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171화 (172/374)

171. 귀환(2)

-권왕이 돌아왔다!

-누가 권왕이 죽었다고 했냐? 내 이럴 줄 알았지.

-근데 좀 시시하다. 권왕이라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짜잔! 하면 등장해야지.

-영화 찍냐? 그러다 권왕가와 창황가가 진짜로 붙었어 봐! 어떤 일이 벌어졌을 것 같아? 사람이 죽는다고, 현실은 영화가 아니야!

-권왕가로선 진짜 아군과 적을 구분할 수 있는 좋은 약이 된 것 같아.

-창황가는 어쩌냐? 권왕이 가만있진 않을 것 같은데.

-창황이 심창(心槍)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어.

-그걸 믿냐? 권왕이 복수할까 봐 밑밥 깐 거지.

권왕의 복귀로 흔들렸던 권왕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대로 돌아왔다. 창황가도 더는 권왕가의 영역을 넘보지 않고 물러섰다.

일촉즉발이었던 창황가와 권왕가의 신경전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아쉬울 수도 있으나, 창황가도 치고 빠질 때는 확실히 했다.

권왕이 부재한 틈을 노린 창황가의 역공은 실상 여론의 관심과 이상하게도 거리가 있었다. 연유를 따지자면 전면전의 배제와 명분 없는 분쟁이기 때문이다.

다른 칠대 가문으로서도 두 가문의 전면전은 방관하기 어려웠다. 창황이 미친 척하고 움직였다면 칠대 가문에서도 권왕가를 전폭적으로 도왔을 것이다.

심심한 결말에 세간의 관심은 다른 쪽으로 쏠렸다.

아카데미의 일도 있고.

-낙동강 오리 알이 부활했다.

-운은 더럽게 좋네.

-잊힐 만할 때 권왕이 돌아왔으니 타이밍이 죽였지.

-꼭 그렇지도 않을걸. 의협단주를 넘봤잖아. 손녀의 자리를 빼앗은 제자를 권왕이 가만히 둘까?

-그걸 의식했는지, 그새 권왕가로 달려갔다더라.

-여태 잠잠한 걸 보면 권왕이 용서하고 받아들였다는 뜻이겠지.

-권왕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

아카데미의 교관이 암중 세력과 결탁한 사건으로 잠잠해졌던 무진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슈에 민감한 대중으로선 씹고, 뜯고, 맛보는 요소를 다 갖추었다.

실제로 무진의 기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르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다시 일어서리라 기대하지 않을 때, 기사회생했으니 관심이 쏠리는 건 인지상정이었다.

또 얼마나 설치다가 나락을 갈지가 주된 관심이긴 해도.

“내가 없어지기를 바란 거 아냐?”

“그럴 리가. 다시 돌아와서 반가워.”

“그런 것치고는 무사태평한 얼굴인데.”

“믿고 있으니까.”

무진의 정석적이고도 원론적인 대답에 지수는 말문이 막혔다. 이미 교차 검증으로 무진이 내뱉고 다닌 말들을 수집해 놓은 상태였다. 아무런 근거나 증거도 없이 일관된 주장만으로 추궁하진 않는다.

의례적이고 형식적이긴 해도, 틀린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트집이 잡힐 만한 부분이 전혀 없기에 꼬투리는 불가능했다. 다만, 돌아가는 전후 사정을 보면 걱정한 것치곤 인간미가 없었다.

“무관심을 신뢰로 포장하진 말라고!”

“우리 지수는 지옥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을 가졌으니까. 무려 그 희귀하다는 회귀자잖아.”

“그딴 식으로 칭찬하지 말라고!”

“우리 지수 많이 강해졌네.”

“말 돌리지 마라, 죽는다.”

이 숨 막히는 꼬리잡기는 대체 뭐람.

왜 미안한지, 사과한 연유를 물어보는 오래된 연인의 무한 굴레처럼 막막하다. 물론, 실수했다면 하나부터 열까지 빼놓지 않고 설명할 자신은 있었다. 알면서 그랬다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 같기는 하지만.

‘우리라고 했지.’

다행히 그 부분에서 지수는 조금 풀어졌다. 참, 별거 아닌데도, 무진의 영악함이 드러났다.

“암중 세력과 결탁한 교관도 잡고, 교류전도 안전해졌으면 됐지.”

“애초에 계획하지 않고서야 너무 딱딱 들어맞잖아.”

교차 검증할수록 지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신과 할아버지의 부재를 이런 식으로 이용할 거라고는. 발상의 전환이 기발하다 못해 혀를 내두르게 했다. 새로운 방식으로 적의 허점을 노려 완벽한 결과를 얻어 냈다.

특히 창황가와의 다툼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불씨를 남겨 둔 상태로 암중 세력의 개입을 용이하게 했다.

‘나중을 위한 떡밥까지.’

전적으로 신뢰했다는 무진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다시 돌아왔을 때를 위해 미끼를 투척해 놓은 것이다.

실제로 두 가문이 전면전을 벌인다면 다른 칠대 가문에서 나선다고 보장하기 힘들다. 언론에 발표한 대로 적극적인 중재는 내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불가능했다.

‘혼자서도 너무 잘하잖아!’

자신의 부재로 곤란함을 겪기는커녕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전략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이보다 완벽하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전투력이라도 부족해야 하거늘, 재수 없게도 무진은 문무를 겸비했다.

‘이 새끼는 낭만이 없어!’

곤경에 처했을 때 멋지게 등장하고 싶었던 지수로선 의협단의 단주 복귀가 생색의 전부였다. 자신이 없어도 계획대로 잘 돌아가고 있어서 짜증이 치밀었다.

지수는 회귀자로서 존재의 허무를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든 존재감을 심어 주어야 했다. 이러다간 회귀의 목적마저 희미해질 수 있었다.

지수의 심정을 무진은 알고 있다는 듯.

“당분간은 자중하는 편이 좋아.”

“또 무슨 꿍꿍인데?”

“주화입마라고 소문이 나면 더 좋고.”

“또 지랄이네!”

사부님의 복귀로 가문은 제자리를 찾았다. 시끄러웠던 여론도 사라졌다. 이대로 끝나면 좋겠으나, 사부님이 창황가의 도발에도 응하지 않는 시일이 길어진다면?

사부님은 권왕가의 기둥이었다. 그 기둥이 정상이 아니라는 소문이 돌기에 충분하다. 물론, 의심과 실제는 다르기에 간을 보려는 자들이 있을 테지.

“갱생의 기회를 주겠다는데 지랄이라니, 말이 심하다.”

“암중 세력을 끌어낼 미끼로 쓸 거잖아.”

“제자의 도리야.”

“그건 선택이 아니라 강요지.”

기회를 만들어 줄 뿐, 용서는 사부님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신 사부님을 위한 선물이었다. 그마저도 배신한다면 용도 폐기는 당연했다.

“지수야, 정작 궁금한 건 그게 아니잖아.”

“눈치챘어?”

“수행 던전이 보약이긴 했나 봐.”

“나 얼마나 강해진 것 같아?”

갑자기 여자 친구가 오늘 달라진 거 없냐고 물어보는 상황이 떠올랐다.

“흠, 가늠이 안 되는데.”

지수는 그제야 미소를 띠었다. 나름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기는 했어도, 보상이 작지 않았다.

그간 넘지 못했던 벽을 넘어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 소기의 성과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 달아오른 상태였다.

‘이건 예상치 못한 수확이긴 해.’

돌아온 사부님과 지수는 한층 달라진 기도를 보였다. 성과는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기대치 이상이었다.

사부님과 지수의 요청대로 사전에 연무장의 결계를 강화해 놓았다.

“무진아, 좀 맞자.”

“자신감은 좋은 거지.”

“언제까지 여유를 부릴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전성기를 뛰어넘었어!”

“그렇다면 기대해도 되는 거지?”

“얼마든지.”

지수의 기도가 바뀌었다. 묵직하게 내려앉은 흐름이 연무장을 장악했다. 이제까지와는 확실히 다르다. 정련된 기운에서 흔들림 없는 부동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먼저 간다.”

매번 선수를 양보했던 무진이 선공을 취했다. 수행 던전에 들어가기 전이었다면 지수가 길길이 날뛰며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겠지만. 무위만큼이나 수양도 깊어진 모양이다.

슈웅, 파아아앙!

기수식이 존재하지 않는, 박자를 완전히 감춘 무진의 정권이었다. 외공이 극한에 달한 외기경이 극타점에서 폭발하기에 결코 경시할 수 없다.

착!

권격을 막아 내고, 팔을 감는다. 힘이 아닌 반동을 순수하게 이용하여 카운터를 노렸다.

무진의 얼굴로 날아오는 지수의 권격은 그간 알고 있었던 감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예 다른 박자에서 예상치 못한 속도였다.

파아앗!

공기를 때렸다.

그 짧은 순간 거력이 온전하게 실려 공기를 찢어발긴다. 파공성과 함께 사방으로 뿜어져 나가는 공기의 파편들이 위력적이었다.

호신강기와 금강불괴가 아니라면 타격을 입었을 텐데, 무진의 외경이 파편을 산산이 부수며 역카운터를 노렸다.

파파파파파팟!

타아앗, 우우우우웅!

짧은 거리.

주먹과 주먹이 오고 가고 있었다. 속도가 워낙 빨라 잔영이 그 자리를 대신하지만, 이미 늦었다.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권각술의 향연. 그 안에서 변수와 역공이 서로의 영역을 노린다. 점점 내외력이 권로에 담기면서 연무장을 휩쓰는 기의 소용돌이가 미친 듯이 휘몰아쳤다.

휘이이잉, 후아아앙!

막고, 피하고, 반격하고.

권파, 권경, 권절, 권수, 권극으로 이어지는 권공은 의기를 담아 기존의 파괴력을 월등히 상회했다. 한층 더 빠르고, 강력한 데다가 절묘한 페이크가 실렸다.

단순히 속도와 파괴력에만 치중하지 않았다. 순간순간의 번뜩임이 날카로운 데다가 부자연스러움을 유발해 사각을 만들어 낸다.

우우우우우웅!

만상의 흐름이 담긴 권격은 그 자체로 강력한 살상 병기였다. 스치기만 했는데도 공간을 부수고, 가르고, 분쇄했다. 부서진 파편조차 와류경이 되어 선회한다. 격돌 후 버려진 기운마저 연계를 위해 이용했다.

쩌어엉!

찢어지는 절삭음.

지수의 권극이 반월을 그리자, 강기가 발출되었다. 권강의 형태를 의지대로 바꾸는 무형의강이었다. 정면을 그었던 반월권강이 십자가로 변하더니 그물망을 형성한다. 피할 공간을 분쇄하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섬뜩하다.

꽈아아앙!

피하기에는 늦었다고 판단한 무진은 정면 돌파했다.

권경을 발출하여 지수의 권강을 박살 냈다. 힘과 힘의 격돌이었고, 연무장을 태풍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다.

스륵!

그 타이밍을 노린 지수의 신화천권이었다. 이전에는 전력 대결에서 밀리면 필살기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거늘. 가장 최적화된 거리와 틈을 완성한 후, 신화천권을 절묘하게 사용했다.

신화천권 단절식 천절권.

하늘을 갈라내는 권강에 의형기가 담겼다. 보법을 펼쳐 빠져나가는 무진을 연이어 노린다. 무진의 대응을 예측하여 이기어권강으로 전환되었다. 속도의 완급 조절에 변(變)과 환(幻)을 결합하여 강격 일변도인 신화천권이 진화했다.

휘리리리릭!

서거걱, 꽈아앙!

무진의 환영을 가른 권강이 폭발했다. 예측을 벗어난 지점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연쇄 작용을 일으킨다. 사방으로 퍼진 권강의 파편이 끈적한 수렁처럼 무진의 신형을 옭아맸다.

무진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광폭화] 4단 개방.

지수는 지체하지 않고 전력을 끄집어냈다. 지금이 아니면 무진의 공방일체를 뚫어 내지 못한다는 걸 직감했다. 예전보다 일취월장했다고 하여 무진을 간과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무진의 강함을 알고 있기에 [광폭화] 4단을 개방했다.

퍼퍼퍼퍼퍼펑!

일격일파.

파괴력만으로 따지면 산악을 부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나, 일격으로 끝내기엔 무진이 너무 강하다. 찰나의 빈틈이 언제 그랬는지 모를 만큼 다시 완벽해졌다. 마치 일부러 틈을 내준 것처럼 지수의 파상 공세를 막아 낸다.

“이 괴물 같은 자식! 좀 맞아라!”

“아직은 아냐.”

“사람이 되려면 맞아야지!”

“마늘이나 먹어.”

손해를 입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방금의 수는 실로 놀라웠다. 더욱이 광폭화를 4단까지 개방했음에도 평정심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4단만 개방하면 광년이 되어 미쳐 날뛰었던 걸 상기하면 경이로운 진전이었다. 자신의 의지로 광폭화를 다스리자 흩어지는 내력을 남김없이 권경에 실을 수 있었다.

슈슈슈슝!

일로백영.

지수의 주먹이 불을 뿜으며 정면을 가득 메운다. 권영에 휩싸인 공간이 사라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퍼어엉!

부르르르!

다발의 권영을 폭사하면서 회심의 일격을 숨겼다. 권영 속에 이번에 얻은 심득을 펼쳤다.

지수의 심권.

방심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타격이라도 받아야 했거늘.

지수로선 실망스러운 결과물이었다. 무진이 막아 내고 심권을 카운트했기 때문이다.

휘리릭, 퍼어엉!

간발의 차이였다.

눈으로 좇아서 반응했다면 늦었다. 초감각이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자 그 즉시 본능적으로 움직여 무진의 심권을 피했다.

퍼어억!

까아아악!

안타까운 현실은 카운터가 하나가 아니었다. 심권의 배후로 심권을 숨겼다.

꽈다다다당!

데구르르!

벽면을 부딪치고, 바닥을 굴러 무진의 앞에 도달했다.

무진을 올려다본 지수는 잃어 가는 의식을 부여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대로는 억울해서 안 되겠다. 심권을 쓰는 것도 반칙인데, 암중심권이라니!

이게 숙녀에게 할 짓인가?

“치사하게!”

“훌륭했어.”

“……닥쳐!”

“한숨 자.”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 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지수는 끝내 게거품을 뿜었다.

뽀글뽀글!

심권을 맨몸으로 맞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다음 선수가 그새를 못 참고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설렁설렁하리란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어찌나 몸이 달아올랐는지, 투기가 화염이 되어 연무장을 불태운다.

“감히 내 손녀를 건드리다니! 할아비이자, 사부로서 네놈의 못된 심성을 고쳐 주겠노라.”

“명분은 도전 의식을 고취시켜 주긴 하죠.”

그런 것치고는 기절한 손녀가 보이지도 않았다. 손녀를 위해서 나섰다면 최소한 연무장 밖으로 던져 놓기는 해야 하지 않나. 초장부터 재기는커녕 주먹부터 날리려고 했다.

조전여전(祖傳女傳)의 근본은 확실히 뿌리를 건강하게 내렸다.

꽈아아아앙!

사부와 제자의 굴레를 벗어던진, 생사대적을 향한 패도무쌍의 권격이었다. 차원이 다른 강함이 결계를 흔들어 놓는다.

“죽어랏!”

“어림없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