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전화위복(3)
스윽!
민서연은 알고 있었다는 듯 몸을 숙이며 바닥을 쓸어 찼다.
파앗, 큭!
꽈당!
예상하지 못한 기습과 역공에 조예정은 쓰러졌다. 일어나야 한다는 본능적인 경고가 뇌리를 울렸다. 하나, 일어서기도 전에 민서연이 깔고 앉듯이 배에 올라탔다.
움찔!
민서연의 눈을 본 조예정은 흠칫 놀라며 떨었다.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눈을 하고 있었다. 광기에 물들어 있는 데다가 미소를 지었다.
“……이런 짓을 하고 무사할 것 같아…… 까악!”
“시끄러워!”
민서연의 주먹에 맞은 조예정의 코에서 핏물이 튀었다. 살짝 비틀어서 다행히 코뼈가 부러지진 않았다.
이대로 맞고만 있을 순 없기에 조예정은 몸을 비틀며 탄력을 주었다. 그럴 때마다 민서연은 반동을 타며 주먹을 날렸다.
퍼억, 퍼억!
까악!
눈이 돌아간 민서연과 발악하는 조예정이었다.
“사과해!”
“……웃기지 마, 씨발 년아!”
두 여생도가 개싸움을 벌이는 광경을 무진과 지수는 지켜보고 있었다. 둘의 실력은 엇비슷한 편이었다. 집안이 갑과 을의 관계여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다고 상위권에 오를 만한 실력은 아니다.
지수는 솔직히 의아했다. 민서연은 오랜 시간 조예정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가스라이팅을 당해 왔다. 실력 차이가 크지 않다면, 넘어서기 어려운 일이다. 복싱을 예로 들어도 한 번 진 상대를 다시 이기기가 쉽지 않았다.
“2년 동안 괴롭힘을 당했을 텐데, 어떻게 용기를 냈대?”
“사요공을 썼거든.”
“아, 그렇…… 뭐?”
“트라우마가 단시간에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아니 그래도, 자기 스스로 해야.”
“누가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이기면 장땡이지.”
“그럼 여태 상담한 게?”
“사요공이지.”
무진과 상담을 받은 생도들 대부분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있었다. 전문 상담가는 박인용 교수도 하지 못한 일을! 대체 어떻게 상담을 했는지 의아해했거늘, 어처구니없는 솔직함이었다.
과정에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면 문제가 되겠지만, 피해자를 위한 조치였다. 당연히 사실대로 밝혀질 가능성은 없다. 이걸 두고 완전범죄라고 해야 하나?
“어쩐지 쉽다 했어!”
“결과가 과정을 증명하는 거야. 그리고 보기가 좋잖아. 자신의 트라우마를 스스로 극복하는 광경은.”
인간 승리의 표본처럼 보이기에 좋은 재료였다. 게다가 무진의 사요공은 흔적이 남지 않았다. 따로 조사하지도 않겠지만, 증거를 잡기는 불가능했다.
설령,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정신과 의사도 최면을 쓰지 않는가. 적당히 대충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정작 피해자가 괜찮다는데, 남이 무슨 상관이랴.
“시간 됐네.”
“열 받아 뒤지겠다.”
마운트의 유리한 고지에서 개싸움을 벌였던 민서연이 튕겨 나갔다. 위급해지자 조예정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이 반진력을 발동한 것이다. 중형 길드긴 해도, 길드장쯤 되면 자식을 위해 선물할 수 있었다.
하아, 하아!
트라우마를 처음으로 극복한 상태라 민서연의 체력과 호흡이 고르지 않았다. 아마 자신도 모르게 힘을 많이 소모한 것이다. 되레 맞기만 한 조예정의 체력이 더 남아 있었다. 게다가 회복 아이템이 있어 핏물도 서서히 멈췄다.
“카악, 퉷! 이 씨발 년, 죽었어!”
조예정의 독기도 예사롭진 않았다. 이쯤 처맞았으면 기가 죽을 만도 한데,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사요공이 풀리면서 민서연은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을 치다 넘어지고 말았다.
착!
조예정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민서연의 배에 올라탔다. 확실히 민서연보다 싸움에 감각이 있었다. 맞아 본 사람이 잘 맞듯, 때려 본 사람이 잘 때렸다.
씨익!
조예정은 웃었다. 여태 맞은 것 이상으로 돌려줄 수 있었다. 감히 주인에게 대든 대가를 더해 얼굴을 망가뜨릴 작정이다.
성형해도 안 되는 얼굴로 만들어 주마.
“죽엇!”
“거기까지.”
냅다 파운딩을 먹이려던 조예정의 팔이 무진에게 붙잡혔다. 힘을 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넌 뭐야? 이거 안 놔!”
“동급생 간의 폭행은 옳지 않습니다, 조예정 선배님.”
“놔라, 너도 죽고 싶어!”
“의협단의 부단주로서 불의는 묵과할 수 없습니다.”
“닥쳐, 이 꼴을 보고도 그래!”
거울을 보지 않았지만, 얼굴이 핏물로 덮여 있었다. 일방적으로 처맞기만 했는데 동급생 간에 싸우지 말라니, 조예정은 억장이 무너졌다.
한 대라도 때렸으면 몰라, 이대로는 절대 못 끝낸다! 열이 받을 대로 받아서 상대가 정체를 밝혔음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폭력은 아카데미의 교칙 위반입니다. 그러니 말려 드리겠습니다.”
“놔, 내가 맞았다니까!”
“그건 못 봤고, 지금 파운딩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라고! 놔, 씨발!”
당연하게도 조예정의 사정은 무진의 관심사와 거리가 멀었다. 조예정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힘으로 제압해서 뒤로 떨어뜨려 놓았다.
휘익!
쿠다다당!
그냥 짐짝처럼 냅다 던졌다. 힘에서 압도적으로 밀린 조예정은 종잇장처럼 날아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날아가는 도중 ‘왜?’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괜찮습니까, 민서연 선배님?”
“……괜찮아.”
“다행입니다.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하마터면 목숨이 위태로울 뻔했습니다.”
“그건 아니…… 맞아. 위태로웠어.”
무진은 민서연을 정중히 일으켜 세운 후, 성난 황소처럼 달려드는 조예정을 막아섰다. 자신이 짐짝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는 걸 깨닫자, 이성이 날아가 버렸다.
파앗, 휘익!
쿠다다당!
조예정은 달려든 속도보다 2배는 빠르게 뒤로 날아가 버렸다. 무진이 발동한 무진류 절대방패의 공능이었다. 태극, 이화접목, 사량발천근의 원리가 절대방패에 녹아들어 있었다. 동시에 바람 마법을 섞어 회전력을 더했다. 조예정이 허공을 360도로 맹렬히 회전하는 연유였다.
“이 씨발 새끼가!”
조예정의 포기하지 않는 집념은 높이 샀다. 조금만 강해 보여도 꼬리를 살살 마는 양아치들보다는 근성이 있었다.
다만, 무진의 절대방패는 무조건반사였다.
꽈당, 꽈다다당, 꽈다다다당!
몇 번을 해도 장면이 반복되어 지루함을 불러왔다. 보는 사람도 짜증 나게 하는 광경이었다. 한 번만 봐도 질리는 영화를 10번 넘게 보는 격이다.
뭘 해도 도저히 안 통하자, 한이 맺힌 조예정이 소리쳤다.
“네가 뭔데 나서는 거야? 네가 뭐라고!”
“의협단의 부단주로서 동급생 간의 폭력은 묵과할 수 없습니다.”
무진은 AI 인공지능처럼 했던 말을 또 했다. 다른 말을 하는데도, 같은 말을 하니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내가 일방적으로 맞았다니까?”
“증거도 없이 모함하지 마십시오. 민서연 선배를 그럴 분이 아닙니다.”
조예정은 치미는 울화는 주체하지 못했다. 나이도 어린데 혈압이 오르는지 뒷목을 잡았다. 상황도 답답해 죽겠는데, 대화도 통하지 않았다. 네가 뭔 말을 해도 나는 믿지 않겠다고 철벽을 치고 있었다. 속이 터져 버릴 것 같아서 미칠 것 같았다.
이는 무협 소설의 정파와 비슷하다. 사도와 흑도를 벌레처럼 보며 어떤 말을 해도 듣지 않는 것처럼.
허!
관전 중인 지수, 혜진, 상원, 유정, 4인방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당하는 사람이 조예정이라 다행이지, 자신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빼꼼!
무진의 뒤에서 민서연이 고개를 드는 모습이 조예정의 눈에 들어왔다. 마치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것 같아서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내 몸꼴을 보라고! 이게 어떻게 때린 사람의 몸꼴이야!”
“계단에서 굴러 넘어졌군요.”
“개 같은 새끼! 내가 이렇게 물러날 것 같아! 신고할 거야! 의협단은 이제 끝났어!”
“신고하고 싶으면 해도 됩니다만, 의협단으로 제보가 들어왔더군요.”
의협단을 걸고서 협박을 했던 조예정은 무진이 보여 준 휴대폰 속 영상에 기겁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민서연에게 했던 협박, 폭행, 추행이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거짓말이야! 저년이랑 짰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게 말이 되냐고?”
“그렇다는 증거 있습니까?”
세상은 증거를 원하고, 영상은 언론기관에 제보했다.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영상이라, 의협단을 걸고넘어지는 건 불가능했다. 확실히 쉐도우 길드의 뒷공작 프로젝트는 놀라웠다. 법적인 테두리를 벗어나니 아주 유용하다.
“……억울해! 도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이러는 거야? 너한테 피해를 준 것도 아니잖아! 왜 남의 일에 간섭하는 거냐고!”
“남의 일은 아닙니다. 민서연 선배는 아름다운 아카데미를 만들어 나갈 소중한 인잽니다. 또한, 조예정 선배는 있지도 않은 사실로 의협단을 협박했습니다. 오늘 일을 조예정 선배의 부모님은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신풍 길드가 그런 곳인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잠깐, 헛소리하지 말라고!”
분노가 가라앉으며 앞으로 펼쳐질 현실이 조예정의 뇌리를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화가 나서 소리쳤지만, 의협단의 명성을 모르지 않았다.
민서연을 괴롭힌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면 자신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신풍 길드마저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된다. 근래엔 은인자중하며 조심스럽게 행동했는데,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화를 낸 것이 화근이었다.
“……안 돼!”
조예정은 깨달았다. 이대로 보내게 되면 여태 누려 왔던 모든 것들이 한여름 밤의 공허한 꿈처럼 사라져 버린다. 어떻게든 무진을 세운 후 해명해야 했다. 최소한 민서연이라도 설득해서 이 사태를 무마해야 한다.
빙글, 쿠다다당!
무진을 잡아채려는 찰나, 조예정은 허공을 돌며 날아가고 있었다. 아까부터 잡힐 듯, 잡히지 않은 개새끼였다.
스윽!
돌아선 무진이 바닥을 나뒹구는 조예정을 보며 감탄했다.
“포기하지 않는 집념과 근성은 대단하군요. 하지만 무인의 등 뒤를 노리다니, 이젠 정말 돌이킬 수가 없군요.”
……아니라고, 노린 거!
대체 뭘 노렸다는 거야? 등을 잡기라고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건드리지 못하고 튕겨 나가 버렸다.
“……제발 가지 마! 아니라고!”
조예정의 목소리는 떠나간 임을 부르듯 간절했다. 안타깝게도 무진에겐 전혀 감흥을 주지 않았다.
“다 찍었지?”
“하아, 정말 피도 눈물도 없구나!”
영상을 촬영한 상원은 혀를 내둘렀다. 고민하기는커녕 마치 해야 할 일을 한 것처럼 당당했다. 처절하게 울부짖는 조예정의 공허한 외침은 부가 옵션이었다.
***
얼마 뒤 조예정을 비롯한 상습적 생폭 가해자가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았다. 단순히 개인으로 끝나지 않았다. 생폭 가해자의 부모와 사업장까지 타격을 받고 있었다.
한 번의 실수로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지만, 상습적 가학과 폭행 영상이 나돌았다. 한 번은 실수로 치부해도, 두 번 세 번이 되니 반박하기 어려웠다.
배경을 믿고 설치는 생도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생도 시절 철없이 저지른 실수일 수도 있겠지만, 의협단이 개입되자 얄짤없었다. 하물며 의협단은 제삼자로서 피해자가 트라우마를 극복할 기회를 제공했다.
-그래, 난 이런 걸 원했어!
-맞아, 언제까지 당하기만 할 거야!
-나 때 의협단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피해를 본 가족까지 지원을 하고 있다고.
-성운 그룹과 권왕가에서 취직도 시켜 주고 있어.
-용기를 낸 모습이 아름답다. 나도 용기가 생겼어.
-이게 바로 진정한 용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