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인류최강 남사친-65화 (66/374)

65. 동기부여(4)

‘내 눈을 속였어?’

드러내지 않았지만, 유지호의 눈빛에 창졸간 살기가 번들거렸다. 이 정도면 지철이나 지연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 짧은 시간을 고려하면 일전에 잘못 봤다는 뜻이 되었다.

‘이것들이 진짜!’

근래에 얌전히 지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유지호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기가 치밀었다. 권왕가의 외부 일을 도맡아 하는 아버지가 아는 날엔 불호령이 떨어질 수 있었다.

와!

대연무장 곳곳에서 감탄이 재차 터졌다. 가열되는 와중 마지막 일격을 날린 지수의 권에서 뿌연 기운이 줄처럼 뻗어 나와 형태를 이루었었다.

“……권사!”

“벌써 저기까지 도달했어!”

“초절정도 머지않았군!”

모두는 혀를 내둘렀다.

권왕조차도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무진과 사전에 얘기를 나눴기에 속내는 떨떠름했다. 지수의 성취를 제자를 통해서 알게 됐으니, 편치는 않았다.

‘할아비한테는 숨기는 것 없다더니!’

손녀 키워 봤자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물론, 누군가가 들었다면 어이없어할 것이다. 지수를 키운 것은 전적으로 유경중과 정예진이었다. 권왕은 좋을 때만 찾아와서 좋은 모습만 보았었다.

‘지수는 안 된다, 이놈!’

지수에게는 그에 걸맞은 사내가 필요했다. 우선 운동을 하고, 또 운동을 하고, 마지막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 자신의 훈련을 따라올 수준은 되어야 손녀의 짝이 될 자격이 있었다.

‘망할!’

누구보다 완벽한 손녀의 신랑감이 자신의 제자였다. 이렇게나 얄밉도록 자신의 입맛에 맞는 녀석이 있었다니. 존재하지 않기를 바랐던 권왕은 매우 심란했다.

“또 막았네!”

“반 이상 흘려 버렸네!”

“저걸 태극이라고 해야 할까?”

“태극이라기엔 너무 투박한데.”

“어쨌든 막았으면 태극이지.”

반원을 그려 지수의 권경을 빨아들인 후, 대지에 기둥을 박고 뿌리를 내리듯 전사력을 흩어 냈다. 완벽을 바라기에는 지수의 대처도 대단해서 타격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주르르!

무진과 지수의 얼굴에 핏물이 흘렀다. 상처가 심하지는 않아도, 선혈이 흐를 만큼 치열한 결전이었다.

씨익!

보통 이만큼 했으면 중단할 만도 한데, 무진과 지수는 웃고 있었다. 그럴수록 대련, 아니 전투는 살벌해졌다.

우우우웅!

조금 더 진심을 끄집어내자 기존보다 월등히 강해진 파괴력을 선보였다. 전신에 흔적이 남는데도, 무진의 방어는 흔들리지 않았다. 방어 후, 역공으로 지수의 역린을 노렸다.

파파파팟, 투아아아아!

사방으로 발산한 투기는 무인의 투혼이었다. 경지에 이를수록 무진과 지수의 공방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체감했다.

두드드드드!

가문의 무인들도 혈투에 감화되어 투기를 발산하며 의욕을 불태웠다. 애송이들이 숨죽이고 있던 무인의 투혼을 일깨운 것이다.

“그만하면 됐다.”

“더 할 수 있어요, 할아버지!”

“사부, 끝장을 보겠습니다!”

선혈이 흐르는데도 투기는 식을 줄 모르고 끓어올랐다. 지수와 무진의 전투에 무인들도 덩달아 달아올랐다. 다른 가문과 다르다고 자부했건만, 고여 있었음을 깨달았다.

“승부는 다음에 내도록 해라. 명령이다.”

권왕의 개입으로 무승부로 끝이 났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불만을 표하진 않았다. 권왕의 위신도 있겠지만, 지수와 무진의 실력을 인정한 것이다. 지금도 이런데, 아카데미를 졸업한다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권왕가의 장래가 대단히 밝았다.

‘지수 아가씨야말로 가문의 미래다!’

가문의 무인들은 전에도 지수의 무공을 의심하진 않았다. 그러나 권왕가의 후계자를 논하기에는 어리다고 봤었다. 또한, 여자라는 점도 문제가 되었다. 직계 혈족에 사내가 없다면 모를까, 유지호는 이미 백무대의 부대주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지수의 무위가 또래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아카데미의 고만고만한 천재들과도 질적으로 다르다. 대련에서 보여 준 무공의 실전성이 실로 놀라웠다.

실전을 겪어 보지 않았음에도 완성도가 높았다. 실제로 대련을 지속했다면 지수가 유리했었다. 무진은 거의 전력을 쓴 반면, 지수의 호흡은 변하지 않았다. 성좌를 선택받지 않았음에도 이만한 무위와 재능이라면 나이와 성별은 중요하지 않았다.

‘더욱이 이 녀석도!’

지수가 후계자가 되면 무진까지 덤으로 따라왔다. 서로에게 자극이 될 테고.

1+1의 수지맞은 대박이었다.

권왕의 다음 세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을 방금 대련으로 명확히 각인시켰다.

***

지철, 지연은 큰오빠의 방에 있었다.

전체적으로 넓고 깔끔한 디자인으로 최신의 스마트한 전자 기기가 놓여 있었다. 지호는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보며 백무대의 현황을 살폈다. 부대주는 항시 대원들의 스텟, 부상 등 컨디션을 확인할 책임이 있었다.

“이런! 불러 놓고 내 일만 했네. 커피 줄까? 이번에 사 온 원두가 나쁘지 않거든.”

“아냐, 우린 괜찮아.”

“그러면 물이라도 마셔. 누가 잡아먹냐, 긴장하지 말고.”

“긴장하지 않았어!”

평소와 같은 모습인데도 지철과 지연이 느끼는 압박감의 질이 달랐다. 화를 내지 않아도,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다 같이 모인 것도 오랜만이네. 같은 집에 살면서 그간 너희들한테 소홀했던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노력할 테니, 할 말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해 봐.”

“오빠, 우리가 잘못했어.”

서로 소통하자는 지호의 말에 지연은 아예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보통은 그러지 말라고 해야 하지만, 지호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하며 본색을 드러냈다.

“뭘 잘못했는데?”

“사실대로 말할 자신이 없었어.”

“그래서 여태 숨겼다?”

“말을 듣지 않으면 우릴 마인과 공조한 공범으로 발표하겠다고 해서.”

지연은 무진을 함정에 끌어들였다가 역으로 당했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아카데미에 떠도는 소문도 무진의 계산된 의도였다고.

지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지연과 지철이 피를 나눈 동생이긴 해도, 거짓말을 했다면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한심하긴 해도 그럴 수밖에 없는 연유가 있었다. 아카데미에 대한 내막은 지호도 알고 있는 사안이었다. 다만, 지철과 지연이 엮여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어리석기는.”

“미안해, 큰오빠! 진작 말했어야 했는데.”

지호는 무진의 수에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의도적으로 약점을 드러내며 방심을 유도해 흐름을 주도했다. 그 흐름에 자신과 동생들까지 말려든 것이다. 되레 약점을 잡히기까지 했으니, 꼴이 우습게 되었다.

‘이놈을 너무 얕봤구나!’

무진이 지수의 배후에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봐 온 지수는 머리를 쓰는 일에는 취약했다. 그런 녀석이 이처럼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웠을 리 만무하다. 무력을 뒷받침해 줄 제갈량을 얻은 것이다.

‘빌어먹을 애송이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에게 속았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나 냉철히 따져 봐야 했다. 생도일 때도 이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놈은 치밀해진다.

오늘의 대련도 지수를 모두에게 각인하기 위한 수였을 것이다. 그로 인해 그간 준비해 놓은 자신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오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라고 했어.”

“쯧, 너희들보다 훨씬 낫구나.”

한 수로 끝내지 않고 동생들을 이용해서 다음 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다만, 아직은 어설퍼 보이는 부분이 존재했다. 약점을 잡았어도, 동생들은 자신을 속일 만큼 간담이 크지 않았다.

“큰오빠, 우리가 거짓 정보를 흘릴게. 역으로 이용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네가 지철이보다는 낫지만, 그 영악한 놈이 거짓말을 순순히 믿고 따르지는 않을 거다. 당장은 사실대로 보고해.”

“큰오빠 말대로 할게. 대신, 그 자식을 다시는 건방진 소릴 못하도록 폐인으로 만들어 줘.”

“우리의 귀여운 여동생이 많이 억울했나 보구나. 큰오빠로서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네.”

현재로선 나서기 힘들다.

지수에 대한 할아버지의 편애가 무진에게도 향하고 있었다. 실상, 지수의 실력이 갑자기 급상승한 것도, 무진의 내력이 예상보다 강해진 것도 할아버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우리도 할아버지의 혈육입니다!’

나이도 어리고, 여자인 지수를 앞세우는 것이 불쾌했다. 능력이 있음에도 가주가 되지 못한 아버지처럼 살고 싶진 않았다.

가면을 벗은 지호의 본모습에 지연과 지철은 소름이 돋았다.

어쩌면 사실일지도.

***

1학기가 며칠 남지 않았다. 방학이 되면 2개월 동안 아카데미에 나오지 않는다.

태수로선 납득하기 힘든 현실과 마주했다. 찾아왔어도 벌써 왔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한 순서였다. 한데, 학기가 지나가도록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뭐라고 하디?”

“만나고 싶으면 직접 오래.”

참다못한 태수는 친위대에 속한 생도 2명을 무진에게 보냈다. 모양새가 빠지긴 해도 한번 만나 보자는 취지였다. 선배로서 후배의 무례를 탓하기는커녕 호의를 베풀었다.

“허, 어이가 없네!”

“태수야, 꼭 영입해야 하는 거야? 너무 버릇이 없는데. 이러면 분란만 일으킨다고.”

“그건 인정인데, 호영이 너와 달리 녀석은 능력이 되잖아.”

“태수야, 나 호영이야, 너의 절친!”

“그래서 데리고 다니잖아. 아니면 진작 버렸지!”

태수의 주변으로 5인방이 있었다. 성운으로 명한 친위대 안에서도 어릴 때부터 같이 다니는 녀석들이다. 물론, 능력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생도 서열 내에는 들었다. 그중에서 호영은 절친이기는 해도, 다른 애들보다 스텟이 떨어지는 편이다.

“어릴 때 내가 너 업어 키우다시피 한 거 잊었어?”

“대체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거야!”

“나 서운하다.”

“알았으니까, 씨발 닥쳐 봐!”

이렇게까지 면박을 주면 보통은 쭈구리가 되어야 하는데, 이호영은 그런 부류와는 좀 다르다. 능력이 다소 부족할 뿐이지, 친화력만큼은 마물과도 호형호제할 놈이다.

그러고 보면 어렸을 때부터 생존력 하나는 특일품이었지. 여태 살아남은 것 보면 처세술 하나는 대단했다.

“이 정도면 날 무시한 거 맞지?”

“그냥 무시한 것도 아니고, 개무시지!”

“젠장, 쪽팔리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우리 태수도 많이 죽었어!”

우리끼리는 편해도, 다른 친위대와 있을 때의 태수는 엄근진이었다. 불알친구 간의 허물없는 대화는 주인의 격을 떨어지게 했다. 작금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얼마나 가식을 떨었는지 모른다.

“아무렴, 우리 호영이도 나만큼 대단하긴 하지. 그 녀석, 결투장에서 혼쭐 내 줄 수 있겠지?”

“당연하지. 한데 이걸 어쩌냐. 1학년과 3학년의 대결은 금지라서. 이것만 아니면 내가 그 녀석 피똥 싸게 해 줄 수 있을 텐데. 하아, 아쉽다.”

“이 새끼는 어릴 때부터 항상 혓바닥만 나불대!”

“그게 내 매력이야.”

너무 당당해서 태수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나머지 친구들도 키득키득하며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호영의 잔머리 하나는 일가견이 있었다. 이빨만 나불댔으면 여태 데리고 있진 않았다.

“이제 어쩌지?”

“어쩌긴, 급한 사람이 우물을 파야지.”

정석이긴 한데, 모양이 빠졌다. 이러면 자신이 진짜 궁한 처지가 되어 버린다. 태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진 않았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후배에게 예의를 가르칠 겸, 참교육 좀 해야 할 듯싶다.

“아니 그래도 내가 모시는 회사의 회장님 손잔데,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안 되긴 하는데, 그건 갑질이잖아.”

“우리 호영이가 갑질을 당해 보지 않았나 보다. 너희 회사 문 좀 닫아 볼래?”

“내가 잘못했다. 어디 발가락이라도 맛있게 핥아 줄까?”

“……오지 마, 이 새끼야!”

우리 중에서 호영이가 가장 비위가 좋았다. 맨발 같은 새끼! 진짜로 핥을 수도 있기에 태수는 거리를 벌렸다.

도게자 한 상태로 다가오지는 말라고!

저저저 혀 놀리는 것 좀 보소!

츄베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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