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보물찾기(1)
허!
자기 집이냐. 어떻게 된 녀석이 교장실에 들어와서도 저리 편안할 수가 있지? 여기는 서서 들어와서 기어서 나가는 곳이라고 할 수도 없고.
지난번엔 이 요망한 생도의 인내심을 시험해 보려다가 약점이 잡히며 일방적으로 끌려다니고 말았다. 강직하게 생겨서는 속엔 여우나 구렁이를 담고 있었다.
그러더니 대뜸.
“마도가는 찾으셨나요?”
“어허, 속단할 단계가 아니라고 말했네만. 강무진 생도!”
“내부에 동조자가 없이는 하기 힘든 일입니다. 당연히 배신자가 더 있다는 소리죠.”
“증거도 없이 함부로 말을 하는군. 그 입이 화근이 될 수 있으니, 신중히 생각해 보고 거론하게.”
마인의 무서움을 몰라서 이러나 싶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무진은 마인의 자폭을 정면으로 받아 냈다. 생사지경을 경험하고도 이토록 태연하다니, 1학년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강심장이었다.
무진은 자신감의 근거를 양보했다.
“사부님이 건재하시고, 교장 선생님도 있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습니까? 그딴 놈들 한 트럭이 몰려와도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더는 통하지 않으니 그만하는 게 좋을 걸세.”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고작 1학년 생도입니다.”
“그렇다고 해 두지.”
1학년 생도의 겁 없는 용기처럼 보이나, 전 교장은 속지 않았다. 처음 대면했다면 학생의 만용을 다독였을 것이다.
이미 한 번 크게 덴 데다가, 탈탈 털리기까지 했다. 세상모르는 철부지 생도들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교장의 시큰둥한 대응에도 무진은 놀라지 않았다. 그건 예의 바른 생도로선 해선 안 되는 짓이었다.
“두 번은 안 통하네요.”
“나를 병신으로 보는 거냐?”
“말투가, 좀.”
“시끄럽다. 더는 안 속아!”
“사부님께서 말하길 젊을 때 한 성질 하셨다더니, 여태 어떻게 숨기고 사셨데요?”
“너만 아니었으면…… 됐다.”
앓느니 죽지.
교장 앞에서 이리 뻔뻔한 녀석은 처음이다. 또한, 의도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허술하게 대응했다간 권왕과 맞대면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었다.
“녹음 안 해요.”
“안 믿어!”
“스승이 제자를 믿지 않으면 누굴 믿나요? 저는 처음 훈화를 들을 때부터 교장 선생님을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뻔뻔하기가 천하무적이구나!”
이딴 감언이설에 넘어갈 내가 아니다!
전 교장은 무진의 아부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어떤 개수작을 해 올지 판단이 서지 않는 망나니 같은 놈이었다. 모범생처럼 생겼다고 방심하면 곤란했다.
교장과 생도의 치열한 심리전과 신경전이었다.
“하긴 신뢰란 게 간단하지가 않긴 해요. 말로만 떠들수록 제 입만 가벼울 뿐이죠.”
“너 설마 발설한 건 아니지?”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신뢰를 구축해야죠. 안 그런가요?”
“……그렇구나.”
신뢰는 무슨, 그런 놈이 약점을 잡고 협박하냐!
말로는 아니라고 하는데, 누가 봐도 협박처럼 들린다. 원활한 일 처리를 위해 입막음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평범한 생도라면 겁이 나서라도 적당한 보상으로 만족할 텐데, 이 녀석에겐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그 반지 좋네요.”
“차라리 달라고 하지 그러냐?”
“주시게요? 저야 고맙죠.”
“어림도 없다!”
이 반지의 특성은 리턴 파워였다. 소모된 힘을 원래대로 한 번은 돌려주었다. 패색이 짙을 때, 상대의 뒤통수를 후리기에 제격이었다. 생명을 연장할 구명의 반지를 달라니, 양심도 없는 녀석이었다.
“농담이에요. 후후후후!”
“마치 나 죽은 다음에라도 빼 갈 것 같은 얼굴이구나.”
“저는 교장 선생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
“됐고, 열어 줄 테니까 빨리 들고 나가!”
가식 없는 무진의 탐욕에 전 교장은 헛바람을 삼켰다.
어른이 주면 ‘예’ 하고 받을 때가 그리워졌다. 주는 대로 먹고 떨어지는 아름다운 생도는 어디로 가고, 늙은 스승의 등골을 빼먹지 못해서 안달인 배은망덕한 제자만 남았는가.
세월이 야속했다.
‘다 가지고 가라고 하면 골수까지 털어 갈지도.’
보상안은 이쯤에서 마무리를 짓기로 했다. 칠대가문, 대형 길드, 정부의 핵심 인사와 대화를 나눌 때도 이토록 진이 빠지지는 않았거늘.
“들리는 소문에 이상한 파벌을 만들었다고 하더구나.”
“마조군단입니다!”
원대한 포부와 자부심을 드러내는 무진의 환한 미소에 전 교장은 괜히 물어봤단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실수했구나. 아주 큰 실수를 했어!’
뜻을 몰라서 그런 건 아닐 테고, 최소한 아카데미의 명예를 실추하지 않는 선에서 이름을 지었어야 했다. 마조군단이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으니, 이걸 어떻게 홍보하냐고!
“마조군단에 들어오고 싶어서 줄을 선 생도가 연무장 네 바퀴를 돌아도 부족합니다.”
“영화 그만 봐라.”
대외적으로 알려지는 순간, 아카데미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절대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일인데, 이놈의 입을 틀어막기가 불가능했다.
‘성적이 오르니 하지 말랄 수도 없고!’
왜 잘나가지?
잘 패서?
잘 맞아서?
학부모들이 알면 경기를 일으킬 사안이었다. 그런데 마조군단과 생도들 간에 성적이 벌어지고 있어 벌써 문의가 들어오고 있었다. 하위 서열의 반란에 아카데미 상담실이 곤란한 지경에 처했다.
성적이 오른 생도는 무진에게 처맞고도 달려드는 악바리들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도중에 포기했다는 뜻이다.
집에 가서 처맞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포기한 생도의 학부모들은 성적이 떨어지는 연유를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기도 곤란했다. 결투장에서 처맞으며 강해졌다고 어떻게 설명하냔 말이다. 따지고 보면 끈기를 보인 생도들의 자구책이었다.
그럼에도 문제였다. 학부모가 언제 교관의 말을 듣기나 했나? 자기 자식은 천재라고 떠드는 학부모가 적지 않았다. 내 자식이 범재라는 걸 인정 좀 해 줬으면 했다.
“어떻게 한 거냐?”
“영업 비밀입니다.”
“얻어걸린 우연이구나.”
“맞습니다.”
이놈은 정말 귀여운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다. 떠보는 듯이 질문했더니 대충 인정해 버렸다. 파고들 구석이 보이지가 않는다. 게다가 자기가 우위에 있다는 걸 아는지 다리를 꼬았다. 건들거리는 저 발놀림을 봐라, 건방이 하늘을 찌른다.
“특수 속성이지?”
“그런 속성도 있습니까?”
“생도 훈육 메이커라는 속성도 가끔 있지.”
“고상한 게임을 하시나 보네요.”
“우리 사이에 이럴 거냐?”
“우리가 어떤 사인데요?”
“하나 더 가져가라. 됐냐?”
“원 플러스 원.”
“다 가져…… 2개, 됐지?”
홧김에 지를 뻔했던 전 교장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칫 잘못했으면 아카데미의 창고가 텅텅 비어 버릴 뻔했다. 이놈은 능히 그리하고도 남을 생도였다.
“투 플러……는 아닙니다. 크크크크!”
“그 덩치에 그런 웃음은 아니지 않느냐.”
규격에 어울리지 않게 간사한 웃음이 상황에는 어울렸다.
무진은 받은 만큼 친절하게 설명했다.
“망할, 진짜로 운이잖아.”
“저는 처음부터 운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허탈하긴 한데, 전 교장도 기대하진 않았다. 그저 아이템과 장비를 또 털렸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올 뿐이다. 아카데미 역사에서 이처럼 퍼 준 사례가 없었다. 졸업한 생도들이 알면 난리 날 수도 있었다.
“창고 사용은 비밀이다.”
“아무렴요.”
양심적인 무진은 입막음 비용을 추가하진 않았다. 그랬다가는 교장이 어찌 나올지 뻔히 보였다. 인내심엔 한계가 있었고, 교장은 경계선을 넘을락 말락 임계점이었다.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다음에도 삥을…… 훈훈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지수랑 같이 들어가도 되죠?”
“말해 놓을 테니, 빨리 꺼져!”
“예이~~.”
“나갈 때 꼭 검수받아라.”
무진이 나가고 난 후 전 교장은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 보기 드문 개 같은 생도가 입학했다. 그런데 나쁘진 않았다. 요즘 들어 헌터의 실력은 높아졌을지 몰라도, 강단과 근성이 부족했다.
‘이놈이 졸업하면 우리나라의 헌터계가 아주 요란하겠군.’
그 전에 아카데미부터 걱정하기로 했다. 교장실에 올 때마다 번번이 뜯기고 있었다. 아카데미의 교장으로서 제자를 위해 헌신하는 건 당연하나, 조금 괘씸했다.
‘양심이 있으면 꽃이라도 달아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스승의 날도 지났거늘.
제자란 놈이 카네이션…… 이건 아닌가?
국화를 가져올 놈이다.
***
지수와 아카데미 보고에 도착했다.
도중에 교장 선생님과 했던 훈훈한 대화를 알려 주었다. 그러자 중국산 코로나가 왔는지 코가 막힌 모양이다.
헐!
지수가 아는 교장의 이미지가 있었다. 회귀 전 교장은 빡빡하고, 꼬장꼬장한 전형적인 꼰대였다. 그런 사람이 호구도 아니고, 왜 이렇게 친절하셔! 오른뺨을 맞고도, 왼뺨까지 내밀어 주셨다.
믿음, 소망, 사랑으로 대오각성 하여 우화등선이라도 하실 기세다.
“약속했다.”
“망할!!”
들어가서 1개 더 얻어 오면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런데 2개를 받아 왔다. 생각지도 못한 마음씨 좋은 교장의 배려였다.
정부 기관 소속이라, 자기 것이 아니라 이건가? 어차피 내 거 아닌데, 생색을 내겠다는 거면 혈세 낭비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지. 교장 선생님이 얼마나 훌륭하신 분인데. 앞으로 잘해.”
“보물은 네가 챙기면서, 내가 왜?”
“내 건 내 거고, 너 건 내 거지. 그냥 그러려니 해.”
“어디서 개수작이야!”
“과연 네가 교장 선생님보다 낫다.”
칭찬 같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차라리 욕을 하는 편이 나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회귀 전에 교장실을 자주 출입하는 건데.
“이러면 서열전에서 1등 할 필요가 없었잖아!”
“잘난 체 오졌으면서, 싫기는.”
1등은 달콤했으나, 고작 1개 얻으려고 아등바등한 지수로선 12개나 얻은 무진의 수완에 혀를 내둘러야 했다. 개고생은 매번 자신이 하는데, 왜 이런 격차가 나는 거냐고?
“우리 지수는 정말 비효율의 극치라니까. 그러니까 절대 주식이나 도박은 하지 마. 그건 돈 뿌리고 망하는 지름길이야.”
“망해도 혼자는 안 망해!”
“그런 식은 곤란한데.”
“말했다시피 우린 공동 운명체야!”
이 순간 무진에겐 허언으로 들리지 않았다. 지수는 갈 때 가더라도 끝까지 발목을 잡을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게 섬뜩한 말을 하고 있었다.
소설에서도 회귀는 영웅의 스토리일 텐데.
‘하긴 요즘 영웅은 복수가 먼저지.’
트렌드가 전부 배신당해서 돌아오는 코스로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가난했던 시절로 돌아가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호구 시절을 극복해 보려는 영웅의 복수기가 최근 트렌드였다.
“우리 지수, 많이 힘들었겠다.”
“……뭔 소리야?”
“괜찮아. 이해한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눈깔 확! 뽑아 버린다!”
우리 지수! 누가 데려갈지 모르지만, 최대한 늦게 나타나는 편이 신상에 이로울 듯싶다. 결혼은 무덤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지 않았다. 진짜로 무덤에서 영혼결혼식을 올리는 수가 있었다.
“저번에도 그렇고, 더럽게 넓다니까.”
“던전의 미궁을 개조해서 만들었으니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