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어우한(2)
-저거 설마? 일기권투!
-아까 서로 논의한 게 저거였어?
-사나이의 로망, 일기권투는 또 못 참지!
-누가 먼저 멈추려나?
-황보성도 만만치 않은데.
-중국도 환호하는 걸 보면 쉽지 않겠어.
-난 무진을 믿어.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정말 판단하기 힘든 캐릭이야.
-인간은 원래 양면성이 있지 않나?
-다들 칸트 나셨네. 왜 결투장에서 철학적 고찰을 하고 지랄이야!
일기권투가 단순 무식해 보이지만, 강함에 대한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했다. 더욱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이어지고 있어, 얼마나 강한지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이 많았다.
꽈아아아앙!
무진과 황보성의 주먹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불길이 치솟으며 용권풍이 휘몰아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보이지만 않을 뿐, 부서진 권풍이 결투장을 휩쓸고 있었다. 단순 주먹질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났다. 일반인이 결투장에 있었다면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나왔을 것이다.
추우웅!
새어 나오려는 신음을 참아 냈다. 황보성은 고민이 깊어졌다. 내지른 정권을 회수하고, 다시 정권을 지를 때까지 남은 시간은 촌음에 불과했다.
‘이 새끼 뭐지?’
처음 일기권투를 제안했을 때만 해도 관종에 미친놈인 줄로만 알았다. 자신이 누구인가, 수많은 후기지수 중에서도 권룡을 차지한 신성이었다. 하물며 주먹의 파괴력만큼은 아버지에게도 인정받았다.
설령 자신과 좌웅을 겨룰 만한 실력이 된다고 해도, [암경]을 개방했었다. 권경을 통해 전달된 [암경]은 내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원래라면 손속을 겨루어 조금씩 쌓아 가겠지만, 일기권투를 벌이는 이상 대놓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어떻게?’
천왕권의 천왕파천을 일점에 실은 황보성은 자신했었다. 그런데 막아 내고 태연하게 이격을 펼쳤다. 그때부터 속성을 개방하여 [암경]을 실었다. 정권 대결에서 암경이 파고들면 내력의 사용이 어려워진다.
하물며 파고든 [암경]은 운기요상을 하지 않는 이상 내부에 쌓여서 무리하게 진기를 운용하다간 단전마저 잃을 수 있었다. 벌써 24격을 다투고 있었다. 일격이 통하지 않았어도, 황보성은 최소 삼격 안에 승부를 자신했었다.
‘젠장, 이건 말도 안 돼!’
천왕권과 속성을 사용하고도 되레 충격을 받고 있었다. 정작 으스러진 팔을 붙잡고 비명을 질러야 할 놈은 멀쩡해 보였다. 정면 대결이라면 소림의 일룡에게도 자신 있거늘.
‘내가 밀린다고?’
황보성에겐 받아들일 수 없는 악몽 같은 현실이었다. 이대로 일기권투에서 밀려 대결의 방식을 바꾼다면 패배를 자인하는 꼴이었다. 설령 대결에서 이긴다고 해도, 두고두고 회자하여 욕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놈은 아프지도 않나?’
주먹이 부서지는 통증은 그렇다 쳐도, [암경]에 당하면 오장육부와 기맥이 찢어지는 고통을 수반했다. 인조인간 무쇠로 만든 로봇이 아니고서야.
그도 아니면 강시 체질인가?
설마, 금강불괴지신?
황보성의 뇌리가 복잡해졌다.
‘혹, 속성이 무통인가?’
선천적, 후천적으로 무통각증을 앓을 수도 있겠지만, 저 주먹은 예사롭지 않았다. 어떻게 된 주먹인지 충돌할 때마다 뼈가 아프다. 권공을 수련한 권법가라면 주먹을 대 보면 어느 정도 견적이 나오기 마련이다. 반면, 무진은 처음 그대로 가늠이 되지 않았다.
밥만 먹고 철사장만 훈련했나?
‘이대로는.’
황보성은 위기감을 느꼈다. 수미천왕신공을 7성까지 끌어 올렸다. 스킬을 이용해서 내력을 강화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타격을 주거나, 밀어내기는커녕 목석같은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자신이 먼저 주먹이 박살 나거나, 내력 고갈로 쓰러질 수도 있었다. 선택을 빨리해야 한다. 치욕을 감수하고, 변칙적인 수로 치명타를 선사할지. 아니면 이대로 진기를 모두 소모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갈지.
푸르르!
응?
황보성은 아주 미세한 떨림을 느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서로의 권공을 부딪쳤기에 알아볼 수 있는 떨림이었다. 마치 들키지 않으려는 것처럼 곧바로 사라졌다.
씨익!
무진이 웃었다.
후후!
황보성도 마주하며 웃어 주었다.
‘그럼 그렇지!’
일격의 파괴력을 극대화한 상태로 전력 대결을 벌였다. 인간인 이상, 충격을 받아야 했다. 지금까지 멀쩡한 척했다는 걸 이번 권격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쩌어어어엉!
푸아아앙!
충돌 이후, 도금이 벗겨지고 있었다. 무진의 권공에서 힘이 빠지고 있음을 황보성은 확신했다. 이전과 달리 파괴력이 미세하게 떨어졌다.
그렇다면 물러날 수 없다.
권공은 본가의 자부심이다.
또한, 무진은 과거 개망나니로 소문이 자자한 권왕의 제자였다. 아버지조차 권왕에게 당했던 수모를 잊지 못하셨다. 그날 이후로 대중화의 모든 권법가는 권왕이라면 치를 떨며 이를 갈았다.
-권왕을 이겨라.
권공을 수련한 대륙의 무인들에게 내려진 명제였다.
비록 권왕이 아닌 제자긴 해도 일기권투로 승리한다면 명성과 명분을 둘 다 얻게 된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황보성은 치욕스러운 결투로 만들 순 없었다.
‘나 때는 말이야를 위해서 희생양이 되어 주어야겠다!’
일기권투가 점점 과열되고 있었다. 관객도 손에 땀을 흘리며 대결을 지켜보았다. 처음부터 누구 하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파괴신의 현장을 보는 듯했다.
와아아아아!
살인권을 연거푸 날리는데도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일기권투를 펼치니 관객들의 몸엔 전율이 일었다. 쌓인 스트레스가 풀리면서 아드레날린이 극도로 분비되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
저처럼 무식하게 권경을 사용하게 되면 내구도가 심각하게 깎인다. 권투 선수가 오랫동안 머리와 턱을 맞으면 스치기만 해도 쓰러지는 펀치드렁크에 걸리듯.
-밀리잖아, 젠장!
-권왕가가 황보세가에 지는 거냐!
-권왕은 죽을지언정 물러서지 않아, 제자라면 절대 물러서지 마!
-저렇게 무식하게 싸우는데 물러서지 않을 수 있냐? 저러다 주먹 망가져!
-최선을 다하는 것 같은데, 지더라도 응원하자.
-최선은 중요하지 않아, 결과를 못 내면 잊힐 뿐이야!
-인생 다 살았냐, 쟤 고작 열일곱 살이야!
흥분한 관객은 지면 안 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기권투는 한 번 밀리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웠다. 기가 산 중국 쪽 응원단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팽팽했던 긴장감이 무너지며 득의양양했다.
꽈아아아앙!
충돌할 때마다 조금씩 밀리더니, 무진은 결투장의 가장자리까지 몰리고 말았다. 더는 뒤로 갈 수 없다. 최적의 파괴력을 낼 권로를 잃게 된다.
“이제 마지막이다!”
황보성은 전력을 끄집어내어 권에 심었다. 이걸로 끝장을 보려는 심산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황보성의 호흡이 무척이나 거칠었다. 무복은 땀으로 젖어 버린 지 오래였다.
푸아아아앙!
결투장에 고막을 찢어발기는 굉음과 소용돌이치는 사나운 기파가 발생했다. 결판이 났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버티기에는 무진의 형세가 불리했었다. 정권에 전력을 실으려면 최소한의 동선이 필요하다. 거리마저 빼앗긴 이상, 일기권투에서 승산이 없었다.
그래야 하는데.
-버텨 냈어!
-와, 근성 뭐냐?
-이번 권격은 굉장히 위험해 보였는데.
-저 정도면 잘하는 거잖아, 인정해 주자.
-마다마다!
-왜 여기 일본 새끼가 있는 거야?
-와따시 한국 사람이무니다.
끈질기게 버티고 있을 뿐, 승세가 기울었다고 보았다. 관객들도 다음이 마지막이라 여겼다.
남궁천도 다음 수를 기대했다.
그는 대화를 단절했던 교장의 난감한 표정이 보고 싶어졌다. 제자나 다름이 없다고 했으니, 참으로 볼만……해야 했거늘.
후비적, 후비적!
아니?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앉은 채 귀를 후비며 대결을 보지도 않았다. 당황하기는커녕 마치 남의 일처럼 평온하다.
잘할 때만 제자인가, 못할 때는?
‘이 망할 노인네가 노망이라도 났나!’
제자가 다음 일기권투로 실려 나가게 생겼다.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서로 내외공과 내구력을 깎아 먹는 무식한 짓이라, 일기권투는 지향하지 않는 대결 방식이었다.
더욱이 밀리는 즉시 이제까지 받은 모든 충격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 그리되면 단시일에는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
“제자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나는 제자를 믿네.”
“그 믿음에 보답하기를 바란다면, 사부로서 조금 더 성의를 보여야지요!”
“알아서 잘 크는 녀석이라오.”
낳아 줬다고 부모가 아니듯, 자식을 올바르게 키워야 할 의무가 있었다. 스승이 부모와 같다면 제자를 위해 성심성의를 다해야 하거늘, 저리 무관심해도 되는가?
버린 자식이 장성한 후 죽었을 때야 비로소 상속재산을 탐내며 나타나는 부모처럼 느껴졌다.
‘어디 제자가 비참하게 쓰러지고 나서……?’
마지막인 줄 알았던 남궁천은 예상과 다른 결과를 내려다보고 말았다.
털썩!
황보성이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일기권투의 충격이 내부를 강타해 더는 일어설 힘도 없었다. 의식이 끊어지려는 걸 간신히 부여잡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 기절하지 못했다.
분명 이기고 있었는데, 우째 이런 참사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굳이 그런 걸 할 필요가 있나.”
“너…… 설마?”
“어때, 재밌었지?”
진원진기까지 끌어다 쓰진 않았지만, 황보성은 전력을 한꺼번에 폭발시켰었다. 이거라면 무진을 쓰러뜨리고, 권왕에게 당한 치욕을 되돌려 줄 수 있을 줄 알았다.
더욱이 일기권투로 인해서 그간 도달하지 못했던 경지를 맛보았다. 황보성은 이 주먹이야말로 자신이 날릴 수 있는 최강의 권격임을 자부했었다.
그저 망상에 불과했던가.
놈의 말대로,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다.
허!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져 나오는 황보성이었다. 가지고 놀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 모습을 봐라, 일기권투를 치렀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견고함이었다.
“……괴물 같은 놈이었군.”
“첨언하자면, 중간에 마음을 바꿀 거 같아서 스토리에 신경 좀 썼다. 그러니 어서 기절해, 더 버티기도 힘들잖아.”
“……인정하마…… 꼴까닥!”
대국의 무인으로서 수치스러운 패배를 당하지 않은 것으로 황보성은 다소 안도했던 모양이다. 정신 줄이 나가자 실 끊어지듯 바닥에 고꾸라졌다.
-강무진 승.
이번 승리는 모두에게 남다르게 다가왔다.
무진과 황보성의 대화를 모르는 이상, 관객에겐 밀리던 형국이 마지막 일격으로 역전한 것처럼 보였다.
와아아아아아아!
일기권투의 방점을 찍으며 승리를 거둔 무진은 관객의 환호성에 손을 들어 응대했다.
-씨발, 이걸 또 이기네!
-평소 잘난 체하는 꼴이 마음에 안 들었는데, 오늘은 간지 작살이다!
-난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다고. 두 번은 못 보겠다! 그래도 지렸다, 잘했어!
-이렇게 이길 거면 너는 좀 거만해도 돼!
-어떠냐, 이게 바로 진정한 권의 후계자다!
이번 승리로 한국은 승기를 완전히 잡아 오는 계기가 되었다. 달아오르는 분위기만큼이나 중국과 일본의 기세를 꺾었다.
“나는 제자를 믿었다오.”
“……닥치시오!”
허허실실 하던 교장의 분위기가 순간적으로 날카로워졌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연배를 무시하는 행위는 곤란했다.
“닥치라니, 말이 심하군. 너 몇 살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