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패륜(2)
퍼퍼퍼퍼퍼퍼펑!
푸스스스!
지수의 주변으로 머리통만 한 곤충이 창처럼 찔러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전기 모기채에 닿은 모기처럼 날개의 터럭조차 남기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전투 쇠파리(흡혈).
파리 중에서도 피를 빠는 등에와 비슷한 종류다. 하나, 한 번 빨리면 1L는 우습게 헌혈했다. 한 마리라면 모를까,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다니기에 파리지옥에 걸리는 순간 미라가 되어 버린다.
그뿐인가, 전투 쇠파리는 빨대를 꽂으며 알을 낳는다. 부화 속도도 빨라서 순식간에 배 속을 뚫고 나오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완성했다. 고어물이 취향이 아닌 이상, 보기 힘든 광경일 것이다.
퍼퍼퍼퍼퍼펑!
곤충은 크면 클수록 징그러웠다. 그에 비하면 뱀은 혐오스럽지 않았다. 전투 쇠파리의 다중 눈을 보다 보면 형상이 여러 개로 나뉘며 환 공포증의 착란을 일으켰다.
그래서일까?
아카데미를 졸업한 생도가 가장 고생하는 유형이 곤충 마물이었다. 처음도, 두 번째도 쉬이 적응되지 않았다.
전투 쇠파리.
전투 모기.
전투 풍뎅이.
전투 하루살이.
지금까지 나온 곤충 마물의 종류였다. 이 중에서 전투 하루살이가 가장 위험했다. 워낙 개체 수가 많은 데다가 근거리에서 무척이나 빨랐다.
공략팀은 분명 어려운 전투가 되리라 판단했다. 그리고 명백한 오판임을 눈앞에서 보고 말았다.
화르르르르!
삼매진화를 일으켜 하루살이를 불태운 지수가 돌아보며 해맑게 웃었다.
“곤충 마물을 잡을 때가 제일 재밌네요.”
“……?”
“태우고 터뜨리는 맛이 있어요.”
“……?”
백무대의 대원들은 말문이 막혔다. 지수가 앞으로 나설 때까지만 해도 곤란해할 줄 알았다. 아카데미 서열 1위의 엘리트에게도 첫 밀림 던전은 어려워야 마땅했다. 한데, 기대를 아득히 벗어난 결과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거 우리보다 더 잘 잡는 거 아냐?”
“직계는 차원이 다르구나!”
“애초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어!”
손쉬운 처리에 등급이 하향된 줄 착각할 수도 있었다. 하나, 보기만 쉬울 뿐, 아카데미에서 배운 내용과는 아예 다른 현실이었다.
더욱이 곤충 마물은 생명력이 남달랐다. 목이 떨어져도 살아 있기에 방심하다간 낫 같은 다리에 반 토막이 날 수도 있었다.
지수는 그런 곤충 마물의 습성을 파악하고, 약점만 노렸다. 배웠다고 해서 실전에 곧바로 쓰기는 어렵다. 교실과 현실의 차이는 겪어 봐야 알 수 있는 영역이다.
지수는 곤충 마물을 처음 상대하는데도 노련한 헌터와 비교해도 이질감이 없었다. 이는 범인으론 따르지 못할 천재의 영역이었다. 솔직히 보고 있는데도 믿기 어려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부르르르!
부대주 유지호는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주먹을 세게 쥐었다. 자질이 있다고는 하나, 여자는 한계가 분명했다. 그런데도 지수의 전투력은 생도 수준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자신조차도 처음에는 힘에 부쳤거늘, 재능의 차이가 버겁게 다가왔다.
씨익!
유지호를 향해 지수가 방긋 웃고 있었다. 지금 내 실력이 어떠냐고 자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빠득!
지수의 능숙한 전투력에 살심이 깃들었던 지호는 분노를 다스려야 했다. 밀림 던전의 보스 몹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배틀 스파이더 퀸이잖아!”
“저게 여기서 왜 나와!”
대원들조차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배틀 스파이더 퀸은 최상위의 마물에 속했다. 기존의 배틀 스파이더와 비교해 족히 10배는 더 컸으며, 마인드 컨트롤 속성이 있어 제압하기 까다로웠다.
지수는 긴장된 분위기를 환기시킬 겸 대원들에게 모르는 척 물었다.
“다른 건 다 한글인데, 저건 왜 영어예요?”
“매우 거대하기 때문이야.”
영어를 쓰는 이유가 거대해서라니, 미제는 다 클 거라는 생각은…… 오판이겠지?
***
용암지대는 광활했다.
길잡이 아이템이 없었다면 공략하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초창기에는 덮어 놓고 공략하다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으나, 지도 아이템이 보급되면서 던전에서 방황하진 않았다.
공략은 순조로웠다.
사부님을 필두로 유경운과 10명의 무인이 보조를 잘 맞추었다.
현장 일을 하지 않은 지 2년이나 됐다는 말과 달리 유경운의 기세는 예리했다. 꾸준히 육신을 단련한 것을 보면 무인으로서 자세는 되었다.
가문에선 보지 못했던 10명의 무인도 생각보다 강하고 능숙한 편이다. 경험이 많은 자들로 선별하여 심복처럼 데리고 다니는 듯했다.
반대쪽에선 창황가가 공략 중이다. 용암 골렘을 처리할 때마다 알림이 떴기에 확인 가능했다.
높은 등급에 비해 던전 공략이 쉬워 보일 수도 있으나, 권왕이기에 그리 보일 뿐이다.
초반에 처리한 용암 골렘도 모르고 당했으면 까다로운 상대였는데, 단계를 높여 갈수록 능력치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특히 지능이 생기면서 대응 방식도 달라졌다.
“사부님, 이번에는 핵이 용암 속에 있네요.”
“요놈들은 다 허상이었구나.”
“눈속임을 써서 지치기를 바란 거죠.”
“어딘지 표시만 해라.”
요나를 동원해 핵이 있는 위치를 알리자, 사부님의 권환이 타깃에 적중했다.
꽈아아아앙!
핵이 충격을 받자, 용암 골렘이 멈칫했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물러서려 했으나, 무진이 더 빨랐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오냐, 잘 먹어라.”
무진은 막타를 쳤다.
초열기를 분출하며 포효했던 용암 골렘이 맥없이 흘러내리며 잠잠해진다. 방금까지 흉흉한 마력을 뿜어내던 공간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고요함이다.
하나, 폭풍 전야에 지나지 않았다. 보스를 처리하라는 알림이 있었다.
“녀석, 탐지 마법이 많이 늘었구나.”
“이 정도는 보통이죠.”
“지수를 잘 보필해야 한다.”
“아무렴요.”
사제의 오붓한 모습.
유경운의 검미가 미세하게 떨렸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친자식처럼 다정함이 흘러넘쳤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것이 못마땅했다. 자신에 이어 자식들까지 2인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이 뇌리를 스쳤다.
‘화를 돋우는군.’
한광(寒光)을 번뜩이던 유경운은 원래의 신색을 회복했다. 감정을 내비치는 것은 어리석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참아 왔는데, 잠시를 못 참고 경거망동하진 않는다.
“가자꾸나.”
“예, 아버지.”
유경운은 권왕의 배후를 무인들과 따랐다.
무진은 사부와 떨어져 원래의 자리인 후미로 돌아갔다. 여유롭게 사부님과 외총관을 지켜보았다. 이따금 자신을 쳐다볼 때마다 미소를 잃지 않았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진 않겠지만.’
아주 1차원적인 결론이긴 한데,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사부님이 슬퍼하기를 바라진 않는다.
용암 던전의 보스가 있는 화산지대에 도착했다.
두드드드드드!
침입자의 기운을 알아챈 던전의 보스가 잠에서 깨어나는 듯했다. 일대가 전부 흔들리고 있었다. 흔들림이 점점 거세지더니 지면이 갈라지며 허공을 향해 거대한 용암이 기둥처럼 솟구쳐 오른다.
슈우우웅!
용아아아아아아암~~~~~!
던전의 끝판왕이라 할 만한 마력 파동이었다.
-자이언트 마그마 골렘(aaa).
일반적인 골렘과는 크기에서부터 차원이 다르다. 영어로 쓰였다는 것만 봐도 크기를 짐작하게 해 주었다. 확실히 영어 명칭을 쓰는 놈들은 크기가 컸다. 용암이 일어서자 하늘마저 가렸다.
“사부, 완성되지 않았어요. 왼쪽 허리에서 핵 파동이 감지되네요.”
“일어나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지, 손님을 맞을 기본이 안 되어 있구나.”
무진과 사부는 일본 감성인 전대물의 고유 특성을 지키지 않았다. 우린 우리만의 고유문화인 선수필승, 즉 선빵을 보존해야 했다.
꽈아아아아앙!
용아아아암~~~~!
초반부터 화력을 집중시킨 결과, 자이언트 마그마 골렘은 등장과 동시에 허무하게 퇴장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단숨에 보스를 처리하면서 던전 공략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끝인가?”
“사부!”
마치 들으라는 듯이 금기어를 남발한 사부의 외침이 트리거가 되었다.
촤자자작!
5명의 무인이 무진을 사로잡아 무장해제를 시켰다. 언제든 출수하도록 제약을 걸고, 비수를 꺼내 들었다.
번뜩!
권왕의 눈빛이 무섭게 변했다. 이대로 끝이 나기를 바랐거늘, 제자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말았다.
사부님이 움직이려고 하자, 유경운이 가로막아 섰다. 부자간의 살벌한 기세가 충돌했다.
“어째서냐?”
“제 자리를 원합니다.”
“너나 나나 가주에는 어울리지 않아!”
“저는 가주가 되어야 합니다.”
권왕은 아들의 배신에 비통함을 느꼈다. 그럴수록 망설여선 안 되었다. 거자필반 회자정리라고 했다. 자신이 뿌린 씨앗이니 자신이 거두어야 한다.
“제자를 살뜰히 챙기더군요. 아들보다도.”
“사부님, 살려 주세요!”
권왕은 아들의 협박보다 제자의 건조한 외침에 기가 막혔다. 전혀 위험에 처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권태로움마저 전해졌다. 주둥이로만 살려 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아!
한숨을 쉰 권왕은 각오를 다졌다.
“오늘부터 우린 남남이다.”
“……사부님!”
이놈아, 하려면 좀 똑바로 해라. 상황이 그래서 그렇지, 위기감이 하나도 없다.
다행이라면, 유경운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무진을 사로잡았으니,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다만, 아버지의 선택은 의외였다. 평소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아버지가 제자를 이토록 빨리 포기할 줄은 몰랐다.
“하하, 아버지도 별수 없군요.”
“어차피 살려 둘 거 아니지 않느냐.”
“사부님, 말씀 함부로 하지 마세요. 저는 앞길이 구만리랍니다. 죽으려면 혼자 죽으면 안 될까요?”
이 자식이, 자꾸 끼어들어.
대화를 이어 가는 와중에 피처링을 넣고 있었다. 차라리 메소드로 열심히라도 하면 모르겠는데, 눈앞에 칼이 있는데도 심드렁했다.
“엉뚱한 녀석을 제자로 뒀군요. 하지만 지수라면 얘기가 다르겠지요.”
“이놈, 지수는 네 조카다.”
“저도 아버지의 자식입니다. 이 마당에 혈육을 거론하시는 겁니까?”
권왕은 아들이 이렇게나 삐뚤어졌을 줄은 진짜로 몰랐다. 제자가 언질을 줄 때도 믿지 않았었다. 그저 제자의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서 계획대로 따라 줬을 뿐이거늘. 해소는커녕 부모로서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뼈아픈 진실만 드러났다.
화가 나는데, 도리어 이성은 차갑게 식었다. 권왕은 결심을 굳혀야 했다. 주저한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진 않았다. 이제는 아들이 아닌, 적으로서 대해야 했다.
“나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목숨이 아까워서 사랑하는 손녀도, 아끼던 제자도 버리시다니, 아버지답진 않군요.”
신경을 긁고 조롱하여 심기를 흔들었다. 유경운은 내심 예상과 다른 아버지의 선택에 곤혹스러웠다. 제자는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쳐도, 지수마저 외면하리라곤.
‘결국, 끝까지 갈 수밖에 없군.’
처음부터 반인륜적인 결정이었다. 시작한 이상 어차피 끝을 봐야 했다. 상대는 아버지를 떠나 한국을 대표하는 10대 초인이다. 어설프게 끝맺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이다.
권왕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쯤에서 그만하거라.”
“그럴 수 없습니다.”
“네 실력으로 나를 넘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불가능하지요. 압니다. 하나, 정상이 아니라면 다르지 않겠습니까.”
“이놈…… 크윽!”
위화감을 감지한 순간, 권왕은 휘청였다.
그때 유경운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