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이타주의(2)
“제기랄, 대체 언제까지 방에만 틀어박혀 있으라는 거야?”
“주석께서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엄명하셨습니다. 이번에도 말씀을 듣지 않으시면 곤란해지실 겁니다.”
장위는 무진에게 개망신당한 이후로 호텔 방에 감금되는 처지가 되었다. 자기가 한 짓이 있으니 당연한 처사였고, 국가 망신을 초래한 벌치고는 가벼운 편이었다.
주석의 아들이라고 편의를 봐 준 이상, 장위는 방에서 조용히 자숙하며 지내야 마땅했다. 일반 생도였다면 반동의 죄를 물어 쥐도 새도 모르게 생체의 신비를 구경했을 수도 있다.
물론, 처벌의 이면을 따지면 장 주석의 체면 때문이기도 했다. 아들을 강하게 처벌할수록 한국에서 벌인 개짓거리를 대놓고 광고하는 꼴이었다. 적당히 눈에 띄지 않도록 감금하는 쪽이 현재로선 최선이었다.
장 주석으로선 이번 당 대회에서 정권 장악의 명분이 필요했다. 장위의 선전을 바라야 하는 처지라, 돌아오라고 하지도 못했다. 그것만 아니라면 장위는 강제로 끌려갈 수도 있었다.
그래 봤자 감금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 감지덕지한 처분에도 그새를 못 참고 장위는 앓는 소리를 냈다.
“나도 훈련은 해야지. 이래도 되는 거야?”
“주석께서 워낙 강경하십니다.”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전력이라는, 장 주석의 뒷말은 전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화를 삭이고 있는 장위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방을 또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이게 다 그 자식 때문이잖아. 반드시 복수하고 말겠어. 내가 전한 대로 준비는 됐겠지?”
“데이터를 분석해서 약점을 찾았습니다. 다만, 천극단의 복용은 자제하시는 편이 어떠신지요?”
“시끄러워! 놈이 내게 한 짓을 몰라서 그래! 이 치욕을 단순히 이기는 것으로 끝낼 순 없어! 더욱이 완전 흡수만 아니면 괜찮은 거잖아.”
“그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날 대체 뭘로 보는 거야! 내가 그 정도 사리 구분도 못 하겠어!”
“아닙니다.”
이천은 그렇다고 할 뻔했다.
천극단은 자체적으로 비밀리에 개발한 공산당 특제 속성단으로 일시에 마나와 체력을 끌어 올린다. 하나, 약이란 늘 그렇듯 장점만 있진 않았다. 전체적인 스텟을 끌어 올리는 대신 마나의 일정 부분을 영구적으로 잃는다.
고성능의 위험한 약이기에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단의 흡수율을 조절해야 했다. 최대 절반, 그 이상은 마나의 손실률이 배로 커진다.
‘빌어먹을 새끼!’
장위도 어지간하면 위험부담을 안고 교류전에 나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있다가는 아버지의 신망을 잃고 조롱거리로 전락할 수 있었다.
그럴 바엔 마나 손실을 겪더라도 놈에게 당한 치욕을 그 이상으로 되돌려 주어야 했다. 본원진기만 손상되지 않으면 영약으로 손실된 마나를 다시 채울 수도 있고. 주석의 아들에겐 천고의 영약쯤은 주식(主食)과 다르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네놈만은 죽인다!’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얼마 전에 놈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개인 정보 유출이었다. 처음에는 낯선 번호라서 보이스 피싱을 의심했었다. 받지 않고 무시했더니 5번이나 연속해서 쉬지 않고 왔다. 마지못해 받았을 때, 왜 받았을까 후회가 들었었다.
-누구냐?
-왜 대가리 안 박고 갔냐?
-너 이 새끼!
-100억도 줘야지.
그날 화를 참지 못하고 호텔 룸을 엉망진창으로 부수고 말았다. 약속을 지키라며 그날의 영상과 계좌번호를 보냈다. 맘 같아서는 돈을 보내고 피싱범으로 몰아 계좌를 막아 버리는 신종 피싱의 위험성을 알려 주고 싶었으나, 그래선 도무지 화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놈의 수작입니다. 회선을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온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알아! 내가 몰라서 그러는 거야!”
장위도 무진의 개수작이란 걸 이제는 알고 있었다. 자꾸 도발해서 화를 돋우려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건 다른 차원이다. 자신이 언제 이런 꼴을 당했던 적이 있었냐고. 돌이켜 볼수록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새끼가 날 가지고 놀아!’
자려고 눈을 감을 때마다 놈의 비웃는 면상이 떠올랐다.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화를 삭이려고 해도, 도무지 삭일 수도 없게 했다.
무엇보다 놈에게 철저히 농락당하고 말았다. 그 개자식의 손바닥 위에서 재롱을 부렸다고 상상하니 분노를 주체하기 힘들었다.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러는 연유가 있었다.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걸리지 않는 건 확실하지?”
“그렇습니다.”
영약도 스테로이드성 효과가 나타나면 금지 약물로 규정이 된다. 교류전 수칙을 지키지 않고 출전하다 발각되면 후폭풍을 잠재우기 어렵다.
‘죽인다, 이 새끼!’
장위는 복수를 천명하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한데, 어디의 누군가는 웃고 있을 것 같다.
기분 탓이겠지?
***
-적염(炎)기사의 갑옷 세트(5강).
-광명(明)전사의 갑옷 세트(5강).
-강철(鐵)투사의 갑옷 세트(5강).
세 사내는 완성된 장비를 보며 감회에 젖었다. 전부 진화형인 데다 5번의 강화를 거쳤다. 버프, 회복, 진화, 스텟의 향상까지 멀티형 세트였다.
“드디어 완성됐어!”
“씨발, 연성력 고갈로 죽는 줄 알았다고요!”
“실패할 줄 알았는데, 이게 되긴 하네요!”
도후, 장훈, 태천은 완성된 명작에 환호했다. 만들면서도 ‘될까?’ 의구심이 들었다. 회복을 위한 연금술, 방어를 위한 담금질, 내구력 향상을 위한 강화술의 총화였다. 단순해 보이지만, 스텟과 속성을 최대치까지 끌어 올릴 수 있었다.
현재 자신들이 만들어 낸 희대의 역작은 모든 장비와 아이템보다 최소한 두 단계 이상 빼어났다. 이보다 더 좋은 장비를 만들어 내기는 어렵다. 바닥까지 쏟아 낸 마나, 속성, 시간, 열정을 고려한다면 다시는 만들기 싫어질 정도다.
“이거 입으면 우리도 군주급 헌터다.”
“그건 좀 오번데요.”
“어찌어찌, 그 비슷한 수준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예전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눈부신 성장과 발전이었다. 레벨이 오르고, 마나가 상승하면서 꿈에서나 가능했던 망상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었다. 세트 장비를 제작하면서 숙련도까지 덩달아 상승해 무엇을 제작해도 전보다는 향상되었다.
반지, 아대, 벨트.
세트이면서도 소형화와 변형도 가능했다. 때에 따라서 각각의 세트를 분리하여 독립성과 편리성까지 갖추었다. 특히 분리되었어도 세트 효과가 발동되어 전력을 상승시켜 주었다.
착!
시험을 위해 각자 원하는 장비를 착용했다.
영화의 나노머신처럼 반지, 아대, 벨트에서 뻗어 나온 금속 물결이 전신을 뒤덮는다. 도후, 장훈, 태천은 착용하지 않은 가벼움에 놀라고, 상태창에 표시된 스텟의 향상에 백번 놀랐다. 알고 있는데도 자신들의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
“다 덤벼, 이제 우리는 최강이다!”
“나 부장님, 말이 씨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연구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별안간 고개를 돌린 도후, 장훈, 태천은 헛바람을 삼켰다. 연구실 한편에 무진이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서 있었다.
표정 봐라!
‘언제?’
강화, 연금, 야장 쉐도우 연구센터는 완벽한 보안을 자랑했다. 제인 길드장과 협업하여 외부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설사 공작급 헌터가 쳐들어온다고 해도 막아 낼 수 있다고 자부했거늘.
‘이번에 민감도를 최대한으로 강화했는데.’
‘바람에 실은 무연향조차 없어?’
‘기관과 암기는 대체 어떻게 한 거지?’
태연하기까지 한 무진을 보니, 그들은 힘이 쫘악! 빠졌다. 원체 괴물 같은 녀석인 걸 알고는 있었지만, 침투까지 완벽할 줄이야. 저 규격으로 아무도 모르게 움직이는 것 자체가 사기캐였다.
그런 비통한 심정에 무진은 쐐기를 박아 주었다. 잘하고 있을 때일수록, 발밑을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이었다.
“전혀 민감하지 않았어, 도후 형.”
“……그럴 리가!”
거기서 더 민감하면 오작동 나.
“냄새가 나더라고, 장훈 형.”
“……그럴 리가!”
개코도 너보단 예민하지 않겠다.
“연계가 매끄럽지 않던데, 태천 형.”
“……그럴 리가!”
바늘구멍보다 좁은 연계였다고!
자존심에 금 가는 소리를 잘도 하고 있었다. 이러면 화가 치밀어야 하는데, 규격이 다르니 인정하고 넘어갔다. 어차피 머리로써 이해하는 수준은 아득히 벗어난 지 오래였다.
“우리의 소중한 아지트가 너무 불안해. 나는 형들이 안전한 장소에서 맘 놓고 연구에 매진했으면 하는 게 소원이거든.”
“……재검해 보마.”
너만 아니면 하나도 안 불안하거든.
함정, 기관, 센서가 통하지 않아도, 침입한 낌새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더욱이 이곳이 뭘 하는지는 알려지지도 않았을 텐데, 대뜸 군주급 헌터가 침입할 리 만무했다.
‘넌 좀 안전 불감증을 가져야 해.’
그래도 절대 위험하지 않을 종자가 바로 무진이었다. 저 녀석이 언제 당황이라는 걸 해 본 적이라도 있나, 남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만 해 봤지.
그간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걸 상기하자, 그들은 기가 찼다. 뭘 해도 안 될 것 같은 막막함을 주면 동기부여가 되겠냐고? 그러면서 전부 너희들 잘되라는 충고로 넘기니 환장할 노릇이다.
우리가 놀았냐고!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때가 많았다. 이 눈물 없는 사연을 노동부에 널리 알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댄데, 자기가 사업해도 함부로 문 못 닫는다. 강성 노조의 시대에 감히 노동력 착취라니, 정부에서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라는 생각뿐이고.
무진에게 받은 게 너무 많고, 배신하기엔 현재의 삶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강화, 연금, 야장을 하기에 이보다 완벽한 조건을 갖춘 곳은 없었다. 하소연을 해봤자 배가 불렀다는 소릴 듣겠지. 그저 너무 완벽한 괴물이 존재해서 공허함이 들 뿐이다.
‘쟤는 우리가 필요하긴 한가?’
사실 무진에게는 버프, 강화, 물약이 쓰일 일이 없다. 자신이 아닌 전적으로 주변을 위해서 쓰고 있었다.
엥?
이타적이라니!
생각도 해 본 적이 없기에 도후, 장훈, 태천은 공황 상태에 빠져들었다. 지나치게 인간적이지 않은 모습의 악덕 고용주란 느낌이 강했었다. 한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자신보다 주변을 위해서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생명을 구한 용감한 시민.
남모르게 선행하는 천사.
여태 그걸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는 했다. 자기만 아는 것 같은데, 따지고 보면 선행을 베풀었다. 일전 공무원 구출만 해도,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었다. 자기를 알리지 않으면서 선행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정작 100원조차 기부하지 않는 각박한 세상 속에선 더더욱.
‘우리도 그렇고!’
만약 무진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도후, 장훈, 태천은 악덕 고용주를 만나 하루하루가 초주검이긴 해도 과거의 자신보다는 훨씬 낫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망할!
갑자기 안구에 습기가 차며 감동의 물결이 파도를 치네!
“무진아!”
“됐고, 새 장비나 테스트해 보자고. 나중에 결점이 생기면 곤란하잖아.”
매정한 놈, 우리의 감동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