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이타주의(3)
악덕 고용주답게 사막보다 메마른 인간이었다. 새삼스럽다고 하기에는 그동안 겪은 세월이 가볍지 않았다. 짧지만, 평생 잊지 못할 강렬함을 새겨 주었다.
“자동 공간 확장 마법을 완성했지.”
“대체 못 하는 게 뭐냐?”
한순간에 연구실이 공허한 들판으로 변했다. 아공간, 던전의 틈새, 수행 던전의 흐름을 파악해서 완성된 수련 장소였다. 대외적으론 놀고 다니는 모습이지만, 심상 속에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었다.
“남들 놀 때 놀고 싶으면 지금부터 바짝 노력해야 해.”
“지금도 우린 야간작업하고 있다고!”
넘치는 연봉과 넉넉한 성과급이 보장되어 참고 있을 뿐이다. 사실 통장에 쌓이는 금액을 볼 때마다 입이 조커가 되었다.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이 아니면 돈을 못 번다는 세상의 유혹에서 저축을 해 왔었다.
티끌은 모아도 티끌이지만, 거액은 모으면 더 거액이 되었다. 금융 소득세과 건강보험료 인상이 짜증 나긴 해도, 번 만큼 내야지 어쩌겠는가.
나라의 시스템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시스템을 사용하는 비용으로 퉁! 쳤다. 솔직히 우리나라만큼 안전한 국가도 많지 않았다. 남미, 아랍, 유럽을 가 봐라. 알고 있던 현실이 그리 아름답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외국이 관광으론 좋을지 몰라도, 살려고 하면 우리나라만큼 편하고 좋은 국가도 드물었다.
“가볍게 해 보자.”
“……가벼운데 웬 강환!”
저게 가벼우면 어떤 게 안 가벼운 거야?
그들은 살짝 기대를 해 봤다. 가볍다고 했으니, 속 빈 강환이 아닐까?
꽈아아아앙, 쿠아아아앙!
……맞으면 확실히 죽는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히로시마 원폭의 솟구치는 버섯구름이 형성되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피했다. 저걸 맞고 살기를 바란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 같았다.
“형들, 피하면 어떻게 해? 손실, 내구 상태 확인이 안 되잖아.”
“……회피 기동 테스트야!”
“호오, 그렇단 말이지. 그럼 속도를 좀 올릴게.”
“……여기서!”
이 미친놈이 말을 너무 쉽게 하고 있었다. 지금도 마하는 나올 텐데, 여기서 더 빠르게 하면 인간적으로 너무하지 않냐고.
하긴 이놈은 인간이 아니지!
괴물은 괴물의 잣대가 따로 있는 모양이다. 라이스엉클의 말대로 ‘봐, 너무 쉽지.’였다.
퍼퍼퍼퍼펑!
차라리 기관총으로 난사하면 그나마 낫다. 강환이 고속 유탄처럼 날아와서 대지에 융단을 수북이 깔아 놓았다. 이건 피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호오, 잘도 피하네. 속도 가감 좀 해 볼까.”
“……야 인마!”
영화나 만화에서도 기공포를 쏘려고 하면 자세를 잡고 기를 모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 프레임 완성하고 다음 장면으로 갈 때까지 최소 20분도 더 걸렸다.
이 만화보다 독한 녀석은 자세를 잡기는커녕 대충 손을 뻗으면 강환이 발출되었다.
‘양심상 사전 동작은 있어야지!’
저런 식으로 날리면 가볍기라도 해야 하는데, 본인만 가벼웠다. 장비를 풀세트로 맞추었음에도 버겁기만 했다. 맞지도 않았는데 장비에 영향을 줄 만큼 강환의 위력은 경이로웠다. 한 발, 한 발의 파괴력이 실로 놀랍다.
‘뭔 생도가 이래!’
알고는 있었지만, 점점 천외천마저 벗어나고 있었다. 한편으로 저런 놈과 경쟁하는 생도들이 불쌍했다.
무진이 지금 외면받고 있어서 불쌍하다는 시선도 있는데.
‘누가 누굴 불쌍하게 여기냐고!’
불쌍한 사람 다 죽고, 혼자 남아도 안 불쌍할 녀석이었다.
헉!
지금은 한가로이 남의 시선을 따질 때는 아니다.
그들은 장비의 블링크를 이용해서 공간을 점프하면서 겨우 피하고 있었다. 그마저 예측 유도 강환에 탐지되고 말았다. 장비의 위기 감지 센스가 위험을 맹렬히 경고했다.
꽈아아앙!
장비 세트의 옆을 스쳤다. 방어력과 내구력이 절반으로 줄어 버렸다.
“……실화냐!”
단 한 방, 직격도 아니고 스쳤다. 닿기만 했는데도 이러는 건 정말 아니잖아. 아까 했던 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래서 선조들이 말은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한 건가?
말이 씨앗이 되었고, 죽을 수도 있었다.
테스트라며!
다행이라면 회복이 무척 빠르다는 점이다. 우리가 만들었지만, 회복력 하나는 미쳤다.
“호오, 절반이 줄어도 회복한다 이거네.”
“……너 설마!”
누차 언급하지만, 해치웠나와 마찬가지로 설마는 항상 사람을 잡기 마련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들을 옥죌 줄 누가 알았겠는가.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다.
더 빠르고 강력하다.
꽈아아아앙!
천지창조가 오늘이었다.
우린 새로운 세상의 아담과 아담들인가? 왜 세상이 바뀌어도 이브가 없는 거냐고! 그런 세상은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새로운 세상이건 말건 절대로 존재해선 안 된다.
하아!
숨을 토해 낸 그들은 살아 있음을 간신히 확인했다. MSG 조금 보태서 진짜로 죽는 줄 알았다. 몇 번이나 주마등을 봤는지 과거부터 현재까지가 또렷하다.
“살았어!”
“우리가 살았다고!”
“해냈어!”
환호해야 마땅한데, 눈물이 날까?
신상 장비 세트의 꼴을 보면 눈물이 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새삥이 헌삥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장비의 상태가 간당간당했다. 조금만 더 위력이 강했다면 영구적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훌륭해,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지?”
“……네가 인간이냐!”
“나 잘되자고, 나만 살자고 이러는 게 아니잖아. 나중에 나 때문에 살면 부끄러워서 어쩌려고 그래.”
“제발 맞는 말 좀 그만해!”
차라리 틀린 말을 듣고 싶다. 자꾸 맞는 말을 하니, 반박할 말도 없고 복장만 터졌다.
“형들은 참 머저리 같아. 한심한 인생에다 병신처럼 살아왔어. 평생 애인은커녕 여자 손 한 번 잡아 보지 못하고 죽을 거야.”
“……뭐, 이 새끼야!”
“틀린 말 하라며. 혹시, 맞는 말?”
“……아니거든!”
“그래, 형들은 뭐든지 다 할 수 있어. 나는 믿고 있었다고. 그럼 다음에 또 시험해 보자. 파이팅!”
“……?”
또, 당했네!
도후, 장훈, 태천은 혀를 내둘렀다. 매번 당하는데, 안 당할 수가 없다. 저게 어떻게 열일곱 살 생도냐고? 사람을 요리조리 가지고 노는 솜씨가 하늘에 이르렀다. 저 녀석과 경쟁하는 생도들이 불쌍할 지경이다.
‘우린 경쟁하는 것도 아닌데.’
‘따지고 보면 사원이잖아.’
‘왜 사장이 사원보다 더 열심히 하는 거냐고!’
우리의 물주가 지나치게 강하고, 열성적이라서 삶이 피곤한 직원들이었다. 나만큼만 하란 소리가 이렇게나 무섭게 다가올 줄 누가 알았을까.
“오공아, 삼장께 부장님 왔다고 전하거라.”
‘……미친놈!’
김오진은 속으로 투덜거릴 뿐, 대응하진 않았다. 사부를 제압했던 무진의 실력은 진짜배기였다. 대련을 핑계 삼아 두들겨 맞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차라리 몽키킹을 제압할 때처럼 압도적인 역량을 과시했다면 충격이 덜할 텐데. 동일한 내력을 사용한 천병류에 당했다.
이런, 천~~~~병류.
초식과 형의 깨달음에서 도저히 안 된다. 같은 동작을 하는데도 격이 다른 수준의 차를 경험했다. 넘지 못할 벽의 개념마저 넘어선 것이다. 그러니 대적할 마음이 생길 턱이 있나. 무엇보다 대련할 때마다 천병류의 오성이 높아졌다.
“연락을 넣었으니, 곧 나오실 겁니다.”
“제법인데.”
“제 소임을 다할 뿐입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라고. 누가 알아, 삼장께서 널 성불시켜 줄지.”
“……한시도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부처나 성불하지!
자신은 개죽음이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작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터놓고 말해서 경계 근무를 제외하면 사부와 다닐 때보다 복지적인 측면에서 훨씬 좋아졌다. 무진에 의해서 강제로 경호원이 됐지만, 제인 길드장은 기본적인 대우를 보장해 주었다.
“삼장 누나를 노리는 수상한 움직임은?”
“별다른 동향은 없었습니다. 간혹, 주변을 경계하는 이들이 있으나 대단치 않았습니다. 원하시면 처리하겠습니다.”
“조무래기들은 놔둬, 삼장 누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거야.”
“그리하겠습니다.”
암중 세력에게 있어 권왕가와 쉐도우 길드는 눈엣가시일 것이다. 사사건건 방해가 되고 있으니 어떻게든 처리하고 싶지만, 당장은 권왕가를 흔들기는 어려울 테고, 교류전에 개입하기도 난처했다.
‘아닌가?’
암중 세력은 쉐도우 길드를 노렸었다. 권왕가와 달리 블랙마켓이란 음지에서 활동하는 이상 재차 시도할 줄 알았다.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지.’
돌다리는 무조건 두들겨 봐야 했다.
권왕가는 사부와 지수가 있는 반면, 쉐도우 길드는 정보 수집 능력과는 별개로 전투력에서 부족했다.
상대적으로 권왕가보다 쉐도우 길드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성운 그룹이야 아버지를 제외하고 연관성이 없지만, 제인 길드장은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드륵!
길드장실로 들어서자, 제인 누나가 세안을 마치고 나와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최근 다른 블랙마켓 길드와 비공식 회담을 했다. 상대의 심중을 역으로 찌를 겸, 총통 길드에 손을 내민 것이다.
“분위기는 어때?”
“겉으론 불감청 고소원인데, 속내는 와신상담이지. 이게 잘하는 짓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어. 우리 쪽에서 손 내민 걸 테라나 보부상이 알면 역제안을 할 수도 있잖아.”
“쉐도우 길드의 역량을 시험해 볼 때가 됐지.”
“실수하면 곤란해, 난 죽기 싫거든.”
“누나는 죽을 운명을 이미 비틀었어. 그러니 절대 죽지 않아.”
운명을 비틀면, 죽음이 따라온다고 하지 않나?
걱정하지 말라는데도 제인은 굉장히 찝찝했다. 그런 느낌과는 별개로 이번에야말로 보여 줄 때였다. 자신과 쉐도우 길드가 필요한 존재임을 인식시켜야 했다. 지금까지는 무진이 하라는 대로만 따랐다. 그래서는 자신의 원래 목적을 달성한들 전혀 기쁘지 않았다.
“나 제인이야, 믿고 맡겨.”
“누나 본래 이름이…… 아냐.”
“가슴 아픈 얘기는 하지 말자.”
“가슴 아프기만 한 거지?”
“……당연하지.”
본래 이름은 밝힐 수 없는 슬픈 과거에 함몰되었다. 다시는 거론되어선 안 되는 금기어다. 그 이름을 쓰는 날, 반드시 한두 놈은 죽는다.
“누나도 강해질 필요가 있어.”
“난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절대경에 이른 지수를 봐 봐, 부럽지 않아?”
“부러운데, 부럽지 않다고 말하면 안 될까?”
“누나도 할 수 있어.”
제인 누나의 정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만한 능력을 보유한 인재를 다시 찾기는 어려웠다. 지켜 주는 데도 한계가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순 없다. 자구책을 가지고 있어야만 최악의 사태에도 대비하는 법이다.
“원래 이러려고 온 거 아니잖아!”
“시간이 남아서.”
“나 막 샤워했거든.”
“또 해.”
“넌 사정을 안 두잖아!”
“이게 다 누나를 위해서야. 까놓고 말해서 나도 싫은 소리 하기 싫고, 좋은 동생이 되고 싶어. 한데, 현실이 녹록하지 않잖아. 난 누나가 장수했으면 좋겠어.”
구질구질하게 말 더럽게 많네.
제인은 저항을 포기했다.
“그냥 패라!”
“큰일 날 소리, 오롯이 누나의 전투력 향상을 위한 훈련이야.”
그놈의 명분, 무진의 이타주의적인 마인드가 제인을 환장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