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184화 (185/374)

184. 저년 죽일까?(2)

염탐을 옹호할 순 없어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태라고 하지 않나. 생도 간의 격차를 알았다면 상성 싸움을 가야 하거늘. 한국은 그러한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포기했다고 하기엔 느긋한 것 같고.’

한국 아카데미 교장은 한때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 내고 시민을 구한 영웅으로 활약했다고 들었다. 가장 위험했던 각성의 시대를 겪은 백전노장치곤 포기가 빨랐다.

그래서 이상하다.

혹, 장위를 보고 우릴 가늠했던 건가.

하,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지만, 아주 쓸모가 없지는 않군.’

장위의 기량만으로 본국을 판단했지만, 한국은 눈뜬장님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 안목에 불과하다면, 일본의 십검만 조심하면 되었다.

일본 검가의 대표인 용검가 시게노 교관도 남궁천과 뜻이 통했다. 한국이 이전과 달리 지나치게 방관하는 것 같았다. 자신들이 중국만을 견제하고 있으니 아예 포기했다는 인상을 풍겼다.

‘권왕가만 신경 쓰면 되겠군.’

나이에 비해 과분한 별호를 얻은 권후였다. 그만한 자질이 있기는 하나,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상대하고도 남았다. 한국은 아직 진정한 권후를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흠.

중국과 일본의 분위기를 알아챈 마라창과 권패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과연, 허허실실이었어!’

‘방심을 유도하여 허를 찌르겠단 거군.’

확신하는 연유는 일전 정협검 검거 당시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교장께선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정협검이 배신자란 증거를 찾아냈었다. 그런 심모원려한 교장께서 설마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겠는가.

“어우한이로다.”

“……?”

교장의 중얼거림에 마라창과 권패는 물론, 남궁천과 시게노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문이라도 외우는 건가? 여유로운 미소가 어딘지 모르게 껄끄럽다.

‘아닌가?’

‘아닐지도.’

마라창과 권패도 긴가민가했다. 믿음이 일순간 붕괴하고, 불신이 깃든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런 말이 있으니, 자네들은 일정 관리에나 최선을 다하게.”

일본과 중국은 한국을 제외하고, 서로에 대한 견제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한국 교장의 실성한 상태를 보니, 일전 사고로 인해 정신 줄을 놓은 모양이다. 아니면 이번 대회만 차질 없이 치르고, 보기 좋게 은퇴하려는 걸지도.

‘대체 어쩌시려고?’

기대했던 마라창과 권패는 힘이 빠졌다. 철혈구좌가 된 교관들도 답답함을 느꼈다.

‘이러면 쌍수밖에 믿을 게 없나.’

‘태수와 지수라면 괜찮겠지.’

성운맹주와 의협단주가 기선 제압을 해 준다면 나머지 생도들도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

개회식이 끝나고 바로 개인전 대전표가 발표되었다.

대전표는 각국의 대표를 무작위로 선정하진 않았다. 토너먼트로 진행이 되는 1경기는 무조건 나라를 나눈 후, 그 안에서 무작위로 추천했다. 동일 국가 간에는 경쟁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과거 무작위 대진으로 동일 생도의 대결이 많아져서 흥행도 결과도 망친 적이 있었다. 일례로 전력을 아끼기 위해 기권을 전략적으로 사용해 비판받았었다.

상대 국가의 전력을 확인하고 우호를 다지는 차원에서 1경기는 무조건 상대 국가의 생도로 정했다. 이러는 편이 그나마 공정하기도 하고, 각국 생도의 각축전을 볼 맛도 났다.

다만, 일전 교류전에서 전력 약화를 심하게 겪은 한국은 1차전에서 절반 이상이 탈락하면서 일본과 중국의 결전에 바람잡이 역할만 하게 되었었다. 교장과 아카데미에 대한 한국 여론의 질타도 굉장히 심했었다.

개인전은 오후부터 시작한다.

생도들은 점심을 먹고 컨디션 점검과 대전 상대에 대한 정보를 머리에 새겼다. 개인전은 집단전과 달리 장비와 아이템을 각각 1개씩 사용할 수 있었다.

흐흠~~!

주변의 분주함과는 대조적으로 무진과 지수는 원두커피의 향을 음미하며 아카데미의 풍광을 즐겼다. 그 주위로 예슬, 혜진, 유정, 상원, 4인방은 전투 시뮬레이션 겸 최종 점검을 하고 있었다.

상원은 1차전 상대인 일본 생도의 전력을 확인하다, 무진의 유유자적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누군 어떻게든 1차전을 승리로 장식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데, 누군 시간이 남아돌고 있었다. 경제적인 빈곤뿐만 아니라, 전투력의 빈곤도 삶을 피곤하게 했다.

상대적 박탈감이 심하다.

같이 못 사는 건 참아도, 혼자만 잘사는 건 참지 못하는 인간의 본능이었다.

“이젠 우리나라도 부족해서 국제적으로 적을 만드는 거야?”

“나와 다르게 우리 상원이는 중국, 일본하고 친하구나.”

상원의 안색이 퍼렇게 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일대일로와 친일을 옹호하는 발언처럼 들렸다.

“친구를 이기긴 어렵겠지.”

“결투장 안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길게!”

상원의 지적대로 무진의 평온함은 각국 생도의 신경을 자극했다. 장위를 도발한 행위는 전략적인 선택으로 사기 진작과 흥행을 위해서라지만, 교류전 당일까지도 별다른 훈련을 하지 않고 있었다. 포기했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여유로웠다. 중국과 일본이 한국을 안중에 두지 않는 것 이상으로 가소로움이 느껴졌다.

‘다 장위 같은 줄 아는 건가?’

‘명검가에서 벼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표정은 아무렇지 않은데.’

‘속으로 삭이는 일본 애들 특징 몰라!’

평소에 화를 잘 내는 사람보다 조용히 분노를 쌓아 두어 폭발시키는 사람이 무섭다고 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음흉할 수도 있으나, 그것이 일본의 특징이었다.

예의와 겸손이 일본을 대표하지만, 내심을 몰라 뒤통수 맞는 일도 빈번했다. 실제로 일본은 한번 정하면 바꾸지 않는 습성이 있어, 새로운 거래를 트기가 힘들다.

무진의 1차전은 명검가의 신성 카즈마로 명검류의 칠형을 완벽히 익혔다는 소문이 있었다. 더욱이 일본 고유의 닌자식 술법이 발휘된다면 검의 위력이 배가된다.

가장 조용하면서 가장 위험한 상대가 명검가의 신성이었다. 실제로 일본을 대표하는 십대검가의 생도 중 5위의 실력을 자랑했다. 존재감이 없는 기도조차도 검공을 가리는 수단처럼 보였다.

‘좋아, 계획대로 되고 있어.’

주변의 날 선 반응을 무진은 여유롭게 받아들였다. 뭐라고 떠들든 전혀 충격을 주지 않았다. 교장과 합의한 대로 어우한이었다.

우리에게는 지수가 있으니까.

계획대로 지수는 한껏 무게를 잡고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권후이자, 의협단의 단주로서 품위를 지켰다.

그러다 갑자기.

‘무진아.’

‘왜?’

‘저년 죽일까?’

‘……?’

느닷없이 훅! 들어온 지수의 전음이었다.

무진은 깨질 뻔한 여유를 다잡아 간신히 평정심을 유지했다. 부동심을 완성했다고 자부했거늘, 지수는 나날이 요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나, 전후를 자르고 냅다 살수를 꺼내 들었다. 연쇄잔혹살인마가 아니고선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일본 소녀의 정체가 놀랍기는 해도, 다짜고짜 죽일 만큼 죄를 짓진 않았다. 공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잔혹한 수저 논쟁은 시대가 바뀌어도 불변이었다.

‘놀라기는, 농담이거든. 내가 설마 나 몰래 전음 좀 주고받았다고 죽이기야 하겠어? 나 그렇게 속 좁은 년 아니야, 알잖아?’

‘알다가도 모르겠는걸. 그런 마음가짐이면 차라리 죽이는 게 낫지 않을까?’

‘끔찍한 소리 좀 하지 마. 난 그저 우리나라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야.’

송사리가 노는 민물에 백상아리가 날뛰는 격이다. 최선을 다하는 걸 넘어 본원진기를 폭발시켜도 이기기는 글렀다. 지수의 패배는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했다.

‘공주의 말로가 편치 않겠어.’

‘어이가 없네. 너 오늘 처음 본 년을 걱정하는 거야?’

이거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데.

어떤 말도 공주에게 이롭지 않았다. 지수는 둘이서 전음을 주고받을 때부터 작정하고 있었다. 위로든, 비난이든 애초에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귀 닫고, 뇌 닫고.

무진은 무의식적으로 일본 생도들을 보고 말았다.

위기를 체감했을까?

아니구나.

일본 공주는 생도들과 근심 걱정 없이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세상의 밝은 모습만 보고 자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웃을 때가 아닌데.’

발표된 대전표를 보니 3회전이었다. 지수를 만나고서도 지금처럼 때 묻지 않은 밝은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부르르르!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박히는 것 같다.

때마침 지수의 전음이 딕션 좋게 또박또박 뇌리에 박힌다. 얼굴은 웃고 있는데 모골이 송연해진다. 통제만상, 지수의 경지가 의념을 통제하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려 주었다.

‘저년, 내가 웃긴가 봐.’

‘그렇진 않을걸.’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생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그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니 실로 놀랍다. 혹시, 내가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MZ 세대로서 꼰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뼈대 깊은 조선 사대부이자 독립운동가 집안의 후손으로서 모른 척할 순 없지.’

‘권왕가는 그런 쪽이 아닌데.’

듣기로 권왕가는 조선 사대부도, 독립운동가도, 친일 매국노도 아닌 선량한 깡패…… 평민 가문이었다. 그렇다고 지수를 말리기에는 항일운동의 열사로 빙의한 지 오래다. 하긴, 그 시절의 권왕가라면 일본인들 많이 패고 다녔을지도.

‘중국하고 할 때는 공산당이 싫다고 할 셈인가?’

무진은 순리대로 흘러가기를 바라며, 일본 공주의 (공)염불을 외워 주었다.

‘이 정도면 나도 노력한 거지.’

처음 본 일본 공주와 지수를 비교한다면 팔은 당연히 안으로 굽기 마련이었다.

개인전은 실시간으로 중계가 되었다. 벌써 각국의 인터넷 사이트가 불이 나고 있었다. 모두 자국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일방적인 응원과 상대국에 대한 비난이 쇄도했다.

한·중·일은 매번 아시아의 맹주를 너 나 할 것 없이 자처해 왔었다. 국력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존심의 문제였다. 한·중·일 누구도 자신들의 위에 있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빵즈들 지금 설레는 거냐!

-한때 설치긴 했는데, 이제는 주제를 알 때가 되지 않았나.

-전번 대회는 1차전에서 다들 떨어졌잖아.

-아시아의 호랑이는 무슨! 하긴, 종이호랑이도 호랑이지. 이번에는 어떻게 접어줄까? 크크크크!

-쟤들도 우리 국대 축구 봤던 심정을 느껴 봐야지.

-……그건 좀 심한데.

물량의 중국 아니랄까 봐, 실시간 댓글 올라가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한눈팔기가 무섭게 단락이 셀 수도 없이 넘어갔다.

우리나라도 뒤지진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인터넷 화력에선 우리나랄 따르는 국가는 별로 없다. 다만, 화력을 뒷받침하려면 어느 정도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데, 최근 전적이 처참했다.

-하아, 이 자식들 많이 컸네.

-안방에서 짱개들 설치는 걸 언제까지 봐야 하는 거냐!

-이번엔 권후가 있잖아, 저번처럼 되진 않을걸!

-난 그 꼴 못 본다.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일사 후퇴 때 돌아가셨다고!

-이번에는 달라, 감이 왔어! 전승 우승이다!

-개인전 토너먼튼데, 전승 안 하면 되냐!

말은 많은데, 매가리는 없는 편이었다. 전대 교류전의 우승국이 중국이었고, 당시 일방적으로 당한 후유증이 남아 힘을 내진 못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교류전인 만큼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명제가 기저에 깔려 있었다.

-조센징은 감을 잃었구나. 기대할 게 따로 있지.

-침략만 당해 봐서 그런가, 상대국의 전력을 모르는 것 같아.

-옛날부터 힘도 없으면서 짖기는 잘 짖었잖아!

-우리 대일본 제국이 아니었으면 한국은 소달구지를 끌고 다녔을걸.

-이번에는 불쌍하니까, 1번은 져 주자.

-그것도 어려울걸, 이번 우리 세대는 안드로메다 1군이거든.

-오오, 드디어 1군 출격! 이제 다 끝장이지. 전에 1.5군으로도 중국을 발랐잖아.

일본은 조용히 자신들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하여 한국을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지배국이라는 선민의식이 심중에 자리했다.

우리로선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태도를 규탄하고는 있지만, 그런다고 서로에 대한 감정이 바뀌진 않는다.

-일본에는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되는 거 알지?

-근래엔 가위바위보 빼곤 다 지는 것 같던데.

-찍소리도 못 하게 짓밟아 줬어야지, 권왕 때가 좋았어!

-그때 일본 총리 표정 봤냐. 아주 넋이 나갔었지.

-지금은 우리 대통령 표정이 더 웃기다!

-화나는 건 알겠는데, 인정할 건 인정해. 우리가 약세야.

-이번 1학년이 다르긴 해도, 기세에서 밀리면 답 안 나올 텐데.

-성운맹주가 분위기를 주도할지도.

-우리에겐 무진이 있다.

-또 나왔네, 무진 덕후!

-이 새끼 그냥 어그로야.

화력전에서 많은 말들이 오고 가고 있지만, 뚜껑을 열어 보지 않은 상태였다. 일본과 중국의 여유와 기고만장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로선 지금부터 입을 털어 봤자 설레발이 되기에 당장은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다들, 혹시나 하는 기대를 담고 개인전을 지켜보았다. 어떻게든 선전해 주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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