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155화 (156/374)

155. 기연(1)

초조해서 밤에 잠도 오지 않는다. 놈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울화가 치밀었다. 화병의 근원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눈에 띄지라도 않으면 속이라도 편하지. 매주 한 번은 봐야 하니 복장이 터졌다.

“드래곤하트를 복용하다니!”

남은 평생 얻기도 힘든 최상급 영약을 혼자서 독차지하고 있었다. 아카데미의 기연 강탈자에 이어 영약 과다 복용자란 구설이 돌았다.

절대 부러워서가 아니다.

이는 명백한 영약 낭비와 약물 오남용이었다. 부족한 생도들을 위해 양보하진 못할망정, 아카데미의 면학 분위기를 주도한다는 놈이 자기만 좋은 걸 처먹고 다녔다. 갈수록 때깔이 좋아져서 사람 환장하게 만든다.

남자의 생명은 뽀얀 피부라나.

“아니, 왜?”

그로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마법사에게도 마력은 중요하다. 자기가 복용하지 않을 거면 전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자기 딸이나 핵심 길드원에게 줬어야 했다.

“이자가 미치지 않고서야.”

마제는 명색이 한국을 대표하는 대마법사다. 자아도취의 마법사들 가운데서도 끝판왕으로. 평소 베푸는 성격이면 이해라도 하지, 이해득실에 관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다고 알려졌다.

그런 자가 드래곤하트를 바치고, 명예 사부를 자처해!

성자 났네, 성자 났어!

아니면 죽을 때가 됐거나.

“어째서 가면 갈수록 꼬이냐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다. 그래야 할진대, 이놈은 까도 까도 먼지 없이 이상했다. 차라리 이상하기만 하면 어떻게든 몰아가겠으나, 흠을 잡기도 애매한 구석이 많았다. 되레 놈의 특이점에 호응하는 분위기라 무척이나 답답했다.

이놈하고 엮인 이후로 계획한 대로 되는 꼴을 못 봤다. 좋지 않은 소문이 나면 반성하거나, 자숙이라도 해야 하거늘.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적으로 나왔다.

반전을 통한 역공은 실패했을 때의 위험성이 크다. 보통은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사생결단은 선택하기 어려웠다.

“미치지 않고서야!”

하필 마제의 제자가 되었다는 점도 걸린다. 환술과 마법은 분야가 다르지만, 확실하지 않은 수를 썼다가는 마제의 눈 밖에 나는 수가 있었다. 조직에서 분명 도예슬에 대한 작전이 들어갔을 텐데, 그마저도 어그러진 듯했다.

“요즘 들어 태도도 그렇고.”

수업에 불성실하다거나, 의심스러운 눈초리와는 종류가 달랐다. 그건 마치 단물 빠진 껌을 보는 듯했다.

내가 오래 씹던 껌도 아니고!

부르르르!

가뜩이나 맘에 들지 않았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심정으로 가르쳤거늘. 빼먹을 거 다 먹었으니, 더 볼 일 없다는 식이었다.

일전에 준 환술총론에 대한 질의를 할 때부터 느낌이 쌔했다. 밤새 준비했음에도 맘에 들지 않는지 시들시들한 기색을 비치었다.

“이놈이 감히 나를 토사구팽해!”

내가 버릴 순 있어도, 버림받는 건 참을 수 없지. 교류전까지는 조용히 있으려고 했거늘. 참고 인내하기에는 선을 넘은 지 오래였다. 오만이 하늘을 찌르다 못해 스승을 버리려는 패륜을 용납할 순 없다.

“네놈에게 참된 스승의 면모를 보여 주마!”

때마침, 뜻밖의 인물이 찾아왔다. 이제는 안 되나 싶었는데, 강 교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

“인사드리거라, 백두 그룹의 조 회장이다.”

“안녕하십니까, 진태수입니다.”

진태수는 허리를 숙여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백두 그룹의 조 회장은 태수의 손을 잡으며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이 친구가 그리 칭찬하는 손주를 이제야 보는군. 아주 훤칠하게 잘 생겼어.”

“감사합니다.”

조 회장은 나이에 비해 체격이 굳건해 호방한 분위기를 풍겼다. 보기에 따라서는 친구의 손자를 진심으로 칭찬하는 듯했다.

하나, 성운 그룹과 백두 그룹은 재계 서열을 다투는 경쟁자였다. 라이벌답게 음과 양으로 서로에 대한 견제가 상당했다.

조 회장이 태수를 칭찬한다고 해서 보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이 자리에 없다. 당사자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조 회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업을 하려면 철면피는 기본 옵션이다. 얼굴 붉히고, 티를 내는 건 아마추어였다.

“벌써 아카데미를 대표하다니 대견하구나.”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입니다. 저는 그저 생도로서 할 일을 했을 뿐, 아카데미를 대표하진 않습니다.”

“지나친 겸손은 과례(過禮)라고 했어. 그것이 아니라면 아카데미의 전 생도들이 무능하단 뜻이겠지.”

“그러시다면 아카데미의 대표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 회장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런 불편한 자리일수록 겸손을 보여 미덕을 쌓으려는 예가 적지 않았다. 그 점을 비꼬았더니, 도리어 당차게 인정해 버렸다. 주눅이 들거나, 과한 자신감이 아니기에 편치 않았다.

‘쯧! 성정도 괜찮구나.’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기를 죽여 놓아야 했다.

‘어림도 없지.’

조 회장의 불순한 의도를 순순히 지켜보고 있을 진 회장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어 민망하게 했다.

“너무 그렇게 몰아붙이지 말게나. 설마, 우리 태수가 너무 잘나가서 시기하는 건 아니겠지?”

“허어,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조 회장은 급히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으나. 진 회장의 그 심정 다 안다는 표정에 억장이 무너졌다. 불현듯 남의 손주를 질투한 못난 사람이 되었다.

끄응!

이 속없는 팔불출한테 대체 몇 번이나 당하는 건지, 원.

조 회장은 요새 심기가 편치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룹의 주요 사업 중의 하나가 던전 가공 산업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그룹 내 수익성도 비중도 가파르게 상승했고. 이 사업을 놓치면 그룹의 장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운 그룹은 백두 그룹의 아래였다. 한데, 고작 1분기 만에 자리바꿈이 된 건 전적으로 진태수의 활약상 덕이었다. 재벌이 아카데미에 과하게 관여하는 걸 좋아하지 않던 여론도 이때만큼은 열광적이었다.

“잘하고 있을 때일수록 신중히 행동하라는 충고일 뿐, 다른 뜻은 없네.”

“뭐,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 허허허허.”

의도가 있든, 없든 예전이라면 웃고 넘어갔을 텐데.

전세가 역전된 상황에선 좀처럼 표정 관리를 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더라도 경영계의 중요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화를 내는 행위는 어리석었다. 시기, 질투, 배신, 협박은 원래 뒤에서 해야 마땅하다.

‘언제까지 잘나가겠어.’

조 회장은 감정을 추스르고 평소처럼 대하려고 했다. 한데, 진 회장의 팔불출은 끝나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인상을 쓰던 걸 상기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부르르!

이 작자가, 대체 언제까지 할 셈이야?

“그쯤 하게. 나이 먹고 부끄럽지도 않나!”

“내 새끼 내가 자랑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겠나. 게다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해!”

“그러다 고꾸라지면 참으로 볼만하겠군.”

“우리 태수는 부담 따위에 질 그릇이 아닐세. 내기할까?”

“하라면 못 할 것 같은가!”

할아버지의 호언대로 태수는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일절 내색하거나, 으스대거나,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초지일관 현실을 받아들이는 담대함을 보였다.

허!

주변에서 조 회장과 진 회장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재계의 인사들은 대범한 태수의 심정에 감탄했다. 저 나이에 그만한 감투를 얻고, 기대받는다면 조금이라도 부담스러워해야 마땅하거늘. 진 회장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가운데, 당사자는 무척이나 불편했다.

‘망할, 또 무진의 손바닥 안이잖아!’

무진의 살벌한 무형지기로 단련이 됐기에 망정이지, 할아버지의 기대를 무참히 박살 낼 뻔했다. 실제로 무진의 기도와 비교하면 훈풍에 지나지 않았다.

‘얘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마치 오늘 일을 예견한 듯 흘러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속내를 꿰뚫고 있어서 소름이 돋았다.

속성이 점쟁이나 예언간가? 이쯤 되면 앉은 자리에서 관상만 봐도 재벌이 될 녀석이었다.

“천화 미디어의 한장호일세.”

“대룡상사의 장건평이네.”

“오성의 이수경이야.”

할아버지들끼리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태수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세간에선 무진의 명성이 더 높다곤 해도, 의협단은 성운맹 산하 단체로서 원칙적으로 수직적인 관계였다.

더욱이 태수는 꼬장꼬장한 진 회장을 팔불출로 만든 성운 그룹의 차기 후계자였다. 이 기회를 빌려 선을 대거나, 연을 만들어 놓는 건 당연했다. 비슷한 또래의 재벌가 후계자들도 찾아와서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후배의 인기가 한류 아이돌 못지않구나.”

“저 역시 후배를 잘 둔 덕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어깨를 좀 펴도 되겠네.”

“열심히 하란 뜻으로 듣겠습니다.”

태수에게 말을 건넨 인물은 190cm의 키에 탄탄한 신체를 지니고 있었다. 양복을 입었음에도 육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이 상당했다.

아카데미 6학년 조형준.

조 회장의 손주였다. 근래에 들어 조 회장으로부터 태수와 많은 비교를 당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로 악수 어때?”

“좋습니다.”

태수와 조형준은 손을 맞잡았다. 웃으며 악수한 것치고는 곧, 서로의 미간에 힘줄이 튀어나왔다. 주변에서 의식할 즈음 손을 놓았다.

“정우철을 이긴 게 운은 아니었구나.”

“그러는 선배도 소문과는 다르군요.”

호방한 인상, 시원시원한 성향, 규격 외의 신체에 가려져 있을 뿐. 조 회장의 손주답게 심기가 날카롭다. 방금 힘을 겨루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는 다른 의미의 테스트였다.

‘성안이 통하지 않다니.’

악력 대결을 유도한 후 성안을 펼쳤거늘, 벽에 가로막힌 듯한 충격을 받았다. 성안은 성좌의 시련을 통한 탑의 결과물로, 상대방의 의사와 관계없이 눈을 통해 상태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월등한 우위가 아닌 이상, 대략적인 정보라도 얻을 줄 알았었다.

‘나를 꿰뚫어 보는 것 같았어.’

태수도 조 선배의 속성에 식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을 떠보려는 정도일 줄 알았는데, 속성까지 사용할 줄은 미처 몰랐다. 방심했다간 숨겨 왔던 진실을 홀라당 들킬 수도 있었다.

‘대체 내 몸에 뭔 짓을 한 거야?’

이질적인 기운이 눈을 통해 흘러들어오자, 내부에 감추어졌던 방벽이 작동하여 정신을 보호했다.

‘설마?’

이런 경우는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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