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가고 싶은 아카데미(2)
성운맹이 선이고, 반대편에 있으면 악이 되어 버리는 현상이 벌어졌다. 좋고, 나쁨을 떠나서 굉장히 위험한 이분법적인 사고였다.
그런데도 저학년의 생폭이 눈에 띄게 근절되고 있었다. 가고 싶은 군대를 만들겠다는 개소리처럼 다니고 싶은 아카데미가 되어 갔다.
확고한 수치가 흑백논리마저 집어삼키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그만큼 생폭에 대한 반감과 불공정한 현실에 사람들은 지친 것이다. 매번 대책을 마련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을 봐 왔던 사람들에게 달라진 아카데미를 보여 줬으니 열광할 수밖에.
-지금 가입하면 되는 건가?
-신청은 자유로운데, 맹원이 된다는 보장은 없어.
-맹원을 가려 받겠다는 거야?
-가려 받는 게 아니라, 인내심이 필요해.
-인내심? 그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야? 맹원이 되기만 해도 자랑거리가 될 텐데, 죽어도 버텨야지.
-매일 두들겨 맞아 보면 아마 생각이 달라질걸.
-폭력을 써서 쫓아내는 거면, 말이 나올 텐데.
-인내심과 노력이 없으면 맹도가 아닌 인턴에 불과해.
성운맹의 가입 신청은 자유지만, 정식 맹도가 되는 길은 험난했다. 의협단의 단주와 부단주의 검증을 버텨 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결투만 한다면 부정적일 수도 있겠으나, 납득이 가능한 폭력이었다. 인성과 자질을 검증하여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물론, 기회를 얻었다고 당장 달라지진 않는다.
성취는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했다. 기회는 제공하되 결과까지 책임을 지진 않았다. 과정의 평등일 뿐, 결과의 평등은 자유주의의 역행이었다.
-처음에는 죽을 것만 같았는데, 신기하게도 하루하루가 달라지고 있어.
-나도 모르는 장점을 어떻게 그처럼 세세하게 알고 있지?
-방향이 잘못되었었다니, 조금 허탈하다. 진작 알 수 있었다면 좀 더 일찍 달라졌을 텐데.
-스텟, 속성, 스킬의 응용이 몰라보게 개선되었어. 이런 말 하면 안 되겠지만 교관보다 나아.
-꼭 그렇지는 않던데. 폭력으로 찍어 누르고, 강제만 할 뿐 효과는 없었어.
-안 되는 애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전보다 훨씬 나아졌어.
-결국, 되는 애들만 뽑겠다는 거잖아. 낙오하는 애들은 버리는 거고.
긍정이 9라면 부정이 1이 안 되는 비율이었다. 물론, 안티 1명이 전체를 흐릴 수도 있으나 대세를 거스르진 못했다. 오히려 배움의 기회를 차 버린, 인내심이 부족한 생도로 몰렸다.
-나는 오히려 실력이 줄었어!
-우리한테 맞지 않았다고!
-이거 제대로 가르친 거 맞아?
-편법이 있지 않고서야, 저 새끼는 나보다 밑이었다고!
-맞아, 저년이 어떻게 나보다 강해져!
소수 의견으로 의협단의 가르침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했지만, 모두에게 맞는 가르침이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특정 몇몇이 안 된다고 해서 성운맹의 가르침을 부정할 순 없었다.
하나, 이런 부정적 의견도 쌓이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나보다 못한 애들이 잘나갈수록 시기와 질투는 커지는 법이다. 그럴수록 성운맹의 수뇌부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부류가 생겨났다.
“이런 빌어먹을! 내 머리카락!”
강 교관은 요새 원형 탈모가 왔다. 아침에 머리만 감으면 세면대의 배수관이 막힌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403개의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었다. 오늘은 무려 405개였다.
이렇게 가다간 풍성했던 머리가 민둥산이 될 수도 있었다. 머리카락이야말로 패션과 동안의 완성이거늘,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대형 참사였다.
“이게 다 그놈 때문이라고!”
조직의 인턴사원 프로젝트가 물 건너가면서 당분간 [친절한 교관 모드]로 조용히 은인자중하려고 했다. 상부에서도 교류전이 있을 때까지 문제가 생기길 바라진 않았다.
그러나 문제가 없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닌 상황이다.
“이대로면 난 무능한 놈으로 낙인이 찍힌다고!”
1학년에서만 날뛸 때는 그래도 참을 수는 있었다. 한데, 3학년까지 놈의 암계에 홀라당 넘어갔다.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지?”
특히 도예슬에 대한 배신감이 컸다. 내부에 감추어져 있는 [빙정]을 알아낸 후 얼마나 감정이 벅차올랐던가. 그 계집을 이용해서 의협단을 견제하려고 했더니, 성운맹원이 되어 버렸다.
하물며 그년은 그놈의 열렬한 추종자로 전락했다. 줏대도 없는 버러지 같은 걸레 년이었다.
“아니, 왜 일이 이따위로 변하는 거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운맹의 근원은 폭력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생폭에 당해서 질질 짜는 놈들이 폭력을 옹호하다니,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당연히 해체해야지! 교장은 이런 거 안 잡고 뭐 하는 거냐고?”
왜 죄 없는 나를 잡으려고 아직도 눈에 불을 켜고 있냐고!
교장의 집요함에 화가 치밀었다. 이제는 느슨해진 줄 알았는데, 더욱 은밀하게 교관들의 뒤를 캐고 있었다. 풀 때도 되었다는 교장의 말은 방심을 유도한 수작이었다.
솔직히 위험할 뻔했다. 그 개자식을 손보려고 인원을 동원하려고 할 때, 돌다리를 두들겨 보지 않았다면 들켰을 것이다.
“이놈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도예슬도 바뀌고, 점찍어 놓은 생도도 달라졌다. 색이 점점 옅어질수록 강 교관은 울화통이 터지고 조바심이 났다. 평소라면 신경질조차 내지 않을 텐데, 조울증 말기에 다다르고 있었다.
일들이 하나둘씩 망가질 때마다 그 자식과 연결이 되었다. 더 화가 나는 사실은 이놈이 의도를 가지고 방해하진 않았다는 점이다.
“감히 내 발등을 찍게 만들어!”
성운맹의 창설에 이바지했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약 그때 일을 크게 키우지만 않았다면 어땠을까? 댓글만 달지 않았어도 성운맹은 탄생하지도 않았다.
성운맹이 활발한 활동을 할 때마다 강 교관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었다. 교관들이 직접 나서서 할 일이 줄어든 것이다. 특히 관리 생도들에 대한 상담이 줄어들다 못해 사라졌다.
환술 과목보다 중요한 상담이었다.
상담을 통해서 생도들의 심리 상태를 파악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었었다. 한데, 저학년은 찾아오지도 않는 데다 기존에 펼쳐 놓은 세뇌조차 옅어지고 있었다. 쌓여 갔던 부정 포인트도 마이너스가 되려고 했다.
“이건 아냐!”
고학년이 있으니 괜찮다고? 그렇게 보기엔 성운맹의 힘과 덩치가 너무 커졌다. 4, 5학년은 이미 영향을 받고 있었다. 상위권은 외면하고, 중하위권의 고학년은 눈치를 봐야 했다. 막말로 고학년이라고 해도 다구리엔 속절없었다.
기실 말년의 6학년도 맘 편히 행동하진 못한다. 성운맹에 찍히는 순간 졸업해 봤자 사회에서 대접을 받기 힘들었다. 성운맹의 배후에 있는 가문, 길드, 재벌의 연관 고리를 끊어 놓지 않고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더 커지면 곤란해!”
성운맹의 활약상을 상부에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줄여 놓아야 했다.
강 교관은 성운맹의 맹주와 단주보다 그놈이 더 위험하다는 판단이 섰다. 덩치는 곰 같은 놈이 구미호를 찜 쪄 먹고도 남을 정도로 영악했다. 외모에 속아서는 안 되었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종잡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당장 수를 쓰기에는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준비를 마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 전에 성운맹의 명성을 깎아 놓을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결코, 네놈 뜻대로 되진 않아!”
아카데미는 아카데미다워야 했다. 괴롭히고,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야 가해자에 대한 처참한 복수가 정당하지 않겠는가. 생폭이 사라진 아카데미만큼 어울리지 않은 곳도 없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은 없지.”
의혹을 제기하다 보면 알아서 나서 줄 호구들이 널렸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걸 광적으로 싫어하는 인간 본연의 종특을 이용하는 것이다.
***
“이게 다 뭐냐?”
“아버지의 생신 디데이 30일이잖아요.”
“……뭐?”
“농담이에요.”
산하는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기엔 눈앞에 차려진 상차림이 무시무시했다. 평소에는 서너 개 정도로 간단히 차렸다면 오늘은 18첩 반상이었다.
배추김치, 무김치, 파김치, 감자 무침, 피조개 무침, 어묵볶음, 갓김치, 오이소박이, 잡채, 자반고등어 조림, 제주 옥돔 튀김, 소고기찜, 소고기미역국, 대게장, 오징어장, 오징어순대, 동그랑땡, 도토리묵.
맛도 없는 장식에 가까운 반찬이라면 모를까. 하나하나에 들어간 정성을 상기하면 감동이 밀려와야 하거늘.
산하는 되레 부담스러웠다.
“이걸 다 언제 먹으라고. 내일부터는 적당히 해.”
“디데이가 지날 때까지 12첩 아래로는 양보할 수 없습니다.”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거지?”
“아버지가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고 싶을 따름입니다.”
부담이 되는 건 되는 거고,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이왕 차린 거, 산하는 미역국부터 한술 떴다.
후륵!
느끼하거나 비리지 않고 시원하고 담백하다. 간단해 보여도 세심한 배려가 깃들었다. 밥도 돌솥이라, 밥알이 찰지고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산하의 젓가락이 멈추지 않고 18첩을 돌았다. 하나라도 맛 실수는 기대하지 않았다. 아들의 요리는 한식의 대가도 두 손 들 만큼 완벽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음식들이 자로 잰 듯 반듯하다. 상의 구도와 거리까지 계산해서 그릇을 샀다. 18첩임에도 젓가락질이 닿지 않는 영역이 없다.
“양념이 아주 기가 막히구나!”
“아버지의 입맛에 맞는 황금 비율을 찾았거든요.”
“어쩐지 점점 맛있어진다 했더니.”
“건강한 밥상보다 맛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육체의 단련이 필수죠.”
밥상이 건강하면 사실 맛이 없다. 맛을 포기하고 건강을 위한다면 그렇게 차리면 된다. 사람의 취향은 가지각색이고, 맛의 평가도 주관적이니.
그렇다고 무진의 밥상이 건강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부자(父子)의 입맛에 최적화를 이루었을 뿐이다.
입에 쓴 약이 효과가 있듯, 맛있는 것만 먹다 보면 육체는 병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육체는 노쇠하고, 젊을 때와 다른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무진은 항상 아버지의 육체에 신경을 썼다. 부단한 단련만이 맛있는 걸 오래 먹으면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여기서 얼마나 더 건강해져야 만족할 거냐?”
“반로환동은 해야죠.”
산하는 건강했다. 너무 건강해서 절대 병으로는 죽지 않는다. 천재지변이나 sss급 던전의 한가운데 떨어지지 않고서는.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육체 나이 20세가 찍혀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빨리 드세요.”
“꼭꼭 오래 씹어 먹어야 건강한 거 아니냐?”
언제 다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게 할 양이지만, 부자의 식사량은 대식가를 한참 벗어났다. 돌솥 3개를 끝장내고, 반찬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그런데 그건 뭐냐?”
“저의 평범한 일상을 한번 찍어 보려고요. 추억이잖아요.”
평범함의 기준이 너무 높아서일까? 산하는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나왔다. 여하튼 일상과 추억이란 말에 현혹되진 않았다. 내 아들이지만,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 뭔 짓을 하려고?’
아들의 속내가 궁금하지만, 출근이 먼저였다. 아파트 아래를 보니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출근하는 동안, 무진은 시간이 좀 남아서 영상을 꼼꼼하게 편집한 후 모아 놓았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아야지.’
성운맹 홈페이지의 일상 카테고리에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맹원 자격이 있으면 누구나 올릴 수 있었다. 이따금 관심을 받기 위해서 자극적인 내용이 올라오기도 한다.
[의협단 부단주의 아침]
[의협단 부단주의 수업]
[의협단 부단주의 훈련]
[의협단 부단주의 취미]
조회 수가 폭발적이었다. 자극적인 콘텐츠하고는 거리가 먼데도 불구하고 성운맹 홈페이지가 개설된 이후로 최고의 조회 수가 나왔다.
연유는 분명히 있었다.
의협단 부단주인 강무진은 셀럽에 가까웠다. 성운맹 창립의 일등 공신인 데다가 TV 토론에 나가서 보여 준 언행으로 엄청난 팬과 안티를 동시에 얻었다.
팬도 보겠지만, 안티는 더욱 세심하게 보기 마련이다. 조회 수는 팬과 안티를 가리지 않고 올라간다. 개인 방송이나 기업에서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제목만 봐서는 어그로가 아닌 식상한 일상 브이로그에 불과했다. 보통은 저런 제목으로 인기를 끌기는 어려운 일이나, 세간의 이목을 끄는 대상이라면 달랐다.
이슈 메이커인 의협단 부단주 일상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에 관심이 가는 건 인지상정이었다. 칠대 가문과 대형 길드가 아님에도 아카데미를 대표하는 생도가 된 부단주의 일상이기에 학부모들도 매의 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