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성동격서(2)
채채채챙!
서걱!
박정환의 창천극영은 a등급 스킬이었다. 촌음에 이백팔십 번의 찌르기가 가능했다. 그뿐이랴, 최상급 장비인 창천검이 파괴력, 속도, 환영을 증폭한 상태였다. 한데, 창천극영이 모조리 다 막히고, 창천검이 반 토막이 났다.
“이건?”
기억에 있는 창술이었다. 더더욱 자신을 노리는 연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젠장!”
의문을 해소하기도 전.
슈욱!
검을 잘라 낸 직후 무진은 검날을 쳐 내며 방향을 유도했다. 박정환이 왼쪽을 피하는 것을 보며 창을 뻗었다. 우회전을 차단당한 채, 우회하다가 사고 난 억울한 차량과 비슷한 심정이었다.
푸욱, 크으으윽!
일로창극.
변(變)도, 환(幻)도 없다. 그저 창의 본질을 담은 극속의 찌르기다. 하나, 그 누구에게도 회피를 허락하지 않는 창의 극의였다.
창날을 지나 창대까지 박정환의 복부를 깊숙이 관통했다. 내부의 오장육부 중 비장이 꿰뚫렸다. 창극에 실린 와류가 전사경이 되었다.
우우우웅, 파아아앗!
무진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창에 진기를 실어 내부를 뭉개 주었다. 반격을 취하려던 박정환은 감전이 된 듯 바르르 떨다가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아아악!
박정환은 생전 겪어 보지 못한 고통에 몸부림을 치며 바동거렸다. 생살이 뚫리고, 소금을 뿌린 통증보다 족히 2배는 더 고통스러웠다.
바르르르르, 풀썩!
전선 위에서 감전된 참새처럼 몸부림치다 의식을 잃었다. 창대를 깊숙이 박은 채 벽면에 꽂았다.
무진은 고개를 숙인 박정환의 머리채를 잡고 들었다. 50대의 풍성한 머리카락이 맘에 들진 않았다. 보통 이 나이 때엔 탈모가 기본이었다.
한 움큼 머리카락이 빠지며.
번쩍!
기다렸다는 듯, 박정환의 검은 동공이 열리며 사이한 기운이 무진을 덮쳐 왔다. 여인들을 제어하던 사요공, 흑무흡정술, 영혼의 족쇄가 동시에 펼쳐졌다.
우우우우웅!
가공할 마력이 발산되었다. 박정환이 여태 얼마나 많은 남녀의 진기를 흡입했는지를 보여 준다. 마나량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10대 초인에 버금갔다.
조금씩 야금야금 빨대를 제대로 꽂았다.
“후회하게 해 주마, 크크크크!”
침까지 질질 흘리는 박정환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내부 장기가 망가지는 바람에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그런데도 전력을 발휘하는 걸 보면 생존 욕구만큼은 대단했다.
완전히 제압했다 여긴 박정환은 정체를 물었다.
“네놈은 누구냐?”
“알 거 없어.”
“……너 어떻게?”
“이거 제법 쓸 만한데.”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라고 했다. 배우고 또 익히면 그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개 같은 놈이기는 해도 기술 자체는 훌륭했다. 진기의 흡입과 영혼의 금제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분석안이 낱낱이 까발리고 있었다.
“……무슨?”
“호오, 이런 식이란 말이지.”
“……그만!”
“사기가 쌓이는 건 보완할 필요가 있겠어.”
구결을 말하지도 않았는데도 흐름이 점점 같아지고 있었다. 박정환으로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말만 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딱딱 들어맞아서 소름이 돋았다.
“세단도 아니고, 굳이 칙칙하게 검은색으로 했을까?”
“……이런 짓을 하고 무사 ……헉!”
창을 빼지 않은 것은 내부에 진기 폭발을 일으켜 박정환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서다. 살려고 발버둥 칠수록 숨겨 놓은 진의는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무진은 박정환의 알맹이를 쏙쏙! 빼먹었다. 남은 건 머릿속에 감추어 놓은 추악한 진실뿐이다.
우선 배운 것부터 써먹어 보자.
“내 눈을 바라봐.”
“……안 돼!”
안 되긴, 세상에 안 되는 건 없다. 되는데, 능력이 안 돼서 못 하는 것뿐이다.
무진의 눈은 사이하게 변하지 않았다. 평소와 똑같은 형태지만, 사요공과 흑무흡정술의 진의를 고스란히 담았다.
사용할수록 버전업으로 패치가 완료된다.
사요공L2.
컬러 버전, 청무흡정술L2.
크으으윽!
박정환은 어떻게든 저항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창대에서 은근히 전해지는 진기 폭발에 정신을 차릴 만하면 이내 다시 혼몽해졌다. 통제 불능의 고통과 뇌리를 파고 들어오는 사술로 이중고에 시달렸다.
“집에서는 착한 남편에 훌륭한 아빠시네.”
“……제아는 잘못이 ……커어어어억!”
박정환의 이중성에 지렸다. 집에서 하는 것 반만 세상에 베풀어도 성인군자였다. 자기 가족만 소중하고, 타인은 쓰고 버리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
“너 진짜 나쁜 놈이구나.”
“……내가 아니면, 어차피 어미 아비도 없는…… 실패한…… 인생들이다…… 크어어억!”
“그걸 누가 평가하는데? 네가?”
“……그나마 사람답게 살게…… 해 줬을…… 뿐…… 크아아아악!”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젠가? 체면 때문에 죽는다. 끝까지 자기는 착한 놈이란다. 반성은커녕 고아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며, 착한 사업가라고 자찬했다.
그런데 파고들수록 구린내가 났다.
취업은 개뿔.
박정환은 1년에 한 번은 정혈이 고갈될 때까지 생기를 빨아들여 미라로 만들었다. 또한, 살아남은 제물도 영혼을 제압해서 도구처럼 사용했다.
그나마 사내는 소모품처럼 쓰는 것으로 끝났지만, 맘에 드는 여인은 욕정이 풀릴 때까지 성노예로 썼다. 그런데도 여인은 영혼이 금제되어 주인으로 모셔야 했다.
아주 그냥 황제 나셨다.
손발 놔두고 자기는 가만있었다.
이런 최악의 인간이 우리나라에선 평판이 좋은 10인에 선정되다니, 여론이 만들어 놓은 허상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를 알려 주었다.
“비밀번호가 0885구나.”
무진은 박정환의 휴대폰을 꺼내 내용을 확인했다. 필요한 자료를 옮기는 데 시간이 걸렸다. 휴대폰이 하나도 아니고 3개나 되었다. 가정용 폰, 업무용 폰, 수집용 폰으로 공과 사가 아주 철저하셨다.
헙!
제물 수집용 사진은 수위가 굉장히 셌다. 청소년에겐 호환·마마보다 위험한 내용이었다. 급히 손으로 가렸지만, 중지와 약지가 벌어지는 불상사가 있었다.
모자이크 처리가 필요했다.
무진은 자료를 전부 지웠다. 증거자료긴 해도,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었다. 그런 자료는 폐기하는 편이 나았다. 다른 증거로도 충분히 엮어 버릴 수 있었다.
부르르르르!
자료의 유출에 박정환이 발악했다. 죽어 가는데도, 자료만은 지키려는 의지가 가상하다.
“……안 돼!”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박정환의 사투가 눈물겨웠다. 어떻게든 자신의 죄를 지우려고 했다.
무진은 보는 앞에서 모든 자료를 끄집어냈다.
부질없는 몸부림을 감상하며.
“너 때문에 가족들이 여론의 돌팔매질을 당하는 거야.”
“……그 애는 죄가……!”
무진은 집요할 정도로 박정환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롭혔다. 최대한 잔혹하게, 죽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도록 해 주었다.
연좌제를 좋아하진 않지만, 무진은 상관하지 않았다.
아는 정보를 얼추 다 뺀 후, 박정환의 숨통을 천천히 끊어 주었다. 최후라고 해서 안심하면 곤란했다.
크아아아아아악!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러 댔다. 그래도 괜찮았다. 기막을 쳤고, 창고 주변 길드원은 전부 하늘나라로 보내 줬다.
죽일 놈들을 죽였으니, 조금이라도 세상이 착해지겠지.
“……그것만 ……으!!”
와, 죽어 가는데도 집념이 대단했다. 어떻게든 치부를 숨기고, 가족만은 지키려는 개새끼의 발버둥이었다.
무진은 영상을 찍어서 집으로 보내 줄까, 고민을 해 봤다. 가족들은 죄가 없다고 하기에는, 그간 잘 처먹고 잘 살았잖아.
부르르르르!
밤이 깊어 가는 긴 시간, 무진은 발버둥을 지켜봤다. 혹시라도 살아날 수 있기에 꼼꼼했다. 박정환의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기다린 후, 삼매진화로 태웠다. 남은 재는 인벤토리에 넣어서 보관했다. 나중에 완전히 끝나면 화장실에서 물을 내릴 것이다.
바들바들!
아, 헐벗은 소녀들을 잊고 있었다.
무진은 두 눈을 손으로 가리고, 허공섭물로 그녀들에게 가운을 건네주었다. 박정환이 죽으면서 영혼에 새겨진 금제가 풀렸으니 이제는 자유였다. 다만, 아직은 완전하지 않아 입히는 데 애를 먹었다.
“어쩐다?”
버리고 가면 뒈질 텐데.
데리고 가면 흔적이 남을 수도 있고. 일단은 긴 포대기로 그녀들을 보쌈하기로 했다.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구할 수 있으면 최선을 다하는 게 맞겠지.
무진은 별장을 나온 후, 파멸세를 시전했다. 흔적은 남겨야 하니,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꽈아아아아앙!
하늘과 대지를 파괴하는 굉음과 파문이 번진다. 아름다운 버섯구름을 배경으로 무진은 빛살이 되었다.
쐐애애액!
***
-창천 길드 개새끼!
-이중성, 아니 삼중성 죽인다!
-씨발, 기 빨린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진짜로 빠는 새끼는 처음 본다!
-누가 이 개새끼보고 오빠라고 그랬냐!
-그 오빠한테 기 좀 빨려 보면 그딴 개소린 두 번 다시 못할걸!
-생기만 빨렸냐, 애들을 노예처럼 부렸잖아!
-기부 많이 했다고 해서 나도 같이 후원했는데!
-창천 길드를 퇴출해야 해!
-퇴출하라, 아니 조사해라!
창천 길드 길드장 박정환의 범죄가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언론에 퍼져 나갔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했지만, 속속 정신이 돌아온 사람들의 증언이 잇달았다.
수치심에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오면서 박정환에 대한 규탄이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다. 덩달아 창천 길드에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이런 인간을 여태 떠받들며 연호했던 사람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박정환이 벌인 짓은 도저히 인간으로서 해선 안 되는 패악이었다.
하루아침에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박정환의 범죄 사실이 시간이 지날수록 불어났다. 특히 정부의 고위직도 연관이 되어서 문제가 심각했다. 자기들이 세뇌당했다는 걸 깨닫자 공론화가 된 것이다.
관상은 과학이라고 했던 사람들을 아닥하게 만드는 현실이었다. 박정환은 범죄를 저지를 상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아이돌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완벽한 비주얼이 사람들을 소름 돋게 했다.
천사의 얼굴로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박정환을 용서할 수 없었다. 창천 길드로선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그런데 정작 범죄의 주인공인 박정환이 실종되었다.
창천 길드에선 지부가 습격받을 때 살해되었다고 주장했지만, 믿기는커녕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내놓으라고 규탄 시위가 열렸다.
TV만 틀면 창천 길드에 대한 소식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 정의의 히어로는 소파에 누워 뒹굴뒹굴했다.
부상을 핑계로 며칠째 아카데미를 나가지 않았다.
아카데미는 창천 길드의 자폭을 자축했다. 취재라도 왔으면 곤란했을 텐데, 창천 길드로 도배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시간을 번 아카데미는 마인을 추적하는 데 집중했다. 동시에 연루된 생도들의 집에 연락해서 해결을 위한 절충안을 마련하였다.
-요나.
-크림.
레벨업 보상으로 정령력과 교감 능력을 높였더니 요나와 크림의 능력치도 덩달아 높아졌다. 점점 성숙한 소녀가 되어 가는 요나는 크림을 조련하며 우위를 선점했다.
누나, 라고 불러 보라는 입 모양을 봤다. 크림은 여전히 츄르에 환장하고 있지만. 일전에 둘이서 의사 놀이 하고 있을 때는 식겁했었다.
수의사라나.
“뇌전의 정령도 궁금한데.”
-요나, 피~~~~~!
소유욕이 상당하네.
안쓰럽다, 크림아.
무진은 능력치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부분도 다듬었다.
화염 마법의 체계를 새롭게 정립해 나갔다. 현재로선 3계식까지 활용이 가능했다. 완성되는 대로 사부님에게도 전수할 계획이었다. 이론적인 전수는 불가능해도, 스킬처럼 마력 회로를 각인할 순 있을 듯싶다.
슬슬 하체를 조질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날 사부님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사부님한테는 송구스럽네.”
지수가 전력을 보이지 말라고 해서, 사부님에게 미안했다. 서로의 허물이 없어지는 그날, 사부님을 맘껏 두들겨 드릴 예정이었다. 한 번도 맞아 본 적이 없다는 사부님이었다. 호되게 맞다 보면 삶이 새롭게 느껴지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