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147화 (148/374)

147. 유령(1)

하아, 하아!

차오르는 숨을 고르는 백의산의 두 눈엔 참담함이 맺혀 있었다.

안개 던전의 보스를 처리할 때까지만 해도 순조로웠었다. 이어진 2차 각성도 흔하지는 않더라도, 이제는 경험이 쌓인 상태라 공략팀의 전력이면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 백의산의 예측을 비웃듯 현실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유령 던전의 유령을 처리해 나가는 와중 하나둘 요원들이 사라졌었다.

문제는 다시 돌아오고 나서부터였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으나, 요원 절반이 사라지고 돌아왔을 땐 주의했어야 했다.

요원들은 던전의 유령에 감염되어 의지를 잃었다. 동료였던 요원이 뒤에서 공격을 해 왔었다. 무방비인 데다가 감염된 요원의 실력이 배 이상으로 강해졌다.

설상가상으로 기습을 당한 요원도 감염되어 적으로 돌변했다.

결국, 백의산을 제외한 모두가 유령에게 먹혔다.

“네놈은 대체 뭐냐?”

“팀장님, 왜 이러십니까. 저 전상현입니다.”

“아시잖아요, 제가 누군지.”

유령은 감염된 요원들의 기억을 고스란히 흡수했는지 똑같이 흉내를 냈다. 상황이 이러지만 않았다면,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

백의산도 품에 간직한 아이템이 아니었다면 유령의 수작에 넘어갈 뻔했었다.

[천사의 맹세]

아내의 유품이다. 잠겨 있었던 아내의 유품이 갑자기 빛을 발하더니 스며들어 오는 어둠을 막아 냈다. 마지막까지 자신과 딸을 걱정했던 아내가 지금도 돕고 있었다.

하나,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45명의 요원이 전부 유령에게 감염되었다. 그런 가운데 백의산은 요원들의 포위 공격에 전력의 반이 깎였다.

대마물 격살진.

요원들이 펼치는 포위진으로 백의산이 창안해서 가르쳤다. 그래서 더 뼈아프다.

자신이 만들어서 손수 가르친 공략팀이기에 차마 독하게 손을 쓰지 못했다. 차라리 죽었다면 모를까, 살아 있어서 망설임이 있었다.

“죽이시지 못할 거면, 저희와 함께하시죠. 이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팀장님! 이 기분, 정말 짜릿하고 좋습니다!”

마물은 인간의 성격을 제 맘대로 조종해 아픈 부위를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과감히 손을 쓰지 못하는 백의산으로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팀장님, 이러다간 다 죽습니다.”

“저희가 죽기를 바라는 겁니까? 이거 보세요.”

요원 중 막내, 이예린이 검으로 자신의 팔을 미련 없이 그었다. 선혈이 뚝뚝 떨어지며, 안색까지 시퍼렇게 질려 갔다.

“엄마가 불쌍해요. 저밖에 없는데, 제가 이렇게 죽는 건 다 팀장님 탓이에요!”

“그만! 그런다고 항복할 성싶으냐! 나는 부동검 백의산이다!”

“칫! 더럽게 말 안 듣네. 자식처럼 키웠다면서 결국 혈육은 아닌 거지. 우리가 다 죽어도 아무렇지 않을 냉혈한이었어!”

크윽!

자신을 가장 잘 따랐던 공유진이 저런 말을 하니, 백의산은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는 말마다 비수가 되어 심신을 뒤흔들었다. 유령의 암수란 걸 알고 있음에도, 정신적 충격이 작지 않았다.

“그 어떤 말도 나를 흔들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유령의 위험성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의 영혼을 오염시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유령이 던전 밖으로 나간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어이쿠, 우리 중 하나가 벌써 나가려고 하네. 누가 나가도 상관은 없지.”

그런 백의산의 우려를 유령도 알고 있었다. 포위 진형을 갖추고 있지만, 언제든 발을 빼려고 했다. 그렇기에 실력으론 2단계 이상 차이가 나는데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넌 최선을 다했어. 그만하면 누구도 욕하지 않아. 나만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건 오만이야.”

협박, 회유, 인정으로 이어지는 유령의 악마와 같은 속삭임이었다. 인간의 연약한 부분을 찔러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빈틈을 찌르고 들어갔다.

슈욱, 푸욱!

커억!

순간의 방심이었다. 아니, 방심이라고 부르기에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 판단 착오였다. 유령이 숨겨 둔 수법을 간과했다. 인간을 장악해서 속성과 스킬을 빼앗아서 사용하는 줄 알았더니, 고유 속성이 따로 있었다.

유령의 고유 속성은 팬텀존이었다. 고스트씨드를 심어 놓은 인형 사이로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일부러 요원들의 수법을 써서 기술을 드러낸 것도 지금을 위해서였다.

“그 와중에 치명상은 피했네. 역시 팀장님이야.”

“격살진을 이용했구나. 하지만 더는 통하지 않는다!”

“어차피 못 이겨, 그 상태로 어쩌려고? 포기해, 그러면 편하다니까!”

“닥쳐랏, 부동섬멸!”

백의산의 성명절기 부동십검의 오검 부동섬멸이었다. 더는 유령의 간계에 속아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흥!

사용하려면 진작 했어야지.

유령은 백의산의 나약함을 비웃었다. 힘이 빠진 다음에 사용해 봤자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는다. 어차피 인형에 불과한 인간들, 생명력이 사라지면 다른 인간으로 갈아타면 그만이었다. 더욱이 인간들이 죽을 때마다 심어 놓은 씨앗을 증폭해 혼기(魂氣)를 갈취할 수 있었다.

살아 있으면 도구로 쓰고, 죽으면 혼기를 먹으면 되니 버릴 게 없는 족속들이었다. 게다가 이 세상은 수십억의 도구들이 있었다.

‘히히히히! 나의 세상이다!’

모두 다 먹어 치우고, 최강으로 군림하리라.

이제 백의산만 처리하면 된다. 놈이 가진 이상한 아이템이 방해되긴 하나, 결국에는 지쳐서 쓰러질 수밖에 없다.

스륵, 핏!

스륵, 핏!

순조롭게 흘러가는데, 이상하다. 꺼림칙한 기분을 느낀 유령은 그 즉시 주변을 돌아봤다.

“뭐지?”

이상함을 감지하긴 했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스륵, 핏!

휘익!

뒤가 서늘해서 돌아봤다. 여전히 일대를 뒤덮은 안개와 도구들이 전부였다.

스륵, 핏!

아무것도 없는데, 위화감이 점점 번져 갔다. 오싹한 전율에 유령은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도대체 무슨 수작이냐?”

“개소리, 더는 네놈의 수작에 놀아나지 않는다!”

연이어 당하기만 했던 백의산은 유령의 심계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정신의 빈틈을 노렸기에 긴장을 놓지 않았다.

‘뭐지?’

백의산은 간계를 부릴 만한 유형이 아니다. 그래서 유령은 의아했다.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우선은 백의산부터 끝장을 내야 했다.

어?

숫자가 줄었어?

요원들 수가 30명이다. 15명이 사라지는 동안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유령은 심어 놓은 씨앗과 심령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반응조차 못 했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후의 과정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안개가 뒤덮인 공간에서도 여태 목표물을 놓치지 않았거늘. 역으로 똑같이 당하고 있었다.

스륵, 핏!

소리조차 늦는다. 안개를 이용해서 자신을 숨긴 채 무언가가 유령을 노리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유령은 요원들을 자신 주변으로 모았다. 넓게 퍼져 있어서는 안개 속에 숨어 있는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뭐 하는 거지?’

백의산도 그제야 이상함을 느꼈다. 여태까지 보였던 유령의 행동 패턴과는 다르다. 자신을 기만하려고 했다면 포위 진형을 풀지 말았어야 했다. 마치 본인을 보호하기 위한 진형으로 겹겹이 둘러쳤다.

스륵, 핏!

또?

28명으로 줄었다.

“누구냐?”

…….

유령이 언성을 높였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계속 요원들의 수만 줄어들고 있었다. 보이지도, 감지하지도 못한 채. 연결된 혼기도 사라지는 순간 끊어져 버렸다.

부르르르!

유령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인간을 농락했으면 했지, 이처럼 일방적으로 당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정체를 알아야 대응이라도 하지, 답답함에 짜증이 밀려왔다.

‘뭐야?’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안개가 뒤덮여 있다고 해도 이 짧은 거리에서 보이지 않는 건 이상했다. 모두의 눈을 속일 만큼 속도가 빠르다는 뜻인데,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수작인지 짐작도 되지 않자 서서히 공포가 밀려왔다.

‘내가 무서워한다고?’

유령은 인정하지 못했다. 이미 죽은 자가 두려워할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겁이 나는 것이냐? 숨지 말고 나와라!”

…….

반응은 없다. 안개 속의 습격자는 뭐라고 하든, 하던 대로 일관성을 보였다. 유령이 소리를 지르는 그 짧은 시간에도 요원들은 속속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시야를 확보하기도 전에 벌어진 광경에 유령은 속수무책이었다.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놈들을 다 죽일 것이다!”

“나를 너무 무시하는군.”

유령이 요원들을 자살시키려고 할 때 백의산이 나섰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반전을 노릴 수 없다는 직감이 스쳤다.

“네놈은 빠져!”

“그럴 수야 없지.”

“그런다고 이놈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네놈의 도구가 될 바엔 죽는 게 낫다.”

백의산도 마음을 정했다. 유령이 살아 있으면 결국 똑같은 희생자가 나올 뿐이다. 자신과 요원들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던전 밖으로 내보내선 안 된다.

“어차피 네놈은 나를 못 죽여! 세상 무엇도 나를 죽일 수 없다. 본 령은 죽음 속에서 태어난 어둠이기 때문이다!”

“죽이진 못해도, 이렇겐 할 수 있지.”

아내의 유품 [천사의 맹세]가 어째서 각성했는지,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하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마냥 당하고만 있진 않았다.

유령과 상극인 기운을 뿜어내 일정 영역에 결계를 칠 수 있었다. 아까 전 유령이 펼친 수법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우웅!

순백의 광영이 안개와 뒤섞이며 공간을 뒤덮는다. 넓은 영역을 사용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따랐다. 하지만 유령 스스로 공간을 좁혀서 겹겹이 무리를 지었기에 기회가 생겼다.

“무슨 짓을…… 이건?”

유령은 심어 놓은 심령과의 연결이 부자연스럽게 변했음을 느꼈다. 혼력을 끌어낼수록 방해를 받는다. 그래서일까? 요원들의 혼이 깨어나 혼란을 겪는다. 자신의 명을 따르지 않고 엇박자를 이뤘다.

스륵, 핏!

그 순간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순식간에 10명이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연결된 심령은 사로잡히는 찰나에 끊어져 버린다. 도구들을 손을 써 보지도 못하고 무력하게 빼앗기고 말았다.

“……요원들을 다 죽일 심산이냐!”

요원들을 아끼는 백의산의 성정을 이용해 흔들어 보려고 했다. 어떻게든 백의산이 친 결계만 무너뜨리면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나, 유령의 예상과 달리 백의산은 흔들리지 않았다.

“네놈도 결국 자기 목숨만 중히 여기는 이기적인 놈이었구나!”

“혓바닥이 길군.”

일방적으로 농락당했던 백의산이 아니었다. 흔들리지 않는 단호함이 전해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자리에서 해치우고 말겠다는 결의를 내비쳤다.

빠드드득!

백의산조차 흔들 수 없게 된 유령은 조급해졌다. 어느새 숫자가 줄어들더니 이젠 5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마저도 언제 사라져 버릴지 알 수 없었다.

“어째서?”

유령의 의문에도 백의산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가 이렇게 평온한 연유는 안개 속의 존재가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안 죽었습니다.’

뇌리를 파고들어 온 전음. 절망으로 가득했던 참혹한 현실에 한 줄기의 구원과도 같은 전언이었다.

그가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작금의 사태를 해결할 유일한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스륵, 핏!

완전히 사라졌다.

이성이 무너진 유령은 광기를 드러내며 괴성을 질러 댔다. 죽은 자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런다고 날 죽일 수 있을…… 커억!”

숨통이 일시에 제압이 되었다. 손을 쓰지도 않았다. 무형의 의지가 유령의 운신을 강제했다.

저벅, 저벅!

인질 뽑기를 마친 무진은 안개 속에서 유유히 걸어 나왔다. 긴장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동네 마실 나온 듯한 발걸음이었다. 어울리지 않은 분위기에 백의산마저 긴장이 느슨해졌다.

바동, 바동!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유령의 발버둥은 공허했다. 안간힘을 쓰지만, 빠져나가기는커녕 점점 강하게 조여 빳빳하게 만들었다.

“쉐도우 길드 소속 강운 부장입니다.”

“……아! 정부 산하 던전 공략팀의 백의산 팀장입니다.”

갑작스러운 자기소개에 당황했던 백의산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편으로 놀람이 가시지 않았다.

대체 누가 유령의 이목을 속이고 팀원들을 구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 나타났다.

블랙마켓의 쉐도우 길드란 사실도 놀랍지만, 예상과는 달리 어렸다. 각성의 시대가 되면서 나이보다 동안인 예가 있다곤 하나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쉐도우 길드에 이런 자가 있었나?’

나름 각성자들을 안다고 자부했던 백의산에게도 생소한 얼굴이었다. 최소한 인지도가 있는 유명한 무인이나 헌터로 짐작했었다.

어쨌든 어떤 능력인진 몰라도, 자신보다 윗줄의 고수가 분명했다.

“우선, 이것부터 처리하죠.”

“아!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무진은 유령에게 다가갔다.

유령이 차지한 육신은 이범철 요원이었다. 던전 공략팀에서 자기 다음으로 강한 요원이라는 백의산 팀장의 설명이 있었다. 진중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말이 참 많았다.

부르르르르!

허공섭물에 사로잡힌 유령은 끈질겼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유령으로선 이범철의 육신을 버리려고도 했었다. 실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되레 육신이 자신을 가두는 족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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