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인류최강 남사친-61화 (62/374)

61. 보물찾기(4)

‘이게 헬 소드였어?’

헬 소드를 쥐었던 지수는 소름이 오소소 들었다. 작정하고 뽑았으면 뽑혔을 수도 있었다. 만약 뽑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발칸의 영혼이 자신의 육신을 차지했을 수도.

어?

그제야 이 묘한 부조화를 체감했다.

학살자 발칸이 일으킨 대학살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한국 내 수많은 헌터가 죽었고, 세계의 군주급 헌터가 합공하고서야 겨우 처치했었다.

학살자 발칸의 헬 소드를 들고서도 무진은 지나치게 태연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장비를 찾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마치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제삼자처럼 굴었다.

“발칸이라며. 지금 한가하게 있을 때가 아니잖아. 그러다 영혼이 제압되고, 육체를 빼앗기면 어쩌려고?”

“염려하지 않아도 돼.”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다른 이도 아니고, 무진의 육체였다. 그 당시 어떤 육체를 강탈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무진이 발칸이 되었다고 상상을 해 봐라.

그걸 대체 누가 막아?

“이게 너만 괜찮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혹시, 이미?”

“우리 지수가 어릴 때 실수를 꽤 했지. 그때 누구 아니었으면 많이 창피…… 알았다.”

더 말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지수의 사나운 눈빛이 작렬했다. 누차 말하지만, 구력이 상당하다.

“그래서 발칸을 어떻게 한 건데?”

“내 안에 가둬 뒀어.”

“발칸은 가둘 수 있는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괜찮아. 아직 무진계 72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설령 빠져나간다고 해도 다른 무진계로 보내면 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비교하자면 지구가 있고, 그 위에 태양계가 있고, 그 위에 은하계가 있잖아. 이런 식으로 심상을 나눠 놓았어.”

무진은 어렵지 않게 설명해 주었다.

다른 차원이 있다는 개념, 다중 차원을 거론하며 내부에 의식마다 결계를 만들어 공간을 분리했다는 것이다.

“……?”

“설명이 어렵니?”

지수는 허망함을 지우지 못했다. 설명이 어렵지는 않았다. 예전과 달리 다중 차원은 흔한 설정이고, 누구나 받아들일 만큼 익숙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익숙하다고 해서 이해하기에는 괴리감이 컸다. 다중 차원을 머릿속에 만들어 의식적으로 분리해 놓았다니,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무당파의 양의신공도 고작 의식을 2개로 분리하는 데 그쳤다. 그마저도 잘못 익히면 주화입마에 걸려 미친놈, 사이코패스가 될 수 있었다.

“72계면, 머리 안에 다른 차원이 72개나 된다는 거잖아.”

“230계 중 72계야. 다만, 그 세계의 나는 조금 난폭한 편이긴 해.”

“난폭?”

“성격도 분리해 놓았거든. 유아기, 성장기, 방랑기처럼 말이야.”

“……너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놀라기는, 때때로 사람은 감정을 분리해 놓고 싶잖아. 슬픈 일이 있을 때, 피하고 싶을 때, 마주 보지 않으려고 할 때 감정을 분리하면 받아들이기가 훨씬 수월해.”

어쩐지 공감이 안 되더라.

지수는 무진을 알면 알수록 점점 더 낯설었다. 베일에 싸여 있던 비밀이 풀어지자, 예상을 벗어나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었다. 자신이 과연 잘하고 있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

무진계에 갇힌 발칸은 죽을 맛이었다.

영혼을 지배하고 육체를 통제하려고 할수록 우주의 망망대해 속에서 허우적대야 했다. 장악하고, 흡수해도 세계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고서 마주한 인간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있었다.

퍼퍼퍼퍼퍽!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대화는커녕 나타나자마자 주먹부터 날렸다. 하찮은 인간의 발버둥인 줄 알았는데, 가공할 권능의 포효였다.

마계 대군주의 전력이 일방적으로 휩쓸렸다.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무시무시한 역량이었다. 하나, 대군주의 자존심은 인간에게 굴복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하찮은 인간 놈이 감히…… 허억!

꽈드드득!

세계가 무진과 동조하여 발칸을 짓눌렀다. 천지 사방에서 압력이 가해지자 영혼이 찌부러지면서 형태를 잃어 갔다. 그쯤에서 다시 폭력이 가해졌다. 공처럼 둥글게 말아서 벽을 만들어 놓고 두들겼다.

퍼퍼퍼퍼퍼퍽!

권능만으로도 얼마든지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릴 수 있었지만, 손맛을 즐기고 있었다. 마치 재미난 장난감을 오랜만에 만났다는 듯이 발칸을 가지고 다양한 폭력을 시험했다.

-……이런 짓을 감히 ……크어억!

우드드득!

팔다리가 으스러지고, 재생하고를 반복했다. 사지를 찢고, 뜯고, 맛을 보았다. 조각조각으로 잘라 내고, 재생하기를 기다리기까지 했다.

-……잠깐, 일단 말부터 ……크아아악!

쩌어엉!

무진이 내지를 때마다 발칸의 영혼은 뻥! 뚫렸다. 영혼의 형태는 내재된 이미지를 반영했다. 당연히 자가 수복이 되어야 하는데, 원래대로 돌아오려는 성질마저 사라지려고 한다. 원영신을 보존하기도 어려운 파괴적인 소멸력이었다.

-……이러는 이유라도 ……크억!

서걱, 서걱!

검결지가 허공을 그을 때마다 발칸은 잘려 나갔다. 반으로 쪼개지는 영혼을 간신히 부여잡았지만, 영력이 반이나 소모되었다. 소모된 영력은 무진계에 흡수되어 폭력으로 돌아왔다.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는 것도 억울한데, 영력까지 흡수되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남의 집에는 꼭 허락을 받고 들어왔어야 했다. 무단 침입의 대가는 컸다. 들어올 때는 맘대로지만, 나가는 건 무진의 뜻대로였다.

-……제발 …… 그만 ……으아아아악!

발칸은 검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검이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집이었다. 집 밖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내 영혼 한 줌 맘 편히 쉴 공간을 버리고 나와서는 안 되었다.

이대로는 소멸당할 수도 있었다.

-……살려 ……크아아아아!

***

무진과 지수는 교장실로 가서 챙긴 품목을 보여 주었다. 물건을 확인한 전 교장은 헛웃음이 나왔다.

“아이템을 썼느냐?”

“아이템을 쓰지 말라는 조항은 교칙에 없던데요.”

맞는 말이라서, 전 교장도 나무라진 않았다. 교칙에 없거나, 용인하는 범위 내라면 생도의 재량이었다. 나중을 위해서 조항을 만들어 놓기는 해야 했다.

“아카데미가 설립된 이래 [아더왕의 검]이 이제야 주인을 만났구나.”

“저는 권공을 씁니다만.”

“허, 이런! 안타깝구나. 기부하겠다면 기꺼이 받아 주마.”

“그럴 수야 없지요.”

전 교장은 이 요망한 녀석이 어떻게 보고의 칠대 불가사의 중 마지막으로 남은 [아더왕의 검]을 손에 넣었는지 궁금했다. 생도의 수준으론 도저히 가져오기 힘든 물건이라, 그림의 떡으로 치부한 장비였다.

“어떻게 한 게냐?”

“정령, 마나, 공력, 사기, 연금술을 조금만 사용할 줄 알면 됩니다.”

“순순히 알려 주는 이유가 있구나.”

“교장 선생님이라서 특별히 믿고 말한 겁니다.”

확실히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영악한 녀석이었다. 대단치 않을 수도 있으나, 결과적으로 무진에게 신세를 졌다. 풀리지 않았던 비밀을 알려 준 대가를 나중에라도 갚아야 했다.

한데, 비밀을 공유해도 풀기가 만만치 않았다. 작정하고 아이템과 장비를 공수하거나, 정령사, 마법사, 무인, 사령술사, 연금술사를 동원해야 했다.

‘마치 이놈을 위해 안배를 해 놓은 것 같구나!’

이놈 빼고, 아카데미 생도 중 누구도 [아더왕의 검]을 뽑을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자요.”

“됐다, 이놈아. 얼마나 더 빼먹으려고!”

“이거 [현자의 눈]으로도 감식이 안 되더라고요.”

“……젠장!”

이 빌어먹을 놈이, 자꾸 신세를 지게 만드는구나!

교장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했다. 현자의 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미로 같은 보고에서 알맹이만 쏙쏙 빼먹은 것만 봐도 감식 기능이 최소 s급은 될 것이다.

“니미럴!”

“그딴 말은 어디서 배웁니까?”

“……배우지 마!”

“예.”

교장은 검병을 잡고 뽑았다. 검의 역량이 느껴졌다. 날카로운 예기 못지않게 절삭, 증폭, 흡수, 발출이 가능했다. 기본적으로 역량의 증가도 있었다. 그런데 조금 애매하다. 나쁘지는 않지만, s급 이상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했다.

그나마 검 자체의 강도와 경도가 나쁘진 않았다. 만년한철보다는 떨어질지 몰라도, 검으로서의 쓸모는 많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치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아카데미의 보고에서 찾아낸 칠대 불가사의를 가진 헌터는 세계에서 알아주는 유명인이 되었다. 그들이 가진 신비와 비교하면 격의 차이가 컸다.

“일부러 줬구나!”

“궁금하면 밤에 잠이 오지 않더라고요.”

“어쩌다 권왕께서 너 같은 놈을 제자로 둔 건지 원!”

“교장 선생님도 제 스승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닥쳐!”

생도의 관점에서 보면 교장도 스승이긴 했다. 그게 몹시도 기분이 나쁜 전 교장이었다. 이러면 자기 얼굴에 침을 뱉은 격이 되었다.

“다음에는 뭘 주실지 모르지만, 무조건 감사히 받겠습니다.”

“흥, 기대는 하지도 말거라!”

“교장 선생님이 주신 보물을 만천하에 공개하겠습니다. 이게 바로 교장 선생님이 각별히 챙겨 주신 장비라고요.”

“……지랄 났구나!”

아무거나 던져 줬다가는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수도 있었다. 명색이 교장이 돼서 생도에게 개똥같은 장비를 선물로 줘 봐라, 얼굴 들고 다니기 힘들 수밖에.

무엇보다 은퇴 이후 쌓은 오랜 내숭이 까발려질 수 있었다. 작금의 모범적인 교장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내숭을 떨었던가. 마누라와 자식들도 적응이 안 된다며 토할 때가 많았었다.

-여보, 역겨워요!

-아빠, 제발!

마누라와 자식은 가장의 무거운 책임을 몰랐다. 사회가 그리 호락호락한 줄 아나.

돈을 벌어 봤어야 알지. 쯧쯧쯧!

와!

무진과 교장의 대화에 지수는 할 말을 잃었다. 저 빡빡한 교장이 한 번도 흐름을 이끌어 오지 못했었다.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저걸 어떻게 이겨?’

말로도, 주먹으로도, 템빨로도 못 이기겠다. 그러니 교장실에 올 때마다 아이템과 장비가 늘어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사람을 가지고 노는 데 일가견이 있는 수준마저 넘어섰다.

“이제 가라.”

“시간도 남았는데, 담론이라도 나누시죠.”

“맞고 갈래, 그냥 갈래?”

“갑니다.”

교장실에서 나가자, 전 교장은 소금을 꺼내서 문밖에다 왕창 뿌렸다.

“여태 내숭을 떠셨던 거잖아. 거기다 넌 사기를 치고!”

“묻지도 않은 걸 시시콜콜 답할 필욘 없잖아.”

“그 스승에 그 제자네!”

“손녀라면 할아버지 얼굴에 먹칠은 하지 말자.”

“젠장!”

무진에겐 대화하면 할수록 빨려 들어가는 마력이 있었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어떤 병신 같은 말을 쏟아 냈는지 깨닫게 된다. 대화의 흐름을 요상하게 비틀어 대고 있어서 사람을 정신 나가게 했다.

이래서 선입견이 무서웠다.

무진을 처음 본 대다수가 우직한 줄 알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뒤늦게 정신을 차려 봤자, 말려든 지 오래였다. 그냥 외면하고 제 갈 길 가는 편이 정신 건강에는 이로웠다. 엮이면 영혼까지 힘들어진다.

이렇게.

-……살려 주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나 다시 돌아갈래!

잊어버린 발칸의 공허한 외침이었다. 무진계는 넓고도 넓어서 무진도 관리가 버거울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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