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183화 (184/374)

183. 저년 죽일까?(1)

교류전 당일.

아침부터 아카데미가 부산하다. 당연한 일이다. 한·중·일의 치열한 신경전과 여론전이 뜨거웠다. 철저한 준비를 통한 원활한 진행을 하지 않으면 일본과 중국은 물론, 정부와 국내 여론의 질타를 받을 수 있었다.

아카데미로선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정해진 일정에 따라서 교류전을 성공리에 치러야 했다. 승패는 그다음에 논할 일이기에 교장은 생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다.

‘실수만 하지 않으면 돼.’

교장은 대회 일정에 지장을 초래할 만한 원인을 전부 체크했다. 당연히 생도들의 기량에는 중점을 두지 않았다.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신실한 교육자로서 의심은 접어 두었다.

(어)차피 (우)승은 (한)국이었다.

무진과 지수가 있는 이상, 지려야 질 수가 없다. 중국, 일본의 발버둥을 여유롭게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자신이 할 일은 교류전이 아무 탈 없이 진행되도록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다.

‘교류전은 공정해야 제맛이지.’

홈어드밴티지란 편파를 호도하는 변명에 불과하다. 교장은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뿐. 우리 생도라고 하여 이점을 주지 않는다. 공정한 경쟁이야말로 교장의 명예를 걸어야 할 사명이다.

-반드시 우리가 우승해야 합니다!

-이번 교류전은 풍신에게도 중요한 전환기가 될 겁니다.

-연임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교류전에서 우승한다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야 할 때입니다.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방문할 때마다 해 왔던 멘트다. 일전의 사건들도 있고 하니, 성적을 내지 못하면 교장 자리가 위태로울 거란 협박이었다.

‘한심한 작자들 같으니라고.’

정부와 여론의 외압에도 교장은 자존심을 지켰다. 협박은 통하지 않는다. 역으로 교류전을 포기한 듯한 인상을 남겨 정부 인사들의 속을 태워 주었다.

‘나만 당할 순 없지!’

나에게는 무진이가 있다 이거야.

다만 든든함과는 별개로 만병의 근원인 속병의 화신이었다. 혼자서 끙끙 앓을 순 없다. 무진의 전투력을 까발릴 수 없다면 다 같이 답답하기라도 해야지.

흐흐흐흐!

교장이 혼자서 실실대자 시찰하던 마라창과 권패가 움찔했다. 근래에 들어 실없이 웃을 때마다 모골이 송연해진다.

‘어째서 소름이 돋지!’

‘전에는 안 그러셨거늘.’

시원하고 호탕했던 교장이었다. 외견상으론 달라진 게 별로 없지만, 예전과 달리 음산하시다.

이해는 간다. 안에서 독버섯이 자라고 있는 걸 모르고 있었으니 속이 새까맣게 타는 건 인지상정이었다. 정협검의 배신은 교관들에게 커다란 고민거리를 안겼다. 서로를 전처럼 신뢰하기가 어려워졌다.

‘정협검만이 아닐 수도 있고.’

‘어쩌다 아카데미가 이리됐는지 원.’

지금도 교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생도를 바르게 가르쳐 나라의 동량지재를 만들어도 부족할 판국에 서로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상념이 길군. 지금은 교류전에 만전을 다해 주게. 승패는 병가지상사라고 하나, 사고는 인재라는 걸 명심해야 할 걸세.”

“알고 있습니다.”

“생도들을 너무 다그치진 말고.”

“하오나 어르신의 자리가 걸려 있습니다. 최소한 4강은 가야 하지 않습니까.”

“나는 생도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끝나면 족하네.”

마라창과 권패는 안도했다. 어딘지 모르게 음산해서 혹시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거늘.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더욱이 모두의 안일함에서 기인했던 실수를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자세는 본받아야 마땅했다.

‘어찌 이리 초연하시단 말인가.’

‘확실히 우리와는 그릇이 다르시군.’

정부와 여론의 압박에 초조함을 드러내도 이상하지 않았다. 교류전의 무탈한 진행을 위해서 사명감을 불태우는 교장이 대단했다. 자신들은 감히 따르지 못할 담대함이었다.

“개인전 결투장을 살펴보세.”

“이미 충분히 살펴봤습니다.”

“어허,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네.”

“정말 대단하십니다.”

한편으로 교류전을 포기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다. 10년 전을 기점으로 중국과 일본에 역전당한 이후로, 재탈환에 연이어 실패했었다. 그 시절만 해도 교장은 교류전의 우승을 다짐하며 의지를 불태웠었다.

하나, 세상이 어디 마음만으로 되겠는가. 내가 노력한 만큼, 상대도 노력하는 법이고.

매번 마음과는 달리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어쩌면 그 이후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아예 포기한 건 아니겠지.’

‘1학년들은 예년과 다르지 않나.’

3학년이 아닌 1학년이 주축이라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나, 가르쳐 본 교관의 생각은 달랐다. 1학년들이 해 온 일들도 대단하지만, 개개인의 기량이 몰라보게 향상되었다. 전과 달리 치열한 정보전이 없다고 해도, 이번에는 해 볼 만하다고 봤다.

“여기 센서가 고장 났나 보군.”

“거기는 결투장 발판입니다.”

“항상 발밑을 조심해야 하는 법일세.”

“……?”

현실도피였구나.

교장과 교관이 마지막 점검을 마쳤다. 한·중·일의 교관과 생도는 개회식 2시간 전 아카데미에 도착해 몸을 풀었다.

생도들이 몸을 푸는 건물은 분리해 놓았다. 같은 장소에 둘 때마다 개회식 전 소란이 일었었다. 개회식이 코앞인데 사고를 치겠냐는 안일함은 언제나 화근이 되었다.

식이 진행될 즈음 생도들은 각국을 대표하는 의상을 입고 대연무장에 들어섰다. 3방향의 출입구를 통해 배정된 자리로 향했다. 생도들의 눈엔 호승심과 경쟁심이 담겨 있었다.

-오늘이야말로 나를 보여 줄 때다.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새겨 주겠어!

-나를 위한 발판이 되거라.

각국을 대표하는 생도들이라서 그런지 프라이드가 높았다. 또한, 교류전을 통해 자신을 입증하고 싶어 했다.

생도들이 자리를 잡자, 한·중·일 핵심 인사와 교관이 단상에 마련된 귀빈석에 앉았다.

중앙에는 개최국의 풍신과 철혈십좌가 있었다. 과거 어느 국가가 중앙을 차지하는지가 문제가 되어 개최국을 중심에 두고 좌우로 번갈아 하기로 했다. 겉치레에 불과한 형식임에도, 한·중·일은 자리에 굉장히 민감했다.

한국 생도의 수장은 태수와 지수였다. 성운맹의 맹주와 의협단주로서 20명의 생도를 대표했다. 그 뒤로 무진, 혜진, 예슬, 유정, 상원, 4인방이 주축이 되었고 2, 3학년이 포진했다.

중국과 일본의 주축이 3학년인 걸 고려하면 기형적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선배로서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음에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1학년이라고 무시하기엔 실력 차를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3학년이 정우철을 꺾은 권후보다 강하다고 자신할 수도 없고.

스윽!

개회식은 엄숙하게 진행이 되었다.

한국, 중국, 일본 순으로 참가국의 핵심 인사를 소개하고, 각 나라를 대표하는 생도가 나와 공정한 대결을 선서했다.

무진은 자리에서 식이 끝나기를 느긋하게 기다렸다. 교류전의 주축이긴 해도 서열 3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만있진 않았다. 뿌려 놓은 밑밥의 회수를 위해 주변을 돌아보았다.

씨익!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긴장이라고는 일절 없는 여유 만만이었다. 동시에 규격 외의 육체에서 뿜어지는 아우라가 주변을 지배했다.

빠득!

무진의 시선이 장위와 마주쳤다. 예상대로 장위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복수의 화신이 되어 있었다. 생각이 뇌를 거치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나 알기가 수월했다.

후후.

일순 무진의 미소에서 가소로움이 새겨진다. 집중해서 노려보지 않고서는 알아보기 어려운 찰나였다.

장위는 똑똑히 보았다.

입 모양까지.

-병신.

소리 나지 않은 한국말이기에 통역 스킬이 발동되지 않았지만, 이때만큼은 장위도 한국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라와 국적이 달라도 자기 욕하는 건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이 새끼가!”

자기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진 장위였다.

아!

나라를 대표하는 엄숙한 자리였다. 주변의 시선이 일순 장위에게 꽂혔다. 자신의 실태를 깨달은 장위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 빌어먹을 놈이!’

고개를 숙이는 순간에도 무진의 비웃는 얼굴이 보였다. 맘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놈을 갈가리 찢어 버리고 싶었다.

각국의 기자들도 모인 자리다 보니 영상과 사진이 남는다. 언성을 높인 순간 국가 망신이 되었다. 여기서 더 날뛴다면 아버지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여유 부리는 것도 지금뿐이다!’

무진과 장위의 사건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상태였다. 장위의 욕이 누굴 향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다만, 무진은 정면을 보고 있었다.

부글부글!

안중에도 두지 않는데, 혼자서 지랄 발광한 꼴이었다. 장위는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기 힘들지만, 개인전을 위해서 참았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개망신을 준 대가를 치르도록.

‘두고 보자.’

씨익!

무진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아서 뿌듯하다. 하나, 모든 일이 그렇듯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장위가 다른 생도를 압도한다면 만날 확률이 높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1회전에서 탈락하지 않으면 다행인데.’

2회전에 올라가려고 무리할 가능성이 컸다. 복수가 뜻대로 되지 않을수록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그걸 잡아내기만 한다면, 중국과 협상할 때 좋은 패 하나를 가지게 된다.

응?

시선을 느낀 무진은 고개를 돌렸다. 마주한 생도는 귀여운 인상의 소녀로, 일본 측 천검가의 생도 하야토의 옆에 있었다. 분주한 하야토와 달리 자신처럼 여유로웠다.

씨익!

소녀의 장난기가 묻어 나오는 천진난만함에도 무진은 담담히 바라볼 뿐이다. 관심의 표현이라 무안할 수도 있거늘. 소녀는 되레 속셈을 알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소녀는 입술을 달싹였다.

‘이번에 재밌었어.’

‘그렇다면 다행이군.’

‘들켰는데, 당황하지 않네.’

‘그래서 공주님이라고 불러 드릴까?’

‘역시나 보통이 아니구나.’

‘날 떠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개인전의 우승자는 나일 테니. 너희는 2위로 만족해라.’

‘듣던 대로 허세가 쩐다. 좋아. 어디 네 말대로 되나 기대해 볼게.’

‘내기라도 할까? 100억 어때?’

‘좋아.’

미츠키는 장위를 도발하는 무진의 의도를 간파한 후 놀려 줄 심산으로 전음을 보냈다. 한데, 당황하기는커녕 되레 도발을 해 왔다. 여태까지 만나 보지 못했던 부류가 아닐 수 없었다.

지나치게 객관적인 하야토와는 극상성을 띠는 녀석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재미난 놈을 만났다. 자신의 의도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오는 건 아무나 하기 힘들었다.

‘이번에도 뜻대로 될진 모르겠지만, 인정은 해 줄게.’

주도권을 쥔 채 품평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쁠 수도 있으나, 미츠키에게 이 정도의 평가를 받은 생도는 손가락에 꼽았다.

흠.

공주님의 손가락에 꼽히는 하야토는 무진의 건방진 태도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대일본 제국의 고귀한 혈통인 미츠키 사마에 대한 예우를 가르쳐 주어야 했다.

‘올라온다면 본인의 처지를 확실하게 알려 주마.’

하야토의 각오를 읽은 미츠키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단조로운 황궁과 다른 즐거운 여흥이었다. 과연 누가 자신의 관심을 더 끌 수 있을지 작은 기대를 했다.

‘어차피 구두 약속이야.’

계약서가 아닌 이상, 지킬 이윤 없다.

쯧!

단상 위에서 개회식을 지켜보던 남궁천은 남모르게 혀를 찼다. 그는 중국 아카데미 제일 교관이자 남궁세가의 직계로서 생도들을 관리할 책임이 있었다. 이번에도 국가 망신을 초래하는 장위가 탐탁지 않았다.

‘자중해도 부족할 판에.’

경박한 행위를 보여 줄수록 주석에 대한 평가가 나락으로 떨어지겠지만, 실소를 금치 못하는 한국과 중국의 교관들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치밀었다.

성에 차지 않는 것과 별개로 대중화의 영광을 위한 자리였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분별할 줄 알아야 했다.

‘제갈가의 말대로 하긴 했지만, 맘에 들진 않는군.’

장위의 성향을 알고도 제갈세가는 말리는 시늉만 했다. 이는 주석의 명성을 깎아내리면서 책임을 피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묘수로 포장해 봤자, 실상은 협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도를 추구하는 의기천추, 대도무문의 남궁으로선 마땅치 않은 전략이다.

‘패자는 유구무언이니.’

팔대세가의 어린 생도들의 회전에서 제갈가가 남궁의 검을 꺾었다. 검의 대결이었다면 승부는 뻔했지만, 제갈가의 진법과 술법은 만만치 않았다. 특히 분석력에선 제갈가를 따르지 못했다. 본가의 무공과 속성까지 전부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만은 눈감아 주지.’

하나, 개인전의 우승은 남궁의 검이 되어야 했다. 본가의 삼공자인 정이라면 충분히 일본과 한국의 생도를 꺾고도 남음이 있었다.

‘분석대로라면 완승이 되겠군. 한데, 뭘 믿고 저리 초연하지?’

남궁천이 보기에 한국의 분위기는 이전과 판이했다. 본국에서 열렸던 교류전에 비해 한국은 정보전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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