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189화 (190/374)

189. 어우한(1)

개인전은 2일 동안 진행이 되었다.

첫날 30전이 치러지기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반나절 동안 진행되어 늦은 밤이 되어야 끝이 났다. 다음 날 아침 9시부터 2회전을 시작하여 결승까지 치러졌다.

대회 진행이 지나치게 타이트하다고 한국은 과거 시일을 하루 더 늘리자고 요청했지만, 중국과 일본은 교류전의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고 묵살했었다.

중국과 일본이 합심하니, 한국으로선 더는 주장하기 힘들었다. 교류전은 한중일의 화합을 다지기 위한 대회라,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어려웠다.

실상 교류전마다 중국과 일본이 다수의 생도를 2회전에 진출시키기에 한국으로선 소수로 회전을 치러야 하는 불합리함이 있었다.

전력에서 압도적이지 않으면, 부상을 안고서 싸워야 했다. 하물며 개개인의 스텟에서도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밀리고 있었다. 10년 전부터 교류전이 중국과 일본의 잔치가 된 연유였다.

그런데 이번 교류전은 반대가 되었다.

남궁천의 예상은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왜냐고? 삼공자, 남궁정이 한국의 천혜진에게 패배하며 2회전에서 탈락해 버렸다. 그 뒤로도 팔대세가와 구대문파는 탈락의 연속이었다. 청성파와 아미파도 떨어졌으니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었다.

부들부들!

부르르르!

시게노도 예상을 벗어나는 2회전의 결과에 입술이 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십검가에서 대거 탈락자가 나오면서 반수도 남지 않았다. 교류전의 역사상 최악의 성적표가 그려지고 있었다. 이러다간 본국의 국민을 볼 면목이 없었다.

‘하필이면, 나 때!’

교류전의 새로운 역사를 위해 공주가 친히 나섰다. 공주를 띄워 주기 위해서 그간 모든 정보를 차단했고, 비밀리에 훈련을 시켰다.

공주는 천에 하나의 재능을 타고난 천재이며, 속성까지 빼어났다. 그런 공주의 데뷔가 일본 역사상 최악의 교류전에서 나온다면 어떻겠는가.

안 하느니만 못한.

시게노가 처음과 달리 눈에 띄게 당황하는 연유였다. 이러다 자칫 자신의 탄탄대로가 완전히 막혀 버리는 수가 있었다.

황실의 미움을 사서 쥐도 새도 모르게 은퇴할지도 모른다. 세대가 바뀌면서 황실이 유명무실해진 줄 알고 있지만, 실제는 전혀 달랐다.

‘절대로 안 돼.’

다행히 공주가 남아 있었다. 공주라면 기울어진 균형을 바로 세울 능력을 갖추었다. 더욱이 공주의 옆을 충실히 보좌하는 십검가의 대표인 하야토가 있지 않은가. 교류전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좋겠소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패배할수록 배우는 바가 크지 않소. 아주 큰 깨달음을 들고 본국으로 가겠구려. 하하하하하!”

“……누가 더 깨달음을 얻을진 아직 회전이 남아 있습니다.”

이 망할 영감탱이가!

좋게 대해 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나.

시게노와 남궁천의 안광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교장을 염라지옥에 담그고 싶을 지경이다.

그도 그럴 것이 뻔히 보이는 염장질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얼레!

여태 의식하지 못했었다. 교장은 다리를 꼬고 거만하게 앉아 있었다. 불편해서 다리를 교차했을 수도 있지만, 하는 짓이 하나같이 맘에 안 들었다.

‘어떠냐, 이놈들아! 이게 바로 무진이 녀석의 할 듯 말 듯 염장질이란다.’

제자는 스승을 보고 배운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 교장은 어느새 무진에게 물들어서 초록은 동색이 되어 버렸다.

사실 매번 당하고 나니 저절로 몸에 밴 것이다. 생도들의 임기응변이 무진에게서 기인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알아도 어쩔겨?’

대놓고 하는 염장질과 다르지 않지만, 따질 명분이 없다. 이를 위해서 교장은 교류전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한결같은 태도를 취했다.

나는 관대하다.

그 앞에서 시게노와 남궁천이 할 수 있는 저항은 노려보는 것이 전부였다. 분노하여 소리를 지른다면 본인들 스스로 속이 좁다는 걸 광고하는 꼴이었다.

그러는 사이 무진이 결투장에 올라섰다.

다음 상대는 황보세가의 권룡 황보성이었다. 소림, 남궁, 제갈에 밀려 있기는 해도, 개인적인 전투력은 뒤지지 않았다. 특히 황보성은 천왕불사지체를 타고난 신맥의 소유자로 내외공의 조화를 이룬 재목으로 평가받는다.

두둥!

무진과 황보성이 올라서자, 결투장이 가득 들어차는 것 같았다. 둘 다 190cm를 넘어가는 거구에 단련된 신체가 뿜어내는 기도가 상당했다. 풍선처럼 부풀린 근육과는 다른 사내의 마초적인 강인한 인상을 풍겼다.

찌릿!

무진과 황보성의 시선이 부딪히며 불똥이 튀었다. 대결이 시작되기 전임에도 서로의 투기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더욱이 마주하는 시선에 깔린 조소가 서로를 얼마나 같잖게 여기는지를 보여 주었다.

“네놈에게 대국의 무인을 대하는 자세를 가르쳐 주마.”

“답례로 나는 착해지는 법을 알려 주마.”

“듣던 대로 건방지군. 다시는 주둥이를 나불거리지 못하게 해 주지.”

“덩치에 안 맞게 주둥이가 가볍구나.”

황보성에겐 신선하다 못해 경험해 보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자신을 상대로 이렇게 대놓고 도발하다니, 교류전이라고 해서 무사히 결투장에서 내려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잘못 생각해도, 한참을 잘못 생각했다.

“평생 땅바닥을 기면서 살게 해 주지.”

“말이 험하네, 녹화되는 거 몰라? 나중에 평생 까일 거리가 될 텐데, 무섭지 않나 봐.”

“기막을 쳐 놓고 개소리를 잘도 하는구나.”

“이렇게나 내가 상대방을 배려한다. 그러니까 많이 고마워해라.”

황보성은 설령 목소리가 녹음된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대국의 무인이 소국의 눈치를 볼 이유는 없다.

“하고 싶은 말을 해라. 할 말이 있으니까 기막을 쳤을 거 아니냐.”

“일기권투 어때?”

“네놈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너 따위가 감히 천왕권을 대적하겠다고!”

“꼭 자신 없는 새끼들이 혓바닥이 길더라. 할 거야, 말 거야?”

“네놈의 같잖은 수작을 내가 왜 들어줘야 하지?”

일기권투는 가장 자신 있는 정권을 내질러 서로의 주먹을 상대하는 단순한 대결이었다. 누구의 주먹이 더 강하고, 단단한가를 가려내는 원초적인 강함을 증명한다.

“내가 천하제일권이니까.”

“이런 정신 나간 놈을 봤나!”

황보성은 기도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권이라 불리는 아버지조차도 감히 천하제일을 거론하지 않거늘, 일개 생도가 천하제일을 논하고 있었다.

고작 장위 따위를 힘으로 이기더니, 세상이 자기 위주로 돌아가는 줄 알았다. 감히 세계의 중심인 대국의 무인도 함부로 하지 않는 말을!

“그래서 대답은?”

“오냐,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깨닫게 해 주마!”

무진은 이번에도 웃었다. 네가 어쩔 거냐? 뛰어 봤자 벼룩이라는. 결국에는 걸려들었다는 의미가 고스란히 담겼다.

“부처님 손바닥 알지? 아, 석가모니는 중국 사람 아니다. 인도도 너희 거면 모르겠지만.”

“헛소리 그만하시지!”

“아, 공자는 너희 나라 사람이야. 우린 줘도 안 가져. 대체 공자를 가져서 어따 쓰라는 거야?”

“닥치라고!”

이 빌어먹을 놈이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하물며 세계 4대 성인이자, 동아시아에 수신제가치국의 근간을 완성한 공자님을 저딴 식으로 표현하다니, 대중화의 무인으로서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 하여간 근본 없는 소국은 사흘에 세 번은 처맞아야 정신을 차렸다.

웅성, 웅성!

대결은 이미 시작됐다.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성급한 인간형들이었다. 언쟁이 길어지자 관객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목소리라도 들리면 모를까, 이상하게도 잘 안 들린다. 입은 뻥끗하는데도 스피커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탐색전이 기네, 시작하자마자 끝날 줄 알았는데.

-왜 소리가 안 나? 스피커 고장 난 거 아냐?

-저게 바로 무인의 고급 기술인 기막이란 거다, 이 무식한 것들아.

-기막이면 최소한 일정 수준의 내공과 깨달음이 필요하지 않나? 대체 누가 쓴 거야?

-기막과 강기는 모두 대중화의 소산이다.

-조선족은 제발 너희 나라로 가라.

-같은 민족인데, 차별하진 맙시다.

-우리는 다 (좆)같은 민족이긴 하지.

무진과 황보성의 대화가 길어지자, 상석에 앉은 남궁천도 심기가 편찮았다. 자꾸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교류전이 불편했다.

더욱이 상대는 개수작을 부려서 1회전을 통과한 무진이었다. 방심하는 사이에 환술이나 주술을 쓸 수도 있었다. 대중화의 무인으로서 폼은 중요하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쓸데없이 시간을 끄는구나.”

황보성이 잡술에 당하지는 않겠지만, 남궁천은 어서 빨리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심리전에서 말리는 분위기라 속전속결이 필요했다.

-오늘 김치찌개가 입맛에 맞지 않았냐?

-돼지고기를 안 넣고, 참치를 넣었지? 아, 짜증 나네.

-김치에는 참치를 넣어야지, 이래서 맛을 모르는 녀석은 안 된다니까.

-돼지고기다!

-참치다.

-안 되겠군, 승부다.

-좋아, 지는 놈은 무조건 춘장김치찌개행이다.

뜬금없는 교장의 중얼거림이었다. 혼자서 1인 2역을 무리 없이 소화하고 있었다. 내력으로 목소리를 변조시켜 흉내를 냈다. 아주 훌륭한 성대모사였다.

다만, 이 자리에서 할 말은 아닌지라 남궁천과 시게노를 당황스럽게 했다. 더욱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모르는 술수라도 부리려는 건가?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내가 독순술을 좀 하네만, 꽤 비슷하지 않소?”

“……?”

진지하게 물어봤던 남궁천과 기대했던 시게노는 교장을 매섭게 노려봤다. 교장의 독순술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무진과 황보성이 김치찌개 때문에 화를 내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근래에 퓨전 요리가 인기라곤 하지만, 춘장김치찌개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황보 생도는 어떻게 그런 참혹한 제안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천인공노할 일이군.”

“……그걸 말이라고!”

남궁천과 시게노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도 않은 말을 자기 멋대로 조작, 왜곡해서 진실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표정도 변하지 않고 진지하게 지껄였다.

‘이 상종 못 할 인간 같으니라고!’

자꾸 대답을 해 주니까, 이 인간이 맛 들려서 계속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다. 상종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로웠다.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해 봤자, 고작 김치찌개 언쟁이었다. 그걸 가지고 진지하게 옳다 그르다를 판별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지금은 그딴 게 중요하지 않았다.

꽈아아아앙!

쩌렁쩌렁 울리는 충돌의 육중한 여파가 사방으로 번진다. 투명 결계가 있어 타격을 입지는 않겠지만, 관객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을 만끽했다. 닭살이 돋은 관객의 쭈뼛 솟은 소름이 가시기 전 굉음이 재차 터진다.

꽈아아아앙!

우우우우웅!

연속 폭발음이 들리고, 시차 없이 재차 폭발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연이어 토해지는 굉렬함, 사나운 기파가 결투장의 결계를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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