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인류최강 남사친-55화 (56/374)

55. 원수를 사랑하라(1)

평온을 원한다면 세상을 시끄럽게 해라.

아카데미는 내부의 배신자를 찾는 데 혈안이 되었고, 전국은 창천 길드의 배후를 알아 갈수록 경악했다. 멸문한 사도염가가 버젓이 활보하고 다닐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암중 세력이 막후에서 아카데미와 길드를 노리고 있었다. 숨겨진 내막이 알려질수록 위기감이 감돌았다.

아카데미는 아카데미대로, 길드는 길드대로, 가문은 가문대로 배후를 찾기 위해서 움직였다.

마찬가지로 암중 세력도 이번 일로 일부나마 실체가 드러났기에 몸을 사려야 했다. 서로 간에 치열한 눈치 싸움과 암중 쟁투가 벌어졌다.

드러나지 않은 장막 속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암투라, 내막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떠들썩한 현실 속 태풍의 눈처럼, 무진의 일상은 고요했다. 어제, 오늘, 내일 다르지 않은 계획적인 삶이다.

6시에 일어나 명상을 한다.

내면의 심상을 삼라만상의 우주와 교접했다. 심기체의 극한에 도달했음에도, 하루를 시작함에 부족함을 찾는다. 결핍이야말로 무진에게는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스스로 한계를 제한했구나.’

사요공과 흑무흡정술은 단순히 정신 세뇌와 생기 흡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가능성을 확장하여 이롭게 사용한다면 정신과 육체를 치료하는 의술로서도 가치가 있었다.

더욱이 굳이 무리해 가면서 남의 진기를 흡입해 심신에 부정적 영향을 줄 필요도 없었다. 효율성은 차분히 개선해 나가면 될 일이다. 사도염가는 자기만의 한계에 갇혀 무한한 가능성을 놓쳐 버렸다.

만일 박정환이 사요공과 흑무흡정술의 진의를 온전히 깨달았다면 지수가 말했던 미래보다 참혹한 현실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릇을 깨지 못한 편협한 사고가 무궁무진한 잠재력의 개화를 방해했다.

물론, 무진의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이었다. 천재의 범주에 들어가는 인재도 무공을 창안하고 개선하는 작업은 어려운 과정이다. 매일같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자신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제로는 어불성설이었다.

그 말은, 내가 하니까 너희들도 할 수 있다는.

밥집 아저씨의 개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우우웅!

대기, 대자연, 삼라만상에도 기는 존재했다. 기는 곧 생명체가 살아가는 원동력, 생기와 다르지 않았다. 태초부터 사기가 쌓이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었다. 경계를 명확하게 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넘지만 않는다면.

‘무진공에 포함해도 괜찮겠어.’

진기의 흡입과 사출의 속도가 빨라졌다. 내력의 순환이 무극에 이르러 공령체에 도달한 지 오래다. 굳이 공력을 더 쌓을 필요가 없는 경지기는 하나, 헌터의 마력계수와 마찬가지로 순간적으로 발산할 내력과 속도의 경계를 확장할 수 있었다.

실제로 마력의 양이 넘치도록 많아도, 발산 가능한 범위가 좁다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기가 어렵다.

‘단순히 진기에만 국한할 필요도 없겠어.’

삼라만상엔 진기만 존재하지 않았다. 마력, 영력, 신력, 정령력 등 아예 성질이 다른 기운도 내포했다. 각양각색의 기운을 무진공으로 통합할 수 있다면 새로운 영역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어렵네.’

삼라만상의 우주를 창조하는 영역. 무진으로서도 감히 도달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 못하는 초월무극이었다. 만약 그러한 존재가 이 세상을 노린다면 끝장난다고 봐야 했다.

‘조급할 필욘 없겠지.’

막연하다고 하여 성급하게 달려들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는 수가 있었다. 기준이 다를 뿐, 지금도 느리진 않았다. 따지고 보면 다른 이들에겐 닿기는커녕 감도 안 오는 먼 세계였다. 마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외치는 격이었다.

후우우!

무진공으로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삼재공을 기반으로 하여 현재까지 꾸준히 진화를 거듭한 무진공은 어느 신공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안주하진 않아.”

무진공의 진의는 포용에 있었다. 흐르지 않는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우주 만상의 장단점을 올곧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했다.

내가 최고라는 자부심에 취해 고립된다면 자만심에 지나지 않았다. 자만에 취한 자에겐 더는 발전의 여지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지수는 남의 것 좀 그만 빨아먹으라며, 전생에 거머리 아니냐고 쓴소리를 했지만. 모방은 창조의 아버지가 확실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란 그만큼 힘들었다.

남들이 알면 저작권 도용으로 고소할 일이지만, 무형의 개인 스텟에 시비를 걸어 봤자 답은 나오지 않았다. 억울하면 불만을 표하기보다 노력하는 편이 신상에 이로웠다.

피식!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지수가 아니었다면 과연 더 강해지려고 했을까? 어쩌면 한계에 도달했으니 이쯤에서 만족했을 수도 있었다. 나아갈 필요성이 없기에 정체되었었다. 멈춰 있었던 시계 초침이 다시 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아침 심상은 1시간을 넘지 않았다.

생체 리듬, 기의 순환이 이 시간에 최적화가 되었다. 어떤 계기나 각성이 오지 않는 이상, 정해진 시간을 어기지 않았다.

7시, 어제 재워 놓은 제육볶음을 꺼냈다.

아침부터 더부룩하게 고기냐, 하겠으나 먹고 싶은 건 먹어야 했다. 그래야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맛있게 먹고, 기초대사량을 1만 칼로리까지 끌어 올리면 쾌변의 지름길이다.

15분.

요리를 준비하는 과정을 제외하고, 식탁에 나오는 데까지 15분을 넘지 않았다. 딱 배가 고프다고 느낄 때가 15분 내외였다. 이 시간을 지나면 내가 배고픈 것인지, 살려고 먹는 건지 모를 때가 있었다.

미용은 세안으로 간결하게 끝냈다. 1시간 동안 이어진 육체의 관조로 샤워를 하지 않아도 항상 극상의 청결을 유지했다. 무극지체에 도달한 육체에는 오물이 쌓일 여지를 주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흡기, 배출되며 노폐물은 삼매진화로 소멸했다.

잡티 없이 맑고 깨끗한 피부를 유지하고 싶다면 꼭 절대경에 오르기를 추천한다. 암만 건강식품, 다이어트 제품을 먹어도 절대경보다 못했다.

“넌 편해서 좋겠다.”

“아버지도 할 수 있습니다.”

“됐다. 그냥 씻고 말지.”

“물 낭비예요.”

요나를 불러 준다는데도, 아버지는 극구 사양하셨다. 이해는 된다. 요나가 성숙해질수록 목욕탕 자유 관람을 자제시켜야 했다.

크림이는 하루 동안 날린 털을 모아서 갖다 주었다. 송구한 표정으로 배를 까뒤집으며 부탁하기에 그제야 무진은 삼매진화를 발휘했다.

“그보다 일은 잘 해결된 거냐?”

“앞날이 창창한 생도의 장래를 실수 좀 했다고 막을 순 없잖아요. 아버지도 알다시피 제가 모질지를 못해요.”

“통장 계좌 확인했다.”

“성의 표시예요.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지라.”

“0이 너무 많은데, 기분 탓이냐?”

“저는 극구 사양했습니다.”

“대신, 권왕 어르신을 부추겼겠지.”

아들의 뻔뻔함에 산하는 헛바람을 몇 번이나 삼켜야 했다. 밥을 먹지 않아도 0이 너무 많아서 배가 부를 지경이다. 자기 딴에는 성의라는데, 공증까지 받아서 뒤탈이 없단다. 문제가 될 소지를 미연에 차단하는 돈세탁까지 완벽하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요.”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물렁물렁했다고?”

“확실히 아버지하곤 대화하는 재미가 있어요.”

“아직 멀었다, 이 녀석아.”

무진은 아버지와의 언쟁을 언제나 환영했다. 배울 점이 많았다. 대화에서 주도권은 중요했다. 그 기틀을 마련해 준 분이 아버지였다. 대화의 흐름, 방향, 반전에 이르기까지 아버지는 버릴 부분이 없는 드래곤 같으신 분이셨다.

아버지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꼭 드래곤 하트를 선물할 것이다. 어디 잘못 넘어온 이계의 드래곤 같은 것이 없나? 심장만 빼고 나머진 돌려보내 줄 용의가 있었다.

“이번에는 승진하겠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주는 걸 마다하진 마세요.”

“독이 든 성배일 수도 있어.”

“그럴 리가요?”

“하여간, 누굴 닮아서는.”

성운 그룹의 길드 창설은 예견된 일이었다. 자수성가하여 대기업을 세운 진 회장이 언제까지 칠대가문이나 대형 길드의 눈치를 보진 않을 테고.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최상위의 헌터를 끌어모으려고 할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최대한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 주세요. 저는 아버지를 믿습니다.”

“날로 먹을 심산이냐?”

“인수 합병이란 전문가적 소견이 있잖아요.”

“방금 사모펀드 같았다.”

키워서 잡아먹을 수도 있고, 정 안 되면 비싸게 팔아 버리면 그만이었다. 자고로 남이 정성 들여 키워 놓은 작물을 같이 먹을 때 더 맛이 좋았다.

더욱이 의도가 뻔히 보이는 개수작이라면, 양심의 가책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주고받는 관계일 뿐 차후 인정에 대고 호소해 봤자 감정 낭비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 물정 모른다고 너무 심하게 다루진 말거라.”

“먼저 나대지 않는 이상, 후배로서 버릇없는 행동을 할 리 없잖아요.”

“앓느니 죽겠구나.”

“아버지는 무병장수하실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들의 넘치는 의욕에 산하는 골이 지끈거렸다. 조용히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나, 자식이 어디 부모 맘대로 되겠는가.

그러나 아들이 무조건 참고 인내하기를 바라진 않았다. 화를 내야 할 때 내지 않는다고, 세상이 알아주리란 기대는 동화에서나 가능했다.

띠링!

문자가 왔다.

일전에 걸어 놓은 암시가 제대로 발동하는지 확인했다. 정해진 시간에 메시지를 보내라는 부탁이었지만, 실제는 명령이나 다름이 없었다.

“무슨 일이냐?”

“지수 집안이 개판이더라고요. 정리 좀 하려고요.”

“지수도 맘이 편치 않겠구나. 네가 잘 보듬어 줘. 겉으로 강해 보여도 여리고 상처 많은 아이야.”

“지수는 그런 낯간지러운 짓을 혐오하는 애예요.”

“네가 아직 여자를 몰라서 그래.”

“딱히 알고 싶지 않은데요.”

산하는 자세한 사정을 묻지는 않았다. 남의 가족사라고 하기엔 지수와의 친분을 고려해야 했다. 다만, 권왕 어르신과는 사제지간이 되었으니, 지수의 가슴에 대못을 박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가마.”

“퇴근하고 훈련해요.”

“……야근 있다.”

“한 달 스케줄표 알아봤어요.”

“용의주도한 놈!”

아버지와 아들의 신경전은 무한 쟁투였다. 끝이 나지 않는 돌고 도는 다툼 속에 피어나는 부자의 정이었다.

***

인공 던전 사태는 아카데미의 일부 교관들만 알고 있었다. 사건에 연루되었던 생도들 전부 입을 다물었기에 내막을 몰랐다.

생도들은 평소처럼 등교하고, 훈련하고, 하교했다.

소요는 시일이 지나자 잠잠해졌다.

물론, 칠대가문이나 대형 길드 소속의 생도들은 사건의 윤곽을 대강이나마 알고 있었다. 대내외적으로 밝혀지면 좋지 않기에 쉬쉬할 뿐이었다.

이때다 싶은 무진의 파벌은 더욱 공고해졌다.

일단, 파벌의 얼굴마담으로 자리매김한 지수는 1학년 생도 서열 1위를 굳혔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격차를 벌렸기에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절치부심했던 칠대가문, 대형 길드의 생도들에게 절망을 선사해 주었다. 1위를 노려 봤자 벌어진 격차만 확인할 뿐이었다.

또한, 탑의 영향을 받기에 패배가 쌓이면 좋지는 않았다. 승자에게 경험치와 보상을 내어 주는 시스템이었다.

생도들은 차선책으로 무진을 노렸다. 혜진도 무진에게 패배한 이상, 무진의 서열은 사실상 2위였다. 지수를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무위를 지녔다. 그렇다고 성급하게 도전하진 않았다. s반 하위 서열의 도전을 살피며 전력을 가늠했다.

결장의 승패가 쌓일수록 무진의 진가는 눈에 띄었다. 기권을 제외하면 지수와 마찬가지로 무패였다. 가문 내의 일로 치부한다면 무진에게 흠집을 낸 1학년 생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더욱이 지수의 압도적인 무력과 비슷하지만, 무진의 무위는 질이 좀 달랐다. 맞으면 정말로 죽을 것 같다는 공포를 심어 주었다. 사람한테 쓰라고 나온 몸뚱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단단했다.

“저 간장치기는 안 하면 안 되나?”

“왜 항상 저길 치는 거야?”

“맞고 나면 오줌에서 피가 나온다고!”

“나도 생리 불순이 왔다고!”

“밤에 그만 좀 처먹어라.”

이쯤 되니 무진의 전투력을 인정해야 했다. 내력과 속성이 부족하긴 해도, 압도적인 신력이 보완하고도 남았다.

한데, 그뿐이 아님을 점점 실감하고 있었다. 무공의 경지가 예사롭지 않았다. 권왕가의 기본 무공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도저히 뚫리지 않는다. 절세의 신력을 바탕으로 기본을 극대화한 무공은 철옹성이 되었다.

게다가 전장의 이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대결하면 할수록 답이 나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결투장!”

“환상을 사용해도 결국 결투장이라고!”

“저 안에서는 죽도 밥도 안 돼!”

“이제는 현혹이 잘 통하지도 않는다고!”

약점이 뚜렷하다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생도들의 역량이 상대적으로 받쳐 주지 못했다. 결투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현혹, 환상, 속성을 써도 결국에는 잡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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