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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최강 남사친-163화 (164/374)

163. 초대(1)

정우철과의 대결은 다른 어떤 결투보다 중요했다. 임시긴 해도 무진이 의협단주로서 자격을 갖추었음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지수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다는 공증으로, 차기 단주로서 손색이 없었다.

반면, 지나치게 창황가를 도발했다는 우려를 지우기 힘들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듯. 창황가의 명성이 과거와 비교해 바래졌어도, 칠대 가문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다시 기지개를 켜고 일어서려는 때, 망신을 또 당했으니 가만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 데다 현재 권왕가는 권왕이 부재한 상태였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창황가로선 무진의 도발을 걸고넘어질 수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비록 생도 간의 결투라 하나 가문을 모욕하다니, 이는 창황가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다.

이번에도 창황이 직접 나섰다.

실제로 가문을 모욕했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그러나 어떤 말이든 꼬투리를 잡으면 빌미가 되기 마련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란 말이 왜 나왔겠는가. 힘이 있으면 코걸이를 귀걸이라고 한들 이의를 제기하기가 어렵다.

-생도 간의 일반적인 결투일 뿐, 본가는 창황가를 모욕할 의도가 없었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해명의 뉘앙스가 이전과는 달랐다. 권왕이었다면 창황의 도발에 얼씨구나 달려들었을 텐데, 권왕가주는 분쟁을 원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더욱이 권왕의 수제자로 알려진 무진을 일반 생도로 표현한 건 누가 봐도 발을 빼려는 것처럼 들렸다.

권왕가가 권왕의 부재로 창황가와의 다툼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러한 우려가 곧 현실이 되어 갔다. 권왕가의 구역을 창황가가 슬금슬금 넘보기 시작했다.

만약을 대비해서 이전에 넘겨주었던 지역을 되찾는 형식이기는 해도. 창황가와 권왕가의 우열이 일정 부분 기울어진 듯했다.

-원래 본가의 구역이었다. 권왕가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마땅하다.

때는 이때다 싶었던지, 창황의 공표가 언론을 타며 권왕가를 압박했다. 이런 식으로 도발을 해 오는데도, 별다른 동향을 보이지 않는 건 권왕의 부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창황가도 권왕가와 전면전까지 가려는 의도는 없었다. 예전의 위신을 찾고, 권왕가의 기세를 꺾으려는 것이다.

기실 전면전은 나머지 가문이 바라지 않았다. 만약 이런 식으로 아무런 명분도 없이 권왕가를 친다면 칠대 가문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형 길드가 눈에 불을 켜고 주시하고 있었다. 칠대 가문의 협의체가 무너지면 대형 길드가 가만히 있겠는가. 균열이 생긴 틈을 타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챙기는 건 당연했다.

창황가도 이를 의식했는지.

-본가를 모욕한 어리석은 생도는 용서를 구하러 찾아오라. 본황은 용기 있는 자를 외면하진 않는다.

권왕가와의 전면전은 아니더라도, 권왕의 후계자인 무진을 물고 늘어졌다. 사실 치사하기 이를 데 없는 횡포였다.

일개 생도를, 명색이 한국을 대표하는 10대 초인이 콕 집어서 언급했다. 창황의 눈 밖에 났음을 대놓고 밝혔으니, 무진의 입지가 난처해진 건 당연지사.

“무진아, 괜찮아?”

“괜찮지 않으면 같이 가 주려고?”

무진이 염려가 돼서 물었던 상원은 식겁하며 입을 닫았다. 다른 이도 아니고, 창황은 성질 고약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앞날이 창창한 생도를 창황이 가로막는다고 상상해 봐라.

상원은 벌써 오금이 저렸다.

말끝을 살짝 흐리며.

“내가 간다고 도움이 되겠어?”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시간이라도 끌 수 있으면 좋고.”

“날 미끼로 쓰려고?”

“친구를 위한 아름다운 희생이지.”

언제부터 친구 대우를 해 줬다고.

의도했던 상황과는 거리가 멀었다. 주둥이가 방정이라고, 입을 다물고 있을걸.

상원은 후회가 밀려왔다. 역시 아무 때나 나대면 횡액을 면치 못했다.

“쫄기는. 안 데려가니까 걱정하지 마.”

“쫄기는 누가! 나 박상원이야!”

“호오, 장렬한 최후를 맞고 싶다고?”

“멀리서나마 응원할게.”

과연 상원이다웠다.

자기 주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눈치 없이 나대기는 해도, 자존심 때문에 만용을 부리진 않았다. 뒤로 물릴 수 있는 것도 용기였다. 때론 자존심을 못 이겨 개죽음을 당하는 예도 종종 있었다.

유정과 혜진도 걱정하는 기색이었다.

4인방은 여전히 믿음을 잃진 않았지만, 성운맹을 대하는 맹원들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창황이 선전포고를 한 상태였다. 생도를 상대로 그렇게까지 나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 했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지수가 온다고 해도 동요를 억누르기가 어려울 거야. 우리야 괜찮지만, 맹원들은 심각하게 여기는 것 같아.”

“그렇겠지. 사부님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당분간은 어쩔 수 없어.”

“그렇다면 어떻게든 지수 할아버지를 불러와야지. 이대로 있어도 돼?”

“불러올 수 있으면 진작 했지.”

“정말로 수행 던전에라도 갇힌 거야?”

“가주께서 그리 말씀하셨으면 맞겠지.”

무진의 모호한 대답에 유정과 혜진의 걱정은 더욱 깊어졌다. 돌아가는 사태를 보니 권왕가주께선 무진에게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 사태의 심각성이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우리라도 가 줄까?”

“상원이는 몰라도, 너희들은 안 돼. 자칫 가문 간의 일로 비화할 수 있어.”

“그래서 가만히 있으라고? 우린 친구잖아.”

“친구한테 어려운 부탁은 하지 않아.”

처음에 입을 열었다가 침묵으로 일관했던 상원은 헛바람을 삼켰다. 방금 친구라고 했으면서, 어려운 부탁은 하지 않는다고? 그러면서 자신한테는 아름다운 희생을 하라니, 이게 말이야 방구야?

“나는 죽어도 된다는 거야?”

“가문 간의 유혈 사태로 번지면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칠 수도 있잖아. 반면에 너는 너 하나만 뒈지면 되는 일이고.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는 건 민주주의 국룰이지.”

“아니, 그게 왜 하필 나야?”

“그러니까 입 닫고 있어. 누가 같이 가재. 왜, 이제라도 사내대장부가 되어 보려고?”

“누가 그렇대!”

“유정아, 이런 놈이다.”

더러운 벌레를 보는 듯한 유정의 시선에 상원은 치를 떨었다. 이럴 때 사내답게 나서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여자가 남자에게 반하는 건, 반전을 시사했을 때였다.

상원은 하필 부모님이 떠올랐다.

‘세상에 여자는 반이잖아.’

물론, 유정은 돋보였다. 솔직히 비교할 만한 대상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목숨을 걸라고 하면 그건 아니지. 이 나이에 사랑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건 부모에게 죄를 짓는 행위였다.

‘망할, 나도 용기를 내고 싶다고!’

무서운 걸 어떻게? 간다고 해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 창황가가 미치지 않고서야 생도를 초대해 놓고 죽이진 않겠으나, 창황의 눈 밖에 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무서워서 오줌을 지리겠네. 그래도 같이 가자고 하면 갈게. 젠장,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처음부터 그랬으면 모양 빠지지 않았을 텐데. 쯧쯧쯧!”

“씨발, 그게 쉽냐고!”

의리를 지키고는 싶지만, 지나치게 인간적인 상원은 두려움에 갈등했었다. 결과적으로 유정이에겐 구질구질하게 비쳤을 것이다.

‘의외네.’

무진은 상원의 구차한 결단에도 내심 흡족했다.

사람이란, 공포 앞에서 초연하기가 어렵다. 또한, 이번 일로 인해 죽지는 않더라도, 일개 생도가 받아들이기엔 두려운 일이었다. 창황이 작정하고 앞을 가로막으면 인생이 편할 리 만무했다.

무진은 이쯤에서 상원의 긴장을 풀어 줬다.

“창황에게 찍히는 건 나 하나로 족해.”

“망할, 혼자 멋있는 척은 다 하네!”

“원래 멋있는 척은 혼자 하는 거야. 다 같이 하면 아무 의미 없지.”

“그건 그러네.”

멋짐은 언제나 고독하기 마련이다. 다 같이 멋짐이 폭발하면 유니크함이 사라진다. 더욱이 상원이가 멋있어 보이는 건 참기 힘들었다.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너무 걱정하지 마.”

“하여간 강심장인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유정, 혜진, 상원은 무진의 무사태평함에 혀를 내둘렀다. 세상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이었다.

그럼에도 창황가라 걱정이 되었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은데, 유정과 혜진은 가문에 얽매여 있었다. 자신들만의 일로 끝나면 다행이나, 무진의 말대로 가문 간의 경쟁이 되면 돌이키기 힘들었다.

“안 되면 도망치면 그만이야.”

“그것도 한 방법이지.”

“맞지, 무리할 필욘 없어.”

유정과 혜진의 반응에 상원은 입맛이 썼다.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호응이 백팔십도로 달랐다. 좀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구질구질함의 표본이 되었거늘, 왜 무진은 융통성이 되냐고?

“그럼 나도.”

“사내가 돼서 찌질하긴.”

내상을 세게 입은 상원은 입을 닫았다. 이 정도면 반년은 요양해야 할 각이다. 설상가상으로 뒤에서 킥킥거리는 4인방이 내상약 대신 독을 주입했다.

‘내 이것들을!!’

나 상원이야, 두고 보라고!

***

무진의 태평함에도, 주변의 시각은 편치 않았다. 창황가의 압박이 거세졌고, 권왕가가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자 의구심이 들었다.

더욱이 반강제적인 협박이나 다름없는 창황의 초대였다. 공식적인 초대였기에 창황이 미친 짓을 하지는 않겠으나, 1학년 생도가 감당하기엔 벅찬 현실이다.

이 정도면 언론이나 학부모들이 들고일어나야 하나, 상대가 창황이다 보니 머뭇거리고 있었다. 괜히 미운털이 박히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당장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사건이 터지고 난 후 뒷수습은 해도, 우리나라의 성향상 미리부터 대응하진 않았다.

결과적으로 무진의 외로운 싸움이 되어 버렸다.

그럴수록 권왕과 지수의 존재감을 재인식할 수 있었다. 무진이 자유롭게 설친 건 전적으로 그 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간다니까, 보채기는.”

“도망치면 곤란하거든.”

“내가 너냐?”

“본가에 가서도 여유를 부릴 수 있는지 보겠어!”

수업이 끝나고 아카데미를 나서려는 무진을 마주한 건 정우민이었다. 정우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상처를 치료한 후 폐관수련에 들어갔다고 한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내용인데도 정우민이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무진은 창황가의 세단에 올라탔다.

다시 안 볼 것 같았던 정우민이 옆자리에 앉았다. 운전석 옆에 있는 창황가의 무인이 매섭게 노려보았다. 평범한 무인은 아니었다. 정우민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걸 보면, 창황가에서 제법 영향력이 있는 듯했다.

“나, 잔다.”

“뭐 하는 거야? 어서 인사드려!”

무진이 눈을 감자, 정우민이 어이가 없는지 언성을 높였다. 눈치가 없으면 예의라도 차려야지.

무진이 실눈을 뜨며.

“뉘신데?”

“적기대주 오중현이다. 소문대로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군. 하나, 본가에서 그리 건방을 떤다면 내 손 속이 매운 걸 원망하지 말도록…… 응?”

건방을 떠는 애송이에게 정체를 밝히고, 엄중히 경고하려던 오중현의 눈썹이 신경질적으로 꿈틀거렸다. 얘기를 듣지도 않고, 무진이 반개했던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정우민이 무진을 깨우며 다그쳤다.

“야, 너 미쳤어!”

“장로도 아니고, 고작 대주잖아. 대체 뭘 어쩌란 거지? 설마 사부님과 동등한 대우를 바라는 건 아니지? 그런 거야?”

“넌 어른에 대한 예우도 없냐!”

“어른이 신입 생도를 협박하는 건 예우고?”

나이가 감투인 줄 안다면 꼰대였다.

정우민은 한마디를 지지 않고 말대꾸하는 무진을 끝내 채근하지 못했다. 적기대주가 피식! 웃으며 그만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목적이 먼저였다.

창황께서 무진을 데리고 오라고 했었다. 시답지 않은 언쟁으로 시간을 낭비할 순 없다. 방금의 굴욕은 본가에서 갚아 줘도 늦지 않았다.

“배포는 인정해 주마.”

“제 사부님이 권왕입니다.”

끝까지 거슬리는 무진의 언행이었다.

적기대주는 대체 어떤 녀석이 본가를 모욕했는지 살펴볼 요량이었다. 한데, 어느 것 하나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무모한 짓이지.’

창황가는 거슬리는 적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설령 올해 입학한 신입 생도일지라도. 당장은 손을 쓰지 않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다. 그걸 감수하고 배짱을 부리는 거라면 명백한 만용이었다.

‘배포는 인정하지만, 주제 파악이 안 됐군.’

아직 어리기에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고 있었다. 숙일 때는 숙일 줄 알아야 했다. 과신이 지나친 모난 돌은 정을 맞기 마련이었다.

‘굽히지 않는다면, 그 정도가 한계겠군.’

보기와 달리 머리를 잘 쓴다고 들었거늘, 역시나 신입 생도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더는 관심을 가질 필요성을 못 느낀 적기대주였다.

권왕가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걸 보면, 아마 지수를 띄우기 위한 용도에 불과한 듯했다. 그런 주제에 지수가 사라지기가 무섭게 의협단주를 차지하려고 했으니 명약관화였다.

“출발하지.”

“예, 대주님.”

적기대주는 무진의 태연함이 본인 나름의 꾀로 보았다. 여태까지는 만용이 통했을지 몰라도, 계획이 틀어지는 순간 본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재밌겠군.’

창황가에 도착했다.

정문이 열리고 길게 이어진 길을 따라 들어선다. 창황가는 왕이 사는 구중궁궐처럼 크고 웅대했다. 유럽과 한국의 장단점을 절묘하게 섞어 놓아 잘 어울렸다. 집의 구조와 미적감각은 권왕가보다는 한 수 위였다.

중앙의 우뚝 솟은 건물 앞에 섰다.

마중을 나오진 않았다. 무진의 방문을 일체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당연했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고는 해도, 무진은 일개 생도에 지나지 않았다. 국빈의 방문처럼 대한다면 창황가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었다.

한편으로 어떠한 해코지도 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 주려는 의도일 수도 있었다. 일개 생도를 압박하는 모양새는 아무리 봐도 좋게 해석하기 어려웠다.

건물로 들어선 후 문이 천천히 닫혔다.

찌릿!

순간 사방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전해졌다. 정문에서 들어오기까지의 무관심이 마치 잘 짜인 연극처럼 반전되었다.

오싹, 오싹!

벼리고 벼린 창이 사방에서 노리고 들어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무형의 살해 협박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지간한 수준의 무인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살의였다.

‘어떠냐?’

정우민은 자신을 향하지 않았음에도 전해지는 기세에 소름이 돋았다. 무형살기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면 제아무리 강단이 있어도 겁을 먹어야 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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