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고속버스(3)
“형 소원대로 일하다 죽게 해 줄게.”
“사석에서 한 농담을 진담으로 듣지 좀 마!”
“알았어, 사석에선 술만 마시자.”
“너하고는 절대 술 안 마셔! 네가 인간이야!”
요즘 생도는 주도(酒道)부터 가르치나. 술이 강한 편은 아니지만, 인사불성이 되고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맛보았다.
이놈하고 마시면 기절하고 싶어도 못 한다. 예수님도 부활에 3일은 걸렸는데, 3초도 안 걸렸다. 취할 기미가 보이기만 하면 주기(酒氣)를 빼는 바람에 정신은 또렷하다. 멘붕이 온 상태로 계속 마시니 죽을 맛이었다.
“강화 물약도 좋지만, 편식은 좋지 않아. 치료, 연성, 촉진에도 신경을 써 줘.”
“알았으니까 보채지 좀 마!”
“형은 일할 때가 멋있더라.”
“일하다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는구나!”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제인 누나에게 부탁해서 장훈 형의 건강을 수시로 체크하고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장훈 형의 고질적인 마나 부족을 해결할 레벨업과 재료 수집에 용이한 던전이 오픈되었다.
마침 망치를 두드리고, 강화에 몰두하는 도후 형과 태천 형도 찾아왔다.
셋 다 나이가 비슷하니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내는 줄 알았는……?
“나 부장님, 오셨습니까?”
“그럼 오지, 갈까?”
“아닙니다.”
“여기가 안이지 밖이야?”
“시정하겠습니다!”
방금까지만 해도 말 편하게 했던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장훈 형의 군기 바짝 든 모습이었다. 도후 형의 뒤에 선 태천 형도 불똥이 떨어질까 봐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호랑이 없는 곳에서는 여우가 왕이라더니.
“나이도 비슷한데, 편하게 지내지.”
“무진아, 여긴 사회야. 한 번 상사는 영원한 상사란 말도 있잖아.”
“술자리에선 말 놓기로 하지 않았나?”
“오냐오냐 대해 줬더니 자꾸 기어오르더라고.”
들어 본 적도 없는 말이지만, 자기들끼리 룰을 정한 모양이다. 어떤 식인지는 장훈 형과 태천 형의 표정을 보니 납득이 되었다.
며칠 전 도후는 장훈, 태천과 계급장 떼고 붙었었다. 보다시피 도후의 압승이었다.
예견된 결과긴 했다. 먼저 들어와서 레벨업도 된 데다가 식인오마로 인해 사선을 넘은 경험이 있었다. 온실 속에서 물약만 처먹고, 망치만 두드렸던 장훈과 태천이 상대될 리 만무했다.
‘완전히 속았어!’
‘나중에 두고 보자!’
군대의 ‘신병 받아라’ 모드를 켠 도후는 장훈과 태천이 만만히 보도록 돋보기안경과 얼빵한 복장으로 전형적인 오타쿠를 취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친구처럼 편하게 대했던 장훈과 태천은 얼마 뒤 호되게 처맞았다. 그날 선을 넘은 것도 사실이라, 변명의 여지는 없었다. 대신. 6개월마다 갱신 기회를 주기로 했다.
‘경쟁이 나쁜 건 아니지.’
심하게 처맞아서 본능적으로 얼기는 했지만, 장훈 형과 태천 형도 반골 기질이 다분했다. 조만간 도후 형의 머리 꼭대기서 다시 놀게 될 거다. 그때가 되면 또 푸닥거리할 테고, 선순환(?)의 반복이었다.
‘싸우다 보면 정도 들고.’
이 형들이 도원결의하여 전심전력으로 로봇을 완성해 주었으면 했다. 합체나 변신이면 금상첨화고.
그러기 위해선 최고의 연금술사, 야장, 강화술사가 되어야 했다.
쉐도우 길드에서 확보한 안산의 d급 던전에 들어섰다. 던전에 들어가기 전 경험이 일천한 장훈 형과 태천 형에겐 칼 쓰는 법을 가르쳤다.
확실히 몸치들이었다.
베고, 찌르는 칼의 기본임에도 연금과 대장술에만 특화한 장훈 형과 태천 형에게는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진 않았다. 사요공과 주술 각인을 써서 육체에 기술을 맞추었다.
“형들, 내 눈을 바라봐.”
“네가 무슨 허천제냐!”
“이제 형들은 칼질의 대가야.”
“그런 게 될 리가……?”
되잖아!
장훈과 태천은 어색했던 칼이 오늘따라 착착 감기자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자신들도 나름 강해지고 싶어서 이거저거 해 봤지만, 지금 같은 감각을 느껴 본 적은 처음이었다.
“너무 편법 아냐?”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갈 필욘 없잖아.”
보통은 쉬운 길을 지양하고, 어렵더라도 탄탄하게 기초를 쌓고 가라고 하지 않나? 얜 왜 항상 상식을 벗어나는 거냐고.
“그러다 대성하지 못하는 건 아니고?”
“누가 보면 신공을 배운 줄 알겠네. 그래 봤자 기본에 불과해. 물론, 기본이 극에 이른다면 신공과 견줄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왜 칼귀신이라도 되려고?”
“하려면 끝을 봐야지!”
“호오? 내 일상을 따라 하시겠다. 그렇게까지 소원한다면 막을 순 없지.”
“……아냐! 우린 이 정도에서 만족한다.”
무진의 일상을 장훈과 태천도 본 적이 있었다. 평범한 인간은 물론, 각성자에게도 과로사할 지름길이었다. 무슨 삶을 살아야 저렇게 되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전투력으로 맹위를 떨칠 스텟과 속성도 아니고, 자신들은 그저 나도후만 팰 수 있으면 족했다.
움찔!
하필, 나 부장과 눈이 마주쳤다. 몸살이 나도록 처맞은 육체가 본능적으로 찔끔했다.
“호오? 눈에 반항기가 철철 넘치네.”
“아닙니다!”
“여기가 밖이지, 안이야?”
“……죄송합니다!”
욕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대업을 이루기 전까지는 쓸개를 씹는 심정으로 바짝 엎드려야 했다.
언젠가 구도가 역전되는 날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게야!
“도후 형, 안과 밖은 어떤 대답이 맞는 거야?”
“둘 다 맞는 거지.”
음~~~!
개똥도 쓸모가 있다더니, 도후 형에게 좋은 걸 배웠다. 안과 밖의 무한 고리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이었다. 어떤 대답을 해도 처맞는 걸 피하지 못했다.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리는 게 좋을 거야. 던전은 어떤 사태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거든.”
무진의 충고에 도후, 장훈, 태천은 수긍하면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입장 시 위장 신분을 내세우긴 했지만, 실제는 열일곱 살에 불과했다. 던전을 공략하기는커녕 한창 교육을 받고 있을 나이였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건가?’
‘이건 뭐,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었네!’
‘무공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충고를 해 줘도 부족한 판국에 가르침을 받고 있으니, 그동안 뭘 하고 살았나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나 현실을 부정하면서까지 나이를 내세우진 않았다. 이렇게 만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무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덜떨어져 보이는 녀석들이 의외로 쓸모가 있단 말이야.’
‘대단치는 않아도 강화술은 확실히 놀라웠어.’
‘망치로 바늘을 만드는 게 실제로 가능할 줄이야.’
처음 보자마자 서로 느끼고 있었다. 같은 종류라는 걸.
그래서일까? 아주 혐오스럽게 바라보았었다.
나도후도 하는데, 자신들이라고 못 할 것 같진 않았다. 동족 혐오에도 불구하고 시너지 효과가 발생했다.
너희들보다는 내가 더 낫다는 경쟁심이다.
이 와중에 우월성을 따지고는 걸 보면, 인간의 본성은 강자든 약자든 가리지 않았다.
키키키키키키!
던전의 마물은 전투 판다였다.
생김새는 중국산 판다와 비슷하고 덩치는 반 정도로 작다. 되게 느리고 답답한 움직임을 보이지만 실제로 싸워 보면 난해하다. 대미지를 먹인 것 같았는데, 공격이 잘 먹히지 않는다.
초보자들이 횡재했다고 달려들다가 전투 판다의 식사 거리로 전락하곤 했다. 저 귀여워 보이는 외모와 달리 식성은 잡식성이라, 인간도 가리지 않았다.
“……귀엽다!”
“……가지고 싶다!”
“……기르면 안 될까?”
누가 오타쿠 아니랄까 봐, 나중에 베개와 결혼한다고 설칠까 봐 좀 겁이 난다. 다행이라면 외모가 파오후 정도는 아니다. 평범하게 생겨서 저러니 어울리진 않았다.
“같이 살면 하나가 될 수 있겠네.”
“그렇지.”
“배 속에서.”
“……?”
누구 배 속인지 물어보지 않아도 답이 나왔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이빨이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자신들을 보더니, 눈빛이 돌변한다.
필로폰을 국자로 떠 마신 듯 광기에 들어찼다.
키키키키키키키키!
실제 판다는 멸종 위기종처럼 개체 수가 많지는 않았다. 반면, 전투 판다는 고블린처럼 집단 서식하는데, 마을 단위로 500마리가 넘었다.
두두두두두!
굶주린 전투 판다 500마리가 일제히 달려든다고 생각해 봐라. 아무리 귀여워도 움찔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도후를 뺀 장훈과 태천에게 던전 공략은 생소한 영역이었다.
어려운 전투가 예상되었거늘.
“이 버러지 같은 것들이 감히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노려!”
“다 죽여 주마, 오늘 뜨끈한 피 맛 좀 보겠는걸!”
“……?”
도후는 장훈, 태천이 겁에 질려 오줌을 지리거나 쌀 줄 알았다. 그때 부장의 품격을 보여 주려고 했는데, 상상도 못 한 폭언이 대수롭지 않게 흘러나왔다.
휙!
도후는 그 즉시 뒤에서 히죽이는 무진을 봤다. 언제 봐도 아무렇지 않았다. 이 모든 사태의 근원이 무진에게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주술로 살생부를 새겨 넣었지. 부적 같은 거라고 생각해.”
살생부를 대체 누가 부적으로 쓰냐고!
눈이 돌아간 장훈과 태천은 맹렬히 쇄도해 오는 전투 판다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더니, 생초보의 객기였다.
서걱! 서걱!
곧 객기가 빠지고, 현실을 직시하게 되리란 도후의 판단은 완전히 어긋났다. 의외로 이 녀석들이 잘 싸운다.
특별한 속성을 쓰거나, 아이템과 장비를 발현하지도 않았다. 그냥, 잘 썰고 있었다. 너무나 깔끔한 베기와 찌르기로 전투 판다의 사지 육신을 잘라 냈다.
“살생부에 전투 각인을 새겼지, 아까 배운 걸 무한 반복하게 될 거야. 본인들이 원하는 기본 수련에 이보다 좋은 것도 없지. 한 천 번쯤 하면 지치려나?”
부르르르르!
실전과 동시에 지옥 훈련이었다. 도후는 저 둘의 힘이 빠지고 있는 걸 봤지만, 안심하지 못했다. 힘이 빠지는 대신 무진의 말대로 칼의 궤적이 점점 더 깔끔해진다.
‘이게 바로 전투모든가?’
나도 걸어 달라고 할까? 그런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가 바로 del 키를 눌렀다.
저게 대단한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인간 백정이 따로 없었다. 전투모드로 표현하기에도 어폐가 있었다.
“레벨업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이런, 나도 지지 않아!”
늦게 들어온 녀석들에게 추월당하진 않는다.
이 나도후, 반드시 제인 길드장을 사수하고 말 것이다.
요 발랑 까진 새끼들이 감히 길드장을 초면에 빤히 쳐다봤었다. 누님이 매력적이긴 해도, 임자가 있을 몸이셨다.
‘누님, 사랑은 변하지 않는 거죠?’
그때 분명히 분위기 좋았는데, 다음 날부턴 평일하고 다르지 않았다. 이게 바로 밀당이 아닐까? 경험 부족이긴 해도, 그 정도의 눈치와 센스는 있다고!
서걱!
도후의 검술이 중급은 되었다. 식인오마에게 당할 뻔한 이후로 훈련에 매진했었다. 더욱이 이 검은 여태까지 받은 월급과 아이템을 모두 투자해서 강화한 단 하나뿐인 유니크 장비였다.
[뇌령검]
-마력 50% 증가
-속도 2배 증가
-뇌기 발출
-경량화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여 겨우 완성한 검이기에 소중했다. 막판에 강화석이 부족해 몰래 빼돌린 것도 있어서 나중에 들키지 않을까, 얼마나 심장이 쫄렸는지.
서걱, 서걱!
오, 내 보물! 너무 잘 든다!
보존력과 절삭력까지 완벽하다. 각고의 강화를 통해 완성된 나만의 보물이었다. 밤에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꼭 끌어안고 잤다. 절대 죽부인 대신이 아님을 천명한다.
헉!
부르르르!
정신이 든 장훈과 태천은 아연실색했다. 주변에 펼쳐진 웅산혈해(熊山血海)에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에 들고 있는 칼과 전신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도축장에서 갓 나온 백정도 이보다는 혈향이 옅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