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보물찾기(2)
아카데미의 보고는 밖에서 볼 때와 달리 내부는 굉장히 넓었다. 공간 전체에 확장, 미로 마법이 걸려 있었다.
동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차원의 균열, 즉 던전이 열렸을 때 발생한 막대한 에너지가 내부에서 무한으로 순환하고 있었다.
드르르륵!
들어가기 전에 내어 준 인식 팔찌를 차고 있지 않으면, 보고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과거 인식 팔찌를 차지 않고 들어온 도둑놈이 창고 안에서 길을 헤매다 아사하기도 했다.
그 이유가 바로 공간 전이에 있었다. 보고에 생명체가 들어오면 자동으로 공간의 흐름이 변해 입구를 찾기 어렵게 했다. 미궁의 변환 구조를 파악하지 않는 한 팔찌 없이는 입구를 찾지 못한다.
그것이 보통인데.
“들어올 때마다 56832번 흐름이 변하네. 그다음에 구조식을 달리해서 패턴이 읽히지 않게 하고 있어.”
“……미친놈!”
“그것만 빼면 일정한데, 왜 못 나가지? 전혀 이해가 안 되네.”
“……미친놈!”
네가 더 이해가 안 되거든.
5만이 아니라 오만한 거라고! 그런 걸 일일이 계산해서 입구를 찾는 게 말이 되느냔 말이다. 두뇌가 어떤 구조기에 이런 차이가 나는 거야? 속성이 아인슈타인 버전업 확장팩도 아니고.
‘괴물 같은 연산 능력은 둘째 치고, 그걸 다 어떻게 읽는 거지?’
창으로 항문을 찔러도 무덤덤할 몸뚱이가 초월무극의 센서티브한 감각을 지녔다. 읽어 내고, 계산하고, 분석하여 답을 내는 과정이 즉시즉각이었다.
스윽, 스윽!
무진은 분석한 패턴대로 입구를 확인해 봤다. 세 번 시험한 후, 더는 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몰래 들어와도 되겠는걸.”
“그러다 걸리면 퇴학이야!”
“나 무진이야. 내가 걸릴 것 같아?”
“당연히 걸리지, 내가 신고할 거거든.”
“……아!”
그건 정말로 생각 못 했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을 줄이야. 편법, 불법, 회귀의 화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준법정신이 투철해졌을까? 사람 하나 갱생시키기는 했는데, 좋아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전에는 어떻게 찾은 거야?”
“아카데미 설립 초기에 들어온 물건을 제외하면 목록에 다 있어. 형태만 말해 주면 알아서 찾아 주는 서비스야.”
아카데미 보고를 관리하는 인원이 30명이나 되는 이유가 있었다. 이 넓은 보고를 일일이 확인하고, 특성별로 배치해야 했다. 한 번에 정리하기는 불가능하기에 매년 순차적으로 검토해 나갔다.
“알아서 찾아보라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으라는 소리였네. 어쩐지 순순히 내어 준다 했어.”
“그런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야. 천운이 따르면 밝혀지지 않은 레전더리 장비를 얻을 수도 있고.”
교장은 보고의 목록을 보여 주지 않았으며, 시간마저 한정해 놓았다. 12개의 장비를 가져가기도 전에 보고 안에서 헤매다 끝나는 수가 있었다.
더욱이 인간의 욕심이란 한도 끝도 없다. 정해진 것도 아니고, 아무거나 가지고 나오란 건 자제력을 시험하려는 의도였다.
평범한 생도라면 당황하겠지만, 그마저도 무진의 계산에 들어가 있었다.
“우리에겐 [현자의 눈]이 있으니 상관없지.”
“이게 다 이 누나의 위엄 아니겠어.”
“기억도 못 한 주제에 잘난 체는, 양심은 있는 거냐?”
“윤곽은 잡아 줬잖아.”
무진의 힐난에 지수는 소리 볼륨을 줄였다가 금세 원래대로 돌아갔다. 확실히 뻔뻔한 거로 따지면 지수를 따라갈 사람이 흔치 않았다.
[현자의 눈]이 있으니 ss급 미궁, 장비, 아이템이 아닌 이상은 골라낼 수 있었다.
[현자의 눈]은 제인을 통해서 공수했다.
무진은 지수가 아는 변변치 않은 미래의 조각들을 모아 통합 분석하여 제인에게 넘겼다. 제인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으며 겨우 비슷한 물건을 골라냈다.
대부분 장비가 그렇듯 봉인이 된 상태였다. 감춰진 스텟을 알아보고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아이템과 장비가 거의 로또 수준이었다. 그래도 지수가 아는 미래의 조각들이 없었다면 발견조차 못 했을 것이다.
“[신의 눈]이면 더 좋았을 텐데.”
“현자의 눈도 s급이라고!”
s급에서 발전 가능성도 있지만, 착용자의 레벨에 영향을 받는다. 현재로선 무진보다 지수에게 적합했다. 22레벨론 [현자의 눈]을 온전히 사용할 수 없다. 다만, 비슷한 등급의 장비나 강화석으로 강화해 볼 여지는 있었다.
‘레벨이 영향을 주는 것도 우습긴 해.’
기능 제한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권능이나 신력의 영역을 넘어섰다.
이해는 간다. 이토록 엄청난 규모의 차원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시스템이라면.
신에게도 단계가 있다면 초월신이 아니고선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창조주가 설계한 흐름이었다.
‘변칙을 쓴다면 또 모르지만.’
당장은 지수가 있는 이상 굳이 위험을 감수하진 않았다. 군주 위에 초월이 있지만, 세계를 국한해도 극소수였다. 더욱이 군주급 헌터도 정확한 실력은 알기 어렵다. 등급을 까발리는 병신 같은 짓을 할 리도 없고. 각국의 전력이 헌터가 된 이상, 전투력을 전부 공개하진 않았다.
무진과 지수는 차분히 보고 안을 둘러봤다. 조급해한다고 원하는 물건을 찾을 순 없다. 시간 내에 전부 둘러보지 못해도, 꼼꼼하게 확인하는 편이 나았다. 보고 안에 있다면 다시 들어올 기회를 만들면 그만이었다.
우리의 호구…… 교장 선생님은 마음씨가 넓은 듯 안 넓기는 하지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블랙 오우거의 심장.
아이스 마법으로 보존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블랙 오우거의 심장은 마력을 올려 주는 영약으로, 복용하면 내력이 상승한다.
당연히 건너뛴다.
내력을 조금 올리자고 선택권을 쓸 바엔 명상을 하는 편이 이로웠다. 드래곤 하트라면 또 모를까. 최소한 드레이크 하트 이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영약 코너를 지나.
-원균의 검.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배치가 되었음에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이유를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었다. 등급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검술의 숙련도를 올려 주기도 했다.
더욱이 원한이 깊은 상대에게는 최대 2배까지 강화한다. 다른 말로 질투의 검인데, 이순신의 검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이만하면 괜찮지 않나? 다들 눈이 높네.”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거지.”
“가져갈까? 강화석으로 써도 괜찮고.”
“됐어.”
원균의 후손도 아카데미 생도였다고 한다. 조상의 검이 이렇게 방치되어 있는데, 가져가지 않는 걸 보면 답은 나왔다.
일본도 또한 보이기도 하지만, 제국주의 시대의 검이나 병기는 쓰지 않는 편이다. 이건 국제적으로도 분란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했다. 하나, 병기나 장비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쓰는 사람이 누구이고,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지.
-내 이름은 황진희.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말하고 있었다.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템치고 대단치는 않았다. 스텟을 올려 준다거나, 속성을 강화하는 임팩트도 없었다.
확인해 보니 피부 노화를 방지하고, 자체 뽀샵이라고 적혀 있었다. 더욱이 원활한 기능을 위해서는 100레벨은 넘어야 했다.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빛 좋은 개살구였다.
차라리 [논개의 쓰개]가 낫지 않을까? 원수나 매국노와 함께 자폭하기 딱 좋았다.
“이건 꼭 가져야 해.”
“그래.”
“어? 이렇게 간단히?”
“이해하니까.”
피부에 진심을 쏟아도 골드미스에겐 한계가 뚜렷했다. 불로장생의 불사신이 아닌 이상, 피부는 노화되고 주름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런 데다 남자도 사귀어 보지 못하고 회귀했으니 얼마나 억울하겠어.
“그딴 눈으로 보지 말라고 했다.”
“싫으면 말고.”
무진은 사소한 언쟁을 피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예상대로 쓸 만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평타 이상의 장비나 아이템이 있기는 해도, 특별하진 않았다.
“봤지.”
“알았다니까.”
“우와! 이거 외형 보정도 되네. 정말 어마어마하다!”
“그만하자고!”
이거야 원, 야구 경기의 9회 말 2 아웃 같은 기분이다. 지수는 어떻게든 아이템 획득의 정당성을 채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솔직히 자기가 생각해도 이상하긴 할 거다. 세상을 구하겠다고 돌아와서 피부 아이템을 구했으니 말이다.
“세상을 구한 영웅의 피부가 화산 폭발의 곰보여 봐. 누가 영웅을 하고 싶겠어. 이건 모두를 위한 나의 거국적인 희생이야.”
“……?”
결론이 정말로 획기적이다.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오는지 3.14였다. 무진은 시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가 원래는 이렇게까지 TMI는 아니었는데, 말 더럽게 많아졌다.
나이가 들수록 말만 많아진다더니.
‘골드미스의 한을 무시하면 안 되겠어.’
여태까지는 장난이었지만, 무진은 더는 놀리지 않기로 다짐했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쯧쯧쯧!
일단 둘러보는 데까지 살피고 개중에 괜찮은 건 고르기로 했다. 정령목, 마력석, 소환구를 선택했다. 전체적으로 스텟을 올려 주고, 정확도, 타점, 파괴력을 높이는 순으로 골랐다.
소환구는 효자로서 아버지를 위한 아이템이었다. 일회성이기는 해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러다.
-아더왕의 검.
보고 안의 여러 공간 중에서도 한 방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집채만 한 큰 바위 위에 박혀 있는 검이었다.
흠.
고민이 되었다.
범상치 않은 검이 분명한데도, 아무도 가지고 가지 않은 걸 보면 이상하긴 했다. 눈에 띄지 않는다면 모를까,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손잡이에 기름기가 많은 걸 보면 여러 사람의 손을 탄 모양이다.
“영국도 아니고 아더왕의 검이 여기 왜 있는 거지?”
“[현자의 눈]엔 물음표로만 나와.”
“바위에 꽂혀 있다고 아더왕의 검은 아닐 텐데, 성의가 좀 없다.”
“그래도 최소 ss급이란 소리잖아.”
[현자의 눈]으로도 확인이 어렵다는 것만으로 검의 가치는 증명되었다. 사연도 예상 범위 내였다. 이유 없이 검을 방치했을 린 만무하고, 편하게 뽑을 수 있으면 [아더왕의 검]이라고 붙여 놓지도 않았다.
“선택받은 자만 뽑을 수 있다는 뜻인데, 해 볼래?”
“나한테 뺏기고 울지나 마.”
“뽑지 않는 게 아니라, 뽑아선 안 되는 걸지도 모르지. 꼭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맛을 아는 애들 때문에 세상이 망하거든.”
“겁쟁이!”
“도발은 안 통해.”
무진의 시큰둥한 반응에 지수는 입술을 삐죽였다. 원하는 그림과는 반대라서 흥이 식었다. 이걸 빌미로 [내 이름은 황진희]와 등가교환 하려고 했는데.
‘얘가 낭만이 없어!’
원래 보물을 발견하면 서로 먼저 차지하겠다고 설레발도 치고, 경쟁도 하고, 칼부림도 하고, 뒤통수도 노리고 그러는 건데. 시작부터 초를 치니, 가지고 싶다는 욕구도 생기지 않는다.
물건의 진정한 가치는 남이 보는 시선에 있었다.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남이 보는 눈에 개똥이면 개똥인 거다. 왜 이렇게 주관이 없냐는 말은, 저렴한 보급품을 선호한다는 방증이다.
“나중에 후회나 하지 마.”
“그렇게 유명한 검이었으면, 미래에 이름이라도 알려졌겠지.”
억!
그러네.
종말이 시작될 때까지 아무런 징조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검이 대단할 것 같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