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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인류최강 남사친-90화 (91/374)

90. 판을 깔다(2)

“성운 그룹 진 회장 주변을 감시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조사해 보니 그 집안은 꽤 복잡하더군요.”

“본가에서 손을 내밀기보다는 사돈을 통해 간접적으로 만나는 편이 이목을 집중시키지 않을 거다.”

“방법은 훌륭하지만, 호칭은 조금 신경 써 주시길 바랍니다. 저와 지수는 친구 사입니다.”

“지나고 나면 친구가 남편 되고, 마누라 되는 거야. 나도 그렇게 시작했어. 그때 우리 마누라가 경리로 왔을 때, 얼마나 예뻤던지.”

“그건 가주님 사정이고요, 우리는 반드시 뜨거운 우정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무진은 남녀 간에도 진정한 친구가 있다고 믿기에 열의를 불태웠다.

화르르르르!

앗, 뜨거.

나, 수화불침인데.

덩달아 지수가 강렬한 열의를 불태우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친구는 닮는다더니, 유유상종이었다.

우정을 위하여!

팔목 크로스가 아니라 죽빵이 날아왔다.

‘입이 방정이었나?’

***

무진은 지철과 지연을 만났다.

가문의 배신자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대단치는 않아도 지철과 지연의 협조가 있었다. 물론, 아버지를 배신했다는 사실에 안색이 편친 않았다.

외총관과 백무대의 부대주는 공식적인 지위를 내려놓은 상태다. 부상을 치료하기 위한 요양 차원의 휴가로 포장이 됐을 뿐, 실제로는 감금된 상태나 마찬가지다. 남매는 알게 모르게 눈치를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제 세상들이 올 줄 알고 활개 치던 때와는 다르게 눈칫밥을 먹고 있으니 현타가 세게 올 수밖에.

“가문의 공로자들께서 표정들이 왜 그렇지?”

“우리가 지금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면서 그러는 거야!”

“박쥐 같은 연놈들이라고 하겠지.”

“그걸 알면서 이러는 건 너무하는 거 아냐?”

“죽이지 않았으면 된 거 아닌가. 대체 뭘 더 바라는 거지?”

“위로는 못 해 줘도, 비아냥거릴 필욘 없잖아.”

가문을 위한 대승적인 결정이나 지철과 지연의 처지는 애매했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끼지 못하고 겉돌고 있었다. 공을 세웠다곤 하나, 가족을 저버린 배신자였었다.

“큰오빠가 우릴 죽일지도 모른다고!”

“걱정은. 단전하고 사지근맥이 온전하지 않잖아. 그러지 말고 일이나 하나 더 하자.”

“……우릴 언제까지 이용하려는 거야?”

“그래서 아버지를 버릴 셈이야? 하긴, 자기들 안위가 중요하지. 나중에 춘부장께서 돌아가시면 부조 많이 할 테니, 그걸로 큰 집 사고 잘 살아.”

“……이 악마 같은 놈!”

지철과 지연은 무진의 대답에 치를 떨었다. 자신들도 잘한 건 없지만, 무진은 상상을 초월할 개 같은 놈이었다. 정말 감정이란 게 없는 냉혈인 같았다. 피도 눈물도 없다는 소릴 들어도 이상하진 않았다.

“한탄만 한다고 현실이 바뀌진 않아. 더욱이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쉬워.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를 생각해야지.”

“엄마는 아무 잘못이 없어!”

“알지. 그런데 이대로 끝이 나 버리면 과연 어떤 대접을 받게 되실까? 우리, 상식적으로 가자. 가문을 위해 헌신이라도 해야 헌신짝처럼 버림받진 않을 거 아냐.”

무진은 지철과 지연을 안타깝게 보지 않았다.

모든 일은 선택에 의한 결과이며, 자업자득이었다. 차라리 쓸모가 있을 때, 그간의 실수를 만회해야 했다. 그래야 나중에 퇴직금이라도 챙겨 줄 마음이라도 생기지.

“아빠는 몰라도, 오빠는 우릴 용서하지 않을 거야. 아마 어떤 식으로든 복수하려고 할걸.”

“그러니까 다독여 줄 필요가 있지. 성만 낸다고 현실이 바뀌진 않잖아.”

지성이면 감천을 들먹이며, 자주 만나 보라는 무진의 제안에 지연은 탐탁지 않은 듯 되물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야?”

“가문을 배신하고 여태 살아 있는 것만 봐도 난 할 만큼 했다고 보는데. 아니면 가족들 모두 병풍 뒤에서 향냄새나 맡고 있었겠지.”

지철과 지연은 마른침을 삼켰다.

현실을 돌아볼수록 무진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법으로야 직접 처벌을 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런가. 각성의 시대가 된 이후로, 사람을 죽일 방법은 꽤 많아졌다. 걸리거나, 공론화가 됐을 때 문제가 되기에 적당히 눈치를 볼 뿐이다.

실제로도 그런 사건들이 많아서 정부에서는 의혹이 될 만한 사건들을 빅데이터로 촘촘히 분석하는 편이긴 했다. 그러나 정부가 약자의 편에 서리란 기대는 내려놓는 편이 이로웠다. 언론에서 띄워 줄 때나 여론을 의식해 나서지, 대부분 강자의 편에 있었다.

“나를 나쁜 놈이라고 떠들기 전에 현실을 정확히 봐. 만약 사부님이 죽고, 창황가에서 개입했으면 가문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그건 결과론적인 거잖아.”

“창황의 계획을 알고는 있고?”

“그게 무슨 소리야?”

“창황은 사부님의 생기를 흡수할 계획이었어. 또한, 흡수하고 남은 찌꺼기는 언데드로 부활시켜 평생 부려 먹을 속셈이었지.”

“아빠는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다고 하셨어!”

“맞아, 일말의 양심은 있었지. 한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결국엔 동조했는데.”

무진은 전말을 사실대로 전하지 않았다.

지철과 지연이 유경운에게 들은 진실과 교묘하게 섞어서 현실을 호도했다. 작금의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 무진은 창황을 기습한 후, 유경운을 쓰러뜨린 것이다. 유경운의 기억에 창황은 살아 있을 테고, 전말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모르는 내용은 그럴듯한 상상력과 추론에 맡길 뿐이다.

상상은 자유니까.

“우리가 뭘 하면 되는 건데?”

“우선은 가족을 회복해야겠지.”

“그런다고 믿어 주진 않을 거 아냐?”

“알면서 속아 줄 거야. 그래야 자유를 만끽할 수 있으니까.”

무진의 속내를 지연과 지철은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특별히 지시를 내리진 않았다.

“우리가 필요하기나 해?”

“딱히 필요하진 않아도, 방해가 될 순 있지. 정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약속을 어겼다는 것 정도로 설정해 주면 되겠네.”

“억울하다고 하소연이라도 하라는 거야?”

“그러면 설득력이 조금이라도 더 생기겠지.”

무진은 마무리하고 일어섰다. 이쯤 했으면 적어도 알아들었을 테니, 판단은 지철과 지연의 몫이었다.

“간다.”

“꺼져!”

지철과 지연은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왔다.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됐는지 한심할 뿐이다.

“개자식,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언제고 이 빚은 갚아 줄 테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넌 화도 안 나? 우리가 이런 취급 받으려고 저 새끼의 명령을 따른 건 아니잖아!”

“그래서 개길 수나 있고! 가장 먼저 배신한 건 오빠면서!”

“끄응, 다 지난 얘기를.”

“우리끼리 싸워 봤자 될 일은 아냐. 할아버지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이상 아빠하고 큰오빠는 가망이 없어. 그렇다고 외부 세력과 동조하는 건 너무 위험해. 무진의 말대로 우린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해.”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동조하지 않았을 거야!”

“말조심해.”

“그 새끼가 나라님도 아니고, 없는 데선 욕 좀 할 수 있잖아.”

“후회할 것 같은데.”

“후회는 이미 많이 했어. 더는 안 해!”

때마침 지철의 휴대폰이 울렸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가 떴지만, 누군지 알고 있었다. 급히 전화를 받자마자 식겁한 얼굴이 되었다.

“어, 왜?”

-그렇게 불만이면 넌 빠져.

“어떻게?”

-도청 장치를 놓고 갔거든.

“……?”

망할!

옆에서 안도하는 지연을 보자, 왜 그렇게 조심했는지가 이해되었다. 알았으면 미리 말해 주지 않았냐고 타박할 수도 없고, 눈치 없었던 자신을 탓해야 했다.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이건 그저!”

-뚝!

배신자의 말로답게 팽당하지 않으려면, 뭐가 됐든 지철은 개처럼 일할 팔자였다.

‘전생에 내가 선조, 인조, 고종이었나?’

그래, 왕이 될 상이었어.

***

-창황, 오랜만에 겨뤄 보자. 싫으면 말고.

성의라고는 일절 담기지 않은 간단한 메시지. 그저 권왕가의 공식 전문을 통해 창황가에 보내졌을 뿐이다.

비공식적인 대련과는 다른 공식적인 결투 제안으로. 가타부타 거절해도 무방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거절하기 힘들었다.

권왕가의 공식 제안에 창황가는 미적거렸다. 3일 후 이런 식의 일방적인 제안은 옳지 못하다는 항변을 했다.

공식적인 항변이 아닌 비공식적인 루트로.

-거절할 거면 직접 말을 해. 왜 뒤로 호박씨를 까는 거야?

권왕가는 항의를 받자마자 고스란히 까발려 창황가를 꼽주었다. 쫄리면 쫄린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라는 것이다.

창황가의 대변인은 그런 일 없다고 즉각 응답했으나 여론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먼저 때렸는데도, 맞은 놈이 그럴 수 있지, 라고 수긍하면 어떻게 보겠는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면 이해하기 어려우나, 권왕가와 창황가는 무인의 가문이었다.

무인의 세계는 예전부터 힘센 놈이 장땡이다. 억울하면 강해지란 말이 상투적이었다.

-자고로 쫄리는 놈이 주둥이가 긴 법이지.

-창황이 쫄았다는 데 내 자존심을 건다.

-창황 발가락도 안 되는 것들이 지랄일세.

-이쯤 되면 권왕이 작정하고 꼽주는 것 같은데! 이러고도 피하면 사내가 아니지.

-이거 전에 끝난 던전 웨이브 때 뭔 일이 있었던 거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 권왕이 이러는 건 이상하잖아.

-야, 너희들 잊었어? 권왕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하고 뇌 구조 자체가 달라. 언제 상식적으로 행동했냐고!

-하긴, 또라이가 보존 법칙을 어기고 한동안 조용하긴 했지.

-그래도 티키타카가 재밌지 않냐!

-우리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보면 되지.

-창황이 떡 된다는 데 내 자존심을 건다.

-이 새끼, 아까부터 뭔 자존심 타령이야. 있기는 하고? 희미해서 보이지도 않는 거 아냐!

권왕의 행실이 좋게 보이진 않아도 호쾌한 면은 있었다. 한미일중러의 각성자가 모이면 간간이 사이다를 제공해 주었다.

그런 전적이 있더라도 사전 협의도 없이 대결 제안을 한 것은 무례한 행위였다. 공인이라면 사전에 교섭해서 상대방의 허락을 구해야 했었다.

사리 분별을 가진 사람이라면 응당 권왕가를 질타하고, 창황가를 옹호해야 마땅하나. 사람들의 관심은 권왕과 창황의 대결에 쏠려 있었다. 다들 누가 더 강한지 알고 싶었다. 아무리 이성과 논리로 무장해도,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은 이길 수 없었다.

-유쾌하네. 솔직히 우리가 너무 정체되어 있기는 했어.

-맞아,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언제까지 전대의 명성에만 기대 살 거야.

-이러다가 한중일의 구도가 또 달라질 수도 있다고! 난 중국이나 일본한테 고개 숙이는 건 다시는 못 봐.

-근래에 들어 세계 서열전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것도 다 그런 기조 탓이지.

-이럴 때일수록 치열해질 필요가 있다고. 권왕과 창황의 대결을 필두로 윗대가리들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봐. 체면 따지다가 국가 경쟁력만 하락할 거야.

-여긴 다 잃을 것들 없는 새끼들 천진가 보다. 너희들은 가진 것 전부 토해 내고 싸우라고 하면 싸울 수 있어?

-그만큼 가졌으면 됐지. 꼭 자기는 현명한 척하는 새끼들이 많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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