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140화 (141/374)

140. 가고 싶은 아카데미(4)

“이러다 유출이 되면 어쩌나? 쯧쯧쯧!”

“아냐, 내가 큰 실수를 했어! 내 입이 방정이야. 이렇게 때릴게!”

짝, 짝, 짝!

자기 스스로 피가 나도록 주둥이를 때렸다. 어떻게든 위기를 모면해 보려는 염수경의 발버둥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그제야 염수경은 깨달았다. 무진은 자신 따위는 감히 어찌할 수 없는 거물이란 걸.

이제까지 봐 온 칠대 가문이나 대형 길드 소속의 생도와는 다른 섬뜩한 공포를 선사해 주었다.

“홈페이지에 오해였다고 올려 봐. 설득이 될지는 모르지만 나도 힘을 써 볼게. 왜, 부족해?”

“아냐, 그것만으로 고마워!”

지금까지의 대화만으로도 염수경은 완벽하게 매장당한다. 기사회생의 기회를 바라기엔 실수가 겹쳤다. 아무리 뻔뻔해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완벽하게 패배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젠장, 가만히나 있을걸!’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었다. 결투장 안에서 혼자 발광하며 난리를 쳤던 염수경은 쥐 죽은 듯이 아카데미를 다녀야 했다.

염수경은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어설프게 무진을 건드리면 어떤 말로가 기다리는지를 알려 주었다.

-선의에는 선의로, 악의에는 악의로.

성운맹을 호구로 보고 이용하려던 생도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결연한 각오를 가진 생도만이 맹도가 될 수 있었다.

더욱이 맹도가 되었다고 해서 끝나지도 않았다. 무진이 평소에 올린 일상이 맹원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교과서가 되었기 때문이다.

***

아카데미의 면학 분위기가 바뀌었다. 초인을 양성하기에 군대처럼 규율이 엄한 편이긴 해도, 실제로는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면학 분위기를 망치는 생폭의 근절은 아카데미의 역사에 전환점이 되었다.

-아카데미 교장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그래서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하잖아.

-우리의 풍신 어르신이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고!

-처음부터 믿고 있었다고, 나는!

-요즘 아카데미 다닐 맛이 난다.

아카데미는 마인 출현으로 이미지에 타격이 꽤 컸다. 인사와 생도 관리를 똑바로 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불과 저번 학기만 해도 그랬는데, 2학기가 되자 아카데미의 평판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씰룩, 씰룩!

웃으면 안 되는데, 이 망할 놈의 입꼬리가 주책을 부릴까? 일희일비하지 않는 묵직한 존재감이 필요할 때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녀석 앞에서는 절대 좋아하는 티를 내선 안 되었다.

씨익!

무진이 다 안다는 듯 웃자, 교장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망할 놈!

귀신도 눈치를 보다가 마지못해 승천하게 할 녀석이었다. 그 앞에서 아닌 척해 봤자, 손바닥 위에서 우롱당하는 수가 있었다. 그럴 바엔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편이…… 낫기는 개뿔! 또, 어떤 개수작을 부려서 말년을 귀찮게 할지 답답하다.

차라리 못난 녀석이었으면 모를까, 너무 유능해서 탈이다. 안 보면 그만일 수 없는 요상한 매력의 소유자였다.

“좋으면 좋다고 하세요.”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 겸손할 순 없는 게냐?”

“이런, 제가 너무 주제넘었네요. 아직은 이런 거밖에 못 하는데 말이죠.”

“그래, 그렇게 자신을 알고…… 응?”

무진의 손가락 끝에 맺힌 기운에 교장은 경악했다. 보고도 못 봤다고 하고 싶어질, 말도 안 되는 현실이었다. 아니 저게 왜 손가락에 맺혀 있는 거냐고!

현혹 주술이나 일루전 마법이라고 해 줘.

서걱!

철 스푼이 매끄럽게 잘리네. 대단…… 아니고 이놈이 그게 얼마짜린데, 아내가 선물로 받은 명품 드워프제 스푼이었다.

물어 줄 것인지 확실하게 못을 박아야 아내한테 구박…… 이게 아니지.

“강기를 쓸 수 있는 거냐?”

“누차 말했잖아요. 그동안 내력이 부족했을 뿐이라고. 그래 봤자 겨우 강기를 쓸 수 있는 수준이죠.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쪽팔려서 아카데미에서 배웠다고 하기도 민망합니다.”

“……?”

아니 왜?

아카데미에 배웠다고 말을 해야지, 왜 말을 못 하느냐고!

아카데미 교육의 질을 보여 줄 확실한 성과였다. 마나흡수율 떨어져도 아카데미 반 학기만 다니면 강기를 쓸 수 있다고.

아, 이것도 아니지.

부들부들!

1학년이 강기를 쓴다? 6학년 생도 중에서도 강기를 쓰는 생도는 한 손가락 안에 꼽혔다. 그것도 완전하지 않은 형태인 강사의 강화판에 불과했다. 저렇게 선명한 수준의 강기를 완성하기란 말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초절정에 올랐다는 건데, 고작 이것밖에 못 한다고 겸손한 척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

지랄! 하물며 공개한 정보보다 훨씬 윗줄에 올라와 있었다. 이걸 겸손으로 볼 수 있나? 속내를 숨긴 위선이지.

평소 실력의 3할을 숨기라고 했으니 배움을 확실히 지키기는 했다.

숨겼다고 하기도 그렇고, 안 숨겼다고 하기도 그렇고.

넌 왜 자꾸 사람에게 갈등을 선사하는 게냐? 좀 편하게 살면 입에 가시라도 돋느냐!

교장은 한숨과 함께 인정했다.

“정말로 내력만 부족했었구나.”

“전부터 말씀드렸을 텐데요. 내력만 있으면 심권도 머지않았다고. 제가 많이 천잽니다.”

“둘 중 하나만 하든가.”

“그러시다면야, 많이 부족합니다.”

교장은 울컥했다. 맘 같아서는 숨기고 있는 걸 전부 까발리고 싶으나, 명색이 교장이 되어서 생도의 비밀을 보장하지 않을 순 없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을 믿기에 보여 준 것이기도 했다. 숨긴다고 해서 추궁할 사안도 아니고.

‘이 미친놈이 사람을 감동시킬 줄도 아는군……이 아니지. 또 무슨 꿍꿍이더냐?’

이놈을 생도로만 보기에는 천 년 묵은 능구렁이처럼 속이 너무 약았다. 지금까지 해 온 일만 해도 그렇다. 생도로서 벌일 수 있는 스케일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났다.

1학년 생도가 아카데미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면학 분위기마저 바꾸었으면 말 다 했지.

‘확실히 난놈은 난놈이군.’

비상한 두뇌와 뜻을 관철하는 추진력을 지녔다. 여기에 부족했던 내력을 채우자 단숨에 아카데미 최강의 무력을 갖추었다. 권왕의 도움이 있었다고 해도, 마땅히 천재라 불려야 했다.

하아, 씨발! 세상 참 불공평하고 좆같네.

차마 교장으로서 드러내기 힘든 속내였다.

“앞으로도 겸손하게 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네가 그럼 그렇지.”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격이다. 이제는 내 생도가 초절정 무인이라고 입도 뻥끗 못 하게 되었다. 세간에 알려지는 순간, 제자의 비밀을 공개한 파렴치한 교장이 될 테니 말이다.

“지수도 초절정이에요.”

“그렇…… 뭐라고? 진짜?”

“괜히 의협단의 단주가 아닙니다.”

“둘이서 세상을 가지고 놀았구나.”

“그만큼 교장 선생님을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앞으로도 고생하란 말처럼 들리는구나.”

“아직 정정하시잖아요.”

빨리 은퇴해서 사학 연금 타 먹으며 유유자적 살고 싶어졌다. 망할 놈의 연금 개혁으로 받는 돈이 줄기는 했다. 이제 경제활동 하는 애들에게 부담을 줄 순 없으니 당연한 수순이긴 해도 속이 쓰렸다. 내가 100원 내고 10,000원 받으면 안 되냐?

“슬슬 고학년도 성운맹에 가입할 때가 됐습니다.”

“태수를 앞세운 연유가 있었어. 아주 용의주도하구나. 대단해. 그래도 고학년은 간단하지 않을 게다.”

“힘들다고 포기할 순 없지요. 전 의지의 한국인이자, 교장 선생님의 수제잡니다.”

“닥쳐랏! 네 속셈을 모를 줄 아느냐.”

“전부 아카데미를 위한 일입니다. 아시면서?”

“몰라, 말하지 마! 안 들려! 안 들린다!”

개인적인 편리와 이득을 챙겼다면 교장도 협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저런 사고를 많이 치긴 했어도 무진은 청렴했다. 또한, 아카데미의 질서도 확립해 나가고 있으며, 학부모와의 관계가 놀랍도록 개선되었다.

“그렇다 치고, 진짜 네 일상이 맞느냐? 구라 치는 거 아니지?”

“자식이라면 마땅히 그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좀 싸 왔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하고, 무진은 인벤토리를 열어 18첩 반찬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하나둘 쌓일 때마다 교장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인벤토리에 왜 그딴 걸 넣고 다니는 거야?”

“식자재를 담기에 인벤토리만큼 좋은 것도 없던데요.”

“게다가 이 크기는 또 뭐고? 대체 얼마나 숨기고 있는 거야?”

“이게 제 매력입니다, 까도 까도 매력남이라고 불러 주세요.”

“끄응! 말이나 못하면.”

초절정에 올랐다면 이해가 되긴 하다만, 무기나 장비가 아닌 생활용품을 인벤토리에 넣고 다닐 줄 누가 알았으랴. 하여간 평범하지를 않아요. 하는 짓마다 사람을 허탈하게 만드는 재주를 타고났다.

“드세요.”

“이런다고 특혜는 없다.”

“바라지도 않아요.”

“난 이제 안 속는다…… 크흠.”

18첩 반상이라니!

교장은 내심 감동의 도가니였다. 아내한테도 받아 보지 못한 반상이 아니던가.

나이가 들어도 금실을 자랑하는 잉꼬부부가 되기를 소망했거늘, 황혼이혼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 앞에서 어떻게 고기반찬 먹고 싶다고 투정할 수 있으랴.

그러고 보면 suv를 괜히 샀다. 가족 단위로 여행 갈 때 쓸 줄 알았더니, 밖에서 혼술 하고 잘 때 쓰고 있었다. 확실히 세단보다는 자는 데 불편함이 없어서…… 서글프네.

음~, 허~, 오잉~!

멸치볶음에서 이런 천상의 맛이 나다니, 무국의 진한 감칠맛은 입맛을 돋웠다. 먹어도 먹어도 손이 계속 가고 있었다. 이게 바로 세종대왕님의 한정식일까? 우리 마누라가 확실히 요리를 못하는구나.

“국 더 드릴까요?”

“어서 냉큼 내오지 않고 뭘 하느냐?”

예의~~~!

교장과 생도치곤 의외로 짝짜꿍이 아주 잘 맞았다. 나이를 초월한 진정한 벗이 되어 갔다.

후르륵, 우걱우걱, 꿀꺽꿀꺽!

어느덧 그릇을 비우자, 무진은 탁자를 말끔하게 치웠다. 교장 선생님이 눈물 빼고도 많이 흘리고 다닐 나이가 되긴 했다.

크흠!

모처럼의 만족스러운 식사에 교장은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고작 한 끼 식사에 불과하거늘, 먹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배만 채운다는 인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았다.

인생 뭐 있냐, 나이 들수록 맛난 거 먹는 거지.

“요리는 대체 어디서 배웠어?”

“일곱 살 때부터 독학한 겁니다.”

“내가 인생을 헛살았구나.”

“이제부터 잘 사시면 돼요.”

“이놈이! 그렇게까지 못 살진 않았어!”

덕담으로 받아들이기엔 한순간에 인생 전체를 부정당했다. 인정과 부정을 반대로 사용해 속을 긁었다. 처음에는 칭찬 같으면서도, 곱씹으면 울화가 치밀었다.

“교류전은 제게 맡겨 주세요.”

“우승해도 내 딸은 안 된다.”

“따님께서 레즈셨군요. 성적 취향은 존중합니다.”

“……뭔 소리야? 내 딸은 아주 지극히 무조건 효녀다!”

“우승은 지수의 몫이거든요.”

끄응!

지레짐작의 폐단이구나. 이놈의 농간일 수도 있고. 막상 우승하고도 안면을 싹 바꿀 녀석이었다. 더욱이 대화의 맥을 끊어 내고, 자기 쪽으로 흐름을 바꾸는 데도 도가 텄다.

지금도 봐라, 말을 하기만 하면 말렸다.

교장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교류전을 언급한 무진의 진의를 계산했다. 만사가 장난처럼 보여도, 허튼소릴 입에 담는 녀석은 아니었다.

“교류전에서 사고라도 일어날 것 같으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죠.”

“교류전의 외적인 문제는 생도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

“저도 나설 생각 없었는데, 조금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어떤 점이?”

“아직은 짐작에 불과해서, 확실해지면 말씀드릴게요.”

교장도 이쯤 되자 무작정 개입하지 말라고 선을 긋진 못했다. 마인 사건도 그렇고, 일이 커질 뻔하긴 했어도 무진은 적정선을 지킬 줄 알았다. 이 녀석 때문에 고생은 해도, 내버려 뒀다면 더 큰 사고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사전에 쓴 약을 먹었다고 치면, 감내……할 수 있을까?

‘이놈이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주의해서 나쁠 건 없겠지.’

교장은 일개 생도의 조언으로 치부하여 가벼이 여기진 않았다. 얄미운 녀석이지만, 무진을 인정하고 있었다.

무진은 경각심을 주는 선에서 일어섰다. 지나치게 주의를 한다면 되레 틈이 생길 수도 있었다.

‘변수는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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