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쥐덫(2)
흐음.
요리 보고, 조리 보고.
표정과 분위기를 봐서는 속내를 전혀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의 축적으로 안목이 생겨 이제는 첫인상만으로도 속내를 파악할 수 있다고 자신했거늘.
교장은 요즘 들어 자신의 안목에 의문이 생기고 있었다. 그 모든 원흉이 눈앞에 있는 요주의 생도 강무진이었다. 이놈하고 엮이면 고요한 일상이 언제나 엉망진창이 된다. 계획대로 되는 꼴을 보지 못했다.
차라리 아예 잘못되었으면 고민은 하지도 않는다. 안 되는 것 같다가도 최상의 결과를 내고, 잘되는 것 같다가도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도무지 어디로 튈지를 모르기에 예측하기가 힘들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함에도. 이놈 때문에 말년이 편하지 않았다.
“불렀으면 말을 하세요. 눈으로 욕하진 마시고요.”
“알면서 묻는 게냐?”
“가주께서 발표하신 대롭니다.”
“다른 건 몰라도, 너는 뭔가 알고 있잖아.”
“제가 뭐라고 권왕가의 비밀을 압니까?”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강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생도. 권왕가가 대단하기는 해도, 이놈의 장래성을 고려하면 무시할 수 없었다. 솔직히 권왕가가 아니라, 다른 가문과 대형 길드에서도 탐할 인재였다.
악마의 재능이라고 하고 싶은데, 또 생폭 방지 위원회로부터 공로상도 받았다. 악마의 재능이란, 악마 같은 짓을 해도 실력이 과(過)를 압도하는 걸 의미했다. 반면, 무진은 공(功)이 너무 커서 천사의 재능이라고 불려야 마땅하다.
‘이놈이 천사라고?’
천사가 무슨 암계를 이리 잘 써!
한편으로 신의 뜻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하는 천사의 이면을 돌아보게 했다. 사실 고지식하고, 말 안 통하기로는 천사가 악마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았다.
여하튼 모두가 듣도록 이름이 아닌 의협단주로 불러 달라고 할 때부터 교장은 아주 찜찜했다.
평범한 생도였다면 숨겨진 의도를 찾지 않겠으나, 이놈에겐 애초에 순순한 의도 따윈 없었다.
그래서 의구심이 들었다.
어쩌면 권왕과 지수의 실종이 모종의 트리거일 수도 있다는 의문이 생겼다. 문제는 그런다고 해서 어떤 이득이 있느냐는 것이다. 아무런 이득도 없이 생쇼를 할 이유도 없을 테고.
“정말 없어?”
“강원도로 수행하러 간다고만 했습니다.”
“그러면 걱정을 해야지. 명색이 네 사부잖아.”
“교장 선생님도 제 사부나 다름이 없습니다.”
“……?”
나도 실종되라는 거냐?
언제든 갈아탈 스승이 많아서 괜찮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고 보면 마제도 이놈 스승이잖아. 누가 봐도 최종장의 흑막 같은 소리를 대놓고 하고 있었다. 이러니까, 더 헷갈린다. 이놈이 어떤 선택을 할지.
“괜찮은 거지?”
“전 사부와 지수를 믿습니다. 지옥에 떨어져도 다시 찾아올 테니 걱정하지 않습니다.”
“뭐, 그렇기는 하지.”
“더욱이 계획되지 않은 수행입니다. 전략을 짜기도 힘들죠.”
“맞는 말이야.”
권왕의 전력에 맞추어 계략을 꾸며도, 옆에 지수가 있었다. 이놈의 말을 들어 보면 지수도 최소한이 초절정이다. 두 사람을 아무도 모르게 처리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전략이 필요했다. 그걸 단기간에 세우기란 말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너무 평온하잖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겁니다.”
“의협단주 다음은 맹주더냐?”
“그딴 거 필요 없습니다.”
“……태수 생도가 들으면 슬퍼하겠구나.”
내심은 아닌데, 그렇다고 하는 표정이면 또 모를까. 무진은 정말로 하찮게 여기고 있었다. 성운맹이든, 의협단이든 중시하지 않았다.
그걸 알고 있는 교장은 어이가 없었다.
“네가 만들어 놓고 너무하는 것 아니냐.”
“성운맹은 개인이 아닌 아카데미의 자산입니다. 그러니 감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어이 아카데미를 먹겠다는 심보구나.”
“제가 졸업하면 없어져도 상관없습니다.”
“……무책임하기까지.”
어쩐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했더니. 자기가 다니는 동안만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사실을 생도들이 알면 얼마나 속이 터질까?
교장만 속 터지고 있었다.
‘이 녀석이 졸업하고도 성운맹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만한 힘과 세력이 필요하다.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 의지였다. 성운맹이 타락하여 생도들을 옥죈다면 오히려 없느니만 못했다.
강력한 힘, 세력, 자금이 집중된 세력이 성운맹이었다. 친목 단체란 허울로 덮고 있지만, 그 영향력이 적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녀석처럼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초연함이 필요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타락시키는 건 역사의 진리였다.
‘올바른 어른도 장담 못 하지.’
하물며 나이 어린 생도가 중심을 잡고, 단체를 청렴하고 바르게 이끌기란 말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어른도 자리 때문에 흔들리고, 또 변하는 것이 인간이다. 자기 정체성도 확보되지 않은 나이에 커다란 힘을 얻는다고 생각해 봐라. 과연 본인은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대단한 녀석이야.’
그래서 더 짜증이 치밀었다. 주변의 수많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소신과 주관을 관철하는 무진이 보통이 아님을 인정하고 있었다.
‘반듯한 녀석이면 얼마나 좋아.’
모범생인데, 모범생 같지 않아서 답답하다. 실상은 권모술수의 화신이었다. 우직하고, 융통성이 없어 답답한 것보다 낫지만 머리 꼭대기에서 놀고 있어서 항상 찜찜하다.
“단주직이 탐나서는 아닐 테고, 주변의 좋지 않은 시선을 무릅쓴 연유가 뭐냐?”
“아카데미에 바이러스가 있어서 백신을 좀 심었습니다. 그랬더니 재미난 결과물이 나오더군요.”
“……역시 꿍꿍이가 있었어!”
이것 봐라, 내가 누차 말했지.
이놈은 순수하지를 않아.
어떻게 된 놈이 나이를 거꾸로 먹지를 않는다.
무진에겐 백신이지만, 상대방에겐 바이러스였다. 그건 전적으로 서로의 의사와 목적에 따른 상대성에 불과했다. 일전에 교장과 했던 얘기를 좀 더 확장했다.
“믿을 만한 분들이 필요합니다.”
“이미 정해 놓고 있구나.”
“다른 분들도 괜찮지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쩌려고?”
“교장 선생님의 칼이 되어 보렵니다.”
“……?”
이게 누굴 백정으로 아나!
나 교장이야!
박사는 아니더라도, 석사 학위도 있고.
교장은 무진의 의도를 알기에 속이 썩어 문드러졌다. 이 사태의 주범이 누가 되는지는 분명하다. 살인을 저질러도, 교사한 주도자가 벌을 더 받기 마련이지 않나.
‘나보고 칼받이가 되라는 게냐?’
더할 나위 없이 환하게 웃는 무진이 교장에겐 악마의 사탕발림처럼 다가왔다.
망할!
하지 않을 수도 없고.
***
꽈아앙!
지축이 거침없이 흔들리며 수십 미터의 균열이 발생했다가 버티지 못하고 하늘로 기둥을 세운다. 거력의 파동은 극한에 이른 경세의 무위를 증명한다.
쩌저저적, 후아아앙!
사방을 뒤덮는 흙먼지 사이로 2개의 그림자가 파격을 일으키더니 거리를 둔다.
-허, 제법 하는구나.
“이번이 마지막이라면서요! 또, 나이를 올리다니,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그러게 누가 들어오래.
“대체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 거냐고!”
-다 큰 처자가 말본새가 그게 뭐냐. 이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한 거란다.
“누가 할 소리를! 노망난 노괴야!”
지수는 60세의 무신과 마주하고 있었다. 40세까지는 어찌어찌 올라왔는데, 50세부터는 만만치가 않았다. 이제 끝난 줄 알고 안심했을 때 60세에 이르렀고, 통과는커녕 생사결로 치고받아야 했다.
“전 열일곱 살이라고요. 비슷하게 해야죠!”
-네 무위가 높은 걸 난들 어쩌란 거냐.
“대체 몇 살까지 사신 거예요?”
-산 사람을 왜 죽은 사람 취급을 하는 게냐?
“……망할!”
방심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지수였다.
들어올 때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다. 설마 무신이 직접 자신의 등급에 맞게 레벨을 올릴 줄 누가 알았으랴.
이런 터무니없는 던전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수행 던전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미션을 끝내면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한데, 끝날 때마다 단계가 높아졌다. 지수는 환갑의 무신하고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아직도 100살의 무신이 남아 있다는 뜻이 되었다.
이런 환갑!
왜 만수무강하고 지랄이시냐고.
끙!
지수는 예상치 못한 첩첩산중에 골이 지끈거렸다. 이 정도면 태백쌍마는 절대 현세로 돌아오지 못했다. 도무지 말이 안 되는 결과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게 무공을 익히지 말았어야지.
“자기 무공 안 익혔다고 벌타는 너무하잖아요. 무신이라면서 속은 더럽게 좁아!”
-범인이었으면 10년 치로 끝났을 텐데, 안타깝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무진이하고 같이 오는 건데!”
-지난 일에 연연하지 말고, 어서 나를 이겨 보거라!
지수의 약을 올리고는 있지만, 무신도 내심 놀라고 있었다.
아직 부족하다고 말로만 할 뿐, 실제는 어처구니없었다. 차원이 다르다고 해도, 세월의 힘을 무시하긴 힘들었다. 저 나이에 환갑의 자신과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한편으로 무진인가 뭔가 하는 녀석이 궁금하긴 했다.
“무공만으론 안 되겠네.”
-어디 숨겨진 실력을 꺼내 보거라.
“이제 좆돼 보세요!”
[광폭화] 4단 개방.
투신의 던전에 들어선 권왕은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제자와의 격전은 수행에 도움이 되기는 해도, 투지를 일으키기가 여의찮았다.
반면, 눈앞에 있는 노인네는 정말 자신을 위해 태어난 호적수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단계를 넘어설 때마다 다음을 위한 투쟁심을 일으킬 수 있었다.
“죽어랏, 노괴여!”
-어림도 없느니라.
권왕은 살기등등한 기세를 발산했다. 무형지기를 넘어선 살의는 그 자체로 강력한 병기였다. 어지간한 강단을 지닌 무인이라도 버텨 내기는커녕 심장마비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그런 살벌한 기세를 받아 내는 투신 역시도 만만치가 않았다. 70년을 쌓아 온 투기와 살의를 투살공에 실었다.
꽈아아앙, 투투투투, 푸아아앙!
권왕과 투신이 충돌할 때마다 격랑을 일으켰고, 대지가 버티지 못하고 폭죽처럼 터져 나가며 폐허가 된다. 던전이라는 특수성이 없었다면 남아나지 않을 인간 재해의 격돌이었다.
“좋구나. 껄껄껄!”
-네놈도 무공에 미친 놈이었구나!
“무공은 미쳐야 할 수 있는 거 아니더냐.”
-그렇긴 하지.
서로 임자를 제대로 만났다. 나이가 들어서도 광기가 줄기는커녕 점점 더 미쳐 가는 노괴들. 어설프게 나이 들었다고 어른 흉내를 내다가는 뼈도 못 추릴 수 있었다.
이러다 진짜 치매라도 들면?
신화천권 괴멸식 패왕멸.
투살마예 극살식 무혼살.
서로의 절기가 허공에서 부딪치자 천지 사방이 부서져 나가며 혼란을 일으킨다. 반경을 무시하고 퍼지는 충돌의 여파에 공간이 뒤틀리는 듯했다.
무시무시한 절초의 향연이지만, 권왕과 투신은 기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절예는 파괴력이 대단한 반면, 그만큼 빈틈을 내어 주게 된다. 절초도 결국은 승리를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궁극에 이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는 성질이 있었다.
퍼퍼퍼펑, 우드드드!
나이 든 제자의 등장에 실망하던 투신도 기꺼운 듯 받아 주었다. 그의 생애 동안 이토록 무에 미친 놈은 본 적이 없다. 동류를 이제야 만난 것이다.
-오너라, 무에 미친 노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