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권왕의 운전자론(5)
어쨌든 이 세상은 이제 각성자가 중심이 되어 돌아간다. 던전과 마물을 처리하면서 얻은 부산물을 차지하고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그렇다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스텟 자체가 값으로 따지기 힘든 재산이 된다.
칠대가문과 대형 길드가 암암리에 혈육, 제자, 길드원을 버스 태우며 다른 이들보다 앞서 나가는 현실이 마냥 공정하진 않았다.
완전한 유토피아는 불가능하나, 최소한 따라갈 수 있는 구조와 형평성이 필요했다. 각자도생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구조가 대중의 인식에 뿌리 깊게 자리 잡힐수록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마련이다.
사회적 인식을 알기에 칠대가문과 대형 길드도 대놓고 하진 않는다. 아예 배제하는 예도 있으나, 대중과 척을 진다면 차후 정부와의 마찰도 고심해야 했다.
하물며 권왕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0명의 초인 중 하나다. 그가 직접 나서 손녀와 제자를 버스 태우니 나머지 칠대가문과 대형 길드에서도 나서게 되었다. 부작용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너도나도 하는 형국이었다.
-내 자식과 제자가 잘되라고 도와주는 건 이해해도, 이건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우리 같은 서민은 언제 빛을 보라는 거야? 최소한 양심이 있으면 결과는 아니더라도 기회의 평등은 있어야지.
-웃기는 새끼들이네. 그럼 자식한테 주지, 남한테 주냐. 다들 성인들 나셨구먼. 가진 재산이나 기부하고 살아. 자기들은 100원도 아까워하면서 남한테는 성인을 강요하네!
-가난의 대물림도 짜증 나는데, 이젠 능력마저 대물림이라니! 네 자식한테 미래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냐!
-이건 법으로 하지 못하도록 강제해야 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그렇게 제한을 걸어 놓으면 각성자가 크질 못한다고. 우리나라 안에서만 최고면 뭐 해? 세계는 지금 최상급 헌터를 키우지 못해서 안달이라고!
-이거 강제하는 당만 뽑을 거야. 우리 같은 서민에게도 기회를 줘야지!
-고만고만한 각성자들이 최상급 마물을 막을 수 있을까? 눈앞의 불평등에 눈이 멀어 미래를 못 보는구나. 하긴 나만 잘살면 그만인 거지.
헌터가 국력이 된 현실이다.
세계 서열전에서 순위 안에만 들어도 대중은 열광했다. 그렇기에 헌터를 키우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권왕이 버스를 태울 때도 그런 점이 작용해서 여론이 들끓지는 않았다.
하지만 갑자기 여론이 불타오르면서 권왕을 필두로 칠대가문과 대형 길드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형국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양쪽 모두 틀렸다고 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맞다, 틀리다를 떠나서 같이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소수의 특권층이 힘과 권력을 독점하기를 바라진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약육강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과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한 짓을 살펴봐도 그렇다. 힘이 없으면 입으로 암만 정의를 떠들어도 누구 하나 호응해 주지 않는다. 헌터의 힘이 나라의 힘이 되어 버린 이상, 군주급을 넘어선 헌터가 필요했다. 그러려면 모든 힘을 집중해도 부족하다.
-그래도 공평해야지.
-맞는 말이야. 칠대가문이 아니면 서러워서 살겠나.
-같이 좀 살자. 아니면 헌터 등급대로 누진 증세를 하든가!
-그러다 세계 헌터 서열이 떨어지면?
-그게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야.
-세계 1등은 바라면서 남 잘되는 건 못 보겠다는 건 대체 무슨 심보지?
-그래서 공정한 거야?
-그래서 공정하게 멸망하면 좋겠냐?
감성의 민족답게 뜨겁게 불타올랐다. 특히 아카데미에 다니는 생도의 부모들이 극성이었다. 아카데미의 보상도 서열에 따라 다른데, 스텟을 늘리는 기회의 차별을 용납하지 못했다.
1명은 공신력이 없으나, 수십만이 되자 정부에서도 눈치를 보게 되었다.
발등에 불 떨어진 정부는 급히 칠대가문과 대형 길드에 자중하라는 서신을 보냈다. 법으로 강제하기에는 효용성이 떨어지고, 암암리에 행해지는 걸 모두 차단하기는 불가능했다.
더욱이 과거 강력히 통제했다가 헌터의 능력이 떨어지거나, 다른 나라로 유출되는 사례가 있었다. 당장 국제 정세만 해도 헌터의 수준이 떨어지면 발언권부터 약해졌다. 일본,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걸 우리나라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금 들끓고 있는 것도 한때였다.
정부는 통제하겠다고 약속한 후 방송과 언론에 흘려보냈다. 그 결과 강제성이 없는 요식행위긴 해도, 대놓고 하진 못하게 되었다.
조삼모사의 얄팍한 겉치레지만, 민심을 외면할 순 없다. 효율성 없는 정책이라도 하는 이유였다.
“아주 요란법석을 떠는구나.”
“사부의 선의를 마지못해 받았을 뿐이에요.”
“강요된 선의가 아니더냐.”
“가족을 지키려는 사부의 숭고한 뜻을 제자로서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입에 식용유를 발랐는지, 매끄럽다 못해 무중력이었다.
산하는 아들의 논리에서 허점을 찾지 못했다. 고약한 의도가 숨겨져 있으나, 자식 농사를 잘 지었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누차 말하지만, 자식을 잘 키우긴 했다.
“그만큼 가졌으면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할 텐데.”
“욕심은 상대적인 데다가 끝이 없는 법이에요.”
자기만족에 살아가는 사람도 있으나, 이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핵심은 다수의 욕망이었다. 욕망을 부정하고 배척해 봤자, 고인 물이 썩어 가듯 후퇴할 뿐이다.
그러나 욕망은 노예를 양산하고, 한계를 규정하지 않는다.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었다.
결국, 만족을 논하는 것은 없는 자의 몫이다. 나라면 저렇게 살진 않는다는. 본인이 그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하는 푸념에 지나지 않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머리 검은 짐승은 키우지 않는 연유와 비슷하다.
“일전의 길드 설계와 신상 명세는 많은 도움이 됐다.”
“제인 누나의 도움이 컸어요.”
“하나같이 찾기 어려운 정보던데, 보통 사람이 아닌가 보구나.”
“블랙마켓의 다섯 길드 중 하나인 쉐도우 길드를 맡고 있어요.”
“그런 사람을 언제 또 만난 거냐?”
“위험에 처한 적이 있어서 구해 줬거든요.”
산하는 자세한 내막을 아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아들이 말을 해 줄 때까지 기다렸다. 위험해 봤자, 아들을 대입하면 평온한 침대와 같았다.
“공간 확장 아이템도 제인 누나가 구해 준 거예요. 나중에 소개해 드릴게요. 같이 있으면 그림 좀 나오겠네요.”
“이놈이, 난 네 엄마뿐이다.”
“이제 서른일걸요.”
“누가 나이를 알고 싶대.”
막무가내인 아들이 핸드폰에서 사진을 보여 주었다. 아내에 대한 의리로 사는 산하는 안 보려고 했으나, 웬 미녀가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피트니스 모델과도 비교가 안 되는 탄력이었다.
“길드 창설에 도움이 될 텐데도요.”
“일로 만나야 한다면야, 하는 수 없지. 누차 말하지만, 나는 아무 관심이 없단다.”
“예, 예. 그러시겠지요.”
산하는 무의식적으로 사진을 힐끔힐끔 보고 말았다. 이 나이 먹고 이게 무슨 짓인지 원.
“쉴 만큼 쉬었으니,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조금 더 쉬자꾸나.”
“그렇게 쉴 거 다 쉬고 언제 훈련합니까? 일어나세요.”
“지독한 자식!”
“저는 빼박 아버지 닮았습니다.”
부전자전을 내세우는 아들의 치트키에 산하는 한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실상, 훈련은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길드 창설을 주도하게 된 이상, 불미스러운 사고가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었다. 최소한 본인을 지키거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래야 아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다.
“이제 겨우 권강을 완성했을 뿐이잖아요.”
“겨우라니, 무려 강기라고!”
“강기가 만능은 아니거든요. 공력을 효율적으로 다스리지 않으면 되레 낭패를 경험하게 될 겁니다.”
“아비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냐!”
“세상은 험하고, 언제 어느 때 심권이 날아올지 모릅니다.”
“어느 회사에서 심권이 날아와!”
아들의 숨 막히는 유비무환에 산하도 덩달아 숨이 막혔다. 집에서 회사까지 가는 길은 대로변이었다. 빌런이 미치지 않고서야 사람들이 많은 도심에서 습격을 하겠는가.
반대로 미쳤으니까, 빌런이 되는 것이다. 상식과 이성이 통하면 빌런이 되었을까?
꽈아앙!
산하는 아들의 노파심에 힘입어 훈련에 박차를 다했다. 회사원이긴 해도, 무인의 로망은 있었다. 주먹에서 발출된 강기를 볼 때마다 흐뭇했다. 강기의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공력이 정순해질 테고, 젊은 피부를 가질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탱탱한 피부는 소중했다.
퍼어엉!
무진은 권강을 효율적으로 받아 내며 아버지의 잠재력을 천연 암반수처럼 뽑아냈다. 또한, 수세와 공세를 반복해 아버지의 권강이 효율적인 궤적을 완성하도록 유도했다.
꽈앙, 투아앙!
전신이 땀으로 범벅이 될 때까지 산하는 쏟아 냈다.
한편으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권강을 권기로만 상대하고 있는데도, 오히려 압도하고 있었다. 완성도가 얼마나 높아야 저럴 수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 지경이다.
내 아들이지만 정말 괴물 같은 녀석이다. 아들의 옆집, 앞집, 이웃집, 친구의 가정불화를 일으키고도 남았다. 비교 대상이 아들인 이상, 칭찬은 불가능했다.
“집에서도 훈련할 수 있어서 좋네요.”
“퇴근하면 쉬고 싶구나!”
“건강을 위한 퇴근 후 운동은 현대인의 필수 코스예요.”
“이건 건강해지는 수준이 아니잖아!”
“어쨌든 무병장수, 만수무강이에요.”
제인 누나가 준 공간 확장 마법으로 노는 방을 개조했다. 도후 형의 강화술로 강화된 아이템이라 확장 영역이 늘어났다.
“후분양이었으면 층간 소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아쉽네요.”
“권강을 펼치고선 층간 소음을 걱정하는 거냐? 게다가 후분양과 선분양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어. 무조건 선분양이 나쁘다고만 볼 수도 없는 문제다. 무엇보다 층간 소음은 건설사의 잘못이고!”
아버지의 말대로 최대한의 이익을 위해 불량한 건축자재를 쓰고, 시공 자체를 허술하게 한 건설사의 책임이었다.
그렇다고 이웃집에 피해를 주진 않았다. 방음 마법과 결계를 결합해서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한밤중에도 고성을 지르고 싶다며 무공과 마법을 최소 절정과 5계식까지는 익혀야 했다. 또한, 남을 위한 배려는 항시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회장님이 네 행보를 염려하더구나.”
“손주를 뛰어넘을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건 아니고요?”
“그것도 그렇지만, 이목을 지나치게 끌기는 했지.”
“그건 진 회장님의 사정이죠.”
“적지 않게 뜯어내고서 할 소리냐?”
“공짜는 아니니까요.”
마조군단은 형식상이긴 해도, 공식적으로 태수 선배를 지지했다. 진 회장도 손익을 계산해 지원해 주는 편이 낫다고 판단 것이다. 기업가가 언제 공짜로 내어 주는 걸 봤나. 원숭이가 인간보다 일을 더 잘하면 전부 교체할 위인들이 사업가였다. 사업에 평등을 갖다 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회장님이 갑작스러운 결정을 내리면 곧바로 얘기해 주세요.”
“누군가 개입한다고 보는 거냐?”
“아닐 수도 있겠지만,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요.”
“그렇다면 살펴보마.”
무진은 아버지의 무공뿐만 아니라, 정신력의 강화에도 신경을 썼다. 재벌이나 사업가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류가 마인드 컨트롤 계열이었다. 정신 통제를 막는 아이템을 차고 다니기는 해도,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한다면 주시해야 했다.
-띠링!
훈련을 마칠 때쯤 문자가 왔다.
내용을 확인한 무진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씨익!
아들의 ‘빌런 썩소’에 산하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릴 때부터 저 미소를 지을 때면 항상 재앙이 일어났었다. 물론, 아들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누군지 모르지만, 명복은 빌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