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자업자득(1)
조직의 신실한 도구로서 한시도 임무에 소홀하지 않았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호풍환우를 능가하는 태풍에서도 임무를 잊지 않는다.
임무를 달성하기 직전.
최종 보고만 남았다. 조직의 막대한 자금과 지난한 시간을 투자하여 얻어 낸 수확의 계절이었다.
그녀는 신(新)도구들의 약점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다. 본인들은 던전 내 사고사로 위장하면 그만인 줄 알았겠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모든 일이 그렇듯 지나치게 순조로우면 함정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걸려들었어.’
지령대로 다음 작업에 들어가야 했다. 계획대로 아귀가 맞아 돌아간다. 하나, 너무 좋은 일만 있으면 운수 좋은 날이 되는 법이다.
“걸려들었네.”
“……?”
낯선 목소리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반응했다.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낯선 존재는 조직을 위해서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
크억!
뒤에서 목이 잡혔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그녀는 마지막까지 틈을 기다렸다. 놈이 질문할 때 [죽음의 비수]를 사용할 것이다. 이토록 근접해 올 때까지 몰랐다면 상대는 자신보다 월등히 강했다. 강자는 오만하고, 자만심에 취해 있었다.
이제 물어볼 것이다.
누구냐고? 무슨 목적이냐고?
우드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생의 마지막이라는 걸 깨달았다.
왜?
생기가 꺼져 가는 순간까지 의문이 가시지를 않는다. 물어보지도 않고 죽일 거라고는. 기존에 알고 있었던 강자와는 다른 대응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진 않는다.
죽는다고 해도 [언데드의 정수]를 통해 언데드화가 진행이 된다. 그녀는 조직의 헌신자로서, 죽어서도 상부의 명을 따르도록 교육을 받았다. 다른 이들에겐 세뇌로 치부겠지만.
‘반드시 네놈의 정체를 알리겠다!’
조직을 위해 이 한 몸을 바치는 것도 부족하다. 영혼까지도 아낌없이 헌납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조직에서 필요한 인재였다.
그녀는 죽음조차 기꺼이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
불에 타지만 않으면.
화르르르르!
하필이면.
그녀는 뜨겁게 불타오르는 걸 느꼈다. 언데드가 되려면 최소한 몸뚱이는 존재해야 했다. 재가 되어 버리면 부활은 불가능하다.
‘……안 돼!’
그저 조직에 충성했을 뿐이거늘, 잔인한 하늘은 그녀의 바람조차 들어주지 않았다.
아?
소멸이 가까워진 순간 영혼을 강제했던 금제가 풀린다. 강제적으로 오염되었던 영혼이 제자리를 찾으며 평온해진다.
‘……고마워.’
이제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푸스스스스!
충성도 높은 조직원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 추모와 애도의 물결은커녕, 무진은 다음 목표를 향해 쇄도했다.
죽어 버린 년 따윈 애당초 관심이 없었다. 설령 사정이 있다 한들.
파앗!
무진은 주먹을 쥔 후 검지의 가운데 마디에 올려놓은 구슬을 엄지로 튕겼다.
슈우웅!
2개의 구슬이 탄환처럼 발출되어 김이진, 김사진을 노렸다.
부지불식간 예상치 못한 사태였지만, 투귀에 의해 단련된 기감과 육체가 반응했다. 아동 학대가 의심되기는 하나, 혹독한 훈련으로 완성된 무인의 감각은 실로 놀라웠다. 사부를 배신한 패륜아들이긴 해도, 무인으로서의 완성도는 높았다.
꽈아아앙!
구슬이 탱크의 포격 소리처럼 괴랄하다. 일순 공간이 진공상태로 왜곡이 생겼다가 창졸간 퍼져 나갔다.
파파파파파팟!
큭!
김이진, 김사진은 구슬을 막아 내긴 했지만, 물러서야 했다. 구슬이 닿기가 무섭게 폭발하면서 파편이 쏘아졌다. 이중 암기로 내부에 폭약이 들었다.
“반사 신경이 제법이네.”
1차, 2차로 이어지는 연계가 막혔지만, 무진의 노림수는 따로 있었다. 거리를 벌리게 한 후, 제압된 김삼진과 김오진을 확보했다.
인질은 전투에 있어서 가장 방해되는 존재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구하긴 해야 하나, 구하지 못해도 어쩔 수 없는 팔자긴 했다.
친분도 쌓지 않은 타인의 목숨을 위해 내 목숨을 내놓을 순 없잖아.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고, 아버지가 아니면 목숨을 내놓진 않는다.
“그럼.”
빠아아악!
목덜미를 처맞은 김오진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사로잡힌 인질이었기에 ‘왜?’라는 의문이 깃들었다. 마치 먼저 죽어 버린 중계자와 비슷한 눈을 하고 있었다.
“한편이잖아.”
“……?”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기에는 충격이 워낙 컸다. 김오진이 맥을 못 추고 쓰러졌다.
무진은 어설프게 때려서 깨어나도록 하지 않았다. 목을 부러뜨릴 심산으로 친다.
그러다 부러지면 제 운명이고.
파파파팟!
무진은 지체하지 않고 김오진의 혈맥을 모조리 제압했다. 일전에 당해 봤던 구속구를 새로 만들었기에 시험해 보았다.
이제는 혹여 깨어난다고 해도 다시 제압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수작 부리는 연놈들이 워낙 많아서 꼼꼼한 확인은 필수였다.
“아주 똑똑해.”
상황, 구도만 놓고 보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그런데도 역으로 당했을 때까지도 고려한 것이다. 설마 사로잡힌 제자가 배신자였을 줄 누가 알았을까. 매우 실전적인 스타일인 데다가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하는 철두철미함이었다.
파팟!
제압되었던 김삼진의 점혈을 풀었다.
아혈이 풀린 김삼진은 믿기 힘든 현실에 아연실색했다. 엄했던 사부의 밑에서 서로 의지하며 형제처럼 동고동락했기에 배신감이 더 컸다.
“어째서?”
사부의 등에 칼을 꽂고, 형제를 배신한 연유를 김삼진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설령 힘이 들었다고 해도,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지. 이런 식으로 극단적인 수를 쓸 줄은 전혀 몰랐다.
‘멍청하기는, 아니면 믿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무진은 김삼진을 위로하지도, 답을 찾아 주지도 않았다. 남이 찾아 준다고 해서 명쾌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믿음이 클수록 더더욱.
옆에서 아니라고 백번 말을 해 봤자,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도돌이표만 나올 뿐이다. 부부 싸움에 끼어든 타인과 같은 처지였다. 도박하고, 바람피우고, 술 마시고, 패는데 왜 같이 살아? 이해가 안 되는 현실이 결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서 냉혹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말로 설득하리란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이만하면 할 만큼 한 거지.’
투귀는 제자를 키우면서 자신도 모르던 감정에 눈을 떴을 것이다. 처음에는 당황했을 테고, 커 가는 제자들을 보며 흐뭇했겠지.
하나, 정을 베풀고, 잘해 주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로 투귀는 사랑을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이다. 평생을 그리 살아왔으니, 무인으로서의 완성이 다인 줄 알았을 것이다.
삐뚤어져 가는 제자들의 감정은 알아채지도 못한 채.
대체로 원인 없는 결과는 존재하지 않았다. 본인 딴에는 배신감에 억울해할지 몰라도, 옆에서 보면 자업자득이긴 했다. 자식이 부모를 닮듯, 사부와 제자도 다르지 않았다.
부르르르!
계획이 틀어지자 김일진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하며 안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네놈, 평범한 짐꾼이 아니구나.”
“쉐도우 주식회사 관리팀 과장 강운이다.”
일전에는 권왕가 주식회사 관리팀 과장 강운이었으나, 상장 안 했으니 명백한 개소리였다.
여하튼 보직이 존재하긴 했다. 사전에 제인 누나를 통해서 위조 신분을 만들어 놓았다. 넓고 다양한 활동 폭을 위해 신분 위조는 필수였다. 더욱이 해 본 사람이 더 잘한다고, 이런 쪽으론 수면 위로 드러난 조직보다는 블랙마켓이 유리했다.
‘이거 첩보 요원이 된 기분이네.’
영화에서 보면 최고급 슈퍼카를 20년 된 고물처럼 사용하던데. 정부 지원비에 허덕이는 현실적인 요원들과는 많은 차이를 보였다.
“빌어먹을!! 처음부터 우릴 감시하고 있었어!”
“투귀 어르신께는 죄송하지만, 본사로선 최소한의 방비는 해야 했습니다. 그 점,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김일진의 분노는 깡그리 무시한 채 무진은 투귀에게만 깍듯이 예의를 갖추었다.
본사의 소중한 호갱…… 고객이거든.
정작 투귀는 여러모로 상태가 좋지 않은 데다, 정신적으로도 충격이 커서 말문이 막혔다.
‘하긴, 할 말이 없긴 하겠다.’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기분이겠지. 사부도 그렇고, 투귀도 그렇고 등잔 밑이 매우 어두우셨다. 안경을 맞춰 드려야 하나? 본인 자식, 제자는 안 그렇다는 그릇된 사고관이 문제였다.
학교에서 사고 치는 학생의 학부모 대부분이 그런 사고방식이었다. 그러다 나중에 자식에게 버림받으면 어쩌려는지, 원.
제삼자로서는 쌤통이긴 하다.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은 우리의 미풍양속으로서, 자식 잘못 키워 놓고선 잘 살면 배 아픈 일이잖아.
사삭!
대화 중에 김이진과 김사진이 김삼진에게 은밀히 접근했다.
무진은 구슬 3개를 날렸다. 그중 1개는 충격에 넋이 나간 투귀를 노린 김일진의 등을 향했다.
“안 되지.”
하여간 뒤통수를 어지간히 좋아하는 녀석들이었다. 기회만 있다 싶으면 여지없이 뒤를 노렸다. 상대의 빈틈을 허락하지 말라는 투귀의 가르침인 듯하다.
전투의 교과서적인 대응이었다.
슈슈슈슝!
이번에는 무진이 먼저 구슬을 날렸다.
1~2개가 아닌 100개나 되었다. 다발로 뿌려서 김삼진이 물러설 기회를 주었다.
휘리리릭, 착!
카우보이로 빙의한 무진은 라소를 던져 투귀를 잡아챈 후 끌어왔다. 느닷없이 벌어진 사태 속 현실을 인지한 투귀는 라소에 몸을 맡겼다.
무진은 투귀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쩔까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도와 드려요, 말아요?”
“네놈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않느냐?”
얼레, 건져 줬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하네.
난민들다운 적반하장이었다. 불쌍해서 도와줬더니 주인을 내쫓는 격이었다. 이럴 땐 연예인이 솔선수범해야 하나, 자기는 좋은 동네에서 살고 있었다.
무진으로선 끌려다닐 이유가 없었다. 이 와중에도 자존심을 지키려고 주도권 싸움을 한다면 함께 일해 봤자 득이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요. 그럼 수고하세요.”
“……가겠다고?”
기껏 구해 놓고 돌아서는 무진의 돌연한 태도에 투귀는 다급해졌다. 갈 거면 가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나 미련이 보이지 않았다. 구할 수 있으면 구하고, 아니면 말고였다.
“알다시피 저희는 회삽니다. 협상조차 되지 않는 분과 함께 일할 순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이대로 가? 사람이라면 응당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하지 않나!”
“어르신께서는 평소 남의 딱한 사정을 측은하게 여기셨나 봅니다.”
투귀는 말문이 막혀 왔다. 과거를 돌이켜 볼수록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다. 마이동풍, 독고다이, 안하무인이었으며, 호의조차 매몰차게 거절했던 과거가 발목을 잡았다. 그런 주제에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여 화를 낼 자격이나 있을까?
“하아아,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나?”
“계약자로서 공과 사를 철저히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하지.”
“한 식구가 되신 걸 환영합니다.”
“환영 인사는 됐으니 이제 저놈들부터 처리하세!”
“하온데, 그 몸으로 괜찮겠습니까?”
“아직 한 놈 정도는 거뜬해!”
대화 도중에도 노릴 기회는 있었을 테지만, 무진이 날린 100개의 구슬엔 마비독도 포함이 되었다. 일시적으로 육체를 구속하는 마비독이기에 효과가 빠른 대신 지속력은 떨어졌다. 잠시 대화할 시간을 벌었으니 용도는 다했다.
빠드득!
원하는 방향에서 재차 엇나가자 김일진은 죽일 듯이 살기를 발산했다. 계획대로 되었다면 [포식] 스킬을 이용해서 사부의 모든 걸 잡아먹을 수 있었다. 이때를 위해서 그 모진 시간을 견뎠기에 분노를 주체하기 힘들었다.
“3 대 3 맨투맨인데, 이놈은 인질로서 가치가 있으려나?”
“그따위 개수작이 통할 것 같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