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175화 (176/374)

175. 하나만 걸려라(1)

놀라운 일이었다. 그 나이에 그만한 역량이라니, 새로 거둔 제자는 완성도가 높았다. 그저 틀을 깨지 못해서 벽을 넘지 못했을 뿐. 벽을 깨기가 무섭게 제자는 등에 날개를 단 듯 승천했다.

‘100세는 아무래도 어렵겠지.’

단계를 두었을 때 불혹이면 충분하다고 봤었다. 그녀를 제외하고 불혹의 자신을 깬 제자는 없었다. 어느 세계에서도 충분히 자랑할 만한 업적이었다.

‘그런데도 부족하다고 했지.’

지나친 겸양이었다. 대체 어디가 부족하단 말인가? 자만하지 않는 모습은 칭찬해야 마땅하나, 자신의 제자라면 응당 도 넘은 자신감을 가져야 했다.

‘그래도 10년은 걸리겠군.’

마지막 심득을 위한 사부로서의 가르침이었다. 그날 이후로 더는 가르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지금까지 가르친 적지 않은 제자 중에 가장 치는 맛이 있었다. 맞고, 또 맞아도 포기하지 않는 도전하는 정신은 좋은 귀감이 되었다.

‘많이 맞아 본 것 같기는 했지.’

앙칼진 것.

다음에는 전력으로 패…… 가르침을 내려 주마.

제자는 사부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맞을 준비를 해야 마땅했다. 무결을 완전히 습득했다면 자웅을 겨뤄 볼 만할 것이다.

우우웅!

아대에서 전해지는 떨림에 미간을 찌푸렸다. 세계 간의 시차를 고려해도 너무 빠르다. 헤어지기 전에 보였던 겸손은 위선이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실망인데.

이 한 번의 가르침을 이리 가볍게 버리다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니던가.

남아일언 중천금, 약속은 신념.

마지막으로 자만에 빠진 제자에게 호된 가르침을 내려 줄 수밖에.

아대와 공명한 공간이 좌우로 열렸다.

사내는 공간 속으로 들어섰다.

눈앞에 제자가?

“넌 뭐냐?”

제자를 기다렸던 무신 장천은 웬 시커먼 사내의 등장에 당황했다. 성깔이 있기는 해도 제법 귀여웠던 제자였다.

차원 간의 간섭으로 성별이라도 바뀌었나?

“반갑습니다. 강무진입니다.”

매우 의심스러운 무신의 눈초리에도 초면에 예의를 잊지 않는 무진이었다. 당황스러워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골드미스를 숨긴 지수의 외모는 싱그러움이 물씬 풍기는 여생도였으니까.

대뜸 낯선 남생도가 나타났으니, 무신의 날 선 반응을 너른 마음으로 이해했다.

오해를 피하고자 무진은 본신의 진의를 조금은 드러냈다.

우웅!

따지고 보면 무진의 스승은 지수다. 지수의 신화공이 무진의 바탕을 이루는 근간이었다. 기운의 흐름을 본다면 꽤 익숙할 것이다.

호오.

제자의 성별이 바뀐 줄 알고 당황했던 무신은 곧 흥미로운 기색을 띠었다. 아예 다른 줄 알았는데, 제자의 기운과 닮았다. 물론, 고도로 정제된 기운은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감지하기 어려웠다.

그 말은.

“나를 시험하는 것이냐?”

“그만한 가치가 있군요.”

“동문이었군.”

“그렇습니다.”

“제자의 무공을 빼앗은 건 아니고?”

“결정은 어르신의 몫입니다.”

네가 알아서 판단하라.

헛!

무신은 제자의 당돌함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깨달았다. 아무래도 제자의 사문은 다들 그 모양인 듯하다. 겸손하기는커녕,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다 못해 천지 분간을 못 했다.

신선하긴 하다.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었나 무신은 되돌아봤다. 젊은 시절,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때나 그랬던 것 같다. 무신에 오른 이후에는 감히 누구도 자신을 시험하지 못했다.

그 전에 황천길로 가지 않으면 다행이지.

여하튼 제자의 당돌함과는 다른 능구렁이 같은 녀석이었다. 또한, 천고의 기물을 선뜻 양보했다면 사이가 가볍지 않은 듯하다.

제자가 언뜻 말했던 녀석이 분명하다. 그때는 헛소린 줄 알고,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팼거늘. 실제로 보고 나니 약간은 미안하면서도 괘씸했다.

사부도 모르게 발랑 까져서는.

“정인이라도 되는 게냐?”

“그럴 리가요. 우리는 보무도 정정당당한 여자 사람 친구입니다.”

“여자면 여자지, 여자 사람은 또 뭐야? 허튼소리를 잘도 하는군. 바른 소리를 하지 않는다면, 사부로선 간과할 수가 없구나.”

“그래서 어쩌시게요?”

이걸 이렇게 받아?

꿈틀!

무진의 도발적인 언사에 무신의 미간이 좁아졌다,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신화경에 도달한 이후로 신선한 감정이 내부에서 휘몰아쳤다. 제자를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하지만, 결이 아예 다르긴 했다.

“어쩌긴, 곧 알게 해 주마.”

“아주 기대가 되는군요.”

살짝 기운을 흘려 하룻강아지의 도발을 꺾으려고 했거늘, 되레 호승심을 불태웠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구나.”

“우물 안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에 따라 다르지요.”

“네놈이 천하라도 품고 있다는 게냐?”

“천하뿐일까요?”

혓바닥이 제법 날카로운 녀석이었다. 자신이 아는 한 이런 부류는 심계가 아주 깊다. 수준급으로 도발하는 것만 봐도. 하나, 그런 부류일수록 예로부터 만사형통의 고명한 수법이 있었다.

“어디 한번 볼까? 그때도 지금처럼 주둥이를 나불거릴 수 있으면 인정해 주마.”

“현재 나이로 하시죠.”

“건방진, 네놈에겐 지천명도 부족하다.”

“그러다 후회할 텐데요.”

무신은 지천명의 자신을 투영하여 분신을 완성했다. 제자에게는 환갑으로 상대했지만, 그때도 전력하고는 거리가 있었다.

더욱이 제자와의 겨룸으로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무공이 한층 더 진일보했다. 현재의 자신과 겨루겠다니, 자신감이 지나치다 못해 오만한 녀석이었다.

‘괘씸한, 혼구녕을 내 주마.’

이 공간에선 본신을 과거와 투영하여 분신을 완성한다. 분신이라고 하여 얕본다면 큰코다친다.

곧, 콧대가 꺾인 채 이를 바득바득 갈겠지.

빠드드득!

바로 이렇게…… 응?

이를 갈기는 하는데, 무신의 예상을 벗어났다. 이를 가는 대상은 50세의 분신이었다. 구경하려고 뒤를 돌아선 지 얼마나 됐다고.

꾸욱!

바동바동!

그것도 바닥에 처박힌 채 가슴을 짓밟혔다. 바닥에서 일어서려고 아등바등하는 꼴이 굉장히 우스웠는데, 그게 바로 자신이라 무신은 웃지도 못하고 수염이 푸들거렸다.

파르르르!

이놈이!

150년의 수행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인간의 오욕칠정을 잊었다고 여겼거늘. 눈앞에서 젖먹이 때나 했을 법한 바동바동을 시전하자 수치심에 안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커어어억!

거기서 왜 비명을 질러.

지를 만하구나.

항복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자, 무진이 팔을 비틀어 대고 있었다. 50세의 분신은 가슴이 밟히고, 팔이 꺾이는 수모를 겪었다. 벗어나려고 할수록 자세가 참 꼴불견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무신은 급히 분신을 회수했다.

“이놈, 너는 위아래도 없느냐?”

“싸우는 데 그런 것도 따져야 해요? 아, 그렇구나. 그게 바로 어르신의 가르침이군요. 가슴에 새겨듣겠습니다.”

“……누가 그렇대!”

무신은 항상 입버릇처럼 말했다. 방심해서 졌다는 건 패자의 구차한 변명이라고. 대결을 실전처럼 하라, 그리 말하고 다녔으면서. 이제 와 아니라고 한다면 150년의 인생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었다.

허!

잃었던 이성을 되찾은 무신은 작금의 실태를 깨달았다. 비록 지천명이라고 하나, 이미 일신의 무위는 완성되었다. 그 시절에도 적수가 없어 무쌍으로 불리었다. 그런 자신을 단 일수에 항거 불능으로 만들었다.

“보통이 아니구나.”

“처음부터 숨기진 않았는데요.”

커억!

실력을 숨겼다고 물고 늘어지려는 대화의 연장선상이 초반부터 어긋났다. 설상가상으로 명백한 사실이라, 무신은 반박하지 못했다.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황당함과 막막함이었다. 이런 꼴을 보려고 150살까지 살았나 자괴감이 밀려왔다.

“어디 이번에도 버텨 보거라.”

“그냥 본인이 나오시죠. 괜히 분신 낭비하지 마시고.”

“이번에는 다르다.”

제자에게도 보여 주지 않은 80세, 환골탈태를 거쳐서 그런지 이때의 자신은 전과는 아예 다르다.

격의 차이를 보여 주고 말리라.

“80세야, 잘해라!”

“후후후, 애송이가 아주 제법이었다.”

……응?

이거 어째 불안하네.

저놈의 눈빛이 순간 비웃는 거 같았는데, 기분 탓이겠지.

80세에 무신이란 칭호를 얻었다. 한창 잘나가는 시기였고, 다들 고개를 숙이기에 바빴다. 자신감이 아주 약간 지나친 면은 있지만, 무인이라면 그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했다.

어쨌든 50세와는 차원이 다르다.

꽈아앙!

굉음이 터지며, 수행 던전이 지진이 난 듯 흔들렸다. 지축이 부서지며 천지개벽을 일으킨다. 그렇지, 이게 바로 무신의 위엄이란다, 애송아.

커어억!

그것참, 피를 토하는 것도 분수처럼 예술이구나.

……?

핏빛 분수와 강환의 폭발이 어우러진다. 선홍빛의 광휘, 아름다운 광경을 자아냈으나.

이번에도 웃지 못했다.

그 대상이 분신이기에.

쿨럭!

아니, 왜 피를 그런 식으로 토해. 무신의 존엄을 보이라고, 이놈아! 현재의 무신이 80세의 분신을 훈수 두지만, 상황은 악화 일로였다.

퍼억, 퍼억!

치고, 치고, 또 치고.

왜 안 피해!

주먹을 날리는 대로 얼굴을 돌리지 말라고, 내 얼굴 어째?

왜 피하지 못하지?

고작 무형권에 불과……하지는 않구나.

심권의 권능이 무형권에 실려 있었다. 심안에 걸린 80세의 분신은 독 안에 든 쥐, 보살수(菩薩手)의 제천대성이었다. 뛰어 봤자 벼룩이라. 더 꼴사납게 처맞고 흉한 꼴을 남발할 뿐이다.

부글부글!

비록 분신이라고 해도, 과거의 자신을 그대로 투영했다. 무신은 치미는 분노를 숨기지 못했다. 150 생애 이토록 화가 나기도 처음이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열 받게 하는 데는 도가 튼 녀석이 분명하다.

그만~~~~!

무신의 사자후가 천지 사방을 놀라게 했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무신의 포효, 권능에 이른 무신력이 존재감을 과시한다.

푸스스스!

80세의 분신이 코피를 질질 흘리다, 억울한 얼굴로 모래처럼 부서진다. 더는 그 볼썽사나운 꼴을 지켜볼 자신이 없어진 무신이었다.

처음부터 나섰어야 했다.

이처럼 어처구니없이 분신이 사라지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 방심한 대가치고는 너무나 참담하다. 차라리 생사를 장담하기 어려운 혈로를 홀로 감당하는 편이 낫겠다.

머리꼭지를 잡고, 패려고 했던 무진은 아쉬움을 표했다.

잡고 패는 맛이 있는데.

“아직 할 만한데, 왜요?”

“실수를 인정하마. 아주 대단하구나.”

“안목이 없을 수도 있죠.”

“……그렇게 없지는 않아!”

네놈이 이상한 거야!

대체 어떤 17세가 80세의 무신과 맞수를 두냐고. 새로 얻은 제자도 그렇고, 얘들은 대체 뭐 하는 것들이야? 대체로 상식적인 선이 있기 마련인데, 그 선을 아득히 넘어섰다.

“네놈의 세상은 원래 그런 거냐?”

“그렇다면요.”

“망조구나, 그게 말이 돼?”

“세상을 안다고 자신하기에는 제가 많이 어려서요. 어쩌면 어르신의 말대로 우물 안의 개구리일지도 모르겠네요.”

“이런 짓을 하고 겸양을 떠는 것이냐?”

“아버지께 어른을 공경하고 예의를 다하라고 배웠습니다. 항시 마음에 새기고 있거든요. 지금은 그저 자신감의 발로였습니다.”

무신은 말문이 막혔다. 일련의 사태를 따지고 보면 예의가 없다고 판단하기엔 모호하다. 따지고 보면 상대의 실력을 제대로 보지 못한, 자신의 실책이었다. 결국, 강자를 몰라보고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명색이 무의 신으로 추앙받는 자신이 무인을 모독한 꼴이 되었으니,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을 수밖에.

그러한 맹점을 파고드는 녀석의 예리한 혓바닥이 독사 같았다.

“말로는 이길 수가 없구나. 내 오판을 인정하마. 그러니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상대해 주마.”

진심을 드러낸 무신은 왜 그가 신화경의 무인인지 위압감만으로 증명했다. 그저 진의의 편린을 드러냈을 뿐인데, 압박감이 상상을 초월한다.

“원하는 바였습니다.”

기대감에 애가 닳은 무진은 전진하며 무신의 압박감을 유리잔처럼 으깨 버린다. 권능의 영역에 도달했기에 서로의 권역이 충돌하며 불꽃을 튀긴다.

쩌어어어엉!

경계를 완성한 두 존재가 서로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역량을 겨루었다. 그 힘의 파장은 수십, 수백 톤의 개념마저 벗어난다. 인지의 부조화를 일으키는 경이조차 전초전에 불과하다. 진정한 겨룸은 서로의 손발을 부딪쳤을 때였다.

권능을 이루었으면서도, 무인으로서 육탄전을 즐긴다.

휙!

생각이 일치했을까?

무신과 무진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을 때는 수백 미터의 거리가 지척으로 바뀌었다.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공기의 파장도 속도를 따르지 못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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