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보물찾기(3)
그토록 중요했으면 어떻게든 뽑아냈겠지. 무진은 생존에 대한 인간의 본능을 무시하지 않았다.
“칫, 김빠지게.”
“그래도 노력은 해 봐라. 설마, 마검이겠어?”
“말을 해도!”
투덜거리면서도 지수는 바위 위로 올라가 검을 내려다보았다. 눈을 반짝거리는 것으로 봐서 골드미스의 직감이 온 모양이다. 하긴 구력이 쌓인 골드미스만큼 무서운 존재는 없을 테지.
착!
검을 잡았다.
-해제 조건을 완성하라.
어째서 뽑히지 않았는지 연유가 밝혀졌다. 검이 바위와 함께 금제에 걸려 있었다. 바위는 검을 금제하는 도구였다. 바위를 부수려고 해도 어림없었다. 검과 암검합일(巖劍合一)을 이룬 바위는 부서지는 즉시 검도 부서질 수 있었다.
물론, 사람의 욕심이란 가볍지 않았다. 바위를 부수려는 흔적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일반적인 바위는 아니란 거네. 혹시, 만년한철 같은 건가?”
“그래 봤자 바위거든.”
“그래도 조금 생뚱맞네. 조건을 완성하라는데 조건이 뭔지를 모르잖아.”
“그러니까, 왜 이렇게 불친절해!”
자세히 살펴보면 바위에 마도식과 술식 같은 것들이 적혀 있었다.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해 봐야 하겠지만, 우리의 언어와는 체계가 또 다르다. 이건 찾지 말고, 네 갈 길 가라는 의도였다.
“포기할래?”
“나 그렇게 쉬운 여자 아냐!”
그 반대 아닌가?
문장력의 이해도가 심히 걱정되나, 지수를 믿고는 있었다. 애초에 군주급 헌터가 이 정도로 포기할 리도 없고.
끄으으응!
우우우웅!
지수의 육신에서 내력이 휘몰아쳤다. 마력과 융화되어 순환된 내력의 파문이 공간 전체를 흔들어 대려고 했다.
무진은 파문의 범주를 한정하여 공간에 기막을 쳤다. 외부로 번지는 기운을 철저히 차단해야 했다. 보고 안은 마력의 이상 흐름으로 인해서 실시간 촬영이 불가능하지만, 기의 요동으로 외부에서 알아챌 수도 있었다.
‘호오, 이런데도 버텨?’
솔직히 좀 놀랐다.
아카데미의 보고는 생도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었다. 교장이나 교관은 보고 안의 물건을 가질 권리가 없다. 그들은 철저하게 수업 성과에 의해서 보고 안의 물건을 내어 주도록 허락 여부만 결정할 수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생도만이 보고 안에 들어갈 자격이 있으며, 확인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생도의 실력이라고 해 봤자, 한계가 있었다. 고학년으로 가면 기존의 헌터를 능가하는 천재들도 있으나, 지수는 완성된 헌터 가운데서도 특급으로 치부해야 했다
투득, 투득!
얼굴에 힘줄이 돋고 있었다. 피부를 그리 중요시하는 지수가 벌게지도록 힘을 쓰는데도 검은 요지부동이었다.
속성을 꺼내 전력을 다하지는…… 꺼냈네!
화르르르르르!
강렬한 투기가 불길처럼 치솟았다. 순식간에 공간의 열기가 섭씨 300도까지 끓어오른다.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면 화상을 입거나, 타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건 좀 대단한데.’
보통 검이 아니라고 예상을 했지만, 그 범주마저 넘어섰다. 이쯤 되니 호기심을 자극했다.
무진은 열심히 뽑고 있는 지수를 내버려 두고, 바위를 살펴보았다. 바위의 흐름이 어떤 식으로 금제를 발동시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힘을 쓸수록 바위의 술식이 강화되잖아.’
바위의 마력이라고 볼 순 없고, 검의 마력인 듯했다. 바위에 새겨진 마도식은 검에서 마력을 뽑아내고, 증폭하는 금제의 수단이었다.
‘이거 어째.’
바위의 용도를 알아냈다.
이건 검집이다.
바위를 통째로 검집으로 쓰고 있었다. 나쁘진 않았다. 형태야 얼마든지 변용이 가능했다. 기간트나 트렌스포머도 간혹 있으니까.
‘좋은데.’
지수가 전력을 쓸수록 검집도 전력으로 막아서고 있었다. 생도들이 확인하지 못했던 숨겨진 마도식이 드러났다.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조건의 완성을 방해할 때까지 대비한 것이다.
-광폭화 4단!
이런, 눈 돌아갔다.
무진은 지수의 뒤로 가서 손목을 부드럽게 잡았다. 호흡을 동조하여 흥분한 기운을 뱉어 내게 했다.
“그만.”
“안 놔! 이거 부숴 버릴 거야!”
“진짜로 부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젠장!”
보고의 기물 파손은 그 즉시 영구 제명이었다. 다시는 보고로 들어올 자격이 없어진다. 게다가 광폭화 4단은 지수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단계였다. 한 번 쓰고 나면 후유증도 만만치 않아서 호심공이 8성에 이를 때까지는 제한하는 편이 이로웠다.
‘6단까지 있다고 했지.’
지수가 눈 뒤집혀서 6단을 쓸 때는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이 이상의 힘겨루기는 불필요한 낭비였다.
“가자.”
“해 보지도 않고?”
“나도 해?”
“해야지, 당연히!”
지수의 열의에도 무진은 일단 시치미를 뚝 뗐다. 내가 하겠다고 하면 광폭화를 기어이 4단까지 끄집어낼 청개구리 같은 지수였다. 이럴 때는 반대로 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하라고 해서 하는 거다.”
“알았으니까, 어서 해 봐!”
지수도 무진의 의도를 알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아까웠다.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후에 대박이 나오면 배 아파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최소한 별것도 아니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궁금하기도 하고.’
무진의 위용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무진이라면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어?
지수는 입을 벌렸다. 눈앞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지나치게 간단해서 납득하고 싶지 않았다.
“굳이 뽑을 필욘 없잖아.”
무진은 바위째로 들었다.
이런 식의 해결책이라니, 문제를 만든 출제자가 무덤에서 일어설 만행이었다.
헐!
저게 든다고 들리나?
역발상의 기발한 묘수이긴 하나, 바위의 무게는 평범하지 않았다. 족히 수백 톤은 넘었다.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광경에 지수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넌 어째 평범하지를 않냐!”
“회귀한 골드미스보다는 평범하지.”
“한 번을 안 져! 그래서 그 상태로 들고 나가려고? 네가 아무리 괴력을 보여 줬다곤 해도 이쯤 되면 의심을 살 수밖에 없어.”
“아, 그렇지.”
무진은 검과 바위를 다시 내려놓았다. 힘으로 들 수 있는 성질의 무게가 아니었다.
두둥!
허공섭물은 더더욱 안 될 테고.
아!
지수는 무진의 공력에 감탄했다.
바위를 허공섭물로 들어도 되는 건가? 공깃돌보다 가벼워 보여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나가도 너무 나간 것 같았다. 자신과 겨룰 때도 전력하고는 거리가 멀지도.
‘……무서운 새끼!’
저런 능력을 갖추고 여태 어떻게 평범하게 살았지?
평범?
돌아와 생각해 보니 하나도 평범하지 않았다.
애초에 종이 다르다.
‘할아버지도 안 되는 거 아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지수는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이럴진대, 나이가 들면 얼마나 자기 멋대로 살겠어!
할아버지만이 무진을 흠씬 두들겨 패 줄 유일한 구명줄이었다. 권왕가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에 따르면 사람 만들기에 주먹만큼 훌륭한 도구도 없다고 했다.
스스렁!
정성을 들여 기름칠한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오는 소리처럼 청아했다.
“어떻게?”
“별거 아냐. 정령, 마력, 공력, 사기, 연금술을 적당히 조합해서 활용했을 뿐이야.”
“대체 별거 아닌 기준이 뭐야?”
“창조쯤 돼야, 신기하지.”
지수는 인내심의 한계를 체감했다. 세상에 재수 없는 사람은 많지만, 대부분 쭉정이다. 그에 반해 무진은 재수가 없는데, 능력도 빼어났다.
‘생도가 아니라 헌터도 다섯 가지 기운을 동시에 운용하고, 연금술까지 달통하진 않는다고!’
지수는 자신이 마루타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괜히 먼저 나대는 바람에 무진에게 아낌없이 내어 주는 호구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돌아오고 나서 한 번을 못 이겼다. 미래 지식만 뺏기고, 남 좋은 일만 시키고 있었다.
‘내 기필코 너를 퐁퐁남으로 만들겠어!’
두고 보라고.
안타깝게도 무진은 권능이 있었다. 손을 쓰지 않아도 설거지와 집 안 청소는 간단했다. 나름의 자부심도 있었다.
‘나보다 설거지, 청소 잘하는 사람도 없…… 흠!’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지수는 김칫국을 곱빼기로 마시고 있었다.
***
-크하하하하하하, 드디어 풀렸다!
정체불명의 영혼이 무진의 정신세계로 넘어왔다. 숨기고 있던 불명의 의념이 뇌리를 강타하며 진의를 드러냈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지만, 정신 교감으로 의사 전달이 되었다.
-네놈의 몸은 이제 나, 위대한 발칸의 것이니라!
모래 위의 물처럼 스며들어 온 의식이 확장되며, 새하얀 백지에 떨어진 먹물처럼 정신세계를 물들였다.
-제법이기는 하다만, 나에게는 어림도 없느니라!
금제가 되어 봉인되었음에도 정신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견디기 힘든 무한의 지옥, 자신이 아니라면 자연스럽게 소멸했을 지난한 세월이었다.
드디어 자신을 금제한 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다시 이 세상을 지배할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날 때였다. 감히 자신을 봉인하고 금제한 세상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호오, 심신이 제법이로다!
정신세계를 장악해 갈수록 육체의 성능이 보였다. 설령 대단치 않더라도, 헬 소드가 있는 이상 상관없었다.
봉인을 푼 존재가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신체를 지녔다. 가지고 있는 마력도 상당한 수준으로, 온전히 흡수하여 증폭한다면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저항도 하지 않다니, 가진 육체가 아깝구나!
발칸은 의식을 끊임없이 확장하며 정신세계를 장악해 나갔다.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내어 주는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어차피 불필요한 저항이었다. 인간은 자신을 이길 수도 없고, 발악해 봤자 고통만 가중될 뿐이다.
-어서 너의 지식과 육신을 나에게 넘겨라.
***
약속했던 12개를 간신히 다 챙겼다.
최대한 지수의 미래 조각을 바탕으로 비슷한 물건들을 찾아냈다. 12개 중 2개는 괜찮았고, 4개는 그럭저럭, 5개는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1개는 판정 보류 중이다.
무진과 지수의 능력을 고려하면 2개 정도만 쓸모 있다고 볼 수 있으나, 꼭 그렇지는 않았다. 어떤 식으로 쓰느냐에 따라서 다르고, 지금이 아니라 나중을 위한 보험이기도 했다.
“[대천사의 눈물]을 찾을 줄은 몰랐어.”
“쓸모가 있는 거야?”
“악마의 피와 조합하면 엘릭서와 비견되는 무결점 만능 치료제가 된다고 했어.”
“그것참 신기하네.”
대천사의 눈물과 악마의 피가 상호작용을 하다니, 적의 적은 아군이란 건가? 악마의 피도 대천사급이 아니면 소용이 없기는 하나, 지수가 알 정도면 대악마의 등장은 기정사실이었다.
“신속도 나쁘진 않고.”
“확실히 템빨이 중요하지.”
무진은 순수 능력만이 전부라고 보지 않았다. 아이템, 장비, 영약 등 어떤 능력이라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전력을 극대화해야 했다. 또한, 만약을 대비한 비장의 수는 필수였다.
“그런데 그 검은 정체가 뭘까? 진짜로 아더왕의 검이야?”
“헬 소드라는데.”
“누가 그래?”
“아까 나한테 들어온 발칸이란 자가.”
“……혹시 학살자 발칸을 말하는 거야?”
“학살잔지는 모르겠고, 자기가 위대한 발칸이라고 하네.”
지수는 할 말을 잃었다. 방금 엄청난 말이 지나갔다. 학살자 발칸, 그는 마족을 지배하는 대군주다. 헌터의 등급으로도 초월급에 가깝다고 알려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