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전화위복(4)
의협단이 직접 나설 때보다 피해자가 극복하는 과정이 있어 파급력이 훨씬 향상됐다. 어쩔 수 없이 억눌려 지내야 했던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준 것이다.
-그래도 사업체를 망하게 한 건 심하지 않나!
-신풍 길드가 해체됐다고 하던데, 길드원들은 무슨 죄야?
-연좌제가 악용되면 사회의 악습으로 남게 될 거야.
-동정심 쩌네. 그런 걸 일일이 따지면 어떻게 갑질을 타파하겠어!
-아름다운 사회를 위한다면 희생도 감수해야지.
-다들 자기 일들 아니라고 말 쉽게 하는구나.
-쉽지 않은 걸 누가 몰라? 이런 악질을 내버려 둘 순 없잖아. 썩은 싹은 뿌리를 뽑아야 건강한 싹이 나오는 거라고.
-사회적으로 아예 매장을 당했는데, 애들이 사회에 나가 빌런이 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여지와 폐지된 연좌제가 거론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의협단을 옹호하는 쪽이 강했다. 반대편으로 돌아서는 순간 생폭 가해자와 집단으로 낙인이 찍혔다.
한편으로 의협단의 힘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것을 우려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의협단은 어린 생도들의 모임이었다. 올바른 판단을 하려면 전담 교관이나, 외부 교사라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였다.
하나, 그런 말을 꺼내기에는 여러모로 위험했다. 자칫 생폭을 옹호한다고 오해를 살 수 있었다. 그래서 가해자와 일부 불편한 단체는 열기가 식고, 광풍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뜨겁다 못해 불타오르는 시기에 무진은 공식적인 토론을 제안했다. 형식은 질의문답식의 Q&A로 합의를 보았다.
당연히 모두의 관심이 토론장에 쏠렸다.
핫이슈의 주인공인 의협단의 부단주가 나와 토론을 하겠다고 하니 방송국으로선 시청률 보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또한, 생폭의 가해자와 불편한 집단으로선 부정적인 분위기를 바꿀 절호의 기회였다.
토론을 시작했다.
모든 패널의 질의는 무진을 향해 있었다. 1 대 다(多)의 대결 구도라 굉장히 불합리한데, 의외로 어울린다.
무진은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서 질문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질의는 의혹이 있는 부분에 집중되었다.
“생폭 가해자에 대한 영상을 의협단에서 준비했다는 말이 있던데, 이에 대해서 강무진 생도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출처를 확인해서 지적해 주세요. 소문이라고 에둘러서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사안이 아닙니다. 이는 생폭 없는 세상을 만들려는 의협단의 존재 가치를 훼손하는 행윕니다. 또한, 의협단은 사사로운 복수를 비롯한 왕따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sns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로 퍼진 영상이 전부 의협단과는 관련이 없다는 겁니까?”
“제보된 영상이고, 의협단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일부 사건은 가해자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판결을 받았습니다.”
“영상에 나온 피해자는 자살 충동을 느껴 극단적인 시도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는 의협단의 책임입니다!”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선택의 자유가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무진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바꾸지 말라고 주장한 후, 자기 선택이니 가해자가 죽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무책임한 태도였다. 일정 부분 죄책감을 받기를 원했던 사회부 기자는 말문이 막혔다.
“설령 가해자라도 지속적인 피해를 받아선 안 되는 겁니다.”
“의협단이 나서서 행한 일이 아닙니다. 정의로운 국민 여러분들의 자발적인 정의 구현이겠지요.”
“의협단이 부추긴 건 아니고요?”
“부추기다니요? 그저 아름다운 아카데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따름입니다.”
의협단이 아닌, 국민의 선택으로 돌려 버렸다. 무진을 압박하며 질문했던 교수는 입을 닫아야 했다. 아니라고 하는 순간, 국민의 선택을 무시해 버리는 꼴이 된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젖비린내 나는 새끼가!’
그렇다고 이대로 말리고만 있을 순 없기에 교수는 어떻게든 물고 늘어졌다.
“생폭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 벌어진 싸움은요? 결투장 이외에서 생도 간의 싸움은 엄연히 금지이지 않습니까?”
“학창 시절에 싸움 한 번 하지 않은 분이 어디 있을까요. 하물며 유출된 영상을 보니 피해자는 하루 이틀도 아니고 꾸준히 생폭을 당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반격을 가했는데, 그것조차 죄가 된다면 저를 욕하십시오. 제가 스스로 극복하라고 상담을 해 주었습니다.”
그 점에 관해서는 욕해도 된다고 무진이 얼굴을 내밀자 추인순 교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방송에서 이런 식으로 대놓고 무례하게 나올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싸움은 안 되죠!”
“한 번은 실수라면서요!”
“강무진 생도도 여러 사건을 일으켰다는 의혹이 있던데요.”
“있으면 밝히세요, 왜 의혹이라고 합니까?”
추인순 교수의 언성이 높아지자, 무진도 목소리를 높였다. 문장에 미약하지만 내력이 실리자 충격을 받는 쪽은 정해졌다.
우우웅!
헙!
오디오 볼륨에서 밀린 추인순 교수는 헛바람을 삼키며 주춤했다. 화는 나는데, 생도를 상대로 화풀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욱이 그 생도가 말만 하면 억지 주장으로 받아치니 어이가 없었다.
‘이게 무슨 토론이야?’
‘애새끼가 어른을 가지고 노는구나!’
‘이 짓도 못 해 먹겠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반대편에 서기는 했는데, 의협단은 현재 무적권이었다. 가해자도 인권이 있으며, 연좌제가 잘못됐다는 이성적인 질의도 일방적으로 뭉개 버렸다. 실시간 댓글만 봐도 분위기가 어떤지를 알 수 있었다.
-이게 맞지, 가해자가 잘 사는 세상은 아니잖아!
-누가 생폭을 저지르래.
-실수도 정도가 있는 거야, 생폭은 생도의 인생을 죽이는 행위야.
-20년도 지났는데, 난 아직도 지옥이라고!
-생폭 없는 세상을 위해 의협단은 필요하다고 봐.
한창 의협단의 인기가 높은 상황인 데다가 과격하긴 해도 무진은 대다수가 바라는 사이다 발언을 쉴 새 없이 던지고 있었다. 애초에 생폭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된다는 명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논리에서 밀린다고 해도, 절대 질 수 없는 토론이었다.
-그건 그거고 생도가 공영방송에서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토론하는 건 처음 본다.
-이걸 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당당하다고 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서네.
-서열전을 못 봤구나! 권후의 호위무사로 일관성 하나만큼은 최강이라고!
-하긴, 그 원패턴 공격은 정말 무시무시했지. 이젠 영약을 하도 처먹어서 공력도 엄청나다더라.
-그런데 토론을 잘한다기보다는, 그냥 듣지를 않는 것 같은데.
-하긴 상대 패널들 속 터져 죽을 것 같기는 하다.
-저 패널들이 매번 썼던 화법이잖아. 자기도 당해 봐야 좆같은 걸 알지.
실시간 검색어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1위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근래에 스포츠를 비롯한 댓글이 사라지면서 재미가 많이 없어지긴 했다. 연예나 인물에 대한 욕설과 비방 때문이라고는 해도, 인터넷상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었다.
***
“이게 대체 머선 일이냐?”
강 교관으로선 미치고 팔짝할 노릇이었다. 안 쓰던 사투리까지 튀어나왔다. 사태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의협단이 활개 치지 못하도록 교장을 엮어서 제재하는 선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이 미친놈이, 진짜!”
일을 크게 만들어도 분수가 있지, 이젠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의협단에 대한 제재는커녕 말이라도 잘못 붙였다가는 교관직도 잘릴 판이다.
“아니, 저딴 식으로 토론을 하는데 왜 말리냐고?”
토론을 보는 내내 강 교관은 복장이 터졌다. 솔직히 무진의 토론 자세는 극단적으로 잘못되었다. 남의 의견을 들어 보고, 논리적으로 반박해야 하는데 감정싸움을 벌였다. 마치 내가 좀 하면 안 되냐? 이런 논조였다.
한데, 이게 너무 잘 먹혔다.
“왜 저런 게 통하는 거야?”
게다가 자신의 다음 수까지 차단당하고 말았다. 저 새끼가 가해자의 자살을 언급하는 바람에 이젠 누가 죽더라도 의협단의 책임이 아니게 되었다.
어쩌면 이것까지도 계산에 넣었을 수도 있었다. 보통은 가해자가 자살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지금처럼 세상 전체가 압박을 가하면 극단적인 선택도 가능했다. 우울증이 그만큼 무섭다. 외향적인 성향의 사람도 한순간 미친 선택을 하게 하니까.
“이 여우 같은 새끼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을 근육몬 새끼가 영악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동안 들어온 후원금 내력을 공개하고, 어떻게 쓰였는지를 공개했다. 돈 한 푼 이득을 챙기지 않았다는 점이 모두의 공감을 샀다.
무대포 사이단데, 청렴하니 사람들의 간지러운 부분을 제대로 긁어 주었다.
“그 돈으로 고가의 게이밍 컴퓨터도 사고, 외국 여행도 가고, 스포츠카도 리스하고, 횡령도 좀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국가의 세금을 먹는 단체치고, 개인적 유용을 하지 않는 단체가 드물었다. 하물며 의협단은 그런 단체도 아니고, 동호회에 지나지 않았다. 돈을 빼먹고 세탁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단체도 없었다.
“털면 먼지 좀 나와도 괜찮잖아!”
국민 토론으로 반전은커녕 의협단의 인기는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이제는 건드릴 수 없는 신격화된 단체가 되었다.
“왜 이런 새끼가 나 때 들어온 거야?”
의협단이 저학년 전체를 통제하고 있었다. 생폭을 저지르거나 그럴 기미라도 보이면 의협단의 눈 밖에 난다. 그걸 감수하고 생폭을 저지르기에는 위험부담도 컸다.
방법을 바꾸어 돈으로라도 회유해 보려고 했지만, 의협단의 후원금이 상상을 초월한다. 권왕가와 성운 그룹뿐만 아니라 다른 가문, 길드, 그룹까지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넘쳐 나는 후원비를 피해자를 위해 아낌없이 퍼부으니, 돈이 통하기에는 양심이 걸렸다.
더욱이 가장 필요한 제물(祭物)이 손안에서 빠져나가 버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계획이 완전히 어긋나 버린다.
“어쩌지?”
이 사태의 시작은 무진이 분명하지만, 가속도를 붙인 건 자신이었다. 제 발등을 제가 찍은 꼴이라, 상부에 알려지면 곤란했다. 그 즉시 그녀가 자신을 조각 케이크로 만든 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할 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지금은 3학년까지지만, 이놈은 학년이 올라간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전 학년을 의협단이 통제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든 이놈만 손에 넣으면 되는데.”
최적의 방법이었다. 지금까지의 실패를 모조리 되돌리고, 아카데미를 완전히 장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녀석을 가르쳐 보니, 어렵다는 걸 파악했다. 이놈은 자기 기준이 확고하다. 무식한 놈이 신념을 가져도 무서운데, 영악하기까지 했다. 치고 들어갈 빈틈이 없었다.
더욱이 이제는 환술을 쓰기도 만만치 않다. 이놈의 실력이 자신보다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파악했다. 비장의 수를 쓴다면 될 수도 있지만, 환경적 조건을 완벽히 맞추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었다. 거기까지 끌고 오는 과정이 녹록지 않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들면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
“빌어먹을, 수업 준비도 만만치 않잖아.”
그 새끼를 가르치려면 어지간한 준비로는 턱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카데미가 아니라 길드로 보내 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