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고속버스(1)
한·중·일 교류전이 12월에 열린다. 두 달 남짓 남았다. 세계 교류전의 전초전 성격이 강한데, 특이 사항은 성좌 선택 전이라는 것이다.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한·중·일은 경쟁의식이 남다르긴 해도, 유교 문화권의 특성상 체면과 위신을 중시했다. 한마디로 남들이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번 교류전은 체면치레의 성향도 있었다. 상대국 아카데미 생도의 기본 실력을 점검하는 겸, 패하더라도 성좌의 선택을 통해 나중을 기약할 수 있도록.
그렇다고 마냥 가볍게 여기진 않았다. 1, 2학년도 참가할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3학년이 나서게 되었다. 6년 중 3년의 기간, 아카데미 교육 수준을 판단할 근거가 되었다.
무엇보다 한·중·일의 국가전이란 점이 중요하다. 각국의 자존심이 걸렸으니 교류전의 승리를 위해서라도 전력을 기울였다. 그렇기에 교류전은 실시간으로 각국으로 송출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10년간 교류전의 승패가 좋지 않았다. 최상위 서열의 수준 차가 크다고 볼 순 없지만, 일본과 중국에 우승을 빼앗겼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0대 초인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긴 해도, 세월이 흐를수록 인재의 배출에서 인구력의 차이가 드러나고 있었다. 그나마 비율에서 중국과 일본과 비슷한 것은 성좌의 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분간 수비적으로 공격을 받아 주었다. 생도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한 타임이었다. 1분이 짧아 보이나, 생도에게 1분은 길 수도 있었다. 하물며 무진 생도는 아카데미에서도 주목하는 에이스에 속했다.
‘허! 실로 놀라운 수준이구나!’
철혈십좌 4좌 권패 마상천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방어를 뚫고 들어오는 권로, 속도, 내력, 외력의 강약이 실로 놀라우리만큼 정교하다. 그만큼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의미가 되었다.
무인은 마나를 전환한 내공을 바탕으로 하여 공수를 완성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유는 분명하다 내공은 쌓을수록 파괴력이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지만, 외공은 일정 경계에 이르면 진전을 얻기가 힘들다.
따라서 근간이 되어야 할 외공을 등한시하는 습관이 있었다. 내외공을 위주로 하는 무공이 따로 있다고는 하나,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파격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물며 권공을 익히려면 반드시 육체의 단련을 수반해야 했다. 한데도 내공 수련만 줄기차게 하는 무인과 생도가 부지기수다. 이 정도만 하면 된다는 본인의 한계치를 사전에 정하는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호오?
보라, 이 생도의 육신을. 육체의 완성을 위해 수십 년을 정련한 자신조차 감탄이 절로 나오게 했다. 특히 겉으로만 단련된 껍데기뿐인 외공과는 격이 다르다. 골격, 근질, 신경, 섬유, 조직, 혈맥에 이르기까지 내외부가 골고루 균형이 잡혀 있었다.
“훈련 영상에 거짓이 없구나!”
“내공보다 외공을 먼저 했거든요.”
“아무렴 그래야지. 내공은 그저 거들 뿐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좋다, 이제 본격적으로 즐겨 보자꾸나.”
“원하는 바입니다.”
무진과 권패의 주먹이 충돌했다. 수비를 풀고, 공세로 전환한 권패는 폭군의 기질을 발산하였다. 내력을 제한했음에도 내지르는 권에 바람이 실린다.
바람을 담은 권압!
퍼어엉, 후아아아!
주먹과 주먹이 내력 없이 부딪쳤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파격이었다. 일순 공간이 압축되었다가 깨져 나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괴랄한 충돌음에 생도들은 귀를 막았다. 순간 고막이 터져 나갈 것같이 위태로웠다.
“아니 무슨 주먹질이 저래!”
“내력이 없는 것 확실해?”
“딱 보면 몰라, 그냥 맨주먹질이라고!”
“속도가 미쳤는데, 누가 느리다고 했어!”
탄성이 터지고, 소름이 돋았다.
무진과 권패의 격돌은 교육 목적의 훈련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어지는 공격 일변도의 충돌은 사나이의 투기를 자극했다. 그야말로 마초적인 사나이의 대결이었다.
모든 공수가 완벽해 보이지 않았다. 공격을 위해 수비를 포기할 때도 있고, 맞아 주고 역공을 취하며, 살을 내주고 뼈를 부수는 무지막지한 전술이었다. 빗맞아도 사망할 것 같은 위력에도 물러서지 않는다.
“이미 달인의 반열에 올라 있구나.”
“내력과 속성이 문제였죠.”
“그것도 이미 해결하지 않았느냐.”
“아직 멀었습니다.”
권패는 기꺼운 듯 호쾌하게 웃었다. 살벌한 대결임에도 분위기는 훈훈한 편이었다.
“하하하! 과연 입학시험에서 잘못 보지 않았구나.”
“사부님의 명성에 누가 될 순 없지요.”
“내가 보기엔 네가 훨씬 낫다.”
“사부님이 아시면 기뻐하실까요?”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어찌 보면 아주 맹랑한 녀석이었다. 입학시험에서 최고 중량의 중력석을 들어 올릴 때가 엊그제 같았거늘, 이토록 빠르게 아카데미를 바꾸어 버린 주역이 되어 있을 줄이야.
‘나조차도 회의적이었지.’
권패는 규칙을 중시했지만, 모든 생도를 완벽히 통제하진 못했다.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생폭을 막기에는 손이 부족하다.
더욱이 생도 간의 폭행은 여러 이권이 달려 있어 교관이 한쪽 편을 들어 주기도 힘들다.
아카데미가 생긴 이래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던 생폭을 근절한 것으로도 칭찬을 받아 마땅했다.
‘이 녀석이 그때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권패에게는 딸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실상은 매일 연락을 해도 딸이 받지를 않았다. 그 시절 교관의 책무만을 중요시해 딸의 고충을 제대로 들어 주지 못했던 탓이다.
“상념이 기신 건, 제가 부족한 탓이겠지요.”
“아니다. 너는 차고 넘친다!”
“내력을 사용하겠습니다.”
“오너라! 너의 모든 걸 토해 내거라!”
그럴 순 없지요, 교장 다음으로 믿을 만한 분인데.
무진은 권기를 발현했다. 대외적으로 이 정도까지는 알려 줘도 될 때였다.
꽈아앙, 쩌어어엉!
화투의 밑장을 빼면 소리가 다르듯이, 내력이 실리자 주먹질에서 폭탄이 터지는 굉음이 울렸다. 충돌할 때마다 공간이 왜곡되는 것처럼 흔들린다. 지면의 떨림과 충돌하는 풍압에 어지러움을 느끼는 생도도 있었다.
사자철권은 확실히 대단했다. 철격, 철파, 철폭으로 이어지는 전반 초식만으로도 공간을 완전히 부술 파괴력이었다.
처저저적!
굶주린 사자가 먹이를 사냥할 때처럼 몰아치는 권패의 공세에 무진은 백기를 들었다.
“졌습니다.”
“한 방 맞았구나.”
밀리는 와중에 날린 권격이 권패의 어깨에 권흔을 새겼다. 강화된 무복 일부가 찢어졌다. 아랑곳하지 않고 공세를 펼치긴 했어도, 방심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교류전이 기대되는구나.”
“저도 갚아 줄 빚이 있거든요.”
“유유상종이라고, 올해는 재능 있는 녀석들이 많아.”
“그래도 우승은 제 것입니다.”
지수와 태수 선배를 거론하며 무진은 승부욕을 감추지 않았다. 맹주와 단주임에도 경쟁 상대로 여긴 것이다.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가 생도들을 자극했다.
그제야 생도들은 무진의 강함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일상의 피나는 노력과 물러서지 않는 도전 정신이 현재의 무진을 이끈 것이다. 단순히 운이 좋아 강해지지 않았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구나.”
“오히려 무진이 우리의 이상적인 모델 아니냐.”
“맞아, 이미 타고난 녀석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가진 것 없어도 노력하면 되는 거였어.”
“그래도 인간적이진 않다.”
“매일 어떻게 저래?”
“사람 같지 않은 건 인정.”
무시하고 원래 하던 대로 해도 그만이긴 했다. 사람마다 각자의 개성이 있고, 무진의 방법이 맞다, 틀리다 정답을 제공하진 않았다. 세상에 완벽한 정답이 없듯, 해 왔던 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소득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버젓이 인간 승리의 잣대가 눈앞에 있었다. 맹목적으로 부정하기에는 잠재 능력에서 최하점을 받는 것도 사실이었다.
권왕가를 등에 업었다는 폄하도 있었지만, 무진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인의 피나는 노력 없이 운만으론 불가능한 성취였다.
“차라리 1학년에서만 잘하면 또 몰라.”
“3학년도 쟤들한테는 안 되잖아. 1학년답지가 않아요!”
“저 녀석만 그런 게 아니니까 더 문제지!”
“성운맹의 수뇌부들도 장난 없더라.”
“불과 1학기만 해도 그렇게까지 두각을 나타내진 않았었잖아.”
성운맹의 주축인 맹주, 단주, 부단주만 성취가 남다르다면, 걔들은 원래 그런 애들이라고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재능, 속성, 스텟은 사람마다 각양각색이고, 잠재력에서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던 성운맹의 주축 맹도들이 교관의 테스트에서 상위의 클래스를 보여 주고 있었다. 비교 대상이 아예 다르면 인정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바로 옆에 있던 친구가 저 멀리 달아나 버리면 상대적으로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이는 알고 지낸 횟수가 길어질수록 명확하다.
너와 나는 같은 줄 알았다며, 배신자 취급을 할 수도 없었다. 모르는 친구도 아니고, 부모까지 알고 있으면 삶이 피곤해지는 건 당연했다.
성운맹의 맹도는 어느새 엄마친구아들딸로 변모하고 있었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전체적인 스텟의 차이가 꽤 벌어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는, 버젓이 증거가 있었다.
무진의 영상에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
영상이 유포되기 전부터 맹도들은 무진의 루트를 최대한 따라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효과가 2학기 말이 되어 갈수록 확연하게 나타난 것이다.
개인마다 발전 속도에서 차이가 있고, 소수는 되레 퇴보하긴 했어도 무진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의도를 감추지 않고, 맹도가 되기 위해서 찾아왔다면 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훈련은 그렇다 치자고, 가사는 선 넘었지.”
“훈련하기도 바쁜데, 요리까지 잘하면 어쩔!”
“반에서 중간은 갔는데도 욕먹고 있다고!”
“엄마가 이것도 못 하냐고, 얼마나 구박을 주는 줄 알아!”
“가사도 요리도 이해는 하는데, 헬스봇도 아니고 이걸 어떻게 따라 해!”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일부 탈선하는 생도를 제외하고 대다수 생도는 효자, 효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었다.
그럴수록 피곤한 삶임을 부정하진 못했다.
“빌어먹게도 효과가 있어!”
“내 몸에 식스팩이 있었을 줄이야!”
“수준에 맞춰서 적당히 따라 해도 스텟 상승은 보장해.”
“무식해 보이는 것과 달리 의외로 체계적이더라고.”
“국제표준 인정을 받을 만해.”
무진과 교관의 대결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연유였다. 효과라도 없으면 무사하겠지만, 본인들이 변화를 가장 먼저 느끼고 있었다.
효과를 본 생도들은 조금이라도 더 얻어 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단순히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어떻게 해야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살폈다. 그러한 과정이 지속되자 생도의 전체적인 수준이 높아졌다.
맹모삼천지교.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한다.
이런 말이 왜 나왔을까?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에 의해서 그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있었다. 끼리끼리, 유유상종이 반드시라고 단정할 순 없어도 10에 9할은 벗어나기 힘들다.
무진은 본을 보였고, 맹도들이 따르자 아카데미 전체로 등불처럼 번졌다. 면학 분위기가 학기 초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제는 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거나, 개인적으로 훈련을 하지 않으면 낙오자 취급을 받았다.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면 성과가 없더라도 노력은 해야 했다. 그래야 아카데미에서 따돌림당하지 않고 다닐 수 있었다. 또 다른 왕따를 만든다고 할 수도 있으나, 생도의 덕목은 훈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