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함정(1)
푸아앙!
투콰꽈꽝!
포환처럼 쏘아진 권강이 폭사하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나선의 응축된 힘은 지축을 거세게 흔들어 대며 흙더미를 사방으로 흩뿌린다. 겹겹이 중첩된 흙먼지가 시야를 가렸으나, 유경운은 아랑곳하지 않고 권강을 장대비처럼 쏟아 냈다.
주먹의 형태로 완성된 유형의 청백색의 강기.
신화천권 괴멸식 패왕멸.
권왕가의 비기.
유경운은 전력을 아끼지 않았다. 비록 틈을 보였다곤 하나, 권왕을 쓰러뜨리려면 방심은 금물이었다.
-속성, 천왕강림.
하늘의 전능, 천력이 내외공을 배로 끌어 올린다.
유경운은 권왕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시련의 계절]을 개방하여 타격했다. 절초, 속성, 아이템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최적화를 이루었다. 천하의 권왕이라도 벗어나기 힘든 파상적인 공세였다. 이 상황을 예측하여 수도 없이 연습해 온 듯 매끄러웠다.
오싹!
섬뜩한 감각이 두껍게 형성되었다. 일대를 부숴 버리는 패도무쌍의 기력이 뚫고 들어왔다.
정면?
아니다.
정면과 좌측의 기감은 페이크다. 우측에서 분노한 황소처럼 돌진해 온다. 폐부를 갈라내는 섬뜩한 한기는 아버지의 분노였다.
투아아앙!
쇠를 두드릴 때나 나오는 거친 쇳소리가 피육에서 터져 나온다. 주먹과 주먹이 만났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톱날처럼 깨진 원형의 파문이 일대를 휩쓸어 버린다.
츠으으으!
촌음의 공수.
정수가 담긴 권경이 폭발하며 전력을 가늠했다. 지척의 거리를 두고 마주한 부자(父子).
희비가 엇갈렸다.
“과연 대단하시군요.”
“아비가 용납할 만한 변명이 필요할 게다.”
“후후후, 제가 그럴 놈으로 보이십니까?”
“맞다 보면 깨닫게 되겠지.”
“그 몸으론 불가능합니다.”
“고작 이따위 얄팍한 수작이 통할 성싶으냐?”
“고작이라고 하기엔 과하지요.”
유구무언, 재차 격돌했다. 부자간의 격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치열함이었다.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지는 공수의 연환은 일격 일격이 절대 가볍지 않았다. 허점을 노출하는 순간, 균형이 깨지며 급격하게 기울 수 있었다.
파파파파팟!
권각을 위주로 현대의 레슬링, 주짓수가 절묘하게 결합되었다. 과거와 현대의 경계를 두지 않고 발전시킨 권왕가의 무리(武理)가 충돌했다.
‘후우우, 여전히 버겁군!’
유경운이 숨을 크게 내쉬며 가다듬는다. 이제는 동수에 가까워진 줄 알았었다. 한데, 맞붙을수록 가늠하기 어려운 격차가 있었다. 당장 동수를 이루는 것도 저주, 독, 스킬이 조합되었기 때문이다.
-데몬유희.
-혈살지독.
-전력약화.
3개의 연계된 수법으로, 저주가 발동하기 전까지는 알아채기도 어렵다. 하나로는 불완전하나, 조합이 된다면 치명타가 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0대 초인이라도 벗어나기 어려운 함정이거늘.
지금까지 버티는 것 자체가 치욕적이나, 인간인 이상 한계가 있었다. 아버지도 결국에는 쓰러질 터. 승패는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경운은 아버지가 구차하게 발버둥 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만 물러나십시오!”
“어림도 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나를 넘어서기에는 멀었다는 듯, 권왕은 기세를 끌어 올리며 포효했다.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선 압살할 무형지기였으나, 유경운에겐 통하지 않았다.
“결과는 변하지 않습니다. 버틸수록 괴로워질 뿐입니다.”
“그딴 말은 나를 이기고서나 해라!”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권왕과 유경운의 대치는 영원히 닿지 않을 평행선을 이루었다. 조금의 빈틈도 용납하지 않을, 혈육을 초월한 살초의 향연이었다.
꽈아앙, 투아아앙!
권왕과 비교해서 부족할 뿐이지, 유경운의 무위도 일반적인 수준은 벗어나 있었다. 부수고, 가르고, 찢는 경각의 박투와 일대를 소멸하는 강기의 포화가 가공할 무위를 증명했다. 내외력의 단련이 극한에 도달해 있었다.
휘청!
팽팽하던 대치에서 권왕의 신형이 흔들렸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던 유경운은 흠칫했다.
불의 장벽.
불의 칼날.
화염마도가 발동하여 첩첩의 장벽을 세운다. 유경운이 뚫고 들어오려고 하자 불길이 달구어진 예리한 칼날로 변했다.
츠으으으!
닿지도 않았거늘 화염기가 내부로 파고들었다. 당장이라도 베어질 것 같았지만, 유경운은 이번 기회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화염마도의 화려함과는 달리 아버지의 근간은 권공이었다. 달리 말하면 화염마도를 꺼내야 할 만큼 궁지에 몰렸다는 것을 뜻했다.
화르르르르, 휘이이이잉!
그런 줄 알았거늘.
화염의 칼날이 회전하며 만들어 내는 불의 소용돌이에 더는 접근하지 못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권경을 발출했다면 도리어 내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그만큼 화염마도의 연계와 위력이 놀라웠다.
‘언제 이렇게.’
유경운은 순간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화화화화활!
용암지대를 더욱 뜨겁게 달구는 권왕의 화염마도였다. 공기가 타면서 발생하는 수증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사방으로 휘몰아치는 불의 소용돌이가 일으키는 화염풍은 재해 그 자체였다.
츠으으으으!
강화된 트롤의 가죽으로 세팅한 유경운의 슈트조차 열기에 손상을 입었다.
하!
유경운은 어이가 없었는지 헛바람을 삼켰다.
직접 경험하고도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권왕이라 불리는 아버지였다. 대외적으로 화염마도의 전승자라 떠벌리곤 하지만, 권공을 받쳐 주는 보조 수단에 불과했다.
한데, 지금 보여 준 마도의 연계를 보라. 이토록 정교한 마도라니.
“아버지답지 않군요.”
“세상은 변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주먹이야말로 낭만이라고 외치던 아버지가 맞나 싶을 파격적인 발언이었다. 세상 전부가 변해도, 불변을 외칠 아버지이기에 어처구니가 없다.
그렇다 하나, 유경운은 당황하진 않았다. 권공을 물리고, 마도를 쓴 현실을 직시했다.
“결국은 밑천을 드러냈을 뿐입니다. 그만 승복하십시오!”
“운아, 너야말로 그만하거라!”
권왕의 안타까운 외침에 유경운은 격렬하게 분노했다. 끝까지 형을 편애하며, 자신의 앞길을 막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권왕가는 무인의 가문입니다. 강한 자가 가주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무인으로서 주장하는 겁니다. 무엇이 그리 잘못되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말은 필요 없겠구나. 오너라.”
가주가 되려면 자신을 넘으라는 권왕의 태세였다.
유경운은 살의를 불태우며 쇄도했다. 반드시 굴복시키고, 빼앗긴 권리를 찾겠다는 결사의 각오였다.
쐐애애액, 푸아아앙!
무진과 무인들은 휴전 상태로 부자의 대결을 관전했다.
무료라서 그런지 관람이 용이치는 않았다. 용암지대가 부서져 내려 거리를 벌려야 했다. 화강암을 비롯한 다양한 돌 파편은 흉기나 다름이 없었다.
“매정한 사부님일세, 제자의 안위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건가?”
“……?”
“모름지기 사부란 제자를 위해 자기희생도 하고, 전 내력을 전수하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
정혼기, 지정수, 백사근, 조탁경, 이청민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무진을 보았다. 제자를 버린 권왕을 원망하는 말투는 그렇다 치고, 자기 일 아니라는 듯한 방관자적 태도는 이해 불가였다.
이놈이 대체 뭘 믿고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잘못된 후계자를 세워 가문의 위계를 어지럽힌 대가라 하나, 권왕은 패륜의 쓴맛을 경험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수발을 든 제자라면 또 몰라, 사제지간이 된 지 고작 반년이었다. 반년짜리 제자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라니, 따지고 보면 이놈도 패륜이었다.
패륜도 전염이 되나?
권왕가의 근원이 의심스러운 현실이었다.
어쨌든 패륜을 걸고 넘어가진 않았다. 그래 봤자 자기 얼굴들에 침을 뱉는 격이다. 따르기로 한 이상, 패륜이든 아니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밀고 나가든가, 고꾸라지든가? 둘 중 하나라면 전자를 택할 수밖에 없다.
“사부나 그 아들이나 사랑스러운 제자를 눈곱만큼도 신경을 안 쓰네. 싸우려면 관전이라도 용이하게 좀 떨어져서나 싸우지. 이거 봐. 돌가루 다 뒤집어썼잖아. 정말 민폐다, 민폐.”
“……(빠직)!”
그저 듣고만 있었는데도 울화가 치밀었다. 폐부에서부터 올라오는 활화산 같은 열기가 용암지대처럼 상판을 울긋불긋하게 만들었다.
“이쯤 됐으면 좀 져 주지. 아들이 그리 가주를 하고 싶대잖습니까! 부모가 돼서 자식을 끝까지 이기려고 하는 것도 보기 안 좋습니다. 안 그래요?”
“너는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거냐? 설마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있다면요?”
“없애 줘야지.”
무진의 태연함에 화가 치민 그들은 인벤토리에서 십자가에 사슬이 달린 물건을 꺼냈다.
원래는 제압하는 선에서 끝을 내려고 했는데, 이 새끼가 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내버려 두고 싶지가 않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버릇없는 새끼는 쓴맛을 봐야 했다.
그것이 어른의 당연한 의무였다.
“이 와중에 웃기려는 건 아니겠고? 구속구인가요?”
“그래, 구속구다.”
“너무 작은데?”
사슬이 달린 십자가 형태의 구속구는 손바닥 크기 정도에 불과했다. 고딩치고는 거구인 무진을 옭아매기에는 작아도 너무 작다.
후후후!
무진의 의구심에 그들은 히죽였다. 마치 그러한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원래 작은 고추가 매운 법이지.”
“선배들은 많이 맵겠수다.”
그 말에는 도저히 웃어 줄 수가 없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이다. 그러나 화를 내기도 애매하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 되기에. 그들은 애새끼하고 말싸움하는 대신에 구속구를 개방했다.
차자자자작!
구속구를 무진의 등에 갖다 댄 후 주문을 외우자 십자가가 확대되면서 척추의 뼈처럼 사슬과 함께 자동으로 육신에 착용이 되었다. 마치 뼈대만 남은 갑옷처럼 육신을 에워싸며 사슬과 사슬이 고리 역할을 했다. 십자가의 뼈대가 되는 부분은 용수철이 달려 육신을 당기는 형태였다. 이를테면 탄력 있는 피부를 위한 리프팅 시술 강화판이랄까.
“어디 움직여 보거라.”
“이렇게요?”
무진이 팔을 휘저으며 걸으려고 하자, 구속구의 용수철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육체를 컨트롤하지 못하도록 했다. 더 움직이면 조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사지를 끊어 낼 수 있었다.
“이거 능지처참용 같은데요.”
“눈썰미는 있구나. 어떠냐? 용기가 있으면 다시 한번 움직여 봐.”
“용기 없는데.”
“그러면 닥치고 있어. 계속 주저리주저리 떠들면 혀부터 뽑아 주마!”
“사부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무진이 사부를 거론하자, 그들은 되레 비웃었다. 팽팽해 보여도 승패는 정해졌다. 저주, 독, 속성이 매개체를 통해 완벽히 걸려들었다. 전력으로 싸울수록 육체는 독과 저주에 약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부가…… 어?”
“이제야 알았느냐, 크크크크!”
그들의 간사한 웃음이 현실을 반영한다.
때마침 사부가 거리를 벌렸다. 죽어도 물러서지 않는 인간이 발을 빼다니, 위태로운 형국임은 증명했다.
“이러면 나가린가?”
“살고 싶으면 처신을 똑바로 해야 할 거다.”
“그래도 살기는 힘들 것 같은데?”
“눈치만큼이나 주둥이를 단속했어야지.”
“나 말고.”
무진의 눈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구속구로 인해서 방향을 가리키진 않았으나,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바라보았다.
“……언제?”
거구의 중년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육신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기도가 점점 일대를 장악했다.
“……창황!”
만약을 대비하기는 했어도, 다가오는 기척조차 발견하지 못했다니. 그들은 심한 압박감에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솨아아아!
창황의 기세는 용암지대마저 차갑게 식혔다. 일대를 장악하는 조화지경의 위력이었다.
“창황 어르신, 저 좀 구해 주십시오. 이놈들이 작당하고 패륜을 저질렀습니다!”
“……이놈이!”
창황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했던 그들은 무진의 발버둥에 말문이 막혔다. 눈치가 빠른 것 같으면서도 상황 파악을 못 하는 이상한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