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인류최강 남사친-87화 (88/374)

87. 이것도 패륜인가?(3)

“어느 분에게 사사한 것이냐?”

“지수요.”

“그렇구나, 다른 스승이 있었…… 엥?”

“뭘 그렇게 놀라세요?”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게냐?”

“사실인 걸 어쩝니까.”

이놈이 나를 놀리나? 그런 생각마저 들었는데, 제자 놈의 표정이 지나치게 태연했다.

그래도 그렇지, 손녀가 스승이면 나는 뭐야?

청출어람도 정도가 있었다. 지수의 활약상이 생도의 수준을 넘어섰다곤 하나, 무진과 비교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차라리 손녀와 비슷한 성취였다면 모를까.

“그딴 말이 통할 성…… 어?”

무진은 사부의 말이 끝나기 전에 핸드폰에 저장한 지수의 영상을 틀었다.

-할아버지, 많이 당황스러우시죠. 저도 많이 당황스러웠어요. 글쎄 이 자식…… 아니 무진이가 저도 모르는 사이 절 스승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허락도 없이 남의 알맹이를 쏙쏙 빼먹고 발전시킨 거 있죠. 아무른 그렇게 됐어요.

마치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준비성 하나는 철저한 녀석이었다. 어찌 됐든 지수가 할아비를 속일 이유는 없을 테고, 제자가 아니었으면 가문이 박살 났을 것이다. 애초에 속였다고 화를 내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대체 언제부터야?”

“지수가 유치원에 올 때부터요. 권왕가의 정수를 시키지도 않았는데 잘 가르쳐 주던데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보여 드릴까요?”

“오냐, 어디 한번 보여 주려무나.”

권왕은 이때를 기다렸다. 한번 붙어 보자고 하기에는 제자의 은혜가 깊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도 없기에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래도 너무나 궁금하다. 제자의 성취가 얼마나 대단한지.

“적당히 할까요? 최선을 다할까요?”

“열 받게 하는 재주는 타고났구나!”

권왕은 다짐했다.

사부를 기만한 죄를 상쇄할 만큼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아주 곤란하게 될 것이라고.

“그 전에 연무장부터 강화해야겠습니다.”

“이제 와 말 돌리는 건 아니겠지?”

“저한테 물려주실 텐데, 부서지면 아깝잖아요. 이게 다 돈이에요. 아껴야 잘 살죠.”

“누가 물려주기나 한대!”

“저 아니면 누구한테 물려주려고요?”

“그거야, 내가 알아서 해.”

이 요망한 제자 녀석은 사부의 머리 꼭대기에서 놀려고 했다. 사부로서 제자가 오만함에 물들지 않도록 철저히 짓밟아 줄 의무가 있었다.

꿈에서라도 나타나서 오줌을 지리게 해주마!

우우웅, 솨아!

무진은 7계식의 강화, 보존 마법을 걸고 결계와 진법으로 연무장을 둘러쳤다. 사부님과의 건전한 대화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보안 작업이었다.

“3수 양보하실 건가요?”

“우리가 언제부터 그런 걸 따졌더냐.”

“과연 제 사부님이세요.”

“시끄럽고, 이거나 먹거라!”

권왕이 별안간 치고 들어왔다. 빛살 같은 속도에 잔영만이 덩그러니 제자리에 남았다.

전체를 뭉개 버리는 파괴력이 아닌, 정련되어 극타점에 이른 권의 극한이었다. 관통력을 극대화한 대구경 저격용 총처럼 표적지를 꿰뚫는다.

쩌어어어엉!

막혔다.

예상을 상회하는 대응에 권왕의 눈빛이 화염처럼 이글이글 타오른다. 속도에 치중한 기습적인 수긴 하나, 권심(拳心)에 제대로 내력을 실었다.

‘보고 치다니!’

권심과 권심이 마주했다. 선수를 빼앗기고도 결과가 같다면, 그것이야말로 완벽한 후발제인이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창황과의 혈전은 저주, 독, 스킬에 영향을 받아 전력과는 거리가 있었다. 온전했다면 예전과 다름없이 창황은 시다바리 좆밥이었다. 같잖은 수작을 부리기 전까지야 친구로서 대해 줬지만, 이제는 좆밥으로 부르기로 했다.

전력을 회복한 후 깨달음까지 더해진 권왕이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부에게도 감춘 사특한 짓에 불쾌해야 마땅하거늘.

“크하하하하하하, 좋구나!”

“사부님이 좋으면 저도 좋습니다.”

권왕은 달아오르는 육체에 희열을 느꼈다. 그간 적수라고 해 봐야 많지도 않았고, 명성을 떨친 자들은 겨루기도 힘들었다. 창황이야 젊은 시절 멋모를 때나 신나게 팼을 뿐, 호적수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다시는 예전과 같은 전율을 맛볼 수 없을 줄 알았더니, 뜻하지 않게 호적수를 만났다. 지금부터는 사부와 제자가 아닌 권왕과 무진이었다.

착!

정중동의 묘리.

일격의 겨룸 이후로 무진과 권왕은 자세를 잡은 채 서 있었다. 막무가내로 싸울 것 같으나, 의외의 소강상태였다. 다만, 겉으로 드러난 정적인 흐름일 뿐, 기격이 마주치며 스파크가 튀었다.

파파파파팟!

권파가 칼날처럼 맞물리며 역량을 시험했다. 부딪칠 때마다 떨어져 나간 권파의 편린이 연무장을 뒤흔들었다. 경지에 오르지 못한 무인은 갈가리 찢길 영역이 되었다.

위협적인 결전의 연속조차도, 무진과 권왕에겐 간 보기에 불과했다.

“제자야, 간이 짜구나.”

“아껴야 잘 살지요.”

언제까지 무형지기로만 격돌하진 않았다. 미동도 없는 숨 막히는 탐색이 끝나자 무진이 벼락같이 쇄도했다.

슈우우웅!

무진의 주먹이 권왕의 얼굴을 노렸다. 권왕이 고개를 돌리며 백스핀을 머금은 팔꿈치가 무진의 안면을 역으로 노린다.

파팟!

회피를 택했다면 권왕의 팔꿈치에 이은 손등의 연속기에 당했을 수도 있었다. 무진은 뻗어 낸 오른팔을 회수하기보단 옆으로 밀어내며 권왕의 투로를 흔들었다.

권왕도 순순히 물러서진 않았다. 반격의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 무릎을 차올렸다.

파아아앗!

무진의 왼 주먹이 정면이 아닌 하단으로 내리찍히며, 오른 주먹이 깊숙이 파고들어 권왕의 턱을 노린다.

짧은 숏 어퍼였지만, 힘의 가동이 완벽했다. 다리에서 휘몰아치는 거력이 허리의 회전을 만나 용의 승천을 이루었다.

촤아아!

용은 하늘을 꿰뚫었다.

간발의 타이밍, 고개를 젖힌 권왕은 얌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날아오르는 반동을 그대로 이용해 무영각을 출수했다.

파파파파팟!

일순 수많은 족영이 무진의 시야를 가린다. 속도에만 치중했다면 막아 내기보다는 역공을 취했을 텐데. 권왕의 각법은 거대한 쇠기둥으로 내리치고, 뻗어 내는 것 같았다.

투아아아앙!

이에 질세라 무진도 수십, 수백으로 변화무쌍한 권로를 완성했다. 서로 투박한 육체를 지닌 것과 달리 공수의 연결이 놀랍도록 매끄러웠다. 중국 무협 영화처럼 서로가 다음 수를 알고 있는 듯 절묘하게 맞물린다.

슈슈슈슉!

강기로 이루어진 권막.

닿기만 해도 가루가 되어 버릴 절삭력이 권막에 실렸다. 권왕의 각법에도 강기가 서리며 서로의 전력이 좁은 공간에서 폭발했다.

꽈아앙, 퍼어어엉!

무진과 권왕이 충돌할 때마다 연무장은 격렬한 태풍에 휩싸였다. 아직은 비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권공의 기본 투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위력은 비기와 견주어도 부족하기는커녕 위험천만했다. 까딱 잘못하면 숨통이 끊어지는 치열한 전투의 향연이었다.

슈슈슈슉, 파파파팟!

소리가 따르지 못할 초음속의 향연. 권로가 부딪칠 때마다 바람도 불지 않는 꽉 막한 연무장에 호풍환우가 휘몰아쳤다.

“몸도 풀었겠다, 본격적으로 신나게 놀아 보자꾸나.”

“저도 지루했습니다.”

권왕가의 기본 투로는 권공의 기본에 지나지 않았다. 그 예로 몰아일체, 만물일여, 만류귀종에 이른다면 모든 권공은 같아질 수밖에 없다.

권왕가의 진의를 보려면 결국 신화천권을 사용해야 했다.

권왕의 진의가 담긴 신화천권이 기본 투로와 맞물리며 흉악한 실체를 드러냈다.

쐐애애액!

신화천권의 파쇄식 붕산패였다.

뜻 그대로 산을 부술 파괴력이 현신했다.

푸아아아아앙!

이어지는 신화천권의 극의.

염화식 화천폭.

단절식 천절격.

괴멸식 패왕멸.

기존의 연무장이라면 견디지 못하고 부서졌을 위력.

그런 광경을 가주가 실제로 봤다면 경기를 일으키며 목덜미를 잡았을 것이다. 무진의 선견지명이 여러 사람의 목덜미를 사수했다.

‘지수보다는 강하셔.’

권왕과 지수의 권을 경험한 무진은 우위를 파악했다. 그래서 아쉬웠다. 지수의 연세를 고려하면 대단한 성취긴 하나, 회귀의 이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려면 지수는 권왕보다 훨씬 강해져야 한다.

당장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지수의 현재 실력이 최소 10대 초인과 견줄 수는 있었다. 차후, 발생하는 던전과 기연을 얻는다면 권왕을 능가할 수 있을 것이다.

허!

무진이 대결을 평가하고 있는 사이, 권왕은 경악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신화천권을 사용하기 전부터도 말이 안 됐는데, 지금은 더 말이 안 되었다.

‘정말로 신화천권이구나!’

설령 지수가 스승이었다고 해도, 옆에서 보기만 했다며. 그것도 유치원 때 어설프게 따라 한 신화천권이었을 텐데. 형도 갖추지 못한 신화천권을 보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완성도라니.

더욱이 심권을 신화천권에 녹여 사용했다. 파괴력만 놓고 본다면 이 일대를 날려 버리고도 남았다. 그걸 모조리 같은 초식으로 받아쳤다.

‘내 제자가 이토록 터무니없는 괴물이었다니!’

용암 던전 때와는 또 달랐다. 그때도 괴물이었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걸 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천하의 권왕이 전력을 쏟아 내고 있는데도 제자는 팔팔하게 맞서고 있었다.

청출어람 청어람도 어불성설이었다.

대체 누가 있어 이런 녀석을 가르친단 말인가? 남의 밑에서 수학하기에는 격이 다른 재능이었다. 인정해야 했다. 지금도 이렇다면 차후에는 얼마나 대단해질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신화천권 3.0 버전으로 가겠습니다.”

“……?”

“참고로 최근 버전은 7.0입니다. 꾸준한 업그레이드야말로 버그, 아니 심마가 오지 않는 방법입니다.”

“……?”

그게 뭔 개소리냐?

5년 전에 산 핸드폰을 원본 그대로 쓰고 있는 권왕으로선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였다. 더군다나 무공은 1년에 두세 번씩 업그레이드되는 분야가 아니다. 초보자라면 모를까? 권왕은 이미 완성된 무인이었다.

응?

곧 권왕의 상식은 박살 났다.

이게 되네.

너무나 명백해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심권을 얻으면서 신화천권이 한층 발전했다. 한데, 3.0 버전의 신화천권은 그보다 앞서 있었다.

꽈아앙, 퍼어엉!

무진은 권왕을 밀어붙였다. 같은 수로 받아쳐 보지만, 권왕의 신화천권은 모래 위에 부은 물처럼 흡수되었다.

무진의 신화천권이 상위 호환이 되어 권왕의 신화천권을 짓눌렀다. 비기를 쓰는 틈을 노렸으나, 그마저도 계산이 되어 있었다.

화르르르!

무엇을 해도 통하지 않으며 속수무책이다. 빠져나갈 수단이 사라지자, 권왕은 궁여지책으로 화염마도를 사용했다.

“디스펠.”

화륵, 팟!

소용없는 짓이었다. 불현듯 떠오른 수는 통하지 않았다. 그런 방법은 아무것도 모르는 창황에게나 먹혔다.

“망할 놈!”

무진의 마도가 권왕보다 월등히 우위에 있진 않았다. 단계로만 따지면 비슷하다. 하지만 같은 등급이라고 해도 마도의 이해와 고차원적인 관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현재 가다듬어진 권왕의 마도는 무진의 해석에 전적으로 의존한 형태였다. 당연히 무진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괜한 짓을 했구나.’

권왕의 본질은 마법사가 아닌 무인이었다. 화염마도는 보조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무공이 통하지 않는다고, 마도로 활로를 찾으려고 했으니 민망한 행위였다.

‘오냐, 끝까지 해 보자!’

요행을 바라선 안 되었다. 권왕은 최대한 수비적으로 무진의 신화천권을 관찰했다. 완전한 방어는 불가능하기에 신화금강과 절삭금강륜을 펼쳐 누적되는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흐름을 읽어야 한다!’

권왕은 초조해지는 심기를 단단히 부여잡았다. 작은 방심도, 찰나의 틈도 무진은 허용하지 않았다. 최대한 관찰, 복기, 해석을 반복하며 신화천권을 가다듬었다.

신화천권에서 약세를 보인 이상, 신화천권만이 현재로선 유일한 돌파구였다.

‘된다!’

권왕은 신화천권이 발전하는 걸 체감했다. 원류가 같기에 버전이 다르다고 해도, 결국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되어 있었다. 지향점이 같다면 추구하는 바도 다르지 않았다.

‘이 녀석 그때도 우연이 아니었구나!’

무진을 통해 힌트를 얻었지만, 의도되었다곤 생각하지 않았었다. 다시 보니 심권의 단초조차도 우연이 아니었다. 신화천권이 다듬어질수록 무진의 성취가 자신을 넘어섰다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다.

‘이럴 수도 있는 건가?’

천재는 범인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하나, 세월의 힘을 무시할 순 없었다. 권왕도 어릴 때부터 주위에서 천재라고 했기에 당연하게 여겼었다. 하지만 진짜 천재는 따로 있었다. 천재의 노력조차 범재로 만들어 버리는 무진의 무공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