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159화 (160/374)

159. 쥐덫(1)

분란이 있었다.

지수가 10일이 되도록 아카데미에 나오지 않았다. 일반 생도의 결석이었으면 조용히 묻혔을 수도 있으나, 아카데미 최고의 유망주이자, 차기 권왕가의 가주로 거론이 되는 지수이기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출석 관리는 아카데미의 고유 권한이지만, 대외적인 관심을 모른 척하긴 어렵다. 지수의 결석 사유를 파악하기 위해 권왕가에 연락을 취했었다. 권왕가는 깨달음을 얻어 폐관수련 하게 됐다고 전해 왔었다.

권왕가 가주의 답신에 아카데미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려고 했었다. 다른 가문도 아니고, 권왕가에서 굳이 거짓을 입에 담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단락되었으면 소란으로 번지진 않았다.

권왕과 지수를 강원도에서 목격했다는 소문이 번졌다. 가문에서 폐관수련을 하고 있어야 할아버지와 손녀가 강원도에 있다고 하니 전후가 맞지 않았다.

권왕가에서 진실을 숨기는 것 같은 뉘앙스였다. 처지가 곤란하게 된 아카데미와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해명을 요청했다.

-폐관수련을 한다고 했지, 가문에서 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권왕가주의 통화가 언론을 탔다.

말장난도 아니고, 내용이 이상하다 못해 가관이었다. 정확한 해명은커녕 두루뭉술한 데다가 얼버무리는 느낌이었다. 당장 모습을 드러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거늘, 의혹에 살이 붙으면서 사건이 점점 일파만파했다.

-유지수 생도와 함께 권왕도 사라졌다.

-권왕가 내부에서 쉬쉬하는 게 분명하다.

-권왕과 유지수 생도가 던전을 공략하다 행방불명되었다.

-어쩌면 수행 던전에 잘못 들어간 것일 수도.

교류전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생뚱맞게 바캉스를 즐길 리는 만무하고, 가을이 운치 있는 강원도를 찾은 것도 이상했다. 더욱이 행적이 끊어지고 난 후, 권왕과 지수가 공개 행사에 나서지 않아 의심을 키웠다.

이때다 싶었는지 잠잠했던 창황가가 봉문을 깨듯 나왔다.

호랑이가 없는 자리에선 여우가 왕을 한다고, 권왕의 부재를 틈탔다는 세간의 부정적인 시각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본 창황이 권왕에게 전한다. 언제든 도전하라는 말 잊진 않았겠지.

창황의 공식적인 도전장이었다.

권왕가로서도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면 전환이 어렵게 되자 권왕가주는 권왕과 지수의 부재를 밝혔다. 반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폐관수련을 누차 강조했지만, 이미 설득력이 떨어졌다.

아예 반대되는 의견도 일부 있었다. 권왕과 지수의 부재를 이용해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냐는.

-권왕가가 암수를 부릴 가문도 아니잖아.

-애초에 권왕가는 그럴 머리가 없어요.

-어쨌든 권왕이 사라진 건 사실인 것 같네.

-가주의 말대로 권왕이 지수를 데리고 특훈하는 걸 수도 있지. 깨달음을 갈무리하려면 당장은 나타나기 힘들기도 하고.

-교류전 때 깜짝 등판은 불가능해. 신청 기간도 정해져 있고.

-원칙을 어기는 건 특혜지.

어수선한 분위기에 권왕가의 정예가 강원도로 은밀히 움직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불미스러운 소문이 번지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서 동선을 분산했음에도, 워낙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였다. 권왕가는 별일 아니라고 잡아뗐지만, 소란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본인들 딴에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이건가?

-역시 머리에 근육만 찬 권왕가답다.

-권왕부터 힘법사잖아.

-누가 권왕가가 권모술수를 부린다고 했어?

차라리 가만히 있느니만 못하게 되자, 권왕가의 다른 의도를 의심하진 않았다.

“지수가 할아버지와 훈련하는 게 맞아?”

“가주께서 말씀하셨으니 믿어야지.”

“소문은 그렇지 않던데, 넌 괜찮아?”

“소문은 소문일 뿐이야, 나중에 아니면 어쩌려고 그래. 괜히 유언비어 퍼뜨리지 않는 게 좋아, 본가와 척을 지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그럴 리가 없잖아. 우린 그저 네가 걱정돼서 그렇지.”

권왕과 지수가 모습을 보이지 않자, 무진에게 관심이 쏠렸다. 아무래도 권왕의 수제자이자, 어쨌든 남친(?)이기에 돌아가는 사태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보았다.

대부분은 염려와 걱정이지만, 일부는 권왕가의 분위기를 떠보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특히 칠대 가문이나 대형 길드는 권왕가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권왕이 창황을 꺾을 당시의 무위는 10대 초인마저 긴장하게 했으니 말이다.

퍼퍼퍼펑!

타아앗!

무진은 주변의 불안감을 잠재우려는 듯 아카데미 내에서 성운맹의 핵심 수뇌부와 함께 공개 대련을 벌였다.

혜진, 유정, 4인방, 상원이 돌아가면서 무진과 대련을 펼쳤다. 그중 혜진과의 결투는 주위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권심(拳心)에 정련된 내외력이 실린 무진의 권격이 정면을 장악하며 혜진의 검격을 위태롭게 흔들었다. 공간을 파쇄하는 패도무쌍의 권영이 검극, 검신, 검기와 만나 격렬한 파열음을 형성했다.

우우우웅, 푸아아앙!

결투장의 강맹한 파문이 시선을 집중시켰다. 충돌할 때마다 스코어 시스템이 발동하여 대미지를 점수로 나열한다. 채점된 점수가 가파르게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했다.

검신류 삼검 검뢰일섬.

[분검] 2단 개방.

일점일뢰의 광속 찌르기였다.

검신류의 칠검까지 마스터한 혜진이지만, 검공을 수련할수록 검의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검신류 십검은 하나하나의 초식에 의미를 두면서도, 초식을 더하고 연환했을 때 위력이 증가한다.

그렇다고 하여도 일초일로는 완성되어야 했다. 하나의 완성된 초식을 이루지 못한 상태로 다른 초식의 연환부터 고민한다면 전체적인 검공의 완성도 떨어지게 된다.

초식의 완성도를 높이되, 완성된 초식의 연환을 고려해야 할 때였다. 그걸 증명하듯, 혜진의 검은 일전의 육검보다 훨씬 강력했다.

슈슈슈슉!

파아아앙, 꽈아앙!

섬광처럼 뚫어 내는 검극이 권격과 충돌하는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중의 파공성이 결투장을 뒤흔들었다. 직선의 찌르기에 이어 [분검]을 이용해 곡선으로 변곡을 준 삼중의 찌르기였다.

검영, 검광에 검을 숨겨 둔 암수에 가까웠으며, 무척이나 빠르고 조용하다. 대처가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위험한 살수였다. 그걸 알고 있다는 듯, 무진의 삼권영이 검격을 막아섰다.

큭!

선공을 취한 혜진이 유리해 보여야 하나, 실제로는 물러서고 말았다. 무진의 권격에 발경의 원리가 담긴 암파공이 실린 것이다. 격돌하는 순간 검극에서 검신을 타고 검병에 이르러 혜진의 내력에 충격을 주었다.

찌이이잉, 쩌어엉!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도 혜진은 검영을 발출하여 접근하는 무진을 막아섰었다. 검과 권의 제공권 다툼으로 검격을 유지하기 위한 혜진의 몸부림이었다.

하나, 무진의 극타점에 도달한 권공이 암파공과 운용되자 속절없이 밀리고 말았다.

터억!

하아!

결투장의 투명 결계에 등이 닿았다.

혜진은 짧은 한숨을 쉬며 검을 내렸다. 마지막 반격을 위해 검로를 변경하여 [분검]을 재차 발동했지만, 그마저도 무진의 계산에 있었다. 무위에서도, 전략에서도 밀린 것이다.

한편으로 혜진은 압도적인 지수와 달리 무진은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었다. 그간 자신의 검공이 몰라보게 달라지기도 했고, 가문에서도 성취를 인정받았었다.

‘부족한 내력을 해결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을까?’

다른 이들보다 무진과 대련을 많이 해 봤기에 스타일의 변화를 알아챌 수 있었다. 육체의 단련과 무공의 완성도로 부족한 내력을 해결할 땐 빈틈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원래부터 그런 것처럼.

“훌륭했어.”

“그래 봤자 너희들한테는 안 되잖아.”

“그래서 포기하려고?”

“아니, 언젠가는 넘어서겠어.”

“불가능한 도전이지만, 응원할게.”

무진과 혜진의 대결에 생도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1학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무위였다. 동급생인데도 이런 차이가 나다니,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교류전 1순위네.”

“권후만이 아니었어.”

“머리만큼이나 주먹질도 대단하구나!”

“혼자서 다 꺾었잖아!”

무진은 핵심 수뇌부와의 대련을 압도적인 무력으로 꺾어 내며, 성운맹의 건재함을 알렸다. 의협단의 단주인 지수의 부재를 만회할 만한 실력이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무진은 중대 발표를 했다. 마치 지금을 기다렸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수가 돌아올 때까지 내가 의협단의 단주직을 임시로 맡게 될 거야. 맹주께서 허락했으니 이의는 받지 않겠어.”

“지수가 돌아오지 않으면 네가 단주가 되는 건가?”

“그럴 일은 없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돼.”

“앞일은 아무도 모르지. 갑자기 지수가 사라진 것도 이상하고.”

성운맹의 위계질서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보는 생도가 대다수지만, 반기를 드는 생도도 있었다.

그럴듯한 시나리오로 심중에 의심을 심었다.

반감을 드러낸 생도는 김정구였다.

입학했을 때 반듯한 이미지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용신가의 후예라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넘쳤던 헌앙함과 대비되었다.

“맹도도 아닌 네가 관여할 일은 아닐 텐데.”

“그러는 너야말로 마치 성운맹의 주인처럼 말하지 않았나.”

“그리 의심스러우면 올라와서 증명해 봐. 얼마든지 받아 줄 테니까.”

“싸울 생각은 없어. 난 그저 모두를 대표해서 의심스러운 부분을 말했을 뿐이다.”

김정구는 자신 따윈 안중에도 두지 않는 무진의 태도에 속으로 이를 갈았다. 분명 실력만 놓고 보면 대단하지만, 그래 봤자 순혈과는 거리가 멀었다. 운이 좋아 영약을 먹고 강해졌을지 몰라도, 곧 냉혹한 현실을 깨닫게 될 테니.

“결국, 해결책을 제시하기는커녕 입만 살아서 나불거렸던 거네.”

“맘대로 생각해라.”

무진의 조롱 섞인 도발에도 김정구는 응하지 않았다. 현재 자신의 실력으로 상대가 되지 않음을 인정했다. 이 격차를 줄이지 않는 이상,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망신만 당하게 된다.

김정구 외에도 불만이 있었던 생도들은 조심스러웠다. 적의를 대놓고 드러내기에는 무진의 명성이 이제는 지나치게 높아졌다. 성운맹과 정면으로 대치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고.

‘네놈의 기고만장이 언제까지 갈 것 같아!’

‘단주가 됐다고 좋아할 것 없어!’

‘높이 오른 만큼 추락할 때의 충격도 크지.’

‘권왕가도 권왕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거든!’

권왕과 지수의 갑작스러운 부재를 대신하려고 이러한 쇼를 연출했을지 몰라도, 모두가 무진의 뜻대로 움직이진 않을 것이다. 의도가 있든, 없든 의심을 심은 이상 사람의 본능은 대동소이했다.

‘잘되어 가는군.’

그 광경을 멀리서 흡족하게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권왕이 사라진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때마침일까.

-의협단주는 교장실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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