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귀환(1)
카악, 퉤엣!
뱉어 낸 침에 피가 묻어 나왔다. 입안이 터져 핏물이 고여 있었다. 눈두덩이도 부어올라 판다처럼 멍이 들었다.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지 않은 산도적 같은 외형의 두 사내는, 험한 꼴을 당했는지 숨을 거칠게 쉬었다.
냇가에서 핏물을 씻어 낸 후 쉬었다.
“빌어먹을 노인네가 은거기인이었을 줄이야.”
“은거기인은 무슨, 그랬으면 우리 진작에 죽었어, 인마!”
“씨발, 몸보신 좀 하나 했더니. 일진이 사납네.”
“시끄럽고, 수염하고 머리카락이나 밀어.”
두 사내는 가위와 면도기로 서로의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 냈다. 더벅머리와 수염으로 얼굴을 가리긴 했어도, 노인네가 신고하면 골치 아파진다.
운 좋게 천종삼을 얻나 했더니, 범상치 않은 노인네가 주인이었다. 인적이 드문 산이기에 조용히 처리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되레 처맞고 도망쳤다.
뭔 놈의 노인네 주먹이 이리 매워!
“이대로 끝내긴 쪽팔린데, 이 노인네를 어떻게 족치지. 뱀독이라도 쓸까?”
“은퇴한 지 오래된 것 같지만, 그래도 헌터야. 재수 없으면 죽을 수도 있어.”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했으니 신고한다고 해도, 한동안 산에서 잠수 타면 그만이었다. 서리꾼을 잡겠다고 온 산을 뒤질 만큼 경찰이 한가하진 않았다. 아마 적당히 뒤지는 척하다가 잡히지 않으면 철수할 거다.
대충 씻고, 산속의 아지트로 움직였다. 당분간은 동굴에서 생활하면서 조용해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봐요.”
흠칫!
예상치 못한 인기척에 놀란 두 사내가 황급히 돌아서며 경계했다. 그 앞에 여인이 서 있었다. 한데, 험한 꼴을 당했는지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어 있고, 옷은 군데군데 해어졌다. 자신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뭐냐?”
“이쪽으로 가면 내려가는 길인가요?”
산속에서 만난 여인, 목소리만 들어 봐서는 소녀 같기도 했다. 앞을 가린 머리카락 사이로 보니 어려 보였다. 여인은 산에서 길을 헤맨 흔적이 역력했다. 내려가는 길을 묻기 위해서 두 사내를 부른 것이다.
‘호오, 제법 반반한데.’
‘몸매도 좋고.’
만운, 만호 형제는 뜻밖의 사태에 놀랐지만, 곧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딱 봐도 산에서 조난을 당해 헤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산삼으로 몸보신을 못 했더니, 다른 쪽으로 보신할 기회가 찾아왔다.
“저런, 어쩌다 길을 잃은 거지?”
“그렇게 됐어요. 사설은 그만하고 방향이나 알려 줘요.”
“저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길이 하나 나오거든. 거기서 오른쪽으로 틀어서 10분가량 걸으면 집이 몇 개 보일 거야.”
“역시 이 방향이 맞네요. 고마워요. 그럼.”
소녀는 사내들이 알려 준 방향으로 걸음을 돌렸다.
차작!
갑자기 한 사내가 가려던 방향으로 막아섰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지, 사내들은 양쪽에서 길을 틀어막았다.
“이게 무슨 짓이죠?”
“길을 알려 줬으면 그에 합당한 보답을 해야지. 그냥 가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얼마면 되는데요?”
“얼마나 있는데?”
“현찰로 한 오십만 원 있는데. 이거면 돼요?”
돈을 보자, 사내들의 표정에 미소가 맺혔다. 오늘 하루 일진이 사나웠는데, 이렇게 보답을 받게 되었다. 돈도 얻고, 욕구도 채우고 꿩 먹고 알 먹고.
음심이 동한 두 사내가 불현듯 여인을 덮친다.
꽈당!
양쪽에서 잡고 자빠뜨리려고 했던 사내는 목표물이 사라지면서 몸이 엉키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고개를 돌린 형제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이년이 제법 날래구나.”
“역시 그냥 가지 않길 잘했네.”
“헛소리하는 걸 보니 미친년이구나.”
“할아버지, 봤죠.”
만운, 만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계집이 정신이 나가서 헛소리한다고 생각했다. 뒤에 누가 있다고. 그 틈에 빠져나가기라도 할 셈인가.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놓친 것만 봐도, 보통은 아닌 년이었다. 뒤를 돌아보다 놓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태백산에 독버섯이 자라고 있었구나.”
“……뭐야?”
계집이 도망치려고 개수작을 부리는 줄 알았는데, 뒤에서 걸걸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급히 뒤돌아선 형제는 자신들을 가리는 그림자에 기겁했다.
허억!
수풀 사이로 들어선 빛에 그림자만 비칠 뿐, 윤곽이 정확하진 않았다. 그런데도 그림자의 규격이 일반인과는 차원이 다르다. 형제 둘을 뭉쳐서 하나로 만들어도 부족한 거구였다.
“……할아버지라고?”
계집은 분명 할아버지라고 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사내는 할아버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탄탄한 근육이 그림자에서도 전해졌다.
외모만 봐서는 40대를 넘지 않을 것 같은데, 꼬락서니는 계집과 별반 다르진 않았다. 입고 있는 옷은 해어졌고, 머리카락은 산발한 괴인이었다.
“죽엇!”
생존 본능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따르지만, 형제는 소매에 숨기고 있던 비수를 꺼내 들었다. 만일에 대비해서 항상 손목에 차고 다니는 단검이었다.
까아앙!
부르르르!
분명 옆구리를 노리고 단검을 휘둘렀다. 비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날카롭게 벼려 놓았었다. 우연히 얻은 비수는 스킬이 장착된 장비였다. 헌터들에겐 싸구려 장비에 불과할지라도, 형제에게는 날개를 달아 주었다. 더욱이 미약하기는 해도 각성자이기에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쇠도 무처럼 자를 수 있는 단절검이다. 방심할 때 기습적으로 노린다면 제아무리 단련된 자라도 효과가 있을 줄 알았다.
서걱이 아니라 깡이라니!
쇳덩어리를 두드린 것보다 더한 충격이 손에서 전해졌다. 반진력에 손아귀가 찢어지면서 목숨처럼 여긴 단절검을 놓쳤다. 허공을 날았다가 바닥으로 떨어진 단절검의 검신이 구겨져 있었다.
“……헌터!”
“그렇다만. 산골 촌놈치고 칼 놀리는 게 예사롭지 않네. 제법 썰어 본 솜씨야.”
“……왜 이러시오? 우린 아무 짓도 하지 않았소!”
“그런데 왜 내 손녀에게 찝쩍댔냐. 지금도 그렇고.”
만운이 노인에게 달려들 때 만호는 계집을 인질로 잡을 심산이었다. 이런 쪽으론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형제의 감이 작용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사태에 본능적인 감이 원활히 작동하지 못했다.
크윽!
달려들었던 만호는 눈두덩이를 부여잡고 물러서야 했다. 계집의 주먹이 아파 봐야 얼마나 아프겠냐는 엄살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노인에게 맞아 멍이 들었던 눈두덩이가 터지면서 핏물이 시야를 가렸다.
망할!
또 잘못 걸렸다.
오늘 왜 이래.
형제는 노인과 계집이 일반인이 아닌 각성자라는 걸 깨달았다. 처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노인과 계집이 산에서 헤매고 있는 것부터가 잘못되었다. 거지 같은 꼬락서니와 노인에게 맞은 분풀이가 엮이면서 일진이 꼬였다.
연쇄적인 부작용, 즉 머피의 법칙이었다.
“각성자가 일반인을 건드리면 어찌 되는지 모르는 겁니까?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서리꾼 주제에 공권력을 신뢰하고 있네. 게다가 사람도 죽여 본 놈들이 개소리를 잘도 지껄인단 말이야.”
순간 찔끔할 뻔했던 만호는 안면을 싹 바꾸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낌새만으로도 들킬 수 있었다.
이럴 때는 무조건 오리발이다.
적반하장을 더해서.
“우리가 언제 사람을 죽였다는 겁니까? 말도 안 되는 모함입니다. 무고죄가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지 아십니까?”
“이것들이 누굴 해태 눈으로 보나. 감히 내 앞에서 거짓말을 입에 담아.”
“증거도 없이 폭력을 쓴다면 후회할 겁니다! 아니면 경찰서로 갑시다!”
만운, 만호는 무조건 발뺌했다. 인정하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어차피 미수에 그쳤다. 상대는 일반인도 아닌 각성자인 만큼 경찰서로 간다면 어영부영 끝날 것이다. 끽해 봐야 구치소에서 하루 있다가 나오면 그만이었다.
형제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자신들도 경찰을 보고 싶진 않았다. 산삼 노인과의 일도 있고. 무엇보다 이 괴물 같은 노인네가 눈 돌아가 버리면 그땐 답이 안 나올 것 같았다.
“우릴 건드리면 당신들도 좋을 것 없을 텐데요. 피차 서로에게 이득도 아니니 이쯤에서 각자 갈 길 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산에서만 산 놈들치고는 협상력이 제법이야. 좋다. 그렇게 하지. 우린 집으로 가고, 너흰 황천길로 가자.”
“……뭐요?”
“끝까지 개기면 황천길로 가는 거야. 도중에 맘이 바뀌면 손 들어라.”
“씨발, 우리가 얌전히 대해 주니까 만만…… 커억!”
하늘에서 솥뚜껑이 날아왔다고 해야 하나. 쫘악! 가죽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만운이 바닥에 처박혔다. 사람이 저런 식으로 박힐 수도 있다는 걸 처음 봤다.
바르르르
권왕의 싸대기에 만운은 바닥에 철퍼덕 쓰러진 채 감전을 당한 사람처럼 경련을 일으켰다. 정신을 잃지 않은 채 고통이 육신을 장악했다. 북풍한설에 맨몸뚱이로 물벼락을 맞은 상태와 엇비슷하다.
헉!
이 미친 노인네가!
진짜로 때릴 줄은 몰랐던 만호가 헛바람을 삼켰다. 한편으로 상대를 잘못 건드렸다는 걸 절실히 체감했다.
“너도 가야지.”
“……잠깐!”
그런다고 멈출 권왕인가? 남이 하지 말라고 하면 더 심하게 지랄했던 왕(王)청개구리였다. 하물며 명분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신나서 마구 날뛰었다.
그래서 권왕에겐 명분을 주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 명분이 없으면 그나마 미안해하기라도 하는데, 명분이 생기면 지옥이었다.
쫘아악!
크아아악!
귀싸대기를 맞은 만호는 무중력 스킬에 당한 것처럼 허공으로 날더니 수십 바퀴를 회전하다 떨어져 굴렀다. 방어고 자시고, 움직일 틈 따윈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형제가 비록 각성하기는 했어도, 무공을 배운 것도 아니고 마나를 전문적으로 훈련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맞는 순간 몸을 비틀어 대는 본능적인 감각은 나쁘지 않지만, 권왕의 귀싸대기를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일어나야지.”
감히 자신을 앞에 두고, 등을 보이다니!
권왕은 주저하지 않고 등짝에 스매싱을 날려 주었다. 경련을 일으키며 죽은 척하던 만운이 기겁하며 하늘로 솟구쳤다. 어디서 그런 추진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를 일반인답지 않은 도약력이었다.
흐어어억!
등에 손바닥 타투가 새겨지는 순간, 만운은 기겁했다. 사람의 손바닥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맞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헉!
하늘로 솟구쳤던 만운은 순간적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언제 이렇게 높이 점프했단 말인가.
인간의 잠재력은 한계를 초월할 때 나타난다고 하더니.
“어디다 정신을 파는 게냐?”
헉!
결자해지라고 했지, 아마.
내가 떠오르게 했으니, 내가 내려오게 해야 했다. 세터와 공격수의 거리를 유지하며 허공으로 날아오른 권왕은 A속공의 정석을 보여 주었다.
쫘아아아악!
배구공이었으면 터졌을 텐데, 만운의 두개골은 제법 단단했다. 꼴에 각성자라고 일반인보다는 때리는 맛이 찰졌다. 보통 사람이라면 첫 싸대기에 정신을 잃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꽈다당!
바닥에 처박힌 만운을 뒤로하고, 멀찍이 나가떨어진 만호의 등짝에도 스매싱을 날려 주었다.
권왕은 세터와 공격수를 혼자서 수행했다.
쫘아아아악!
형제를 한자리로 모았다.
권왕은 좌우 싸대기를 난사했다. 보통은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이제는 조절이 되었다. 죽지 않을 간극에서 싸대기의 고통을 극대화했다.
크아아아아!
그만~~~~!
권왕은 거침없이 싸대기를 날렸다. 좌우로 형제는 팩팩! 돌아가며 피를 토했다. 한 번에 형제를 보내는 1타 2피였다.
한쪽으로 쏠리는 편향된 사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알고 있었다.
“……흐어어엉, 제발…… 그만!”
“그래서 어쨌다고?”
“……다 말할게요…… 때리지만 마세요!”
“그러니까 어쨌다고?”
너희들이 말하든지, 말든지 상관은 없는데 내 맘에 드는 말을 하라는 협박이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형제는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있는 말 없는 말을 내뱉었다. 차라리 죽여 줬으면 하거늘, 죽지를 않으면 환장할 노릇이었다.
“……등산객을 죽였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어? 증거가 없잖아.”
“……저쪽 능선 아래에 묻었습니다……. 칵!”
“이런 잔인한 놈들!”
누가 누구보고 잔인하대!
말을 하는데도 왜 자꾸 때리냐고!
“어쭈, 눈빛 봐라.”
“……악마!”
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의 솜씨도 나쁘진 않았다. 워낙 악질이 있어서 비교되었을 뿐이다.
‘태백쌍마를 두고 갈 순 없지.’
기연을 빼앗은 이상, 이 형제가 태백쌍마가 될 우려는 사라졌다. 그것만으로도 수많은 사람을 살린 것이다. 저 형제가 무신과 투신의 기연을 얻어 태백쌍마가 되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눈물을 흘려야 했을지 모른다.
‘그나마 다행이네.’
하나, 형제가 저지른 범죄는 미래의 일이다. 아직 저지르지 않은 사건으로 형제를 매도하여 단죄할 순 없다.
사람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지만, 작은 사건으로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었다. 단순 서리꾼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여지를 내어 준 것이다. 의도한 면이 없지 않아 있으나, 형제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운이 좋았어.’
태백쌍마의 증언만으로 시간을 특정하긴 어려웠다. 간신히 훈련을 끝내고 나왔을 때, 태백쌍마가 찾아올 줄 누가 알았으랴. 하늘도 죄인을 단죄하라고 떠먹여 준 것이다. 그도 아니면 태백쌍마의 운이 더럽게 없던지.
지수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무게를 두었다.
쫘아아악, 쫘아악!
말했잖아……요…… 왜 때려요~~~!
미래의 태백쌍마는 울부짖었다. 제발 누구라도 와서 말려 줬으면 했다. 안타깝게도 인적이 드물 산기슭이었다. 도망 다니거나 숨기 좋은 만큼, 자충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