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인류최강 남사친-103화 (104/374)

103. 투귀

휴가 첫날부터 의도치 않게 지수와 설전을 벌였었다.

그렇게 집요한 지수는 처음 본다.

누구냐고, 옆에 누구랑 있냐고? 스킨십은 뭐고? 누가 보면 여편네한테 시험당하는 퐁퐁남으로 오해받을 만행이었다.

건전한 음주를 즐긴 무진은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다분히 우연한 만남이었고, 전화번호도 교환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기어이 영상통화로 아버지까지 나서고 나서야 겨우 온다는 걸 말렸다.

-와, 우리 몰래 여행 갔네! 올 때 내 선물 사 와!

-그 누나들 sns 여신들이잖아. 나중에 소개해 줘.

-칠검의 변형에서 흐름이 끊겨, 영상 보고 확인 부탁.

-주군을 모시지 못해 분할 따름입니다.

지수의 오해를 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자 폭탄이 날아왔다. 누가 보냈는지 이름을 보지 않아도 특색 하나는 확실했다. 읽은 다음 확인해서 문자를 보내 주었다.

-돌하루방.

-유정이한테 보냈다.

-초절정에 이르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야. 해결 방법은 2천만 원.

-주군은 하늘이다.

성실하게 답변을 한 후, 아버지하고 3시까지 마셨다.

공항 근처의 숙소에서 2박을 보내고, 반대편에 잡은 숙소에서 2박을 보내는 중이다.

제주도에 온 초심자는 2박 3일로 전부 구경하려고 하는데, 그러다간 하나도 보지도 못하고 도로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제주도를 제대로 관광하려면 최소 4박 5일은 필요하고, 숙소를 두 곳으로 잡아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제인 누나한테서 연락이 왔다.

-보냈어.

-고마워요.

-그런데 대체 뭘 하려고?

-정의 구현이요.

-……많이 해라.

한라산에 올라갈 때가 되었다.

3일 연장은 무리였는지, 숙취가 풀리지 않은 아버지에겐 아침 조깅 삼아 올라갔다 온다고 했다.

해발고도가 1,900m가 되지 않아, 30분 코스로 딱이긴 하다. 최소 10,000m 돼야 조깅할 맛이 난다.

그 예로 제주도는 안 갔어도, 아침에 잠깐 에베레스트산을 등반하고 아카데미에 가곤 했었다.

***

-한라산 백록담 던전 발생.

-꼬리칼 원숭이 던전(cc)

5일 전에 발생한 던전으로 한라산 입구가 통제된 상태였다. 던전이 공략이 될 때까지 한라산 등산이 자유롭지 않았다. 등산로 입구가 막혀 있었고, 헌터의 진입만 허락되었다.

공략에 나선 대부분은 중소 길드와 자유 용병으로. 칠대 가문이나 대형 길드에서 나서지 않는 연유는 순익 계산에 있었다. 인원을 보내 공략을 해도 비용 대비 수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론 중소 길드나 자유 용병과의 상생을 위해 양보했다는 식으로 보도된다. 간간이 말도 안 되는 짓들을 저지르기는 해도, 칠대가문과 대형 길드도 최소한의 룰은 지켰다.

5일에 걸쳐 꼬리칼 원숭이를 사냥하며 레벨을 올리고, 장비와 아이템을 획득했다.

한라산 던전은 중소 길드나 자유 용병에게는 나름 괜찮은 밥벌이였다. 공략 대상인 원숭이 꼬리에 달린 칼은 녹여서 장비를 만들거나 강화하는 데 유용했다.

정부 산하 던전 관리팀이 자원 던전으로 규정한 이상 중소 길드와 자유 용병은 공략 시간을 늘려서라도 본전 이상을 남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렇다고 단독으로 공략하지는 않는다. 꼬리칼 원숭이의 등급이 낮기는 해도 무리를 지어서 움직였다. 단독 공략을 허락할 만큼 만만하진 않았다.

퍼엉, 꼬리~~~~!

서걱, 꼬리~~~~!

뻐억, 꼬리~~~~!

70마리의 꼬리칼 원숭이에 포위되었지만, 전투의 양상은 9명이 일방적이었다. 게다가 3명은 짐꾼이고, 1명은 손 놓고 있었다. 다섯으로 70마리를 압도하며 학살했다.

내력의 흐름은 비슷한데, 각자 사용하는 병기는 검, 도, 창, 권갑, 도끼로 다양했다.

병장기를 다루는 개개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합격이 꽤 유기적이었다. 손발을 맞춘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듯, 위치와 간격이 절묘하다.

꼬리칼 원숭이가 무리를 지어 달려들지만, 병기의 이점을 살린 합격에 속절없이 당했다. 10분도 안 되어서 마물을 전멸시켰다. 중소 길드와 자유 용병 수십을 투입한 사냥보다 빠르다.

그런데도 뒷짐을 쥔 채 명령만 내렸던 노인은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쯧쯧쯧, 10년이 넘도록 합을 맞추고도 그 모양이라니, 내 편히 눈을 감을 수가 없구나.”

“송구합니다.”

사부와 제자의 관계로 보였다. 사냥할 때부터 노인은 제자들을 주시하며 부족한 부분을 지적했다.

짐꾼들이 보기에는 완벽했지만, 노인에겐 부족한 듯하다. 못마땅해하는 사부의 언행이 처음이 아닌 듯, 제자들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따위 시답지도 않은 던전을 공략할 때가 아니거늘.”

노인은 던전의 등급이 낮아 제자들의 성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나, 약속은 지켜야겠지. 다음 장소로 간다.”

“예, 사부님.”

짐꾼들이 주변을 정리했다. 노인의 성급한 성향을 봤기에 최대한 서둘렀다. 제자들도 손을 보태서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여전히 마땅치 않아 하는 걸 보면 노인의 꼰대질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갔다.

다음 꼬리칼 군락지로 도착할 때쯤, 던전에 알림이 울렸다. 노인의 못마땅한 기색을 던전이 눈치라도 챘을까?

말이 씨가 되었다.

-몽키킹의 강림.

-화과산의 성지.

던전의 등급이 삽시간에 s급으로 치솟았다. 이처럼 몇 단계씩 뛰어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더욱이 s급의 던전은 몇 년간 발생한 적이 없었다.

“……s급이라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우린 뒈졌어!”

던전을 공략하러 들어온 길드원과 자유 용병들의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공략 가능한 최대 범위는 bb등급 정도였다. s급이라니, 스쳐도 사망이었다. 살고 싶으면 최대한 빨리 던전에서 벗어나야 했다.

꼬리~~~~~~~칼!

몽키킹의 강림을 증명하듯, 꼬리칼 원숭이의 규격이 커지고, 털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기세가 등등해진 꼬리칼 원숭이들이 날뛰었다. 이제까지 자신들의 꼬리를 탐한 인간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도망쳐!”

“이것들이 방사능을 처먹었나?”

“……오지 마, 미친!”

동족의 원수를 갚으려는 꼬리칼 원숭이의 의리였다. 인간들의 대가리를 잘라 제단에 놓고 죽은 동료를 추모하려는 것이다. 몇몇이 대가리가 잘렸고, 수급을 든 꼬리칼 원숭이들이 흥겹게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잔뜩 독이 오른 꼬리칼 원숭이는 그것으론 성이 차지 않았는지, 모조리 대가리를 자르려고 했다.

꼬리칼의 예기와 단단함이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막아선 장비가 버티지 못하고 맥없이 썰려 나간다.

“빨리 입구로 가!”

“씨발, 백록담이나 구경하려고 했는데!”

“나도!”

맑은 날의 백록담을 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로. 여행 시 기후를 맞추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단, 던전을 공략한 이후에는 꽤 맑은 날씨를 보인다. 던전의 마나가 이상 기후를 안정화하는 것이다.

우르르르!

꼬리~~~~~~칼!

도망치는 인간들을 사냥하려는 꼬리칼 원숭이들이었다. 소리를 지를 때마다 군락지에 있었던 동료들까지 합세하고 있었다.

그 수가 족히 수백 마리는 넘었다.

몽키킹이 강림하기 전까지는 수가 많기는 해도 상대할 수 있었지만, 진화한 꼬리칼 원숭이는 1마리도 벅찼다.

다다다다닥!

다들 혼이 빠지도록 던전의 입구로 도주했다. 빌어먹게도 꼬리칼 원숭이의 속도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빨랐다.

“……뭐야, 저건?”

“원숭이가 육식이었어?”

“몰랐냐, 이 새끼야!”

“잡식이야, 병신들아!”

날카로운 송곳니를 자랑하며 길드원과 자유 용병들의 서슬을 서늘하게 해 주었다. 잡히는 순간 대가리가 잘리지 않으면, 식용으로 쓰이게 생겼다.

으아아아아악!

추격에 걸린 용병들의 비명이었다. 간신히 막고는 있지만, 꼬리칼이 병기를 싹둑 잘라 내 버렸다. 언제 난도질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위기. 식용과 수급으로 어떤 게 낫나 고민을 해야 할 판이었다.

꽈아아아앙!

죽기 일보 직전, 꼬리칼 원숭이의 몸체가 박살 나며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얼굴에 튄 비릿한 혈향에 용병들은 넋이 나가 있었다.

노인이 돌아보며.

“뭐 하느냐, 어서 가지 않고.”

“……알겠습니다!”

겨우 산 용병들은 인사도 없이 헐레벌떡 도망쳤다. 노인은 도망치는 자들을 탓하지 않았다. 상대가 되지 않는데, 도와주겠다고 설치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너희들은 이놈들을 맞아라.”

“예, 사부님!”

노인의 시선은 꼬리칼 원숭이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쿠웅, 쿠웅!

굉음이 울리며, 땅이 흔들렸다. 꼬리칼 원숭이 무리의 너머로 거대한 황금색 실루엣이 비쳤다. 족히 30m는 되어 보이는 거인의 신형, 화과산의 괴물 몽키킹이었다.

-하찮은 인간 놈들, 모조리 죽어랏!

주변의 빛을 흡수했는지, 황금색 털에 반사되어 부처의 현신처럼 휘광이 번쩍였다. 신화시대 제천대성의 강림처럼 보이나, 실상은 던전의 마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뇌리를 울리는 심언을 사용했다. s급 던전의 보스다운 가공할 기세를 발산한다.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선 몽키킹의 기세에 잡아먹힐 수 있었다.

다행히 노인의 심장은 나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투기를 발산하며 웃고 있었다. 오랜만에 잊고 있었던 전장의 찌릿찌릿한 전율을 만끽했다.

“오너라, 원숭이 놈아!”

-버러지 같은 인간, 죽엇!

살의 가득한 진언을 발동하여 일대를 압박했다. 무형지기와 비슷하면서도 심혼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절정 이상의 경지가 아니고선 버티기 힘들었다.

마치 중력 스킬처럼 압박을 가한 몽키킹이 내리찍듯이 주먹을 내질렀다. 거구와는 어울리지 않게 기민한 데다가 굉장히 빨랐다.

슈아아아앙!

노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거대한 암반에 가속도가 붙은 듯, 내리치는 몽키킹의 주먹을 주먹으로 응수했다.

퍼어어어엉, 쩌저저저저적!

주먹과 주먹이 닿은 지점에서 굉음이 울리고, 폭발과 함께 사방으로 파문이 번지며 균열을 일으켰다.

-감히!

인간에게 주먹이 막히자 몽키킹이 분개했다.

노인의 정면 격돌은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몽키킹의 주먹을 가림막으로 이용, 팔을 타고 들어가며 관절과 혈맥을 두들겼다.

파파파파팟!

노인은 몽키킹의 오른팔을 나선형으로 파고들어 삽시간에 목 근처까지 타고 올랐다. 위기감을 느낀 몽키킹이 팔을 휘젓지만, 관절과 혈맥에 타격을 받아 늦고 말았다.

번뜩!

맨손인 줄 알았던 노인의 손에 천극(穿戟)이 잡혀 있었다. 그는 일절의 망설임도 없이 몽키킹의 경동맥을 노렸다.

스왁!

파아아앗!

찰나의 간격, 핏물이 튀었다. 하나, 노인의 의도와 달리 깊지는 않았다. 몽키킹이 목을 돌리면서 좌장(左掌)으로 노인을 노렸기 때문이다. 덩치와는 다른 빠른 대처와 기민함이었다.

“허, 아주 제법이구나.”

파리채 스매싱 같은 좌장이었다. 노인이라도 맞았다면 충격이 상당했을 것이다.

몽키킹의 대응도 완벽하다고 볼 순 없었다. 노인의 손에 있던 천극이 몽키킹의 손바닥에 박혀 있었다. 몽키킹의 경동맥을 벤 후, 자신을 노리는 몽키킹의 좌장에 역공을 가했다.

실로 놀라우리만큼 완성도가 높은 전투 스킬이었다. 찰나에 최적화된 판단력을 보여 주었다.

-죽인다!

상처를 입은 몽키킹이 포효하며 가공할 기운을 발산했다. 천지 사방을 압도하는 왕의 군림이었다. 그저 기세만이 아닌 2페이즈로 넘어가듯 털북숭이였던 몽키킹의 털이 갑옷으로 변했다. 또한, 손에 들린 기둥 같은 봉은 흡사 여의봉을 연상케 한다.

“하하하하, 좋구나!”

나도 질 수 없다는 듯 노인의 기세도 바뀌었다.

뚜드드득!

마른 체격이었던 노인의 신체가 부풀어 오르면서 거구의 중년 사내로 변했다. 동시에 노인의 손에는 검과 도가 좌우로 들려 있었다.

채애애앵!

퍼어엉!

노인과 몽키킹이 겹칠 때마다 허공이 깨진 유리잔처럼 균열이 번지며 사방으로 나락을 선사했다. 귀를 찢어발기는 병기의 울림이 만천하를 떨게 한다.

노인의 손에는 이제 건틀릿이 달려 있었다. 격돌할 때마다 상황, 간격에 맞추어서 병기를 사용했다. 제자들이 각기 다른 병기를 실전적으로 펼칠 수 있는 이유였다.

투귀 김석천.

타고난 싸움꾼으로 불렸지만, 그의 진면목은 병기술에 있었다. 천병을 다루는 싸움꾼, 천병자라는 또 다른 이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던 동안 제자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홀로 싸우는 걸 즐겼던 투귀의 안하무인 했던 과거를 안다면 놀라운 변화였다.

채애앵, 쩌저저적!

푸아아앙!

몽키킹도 왕이라는 이명에 걸맞게 가공할 봉술을 발휘했다. 천병공을 개방한 투귀의 전투력에 밀리지 않은 용호상박이 이어졌다. 그럴수록 일대는 융단폭격을 맞은 듯 폭발하고, 파이고, 산화되었다.

꼬리…… 꾸웩!

투귀의 제자들도 활약상이 놀라웠다. 이전에 꼬리칼 원숭이와는 다른 진화된 마물임에도 전력을 드러내자 압도했다.

김일진, 김이진, 김삼진, 김사진, 김오진.

다만, 투귀의 작명 센스가 순서대로 꽝이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이름 짓기가 얼마나 귀찮았으면 왕삼, 전칠과 같은 식으로 지었을까?

조상께서 자식이 오래 살기를 바라며 개똥이, 금순이로 지은 것보다 심하다. 그건 차라리 의도라도 좋지, 이건 자기 부르기 좋으라고 지은 것이다.

도망치지 못한 일꾼이 무심코 주절거렸다.

“스님들 이름 같네요.”

“……?”

일진(日進) 스님, 이진(移鎭) 스님, 삼진(三振) 스님, 사진(寫眞) 스님, 오진(誤診) 스님.

매일 혹독한 훈련과 대련을 하느라,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어 보지 못했던 투귀의 제자들이다. 만약 들었으면 경기를 일으켰을 것이다.

‘확실히 잘 싸우네.’

투귀는 물론, 제자들 역시 싸울 줄 아는 이들이었다. 전투에서 스텟과 속성이 중요하긴 해도, 전투 감각을 무시할 순 없었다. 비슷한 수준이나, 근소한 차이에선 전투 감각이 승패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재탕이지만, 이게 현실이지.’

s급 던전을 공략하려면 중소 길드로는 어림도 없다. 막대한 희생을 초래할 뻔했던 한라산 던전에 투귀와 제자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과거의 명성에 사로잡혀 현실을 정확히 보지 못하는 경우와는 다르다. 나이가 들었어도 괜히 투귀라 불리지 않았다. 전투가 격화될수록 투귀는 본연에 잠재되어 있던 투기가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쩌어어엉, 파아앗!

꽈아아앙!

한라산 전체를 흔드는 정점에 도달한 파괴력이었다. 투귀의 무력이 능히 10대 초인에 근접해 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s급 마물, 몽키킹의 저항도 상당했다.

투귀의 전투 감각이 살아나는 만큼, 몽키킹의 분노도 극한에 도달하고 있었다. 끝을 모르고 상승하는 격전, 투귀의 제자들도 마지막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어떻게, 인간 따위가!

“허허허, 수련이 부족한 모양이구나.”

투귀의 수도가 몽키킹의 천령개를 반으로 쪼갰다. 두개골이 갈라지며 뇌수가 선혈과 함께 사방팔방으로 튄다. 머리가 갈린 몽키킹의 눈동자가 붉게 충혈이 되며 터져 나온다.

[던전 공략]

-보상 : 여의봉(s급), 천도복숭아(s급), 긴고아(ss급)

몽키킹이 볼품없이 고꾸라지면서 위태로웠던 던전이 공략되었다. 마구잡이로 날뛰던 꼬리칼 원숭이들은 2페이즈가 풀리면서 등급이 수직으로 떨어졌다. 그 전에도 상대가 되지 않았던 꼬리칼 원숭이들은 제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도륙당했다.

s급 던전답게 보상이 적지 않았다.

자유자재로 변환, 소환되는 천병기의 소유자인 투귀조차 감흥을 보였다.

“사부님, 끝냈습니다.”

“늦었구나.”

“송구합니다. 다음에는 늦을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래…… 컥!”

평소처럼 무심히 대답했던 투귀의 동공이 여느 때와 달리 흔들렸다. 검이 복부를 관통했다 빠져나가며 붉게 물들어 갔다. 조금만 깊게 들어갔다면 즉사를 면치 못할 관통상임에도, 투귀는 작금의 현실을 믿기 힘들었다.

“……네가 어떻게?”

“사부께서 이런 얼굴도 할 줄 아는 분이셨는지 몰랐습니다. 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줄 알았는데.”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냐?”

“질려서요. 제가 사부님의 종도 아니고, 대체 언제까지 이 짓거리를 해야 하는 겁니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건 사부님의 생각이지요. 언질이라도 미리 해 주었다면 모를까? 매일이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거든요.”

“이놈. 그렇다고 내게 어떻게?”

“혹시, 우릴 자식처럼 여겼다고 하실 요량입니까? 웃기지도 않는 개소리는 집어치우세요.”

김일진의 얼굴엔 지겨움이 한가득이었다.

칭찬 한 번 받아 보지 못했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공짜로 부림을 당하고 맨몸으로 나갈 순 없지 않은가.

쿨럭!

김삼진과 김오진도 쓰러져 있었다. 기습적인 암수인 데다가 [지옥의 정수]를 복용한 상태였다.

[지옥의 정수]는 신체의 능력을 일순 급속도로 떨어뜨리는 효능이 있지만, [지옥의 번뇌]와 결합하지 않으면 아무 효과가 없다. 두 가지의 독이 하나가 될 때 효능이 발휘하기에 투귀조차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완벽한 독이라고 정의하긴 어렵다. 신체 능력을 떨어뜨린다고 해도, 투귀 정도의 무인에겐 통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내외력의 소모가 심한 상태여야 했다.

김일진, 김이진, 김사진은 오늘을 노렸다고 보긴 힘들다. 그저 사부가 전력까지 끌어 올릴 대상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날이 오늘이었을 뿐이다.

부르르르르!

투귀는 피눈물을 흘렸다. 그의 일생에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극한의 분노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비록 제자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아들이라고 여겼었다.

“사부, 억울해하지 마세요. 천병류의 계승은 우리가 할 테니까요.”

“……그리되도록 ……크으으!”

“아 참, 검에 독이 묻은 걸 말씀 안 드렸네요. 평소라면 쉽게 해독하실 텐데. 쯧쯧쯧!”

마치 자신이 받은 걸 되돌려주겠다는 듯, 김일진은 혀를 차며 투귀를 조롱했다.

“사부님의 몸은 잘 쓰겠습니다.”

“……하늘이 두렵지 않은 것이냐?”

“하하하하하, 이제 와서 저를 웃겨 죽이려고 하시다니 대단한데요.”

“……네놈이 정녕!”

분노한 투귀가 어떻게든 해 보려고 했지만, 김일진의 대응은 치밀했다. 투귀의 제자답게 방심 따윈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남은 제자들을 살려 놓은 이유도 있었다. 투귀가 저항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포였다.

하나, 인생은 원래가 길이 있으면 흉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에게 흉이 나타났다.

그것도 대흉이.

우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중계자는 제거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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