 빠진 줄 알았던 공주였거늘, 아무렇지 않은 듯이 눈을 떴다.

“밥은?”

“여기요.”

“역시 밥에는 불고기지.”

“공주님이 한류 아이돌 광팬인 걸 사람들이 알면 안 됩니다.”

“우리 할배들은 노래나 춤을 너무 못 추잖아. 솔직히 그 나이 먹고 아이돌은 너무하는 거고.”

“그것이 대일본 제국의 미학입니다.”

“미학은 개뿔, 대체 언제까지 배우고 익힐 거야! 늙어 죽어서도 배우겠다는 건가?”

부족하고 미숙하니, 배우면서 완성되어 간다는 일본의 아이돌은 여전히 미숙했다. 과거 한창 잘나갈 때의 록 음악과 비교하면 쇠퇴 일로였다.

“한국은 아이돌 문화뿐입니다. 다른 분야는 우리와 비교해 많이 부족합니다. 더욱이 8, 90년대부터 현시대까지 우리 음악을 마음대로 표절한 국가입니다.”

“그건 그래.”

문화란 카피에서 시작하는 거고, 그걸 지금에 와서 탓해 봤자 의미는 없었다. 일본도 잘나가기 전엔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선진 문화를 고대로 베꼈으니까. 카피를 통한 창조의 문화 흐름은 당연한 순리였다. 지금은 중국이 그 짓을 대놓고 하고 있었다.

지식재산권이 중요한 시대에 옳지 못한 행위긴 하나, 개도국이 성장하는 데 자기 계발로는 한계가 존재했다. 아무런 바탕 없이 창조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괜찮으십니까?”

“아무렇지 않은 거 알잖아.”

미츠키는 그 정도로 쓰러질 만큼 나약하지 않았다. 초속재생과 물약의 버프가 있었지만, 불사의 저주에 가까운 회복력을 가진 육체를 지녔다. 순간 회복 스킬도 가지고 있어서 숨이 끊어지지 않은 이상 최소 1번은 원래 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랜만에 신나게 처맞았네.”

“웃을 일이 아닙니다.”

“나도 웃기진 않아. 전혀 반격할 타이밍이 나오지 않았거든.”

“그 정도입니까?”

“반격할 때 왜곡과 사각을 사용했는데도 씨알도 안 먹히더라고.”

일격을 허용한 이후로 전력의 반이 숭덩 날아간 탓도 있지만, 그 순간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속임수를 썼었다.

그마저도 권후가 예측한 범위에 들어갔다. 단순히 강한 수준을 넘어서 전투에 무척이나 익숙하고 노련했다. 마치 사부님들과 마주한 막막함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다음에도 당하진 않아. 이미 받을 만큼 받았거든.”

“어련하시겠습니까.”

미츠키는 [죽음의 보상]이라는 특이 체질을 타고났다. 죽기 직전, 즉 극한에 도달할수록 강해지는 특성으로. 일본의 황궁가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당황했었다. 고귀한 혈통의 공주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기란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하나, 공주의 신분에도 미츠키는 [죽음의 보상]을 익혔다. 신분과 어울리지 않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지녔다.

“할 수 있지?”

“최선을 다해 보는 수밖에요.”

“천검의 하야토가 그리 말하는 걸 보면 권후가 강하긴 강한가 봐.”

“공주님도 당하지 않았습니까?”

“내 핑계 대는 거야?”

“……아닙니다.”

자신 없어 하는 어투와 달리, 하야토는 투지를 불태웠다.

***

8강 대진표가 나오기 전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한·중·일 생도들은 각각 나누어져 있는데,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일본과 중국은 심각한 반면, 한국은 화기애애했다.

-다 이긴 것처럼 느슨해 보이는데, 이러다 우승 못 하는 거 아냐.

-지나치게 긴장하면 오히려 실력 발휘를 못 해.

-유리하긴 해도, 일본과 중국을 경시하다간 큰코다칠 거야.

-해 보기 전까지 아무도 몰라.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열심히 응원이나 해.

한국 교관도 8강에 오른 생도에게 따로 지시를 내리진 않았다. 잘해 오고 있는데, 지나친 지시나 독려는 오히려 독이라고 판단했다. 교관이 할 일은 의도치 않은 사태를 대비하는 정도였다.

“내가 참았어야 했는데, 손 속이 아주 조금 과했던 거 같아.”

“우리 지수는 엮는 걸 참 좋아한단 말이야. 내가 그렇다고 하면 공주를 걱정한다고 몰아갈 거잖아. 그딴 저급한 수작은 통하지 않아.”

“그래서 걱정한 거야?”

“전혀.”

“그새 살펴봤구나.”

“답 없네.”

어차피 빠져나갈 구석이 없는 물고 물리는 연계였다. 이 숨 막히는 Q&A가 끝나려면 둘 중 하나는 애정이 식어야 했다.

어이가 없어서 답이 늦어지자.

“단체전이 기대된다.”

“병실에 있는 공주가 발작하겠는걸.”

개인전은 그나마 보는 관객이라도 있지, 단체전은 인공 던전에서 진행이 된다. 사각지대가 많은 인공 던전을 고려하면, 공주는 출전하지 않는 편이 신상에 이로웠다.

유정, 혜진, 예슬은 지수의 병적인 집착에 살짝 질린 기색이었다. 여지가 있으면 파고들어 볼 텐데, 실력 못지않게 막돼먹은 성격이었다. 오늘은 친구지만, 잘못하면 철천지원수가 될 수도 있었다.

“실려 간 걸 보면 공주가 단체전에 나올 수나 있을까?”

“아니, 반드시 나와.”

“외상은 치료한다고 쳐도, 그렇게 처맞으면 한동안은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나.”

“그럴 리가.”

지수의 단호함에 유정, 예슬, 혜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들이야 무진과 지수에게 매번 훈련을 빙자한 구타를 당해 와서 익숙하지만. 일본의 공주라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 왔을 게 뻔하다. 이번과 같은 일은 겪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년이 그럴 리가.’

지수는 공주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일본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된다. 특히 죽지 않는 체력과 근성은 공주라는 신분조차 망각하게 했다. 겉으론 왜소한 소녀지만, 보기와 다르게 성질이 사나웠다.

‘불사의 좀비 년이 포기할 리가 없잖아.’

쓰러뜨려도 매번 일어나는, 포기할 줄 모르는 일본의 왕눈이 개구리였다. 매번 살아나서 불사의 좀비라는 괴랄한 별호가 붙었다.

더욱이 그년한테 당한 걸 상기하면, 아직도 분이 안 풀린다. 무진이하고 전음을 주고받아서 시기 질투한 걸로 비쳤지만, 실상은 좀 많이 달랐다.

-너 재밌는 년이구나. 다음에도 재밌게 해 줘.

과거 할아버지와의 관계가 있어서 대결을 벌였고, 결과적으로 졌다. 그때의 자신은 가족을 잃고 방황하는 상태라서 완전하지 않았다고 해도, 좀비 년이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은 완성되지 않은 좀비 년의 전신류가 진화하면 나중에는 꽤 골치 아파진다.

“공주의 무공은 진화하는 특성이 있어. 함부로 절기를 보여 주면 가진 걸 털리게 될걸.”

“그건 또 어떻게 안 거야?”

“패 보면 답이 나와.”

“안 맞고 알면 안 될까?”

지수의 말을 무진은 흘려듣지 않았다. 공주의 전투를 지켜본바, 단순히 재능을 의미하지 않음을 파악했다. 무공적인 특성도 있는 듯하다.

‘내 무공과 비슷하구나.’

완성된 무공은 존재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불완전할 뿐. 그것이 무진류의 시발점이었다. 불완전한 부분을 보완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8강전을 시작하겠습니다.

대연무장의 대형 스크린에 대진표가 나왔다.

어느 정도는 예상된 대진표였다. 한국이 5명이나 되는 바람에 겹치는 부분이 있고, 일본과 중국을 따로 떨어뜨려 놓아야 했다. 그래야 나중에 형평성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8강 첫 대결은 한국 생도 간의 대결이었다.

-강무진 vs 소유정.

당연한 일이긴 한데, 전생에 나라를 매번 구하지 않고선 나오기 힘든 대진운이었다. 1회전, 2회전을 제외하고는 부전승에 우리 생도 간의 대결이 되었으니 말이다.

-운도 실력이긴 한데, 너무하네.

-저 정도면 거의 조작 아닌가?

-쟤는 뭔데 이렇게 운이 좋은 거야. 교장 아들 아냐?

-이러다 우승하면?

-미래에서 왔다, 무진이 우승한다.

정해진 결과에 흐뭇해하던 교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욕을 할 것이지, 아들이라니!”

“그렇게까지 발작하실 일은 아닌데요.”

“아무리 그래도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네.”

“아들처럼 여기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아들은 아니지!”

교장의 단호함에 마라창은 물론, 남궁천과 시게노도 벙찐 얼굴이었다. 그렇게 칭찬하더니, 갈피를 잡기 힘든 언행 불일치였다.

‘남의 아들인데도 속 터지는데, 내 아들이면?’

교장은 항상 무진의 아버님을 걱정했다. 본인 딴에는 효자라고 하지만, 아버지의 삶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하루하루 시달리며 속병을 앓고 있을 테지.

와아아아아!

결투장으로 무진과 유정이 올라가자 환성이 터진다. 우리 생도 간의 대결이라 긴장감이 많이 떨어지지만, 맘 편하게 볼 수는 있었다.

어쨌든 누가 올라가도 되는 대결이었다. 물론, 아카데미에서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유정이 올라가기를 바라는 부류가 대다수긴 했다.

-아카데미 제일미라더니, 인간이 아니라 엘프 그 자체네.

-난 엘프는 귀 때문에 싫더라.

-엘프도 너는 싫어해, 어딜 감히 오우거가!

-유사 인종에 좋고 싫고를 왜 따져, 이것들 다 변태 아냐!

-아카데미의 장래가 참 밝다.

-말 똑바로 해라, 어감이 굉장히 이상해.

무진과 유정은 대결에 몰입했다. 일단 탐색전을 위해 눈싸움을 벌였다.

슥슥!

무진이 눈짓으로 오른쪽을 가리켰다.

유정이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결투장을 넓게 활용하며 빙글빙글 돌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결 양상이었다.

-풍야 소환.

바람의 정령이 소환되어 유정과 같이 오른쪽으로 돌며 무진을 주시했다. 정령사의 최적화된 전투는 정령과 정령투법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그중에서도 최종오의는 정령합신으로, 최소한 최상급 정령사는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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