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전화위복(1)
아카데미 교장 풍신의 예고대로 영상이 유출되었다. 사전에 안 생폭의 학부모들이 어떻게든 막아 보기 위해서 법적 조치에 나섰지만, 예고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인터넷 여러 사이트에 올렸다. 나오는 족족 차단하며 발버둥을 쳤으나, 영상 유출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발등에 불 떨어진 학부모들의 강력한 요청에 경찰에서 IP와 계정을 추적했으나 오리무중이었다. 모든 IP가 우회로를 통했고, 유령 계정이라 찾아 봤자 허탕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잔뜩 화가 난 인터넷 워리어의 화력은 인위적으로 막을 수가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영상이 올라오고, 수많은 짤로 퍼져 나갔다.
의협단을 집단 린치를 가한 폭력 단체로 몰아갔던 여론이 삽시간에 반전되었다. 당시 교장과 의협단을 욕했던 사람들이 여론의 분위기가 바뀌자 미쳐 날뛰었다. 마치 자기는 깨어 있는 시민인 척 적극적인 물타기를 시도했다.
-와,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도 아닌데, 반전 쩌네! 소름 돋았다.
-가해자인 주제에 자기들이 처맞았다고 피해자인 척한 거잖아. 인생이 적반하장의 막장이구나!
-요즘 고딩이나 생도나 길 가다 마주칠까 무섭다. 그러다 싸움이라도 나면 우리만 피 보겠지.
-아니 무슨 포주도 아니고, 어른보다 무섭네. 이래도 애들이라고 봐줘야 하는 거냐고!
-이래서 양쪽 말을 다 들어 보라는 거야. 괜히 교장만 마녀사냥 당했잖아.
영상이 풀리면서 교장과 의협단에 대한 오해는 해소되었다. 역으로 가해자 부모들은 자식들의 영상이 불법적으로 찍혔다며 고소하겠다고 발광했다.
영상 속 생도가 자신들의 자식이 아니라고 발뺌할 수도 있을 텐데, 화질이 최소 16k UHD였다. 땀구멍조차 보이는 선명한 화질, 우리나라의 패널 기술력을 엿볼 수 있었다. 수출의 역군이 가해자들에겐 역관광이 되었다.
-누구인가? 누가 우리 의협단에게 모욕감을 주었어? 손가락에 마구니가 들었도다. 그 손모가지를 잘라라.
-이 새끼, 또 시작이네. 이건 궁예야, 조폭이야?
-와, 의협단 포스 죽인다. 그래 씨발, 생폭은 이렇게 잡아야지.
-맞는 소리야, 처맞아야 말을 들어! 주둥이론 암만 떠들어 봤자 듣지를 않는다고.
-이번 기회에 생폭 새끼들에게 세상의 무서움을 알려 줘야 해!
-기회는 선량한 생도에게나 주는 거지, 이런 새끼들은 매장시켜서 본보기를 보여야 해!
-매일 고구마 같은 인생이었는데, 의협단이 있어 시원하다!
-그런 새끼들은 사회를 위해서라도 죽였어야 해!
의협단과 교장을 찬양하는 지지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학창 시절과 생도 시절에 불합리하게 당했던 이들과 처벌조차 받지 않은 현실의 괴리감이 지지자들이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적법한 방법이 아닌 폭력을 폭력으로 대하는 불법적인 해결책임에도 여론은 호의적이었다. 생폭에 관한 근원적인 문제점이 붉어져 나오면서 해결책이 따로 없다는 점이 작용했다.
실제로 생폭이나 학폭을 저질러도 전학 가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러니 근절이 되기는커녕 법을 우롱하는 학생과 생도가 늘어나는 것이다.
자구적인 처벌이 사회규범을 위반하는 옳지 못한 행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 식의 처벌이 계속되면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 무너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싹수가 노란 것들은 떡잎부터 알아보는 법이다. 애초에 그런 것들은 갱생조차 되지 않았다.
물론, 의협단을 규탄하는 자들도 꽤 있었다. 아무리 생폭이 밉다고 해도, 폭력을 쓰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는 인권 단체와 씹선비들이었다.
-그게 무슨 의협단이야, 폭력단이지. 폭력을 폭력으로 갚아 주는 게 상식적인 거냐고? 그런 식이면 너도나도 폭력을 저지르고 다닐 텐데.
-아직 어린 생도들이야. 이성적 판단이 어려울 땐데, 훈계를 통해서 계도를 해야지. 교장이 나서서 폭력을 옹호해도 되는 거냐고!
-웃기는 놈들일세, 자기 자식이 생폭을 당해 불구가 되어 봐야 정신들 차리지. 꼭 자기들은 안 당할 줄 아나!
-생폭 당한 부모입니다. 제 딸은 왼팔을 못 씁니다. 그런데 가해자는 여전히 아카데미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피해 보상이라고 해 봤자 몇 푼이고, 처벌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애들 장난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어린 생도들의 미래까지 막는 게 정당합니까? 당신들은 어릴 때 실수 한 번 하지도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냐고?
-권왕가와 성운 그룹이 나서서 애들 앞을 막아 버렸네. 이건 사회적 약자를 강자가 대놓고 짓밟는 행위잖아! 이걸 옹호하면 언젠가 자신도 당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거냐?
-생폭 저지르는 애들이 사회로 나가서 또 다른 사람들을 짓밟을 수도 있지. 그럴 바에 애초에 나대지 못하게 하는 편이 낫지 않나.
-난 권왕가와 성운 그룹을 지지해! 너희들이 뭐라고 해도 난 찬성이야! 나 같으면 생폭 저지르는 애들 생존 던전에 던져 놓고 살아남는 애들만 남겨 둘 거야. 지들 좋아하는 약육강식이잖아.
사회는 관대하지 않았다. 피해를 보면 그 이상으로 돌려주기를 원한다. 하나, 실제로 행하기는 어려웠다. 이런 가려웠던 부분을 의협단이 긁어 준 것이다.
의협단을 해체해야 한다는 부류도 있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폭력을 옹호할 순 없으니. 하지만 의협단을 법적으로 다스리기도, 해체하기도 쉽진 않았다.
단체의 목적이 건전한 아카데미를 위해서였고, 집단 폭력을 행했다는 증거가 없었다. 피해자가 진술하면, 생폭을 당한 피해자가 나타나서 증거를 내놓으니 입을 다물 수밖에.
애들이 만든 동호회답지 않게 의협단의 체계는 견고했다. 또한, 사전에 증거를 잡아 놓고 행하기에 폭력에 당한 피해자는 신고조차 맘대로 하지 못했다.
되레 의협단에 찍히면 생폭을 저지른 생도로 낙인이 찍혀 아카데미 생활 자체가 힘들어졌다. 더욱이 일단 낙인이 찍히면 졸업을 해서도 취직이 안 될 수도 있었다. 권왕가와 성운 그룹이 배후에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권왕가와 성운 그룹에 대한 인기도 덩달아 치솟았다. 아카데미의 오랜 생폭의 악습을 뿌리 뽑기 위해 가문과 기업의 가치 하락의 위험에도 나섰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되었으면 권왕가와 성운 그룹은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을 수도 있었다.
실적 발표 후.
회장실은 일시적으로 침묵이 흘렀다. 대형 스크린의 실적 수치와 그래프를 보며 말문이 막혔던 것이다.
올 초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성과였다. 전 분기와 비슷하기만 해도 선방이거늘, 실적이 거의 2배나 늘었다.
단순히 그뿐이면 놀라지 않았다. 늘어나는 속도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르다. 연말에 성과급 잔치를 벌여도 욕먹지 않을 가파른 성장세다.
허!
진 회장의 허탈한 웃음이 현실을 대변해 주었다. 철혈의 경영인으로 어지간해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감탄이 고스란히 얼굴에 표현되었다.
“이런 일도 있군.”
“정말 놀랍습니다. 그야말로 광풍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단기간에 이런 성과라니, 성운 그룹 역사에도 흔하지 않았다. 초창기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발돋움할 때를 넘어섰다.
진 회장도 이렇게까지 파급력이 대단할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솔직히 당시만 해도 믿음이 가지 않았었다. 자칫 그룹의 명성에 흠이 갈 수도 있었다. 위험한 도박수로 보고, 판단을 보류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태수까지 나서서 설득하자 마지못해 손을 들어 주었었다.
‘적당히 여론몰이만 해도 다행이라 여겼거늘.’
세간의 관심을 끌어오고, 손자의 행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랐었다. 웬걸! 파격 그 자체였다. 아카데미 교장과 의협단의 행보에 솔직히 잘못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었다. 모두가 위험하다고 경고했을 때, 반전에 성공하면서 그룹의 홍보가 제대로 되었다.
‘조 회장의 얼굴이 볼만하겠군.’
특히 던전 가공 사업에서 실적이 눈에 띈다. 생폭하고는 관련이 없을 것 같았지만, 의외로 여러 곳에서 문의가 왔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진 회장의 감흥은 무진의 심드렁한 목소리에 깨졌다. 소파에 앉은 채 지루한 표정은 덤이었다. 탁자 위 부실한 간식은 심경을 더욱 불편하게 했다.
“사람을 불러 놓고 언제까지 망부석 놀이를 할 겁니까?”
“조금 잘했다고 아주 기고만장하구나.”
“조금치고는 많이 놀라시던데요.”
“우리 태수가 하자고 하지 않았으면 어림도 없었어.”
“권왕가로도 충분했어요.”
한마디도 지지 않고 받아치는 모습에 임원들은 안절부절못했다. 생도의 치기로 볼 수도 있으나, 의협단의 행보를 알기에 함부로 나서진 않았다. 그만큼 의협단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완장을 차더니 입심만 좋아졌구나.”
“현실은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더라고요. 그러니 밀릴 순 없죠.”
“그게 세상의 이치긴 하지. 네 말대로 적당히는 존재하지 않아. 이제 어쩔 셈이냐?”
“완장질 좀 해 보려고요. 어떠세요? 완장에 자리 하나 채워 드릴 수 있는데.”
“생도가 아니라 장사꾼이구나.”
“제 완장에 들어가려고 안달인 사람들이 줄을 섰어요. 1순위로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가장 잘 보이는 쪽이면 지속적인 협찬을 고려해 보마.”
의협단의 가치가 남달라진 이상, 완장 하나에 들어가는 협찬 가격도 수직 상승했다. 완장에 새겨서 걸어 다니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홍보가 되니 노리는 기업이 많았다.
“다만, 돈이 들어가면 파리 떼가 꼬이는 법이다. 관리할 수 있겠느냐?”
“계좌를 오픈하려고요.”
“애초에 돈을 벌 목적이 아니었구나.”
“당연하죠. 어차피 다른 쪽으로도 얼마든지 벌 수 있는데 굳이 의협단에 때를 묻힐 필욘 없잖아요.”
“그때도 그렇고, 아주 제법이야.”
그림을 크게 그리는 안목은 아무나 가지기 힘든 능력이다. 당장의 돈에 연연했다면, 진 회장은 실망했을 것이다. 한데, 이 녀석은 의협단의 운영비를 제외한 수익 대부분을 생폭 피해자를 위해 내놓겠다고 했다. 생폭 피해자를 어떤 식으로 도와줬는지 품목별로 전부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영업 기밀이라며 아파트 공사 단가를 공개하지 않는 건설사와는 다르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공매도의 상환 기간을 정한 것이다.
“지금은 의협단의 순수한 가치가 중요하거든요.”
“맞는 말이야. 당장의 이익에 매몰되는 것치고 제대로 되는 경우는 없지.”
“잘되면 물어뜯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넌 차라리 생도가 아니라 사업가가 되는 편이 낫겠구나.”
“한때는 꿈이었는데, 친구 때문에 강남에 왔습니다.”
“경쟁자를 치워 준 그 친구를 고마워해야겠구나.”
의협단은 현재 여론의 광풍을 등에 업고 있었다. 이 흐름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은 역풍을 맞기에 쉬쉬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런 식의 열기는 언제 식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여론은 자극적인 뉴스에 길들어져 있었다. 의협단의 가치가 상승하는 만큼 반대급부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의협단은 부각되는 이미지 이상으로 약점도 두드러져 있었다. 이 부분을 찌르고 들어오는 가운데, 돈이 엮이면 인심은 곤두박질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