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눈치 싸움(1)
환술.
주술과 술법의 종류긴 하나, 환술도 제대로만 배우면 능히 헌터로서 대성할 수 있다. 환술을 수련하면 공간을 맘대로 사용하고, 상대를 현혹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전력을 소모하지 않고서도 손쉽게 제압하거나, 제거할 수도 있었다.
아시아에선 중국, 일본이 환술 분야에서는 일가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만이 유독 환술에 취약했다. 물론, 나라마다 특징이 있었고, 우리나라의 경우 정신적인 강인함이 빼어나 환술에 잘 걸리진 않았다.
그렇더라도 환술이 극한에 이른다면 공간과 사람을 임의대로 다룰 수 있었다. 따라서 능히 일인 군단에 버금가는 역할이 가능했다.
이처럼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는데도 환술사는 항상 부족하다. 환술을 극의까지 익히기가 굉장히 어렵기도 하고, 어중간하게 익히면 아예 안 배우니만 못하기 때문이다.
환술의 기본은 환경, 정신에 대한 이해다. 환경이란 장소를 뜻하며, 기본적으로 천지 사방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다음으로 정신을 제어하는 일종의 최면에 관한 공부도 필수적이다. 가스라이팅도 따지고 보면 환술에 해당이 되었다.
얼핏 간단해 보이나, 이 두 가지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 동시에 두 조건을 만족해야 환술을 제대로 익혔다고 할 수 있었다.
한데, 상대는 정적이지 않고 가변적이며 일반인이 아닌 각성자였다. 환술을 걸기도 어렵고, 걸었다고 해도 금방 풀려나기 일쑤였다. 역으로 걸린 척 유도당해 죽은 환술사도 만만치 않았다. 그것만큼 어이없는 개죽음도 드물었다.
환술을 체계적으로 배우거나 익히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 대비 효용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여 대부분 생도는 스텟이나 속성을 강화하는 데만 치중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중국이나 일본보다 두뇌가 떨어진다고 볼 순 없다. 이상하게도 중국이나 일본은 환술 속성을 타고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신화, 미신, 구라가 나라의 근본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상상력이 빼어났다.
“갑자기 산이 나오잖아!”
“나는 망망대해의 바다야!”
“지금 사막의 모래 위라고!”
생도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아카데미의 환술 교육장에 있었다. 그걸 아는데도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허, 이 미친놈이!’
환술반의 교관 강선우는 헛바람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아 냈다. 보고도 믿기 어려운 발전 속도였다. 방금 무진이 시전한 수는 환술에 속하는 환시(幻視)였다. 단순히 환시를 성공시켰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놀라진 않았다.
‘빨라도 반년짜리 강습이거늘.’
환술에 걸린 녀석들은 얼마 없는 환술반에 속한 생도였다. 무진이 환시를 건다는 걸 알면서도 걸렸다. 마음가짐 자체가 다르기에 환술을 알고서도 당하는 예는 흔치 않았다.
“피톤치드를 마시는 기분이야.”
“무진아, 물이 짜다!”
“나는 물이라도 줘, 더워 죽겠어!”
환시에 이어 환후, 환미가 이어졌다. 오감을 통제하는 영역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산에서 그리즐리 베어가 왜 나와?”
“……흰수염 고래는 너무한 거 아냐!”
“나는 자이언트 바질리스크라고!!”
정신을 통제하는 환혼에 이르렀다. 평온했던 생도들의 얼굴에서 공포가 밀려왔다. 바동거리면서 환술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죽은 척했는데! 거긴 고환이잖아, 왜 물어!”
“헐, 나 고래 배 안에 있는 거야?”
“하의 실종은 싫다고!”
오래지 않아 환술에서 풀려나기는 했어도, 무진의 환술이 환천비기의 3단에는 들어섰다는 뜻이 되었다.
‘이럴 수가!’
강 교관은 혼이 나가는 기분이었다. 환천비기를 3단까지 익히는 데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런데 이 망할 놈은 보름 만에 환술의 기본을 마스터한 것이다.
원래는 환천비기를 가르칠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가장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도 최소 3학년까지는 놀고먹을 수 있었다. 헌터로서 환술을 쓰기보다는, 대응하는 데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더욱이 환천비기 자체가 굉장히 난해했다. 가르친다고 해서 수업을 따라오기란 애초에 버거웠다. 무엇보다 완벽하게 가르치지도 않았었다.
무진은 그 빈틈을 찾아내서 완성도를 높이고 있었다.
“대단하구나, 너는 환술의 천재다!”
강 교관은 열불이 터지는 속과 달리 겉으로는 무진을 칭찬해야 했다. 가르침을 소홀히 대하지 않고, 배움도 빨랐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진은 겸양을 떨어 주었다.
“이게 다 강 교관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아니다. 네가 잘 따라와 준 덕이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무엇이 죄송하다는 것이냐?”
“교관님이 아니었으면 저도 다른 생도와 마찬가지로 환술을 기타 잡술로 치부했을 겁니다. 이제는 환술이야말로 최강이라고 자부합니다.”
“하하하, 네가 내 얼굴에 금칠을 하는구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제자를 키우는 맛도 있었다. 솔직히 이 정도로 따라올 줄은 몰랐다. 그래도 밑천 중의 하나인 환천까지 내어 주게 되리라고는.
“수련할수록 다음 단계가 기대가 됩니다.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저는 강 교관님을 대사부님처럼 대하겠습니다.”
“오냐, 나만 따라오너라.”
이 자식이 공개적으로 떠들수록 밑천이 털리고 있었다. 숨기려고 장난질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영악했다. 그렇다고 더는 가르칠 게 없다고 한다면 환술 교관으로서 자리가 위태롭게 된다.
아카데미의 교관은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생도가 더는 배울 게 없다고 하는 순간, 교관으로서 자리를 보존하기 힘들어진다.
하물며 이 새끼는 1학년이다. 고학년도 아니고, 반 학기 만에 개털이 되면 교장이 자신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왜 열심히 하고 지랄인 거냐!’
환술을 경지에 이르도록 파고들어 오는 생도가 없어서 여태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 무진이 환술반에 오고 나서부터는 자료 준비를 하느라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게다가 생도 수도 늘었어!’
소수로 수업할 때와는 달리 보는 눈도 많아졌다. 환술의 위력을 몸소 체험한 생도들이 환술반에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전력을 다해 가르쳐 주마!’
자신의 계획과는 다른 전개지만, 어쨌든 무진을 포섭하여 세뇌한다면 아무 문제 없는 일이다. 도리어 무진의 파벌까지 끌어들일 수 있었다.
당분간은 조용히 있으라고 했으나, 실패를 만회하기는 해야 했다. 그 대상으로 무진을 낙점한 것이다. 같이 다니는 지수를 끌어들인다면 금상첨화였다.
강 교관의 다짐이 무색하게도, 무진은 의문이 들었다.
‘강 교관이 어째서 여태 무명으로 있었지?’
환술에 대한 인식을 바꿀 충분한 실력을 갖추었다. 철혈십좌는 아니더라도, 아카데미 내에서 소문이 나야 했다.
가진 실력에 비해 대우가 박하다. 실제로 철혈십좌의 연봉이 다른 교관보다 5배는 더 많았다. 성과급까지 치면 연봉 10억이 우스웠다. 일반인의 입장에선 많은 액수지만, 헌터의 기준에선 부족한 액수였다.
‘겸손하시군.’
요즘은 자기 PR 시대였다. 자신을 알리지 못해서 안달인 관종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어그로와 노이즈 마케팅이 천지 빼까리인 세상 속에서 자기만의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묵묵히 매진하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마땅히 존경받을 만한 교관이었다.
‘환천비기는 비기로 불려도 손색이 없어.’
익히면 익힐수록 내재한 환술의 극의가 윤곽을 드러내며 선명해지고 있었다. 배움이 부족한 편이긴 하나, 강 교관의 가르침이 있다면 환술로도 극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간간이 내준 시험도 재미가 있단 말이야.’
일전에 비틀어서 낸 문제는 무려 30분이나 고심을 해야 했었다. 어떤 문제든 보면 바로 답을 찾았기에 시련이나 다름이 없었다.
‘폐반 되도록 놔둘 순 없지.’
환술반이 사라지는 건 곤란했다. 다음 학기에도 배우려면 일정 수를 채워 넣는 편이 효과적이었다. 정원이 차면 아카데미의 지원도 많아질 테고.
‘제가 꼭 교관님의 숨겨 둔 비기를 모조리 마스터해 드리겠습니다.’
가르침을 청하지만, 항시 선행되어야 했다. 수동적인 배움은 무진이 지향하는 바와 거리가 멀었다. 미리 배우고 선행하여, 앞선 기술을 최대한 빠르게 능동적으로 습득해야 했다. 그래야 남는 시간에 자신만의 환술을 완성할 수 있었다.
‘굳이 어렵게 꼴 필요는 없지.’
무진은 환천비기를 ㄱ자부터 시작해서 분해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환술의 진입 장벽이 높은 이유는 어렵기 때문이다. 수학이 싫은 아이에게 함수와 그래프부터 보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배움의 확장성을 높이는 방식이었다.
[무진류, 환술의 대가]
무진은 무공명이나 초식도 난해하게 꼬지 않았다. 아주 직선적인 이름을 선호했다. 보고서 바로 이해할 수 있어야 관심이라도 생기는 법이다.
누구나 쉽고 빠르게 배우는 환술을 목표했다.
무진의 속내를 강 교관이 안다면 뒷목을 잡고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무진은 짜깁기가 완성되자, 친구들을 찾았다.
지수야 당연하고, 혜진이도 괜찮고, 유정이도 나쁘진 않았다. 마조군단 소속 귀검, 혈총, 신광, 백운도 그럭저럭은 됐다.
무진은 고개를 저었다.
흠.
상원은 기분이 나빴다.
“왜?”
“쓸모가 없어서.”
“내가 왜 쓸모가 없어, 중급 마도서도 구해 줬잖아.”
“최상급 마도서를 구했거든.”
“아~!”
어쩐지 재촉을 하지 않더라.
평소에는 볼 때마다 ‘키 안 클 거야?’로 시작해서 상급 마도서를 맡겨 놓은 사람처럼 닦달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잠잠하다 못해 묻지를 않았다.
“‘아!’가 아니지, 어떻게 얻은 거야?”
“보고에서 찾았지.”
“그럴 수가!”
“친구가 보물을 찾으면 축하를 해야지. 너 아주 못된 녀석이구나.”
쓸모없다고 친구를 내다 버리는 녀석이 누구보고 나쁘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급한 사람은 상원이었다.
“축하는 하는데. 그럼 내 키는?”
“그냥 그렇게 살다 뒈져.”
무진은 시큰둥했다.
듣기에 따라서 악의가 없는 것 같지만, 문장을 곰곰이 따져 보면 상원에겐 절대비수였다.
헐!
아무렇지 않게 비수를 꽂는 무진의 무심함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자기 일 아니라고, 입을 닫아 버리는 냉혹함까지.
“유정이가 얼마나 기대했는데.”
“가만있는 나는 또 왜 걸고넘어져! 말마따나 내가 언제 기대했다는 거야?”
“조금은 기대하지 않았을까?”
“무진아, 이 새끼 죽여도 될까?”
발끈한 유정이 상원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무진에게 의사를 타진했다.
“조용히 죽여.”
“……그렇게 쉽게!”
“회사에서도 정년이 있잖아.”
“난 열일곱 살이라고!”
군단에서 해고당한 상원이 발버둥을 치지만, 유정의 힘이 만만치가 않았다. 이럴 때 쓰라고 무진은 유정에게 좋은 점혈법을 가르쳤다. 부지불식간 근접 거리에서 점혈을 당한 상원은 마법을 사용하기도 전에 고정당했다.
“오늘부터 환술을 배워 보자.”
“뜬금없네.”
“배우고 나면 왜 늦게 배웠을까, 후회하게 될 거야.”
“환술이 뭐, 하루아침에 되나?”
지수는 무진이 또 지랄한다고 생각했다. 가만 보면 자기가 되면 남도 되는 줄 아는 재수 없는 녀석이었다.
더욱이 환술이나 주술, 마법 계열은 어지간히 머리가 좋지 않고서는 배우기가 난해하다. 기본적으로 수학 천재들이 이런 쪽으론 잘 돌아간다. 달리 말하면 지수와는 무관한 분야였다. 알고 싶지도 않고.
“이제부터 너도 환술사야.”
“방학이 얼마나 안 남았거든.”
“그 전에 후딱 끝내자.”
“난 한다고도 안 했는데!”
“강해져야지.”
회귀자는 회귀자로서 당연한 의무가 있었다. 회귀하고도 지지리 궁상을 떨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
참고로 세상이 망하면 전부 지수 때문이다.
그 모든 사태의 책임을 져야 했다.
“그러는 너는?”
“회사원이었다며.”
일개 회사원에게 책임을 묻다니, 노동부에 신고해야 마땅했다. 자고로 세상이 망해도 출근은 해야 한다고 들었다.
무진은 곧장 시작했다.
다른 녀석들과 달리 지수는 혜택이 많았다. 무진의 마도를 알고 있기에 지식 전이부터 되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치지 않아도 각인이 되어 수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