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수확의 계절(2)
“시간 됐네, 가자.”
“알았어.”
무진은 구용 선배와 함께 집을 나섰다.
약속된 장소는 인천 서구 오류동 물류센터의 북쪽 평야였다. 일대는 던전이 오픈된 이후로 방치되어 풀숲이 무성했다.
버스를 타고 인근에서 내려서 걸었다.
오후 7시가 안 되었지만, 불빛이 적은 지역이라 금세 어두웠다. 멀리서 간간이 빛이 보이지만, 눈대중보다 거리는 훨씬 멀다.
풀숲으로 무성한 임야를 가로지르자, 작고 낡은 창고가 있었다. 예전부터 있었던 창고로, 이제는 쓰임새가 다했는지 버려졌다.
“여기로 오라고 한 거 맞아?”
“……맞아.”
마지못해 대답하는 구용 선배의 말투가 어색했다. 어딘지 모르게 평소와 다르게 흔들렸다. 누가 봐도 불안 증세에 시달리는 것 같았지만, 무진은 의식하지 않았다.
“평소대로 해.”
“……평소대로거든.”
창고는 농기구나 톱 같은 작은 연장을 넣어 두기에도 작았다. 어설프게 녹슨 문을 닫아 놓기만 해 힘을 주면 부서질 듯 낡았다.
끼이익!
문을 열자, 바람에 먼지가 날렸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음산하다. 좁은 내부임에도 안이 잘 보이진 않는다.
예상과 달리 농기구가 아닌 계단이 있었다. 창고는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입구를 숨기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 이 인근이 던전이 오픈된 지역인 데다 개발이 미루어지다 보니 의도적으로 감추려고 하면 티가 날 수 있었다. 그럴 바엔 드러내는 편이 나았다.
낡은 창고의 지하는 대낮에도 어두워서 계단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알고 찾아오지 않는 이상, 지하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을 터.
해가 저무는 시각, 계단은 짙은 암영에 사로잡혔다.
무진은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귀신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담력 테스트 장소로 제격이었다.
계단은 1층이 아닌 아래로 내려가서 반대쪽으로 다시 내려가는 2층의 구조였다. 밖에서 본 볼품없는 창고와는 달리 신경을 썼다.
2층으로 내려갔다. 앞에 길게 이어진 통로가 있었다. 중세 시대도 아니고, 전등이 아닌 횃불이 벽에 설치되어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횃불에 따라서 그림자가 출렁거리며 음산함을 더했다.
“전설의 고향도 아니고, 보기보다 취미가 고상하시네.”
“취미라기보다는 악취미 같은데.”
“개인의 취향은 존중하자고.”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뭐.”
최소한의 의심은커녕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는 구용 선배였다. 더러움을 잘 타는 백지처럼 오염되기 쉬운 성격이었다. 정신적 지주로서 올바르게 이끌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통로의 끝을 따라 들어가자 넓은 공터가 나왔다. 땅굴을 파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북한 공작원에게 배웠나? 쥐새끼들 같은 짓을 잘도 했다.
전체적으로 원형으로 된 넓은 공터로, 횃불이 사방을 비추었다. 분신사바의 악마 소환처럼 은밀하게 의식을 치르기에 적합해 보였다.
두둥!
공터의 반대편에 후드를 깊게 눌러쓴 사내가 서 있었다. 음영에 가려져 얼굴이 잘 보이진 않았다.
“강 교관님, 코스프레는 그쯤 하시죠. 애들도 아니고, 유치하잖아요.”
“예상은 했지만 진짜로 혼자서 오다니 자신감이 지나치구나. 아니면 혼자서 공을 독차지해 만회라도 해 보려는 것이냐?”
강 교관은 후드를 뒤로 젖혔다.
평소 서글서글한 인상과 달리 공터의 음산함에 동화되었다.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처럼 대비가 극적이다. 어제만 해도 친근한 사제 관계였거늘.
오늘을 기다렸는지, 무진의 말투도 이전과 달리 무심하고 싸늘하다. 다른 어떤 걸 떠나, 적아의 구분만큼은 확실했다. 그가 비록 스승일지라도, 적이라면 단칼에 베어 낼 부동심의 화신이었다.
“뒤로 호박씨를 까는 사람을 믿을 순 없잖아.”
“주변에서 떠받들어 주니 세상이 네 맘대로 돌아가는 것 같으냐? 그러니 겁도 없이 찾아왔겠지.”
비아냥거리는 말투와 달리 강 교관은 무진을 무시하진 않았다. 무진은 환술을 비롯한 각종 과목을 빠른 속도로 습득했다. 약점으로 거론되었던 마나흡수력까지 극복했으니 천재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하나, 자신에 대한 과시욕이 지나치게 강하다.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현실을 보는 눈이 흐려졌다. 사방에서 압박받다 보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강 교관의 예상대로 무진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당하지 않으리란 확신으로 무장했다.
다만, 저 교활한 주둥이는 예상을 벗어났다.
“환술쟁이 정도는 나 혼자서도 충분해.”
“네놈도 결국 다른 놈들과 똑같은 놈이었구나.”
“설마 진짜로 대우해 주는 줄 알았어? 보기보다 아주 순진하시네.”
“이놈이! 진정 죽고 싶은 것이냐?”
“무슨 꿍꿍인지는 모르겠지만, 날 부른 건 명백한 패착이야.”
강 교관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혔다. 확실히 그간 쌓인 게 많았던 듯했다. 이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오늘의 판단을 후회하게 해 주마. 네 자만이 곧 파멸의 시작이 되리라.”
“엑스트라 주제에 메인 빌런처럼 있는 척 좀 하지 마. 그래 봤자 쭉정이에 불과하잖아.”
무진의 같잖다는 눈빛에 강 교관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왜 그토록 무진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적아가 분명하고, 적으로 인식한 순간 깔아뭉개는 재주를 타고났다. 그걸 증명하듯이 말끝마다 심기를 자극했다.
“그렇다면 어디 증명해 보거라.”
강 교관은 말싸움은 이쯤 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해 봤자 본성이란 잘나갈 때가 아닌, 벼랑 끝으로 몰렸을 때 나오기 마련이다.
자기 딴에는 주변의 변화에도 휩쓸리지 않는 강단을 보여 주고 싶었을 테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건방진 애송이에게 현실의 비정함을 가르쳐 줄 때다.
-환천비기 극의 극락정토.
[환천력] 3단.
강 교관이 끝내 내놓지 않은 환천비기의 극의였다.
이때를 노리진 않았어도, 무진으로 인해 상부의 지시를 온전히 이행하지 못했다. 설령 의도하지 않았다곤 하나, 자리를 위협했다.
“사바세계의 괴로움을 잊고, 극락정토에 영혼을 맡기거라.”
평범한 생도였다면 환천비기만으로도 영혼을 제압하여 환술에 가둬 놓을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무진은 환술에 대한 이해도 높고, 프라이드가 상당했다. 어지간한 수법으론 되레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었다. 그래서 위험을 감수하고, 비밀 장소로 유인한 것이다.
바닥에 새긴 문양은 환술을 극대화하기 위한 환술식이었다. 각각의 주요 지점에 최상급의 마정석을 심어 놓았다. 그동안 숨겨 놓은 [환천력]까지 개방하여 술식을 완성했다.
극락정토는 인간의 마음에 자리한 완벽한 천국을 구현한다. 차라리 지옥이라면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쓰겠으나, 극락정토는 헤어나기 어려운 마약과도 같았다.
“네놈이 제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이 안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악몽은 하수, 단꿈은 상수로. 역행하지 않는 인간 본연의 본능을 이용한 환술이야말로 환천비기의 정수였다.
“영원히 꿈속에서 살거라.”
그간 무진에게 당한 것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곤 했었다. 하는 일마다 번번이 실패를 안겨 줘, 인생의 오점을 단시간 내 새겨 주었다.
이제야 그간 당한 수치와 모멸감을 되돌려줄 수 있었다. 극락정토가 온전히 발휘된 이상, 생도 따위가 감히 빠져나올 순 없다. 짧으면 5분, 길어 봤자 30분을 넘기지 않으리라.
강 교관은 극락정토를 세심히 살폈다.
“네놈의 극락정토를 보여라.”
극락정토는 인간이 희망하는 세상을 열어 준다. 무진이 바라는 세상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심상에서 구현한 환상은 실제와 다르지 않았다. 주지육림의 욕망에 젖어 있다면 실제로도 감추고 있던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응?
환천비기의 중심에 들어섰다. 극락정토는 영혼과 일직선으로 연결된다. 어떤 식으로든 반응해야 마땅했다. 5분이 넘어가고 있는데도 무진은 제자리에서 멀뚱히 서 있었다.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한 채 몸부림을 쳐야 마땅하거늘.
망부석이 극락은 아니지 않나.
“설마?”
그럴 리가 없다.
환천비기는 정신력으로 버텨 낼 수 있을 만큼 허술하지 않았다. 정신력이 강할수록 오히려 환술에 쉬이 사로잡히곤 했다.
본인의 능력을 과신한 자일수록 빈틈이 생기고, 환술은 그러한 약점을 비집고 들어갔다.
빤히.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는 무진의 눈동자에 강 교관은 소름이 돋았다. 부정하기에는 눈동자가 자신을 따르고 있었다. 극락정토에 먹혀 초점이 사라진 흐리멍덩한 눈빛과는 달랐다.
“그럴 리가!”
“나의 극락은 현실에 있거든.”
꿈보다 해몽이 좋을 때, 반전을 선사해야 통쾌한 법이다.
무진은 꿈이나 환상에 젖어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함께라면 어딘 들 유토피아가 아니겠는가.
강 교관의 극락정토 따윈 애초에 통하지 않는 견고한 유대와 뚝심이었다. 더욱이 환술이 더해지면서 무진계는 360개로 정립했다. 극락정토는 무진계에 흡수되어 사라진 지 오래였다.
“헛수작을! 나락에 떨어져라!”
환천지옥!
극락정토가 통하지 않자 급히 환술을 지옥으로 바꾸었다.
단꿈이 싫다면 악몽을 선사해 주마.
솨아아, 파앗!
환술파훼.
무진이 허공에 팔을 휘저어 맥을 잡아낸다. 환력이 손끝에서 수식을 이루자 환천지옥은 남가지몽으로 전락했다.
“이놈이, 환허, 환청, 환시!”
“그딴 게 통할 리 없잖아.”
무진은 강 교관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여 자신만의 영역에 도달해 있었다. 환천비기의 극의를 전수받지 않았어도, 무진계를 통해 극락정토를 완성하고도 남았다. 물론, 똥개도 제집에서는 3할을 먹고 가기에 방심하진 않는다.
우우우웅!
환술이 서로의 영역에서 격돌했다.
환술사를 잡기로 치부하는 무인들의 편견과 달리 굉장히 치열하고 무시무시한 공방전이었다. 환영과 실제가 교묘하게 섞여서 더더욱 위협적이다.
휘이이잉, 쩌어엉!
화르르르!
환력을 오행기로 전환하여 환술을 완성했다. 화염과 수룡이 영역 싸움을 벌인다. 공터가 벌판, 절애, 수림, 사막, 바다로 전환하며 오감을 괴롭혔다. 현혹되는 순간 현실이 되어 잡아먹히는 수가 있었다.
주르르!
환세로 세계를 만들고 우위를 점하려 했던 강 교관은 식은땀을 흘렸다. 환세가 펼쳐지기가 무섭게 또 다른 환세가 펼쳐졌다. 술식의 흐름에 변수를 집어넣어 파행을 이루고, 본인의 술식으로 완성했다.
“환파!”
“환합!”
부수고, 세우고.
변하고, 돌아오고.
한 호흡을 이루기도 전에 환술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위력을 과시했지만, 강 교관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환술을 주도하기보다 역으로 막아 내기에 급급해졌다. 분야가 다르긴 해도, 공격이 최선의 방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쉴 새 없이 환술을 펼치고도 밀렸다면 우열은 가려졌다고 봐야 했다. 하물며 사전에 설치한 마정석은 술식과 연결되어 마력을 제공해 주었다.
부르르르!
강 교관은 믿고 싶지 않은 현실과 마주했다. 한낱 생도에게 수십 년을 익힌 환술을 추월당하고 말았다. 그것도 반 학기를 배웠고, 자기 주 전공도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분노가 차올랐다. 도저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이놈, 죽여 버리겠다!”
“환술로도 안 되는데, 가능할까? 주제를 알아야지.”
“이건 어떠냐? 장구용, 놈을 잡아!”
“선배가 그럴 리 없잖아.”
“확신은 금물이라고 했을 텐데.”
강 교관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한 달 전 장구용이 찾아왔을 때, 암시를 걸었었다. 장구용의 의식을 물들인 후 강신 속성으로 죽은 자의 왕을 보조하는 사역마인 사령(死靈)을 집어넣었다. 사령왕을 성좌로 두지는 못했어도, 사령이라면 충분히 장구용을 지배할 수 있었다.
꽈악!
어?
장구용이 뒤에서 무진을 잡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긴 해도, 떨쳐 내면 그만인 줄 알았는데 힘이 상당했다.
“죽어랏!”
푸욱!
그 찰나의 빈틈을 강 교관은 놓치지 않았다. 애초의 목적은 무진을 환술로 제압해 이용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살려 둘 순 없었다. 심장을 향해 비수를 찔렀다. 사룡의 비늘로 만든 비수로, 단련된 육체도 종잇장처럼 베어 낼 수 있었다.
무진의 동공이 급격히 흔들렸다.
“……젠장!”
“잘난 체하더니 꼴좋구나!”
“강 교관님…… 살려!”
“이미 늦었다.”
사룡의 눈물을 비수에 발랐다. 악의를 가진 사룡비(死龍匕)에 사룡의 눈물이 닿으면 치명적인 독이 된다.
독이 퍼지면서 무진의 육신이 순식간에 검게 변해 갔다.
“이럴 순…… 커억!”
핏물을 토한 바닥이 타들어 갔다. 강력한 산성을 띠는 독이라 오장육부가 녹아 버린 것이다. 이제는 sss급의 힐러가 온다고 해도 살아남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날 죽이면…… 너도!”
“네놈의 죽음은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억울해하는 무진을 보자, 강 교관은 희열을 느꼈다. 이제는 손가락만 까딱해도 놈의 목숨을 취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