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개인전(2)
-오오오오, 드디어 권후구나!
-권왕표 출신은 믿고 쓸 만하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권후라면 불리한 흐름을 반전시키고도 남을 거야!
-초장에 너무 기대가 큰 거 아닌가. 패배한 생도들도 국내에선 내로라하는 유망주였다고!
-중국과 일본도 못 넘으면 세계는 어림도 없지!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 우리, 중국, 일본을 만만히 볼 국가가 있긴 하냐?
사람들의 심리는 거기서 거기였다. 기대하면 안 되는데도, 또 기대하는 건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우리 생도들이 미워도 결국은 응원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동일 민족성이었다.
하물며 권후는 모두의 기대를 충족할 만한 실력을 보여 주었다. 이번이 최초의 국제전이기는 해도, 권후라면 다르리란 기대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뚜웅!
대연무장의 폭발적인 환호성에 상원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이건 너무하는 거 아냐.”
“그러게, 평소에 존재감 좀 키우지 그랬냐.”
“나는 이겼다고!”
“그래, 축하한다.”
무진의 무덤덤한 축하였다.
실상, 우리의 첫 승은 놀랍게도 상원이 만들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승리를 인정해 주지 않고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첫 승리를 장식할 기회처럼 열띤 응원이 이어졌다.
“내가 투명인간도 아니고, 다 부숴 버리고 말겠어!”
“녹음했으니 기원하마.”
항상 녹음에 유의하며, 말조심해야 했다. 지금 한 말이 나중에 발목을 잡는 건 상식이다. 서로 믿고 살면 좋겠으나, 안타까운 세태였다.
“……그런 뜻이 아니라, 열심히 해 보자는 거지!”
“어중간하면 죽도 밥도 안 돼.”
“그런가?”
“당연하지. 저기 네 다음 상대한테 가서 태극혜검이 매화이십사수검보다 낫다고 해 봐.”
무진이 가리킨 방향에 선 사내. 복장을 통일한 생도복이지만 문파를 상징하는 마크는 달 수 있었다. 오악의 하나인 화산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매화가 새겨져 있었다.
“날 죽일 심산이야?”
“그 정도의 각오는 있어야지.”
국가전이라 화산파와 무당파가 하나로 뭉쳤을 뿐, 서로 간에 감정이 좋지는 않았다. 대륙제일검을 자처하는 무당파는 화산파로선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었다. 최근에는 그 경쟁 심리가 더욱 심해졌다. 타국이라 주변을 의식해서 신경전을 벌이지 않을 뿐이다.
이는 당연했다.
우리는 우리나라 생도를 욕해도 되지만, 중국과 일본이 욕하는 건 절대 못 참는 것처럼.
“존재감 키워 줄까?”
“어떻게? 방법이 있어?”
“있지. 이거 등에 달아.”
-대륙제일검류 무당파.
상원은 할 말을 잃었다. 존재감이 없어서 서글펐는데, 이 글귀를 다는 순간 단숨에 교류전의 핫이슈가 되고도 남았다.
“무당파는 아군으로 만들 수 있지.”
“나하고 붙으려면 반대편이라고!”
“그때까지 살아남아.”
“그러면 난 너하고 붙는데!”
표정이 어색해진 무진이 고개를 돌리자, 상원은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 말장난으로 생각나는 대로 지껄인 게 분명했다. 이 사소한 시간에도 친구를 놀리는 데는 진심이었다.
“시작한다. 수석 조장은 대결에 집중하도록.”
“널 믿은 내가 병신이지!”
무진의 시치미에 상원은 와락! 인상을 구겼지만, 늘 그렇듯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면 모를까, 빈번하게 일어나면 자신도 모르게 무덤덤해진다.
이 정도의 정신 충격은 상원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다. 그만큼 자신의 정신이 성숙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눈물이!’
안구에 차오르는 습기를 남모르게 훔쳤다.
그건 아닌가?
4인방이 삼라오만상을 지으며 혐오감 가득한 시선으로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사내가 돼서 울었다고 동네방네 광고할 기세였다.
망할!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저 4인방이라면 능히 그리하고도 남았다. 언제든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까.
‘저 새끼들은 왜 나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상원은 속으로 투덜댈 뿐이다. 어차피 말을 해 봤자, 씨알도 안 먹힐 종자들이었다.
‘원흉이 따로 있으니.’
모든 일의 시발점인 무진을 욕해야 마땅했다. 안타깝게도 상원은 용기가 없다. 그랬다간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앞날이 훤히 펼쳐졌다.
-대결을 시작합니다.
와아아아, 권후 이겨라!
하북의 용이여, 승천하라!
일방적인 응원이긴 한데, 중국도 만만치는 않았다. 무려 500명의 인원을 관람객으로 동원했다. 부산 아시안게임 당시 북한에서 온 단체 응원단처럼, 제복을 입고 하나처럼 움직이는 응원은 실로 놀라웠다.
공산권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제식이 딱딱 맞는다.
뿌뿌뿌뿌~~~~~웅!
‘부부젤라는 또 어디서 구했데!’
일대일로의 수입품, 부부젤라로 인해 대연무장이 시끄러웠다. 남아공이 중국과 협조를 하면서 제일 항구를 영구 임대한 사례가 있었다. 항구를 짓기 위한 자재와 인력을 전부 중국에서 수입했으니, 일대일로의 의도를 보여 주었다.
흠.
팽천경은 권후라 불리는 지수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나이를 따지면 권봉, 권룡도 과분했다. 1학년 생도 주제에 권후라니, 대국을 표절하는 한국다운 기만책이었다.
한국과 일본이 사용하는 모든 별호는 대중화의 소산이다. 신하국임을 망각하고 주인을 몰라보는 개에겐 합당한 대접을 해 주어야 마땅했다. 자고로 말 안 듣는 노예에겐 매가 약이라고 했으니, 당연한 처사였다.
‘외모는 쓸 만하군.’
장위가 미쳐 날뛸 만한 외양의 소유자였다. 하나, 외모가 실력을 대변하진 않는다. 주변에서 띄워 주니 스스로가 진짜로 권후라도 된 줄 착각할 뿐, 곧 여인의 숙명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세상의 중심은 대중화이며, 강한 남자가 세계를 지배하기 마련이다. 소국의 여인은 마땅히 대국의 사내를 경건하게 맞이해야 했다.
‘어디 내 앞에서도 이빨을 드러내 보거라.’
사전 영상을 통해 권후의 전투력을 확인했다. 제법 사나운 듯하지만, 외모가 받쳐 준다면 그것조차 매력이 되었다.
팽천경은 사나운 여인을 길들이는 걸 즐겼다.
하북의 용, 북진도룡.
팽천경은 애병인 적호도를 꺼내 들었다. 가문의 절기인 오호단문도를 꺼내 든 이상 결과는 정해졌다.
“오너라.”
“그래.”
지수의 하대에 팽천경은 미간을 찌푸리다 가소로운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직도 자기 주제를 모르는 모양인데, 혼원벽력신공의 따끔한 맛을 본다면 표정이 달라질 터.
“감히 정면으로 오다니, 겁이 없구나.”
“아닌데.”
정면으로 쇄도해 오던 지수를 반으로 쪼갰던 팽천경은 당황했다. 반으로 갈리기 전 막을 줄 알았는데, 적호도가 바닥을 찍었다. 갈라진 지수가 환영처럼 사라지려고 할 때 현실을 직시했다.
“……이형환위.”
“맞는데.”
뻐어억!
팽천경의 관자놀이에 권흔이 새겨졌다. 더 깊숙이 들어갔다면 일격에 뇌수를 철철 흘리며 바닥을 선홍빛 피로 물들였을 텐데, 지수는 손 속에 사정을 두었다.
별것도 아닌 게 시작부터 쪼개길래 센 줄 알았는데, 지수는 흥미를 잃었다.
쐐애애액, 꽈아앙!
쿠다다다당!
머리통을 직격당한 팽천경은 일직선으로 광선처럼 쏘아져 나가 결투장의 투명 결계에 부딪힌 후, 바닥을 볼품없이 데굴데굴 굴렀다.
딸피도 남지 않고 대미지가 100% 들어갔다. 그걸 증명하듯, 팽천경은 게거품을 뿜으며 눈이 돌아간 상태였다.
-……유지수 승!
탓탓!
지수는 손을 가볍게 털고 결투장을 내려갔다. 승리를 기뻐하기는커녕 당연하다는 식이라 대연무장이 고요해졌다.
아!
누구도 이런 결과를 상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이기든 치열한 접전을 예상했었다. 상대는 중국을 대표하는 칠룡의 일인인 북진도룡이었다. 그런 도룡이 포효를 해 보기는커녕 단 일수에 기절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믿어지지 않는 결과에 적막했던 대연무장이 떠나갈 듯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여태 시원한 승부는커녕 전패를 면치 못했기에 권후라도 승리해 주기를 바랐었다. 한데, 접전은커녕 일방적인 승리를 가져왔다.
-와, 씨발, 역시 권후는 통할 줄 알았어!
-우리에겐 권후가 있다 이거야!
-방금 움직임 뭐야, 하나도 안 보였어!
-그게 바로 이형환위란다!
-속성이나 스킬이겠지!
-뭘 쓰든 무슨 상관이야, 시원하게 이기면 장땡이지!
열광의 도가니가 따로 없었다. 그동안 전패했다는 사실마저 잊은 채 권후의 승리를 축하했다. 이대로 승승장구하여 우승하기를 바랐다.
“전패 아니라니까!”
가장 먼저 1승을 챙긴 상원은 억울했다. 이런 갭 차이는 너무하잖아. 먼저 승리해도 존재감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잔혹한 현실이었다.
‘그러게, 압도적으로 이겼어야지.’
안타깝지만, 광역기에 특화된 마법사는 좁은 결투장 안에서의 대결이 불리했다. 화려한 광역기를 펼치기도 전에 접근전에 당하기 일쑤였다. 아예 레벨 차이가 크면 모르겠으나, 생도 간의 격차는 크지 않았다.
흠.
남궁천은 태연한 모습이었지만, 마땅치는 않았다. 팔대세가로 불릴 때부터 라이벌이었던 하북팽가의 패배는 분명한 이변이었다.
‘쯧, 대비했어야지.’
상대가 권후인 이상 예상했어야 한다. 하물며 일격에 기절한 것도 부족해 저런 볼품사나운 꼴을 당하다니, 대중화의 무인으로서 실격이었다.
‘수 자체는 나무랄 게 없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강력한 권격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생도다운 실력을 갖추었다. 하나, 대세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한국도 한두 명은 예전부터 군계일학이었다. 더욱이 속성이나 스킬을 이용한 이형환위는 알고 있으면 대처할 수 있었다.
‘저 아이를 믿고 여유를 부렸나? 그렇다면 곧 실망하겠군.’
권후가 뛰어나기는 해도, 2차전에 오르는 인원을 고려해야 했다. 지금처럼 일방적인 승리가 아니라면 연이은 대전으로 인한 피로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더군다나 성원이 더해질수록 부담감도 커지게 된다. 주위의 부담스러운 기대를 극복하고 정상적으로 대결을 펼치기란 쉽지 않았다.
‘영상으로 볼 때보다 빠르군.’
시게노도 권후의 빠르고 간결한 수법에 놀랐다. 그래서 좀 아쉬웠다. 일격으로 끝나지 않고, 손 속을 더 겨루었다면 권후에 대한 파악이 되었을 텐데.
그도 아니면 중국 생도의 실력에 거품이 있는 걸지도. 워낙 체면을 중시하고 허세가 강한 중국이라 사실대로 믿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방심할 순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