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함정(3)
이러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닫자 그들은 무진에게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따지고 보면 무진도 살수를 썼다고 볼 순 없다. 어쩌면 자신들을 유린하기 위해 그런 척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나?
무진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다.
“이러면?”
“……뭐 하는 짓이야?”
무진은 바닥에 박힌 암반을 힘으로 뽑았다. 작은 돌인 줄 알았는데 뽑고 나니 거대한 암반이었다.
움찔!
설마?
무진이 시선으로 가리킨 방향을 보고 그들은 기겁하고 말았다.
받아 낸 후 한쪽으로 생도들을 몰아 놓았었다. 그곳을 향해 암반을 던지려고 했다.
“너희들 탓이야. 크하하하하하하!”
“……웃기지 마!”
“……그딴 협박은 ……헉!”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암반을 던졌다.
이민용, 적운길, 정우민은 식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미친놈은 정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다시는 까불지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꽈아아아앙!
암반이 박살 나며 돌 조각이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 앞을 간신히 막아선 이민용, 적운길, 정우민의 안색이 시퍼렇게 질렸다. 막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8명이나 되는 생도가 암반에 깔려 짓뭉개졌을 것이다. 만약 그리되었다면 그들의 배경으로도 감당하기가 벅찼다.
“쯧쯧쯧, 정에 약한 것들이네.”
“너 이 새끼, 대체 뭐야?”
비록 무진이 재수 없는 놈이긴 해도 권왕가의 소속이었다. 정도에 속한 무인일 텐데, 하는 짓은 사라져 버린 마도보다 지독했다.
“그 상태로는 안 될 테고, 이놈들 처리할 때까지 회복하라고. 넓은 마음으로 기회를 주는 거야.”
이민용, 적운길, 정우민이 회복하기 전에 무진은 행동했다. 남은 생도들을 처리할 속셈이었다.
찌릿!
무진의 일격이 절대 가볍지 않았다. 생도들을 정리하는 데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슈웅, 척!
퍼억!
서 있는 생도는 2명.
결투장에서 대결을 벌인 적은 없었던 생도들이었다. 원한을 사지는 않았는데도 무리에 끼어 있다는 점이 수상하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더더욱 수상한 사태가 벌어졌다.
막히고, 반격을 당했다.
처저저적!
도문수, 이성린 생도는 무진의 주먹을 막아 내고, 역으로 쳐 내며 밀어냈다. 다급하기는커녕 꽤 여유가 느껴지는데, 음산한 기운이 사방으로 번지고 있었다.
툭툭!
예상치 못한 반격이었지만, 무진은 옷을 털어 내며 일어섰다. 강맹한 역공이라 치명타는 아니더라도 충격은 입을 줄 알았는데, 멀쩡해 보였다.
“몰라봤네. 실력만 놓고 보면 상위권에 머물 녀석들이 왜 순위 밖에 있었을까?”
“그러는 너야말로, 전투뿐만 아니라 심리전도 상당하던데. 악랄한 점이 아주 마음에 들어.”
무진의 비아냥에도 도문수와 이성린은 히죽였다. 마치 이 사태를 즐기는 듯했다.
“같은 수는 통하지 않겠지?”
“그건 모르는 거지. 어디 한번 죽여 봐.”
격장지계가 통하지 않자 무진은 재차 쇄도했다. 이번에는 끝장을 보려는지 좀 전보다 속도와 파워를 높였다.
파파파팟!
대뜸 격렬한 전투가 펼쳐졌다. 서로의 권각이 마주할 때마다 폭발음이 들렸다. 지금까지의 전투가 어린애 장난처럼 느껴질 만큼 흉포한 기세가 풍겼다.
퍼어엉!!
처적!
어깨를 강타당했음에도 무진은 이성린과 도문수의 육신에 권흔을 새겨 주었다. 어느 순간 맞고, 때리는 난타전이 되었다.
한데, 서로의 상태는 대조적이었다. 주먹을 맞댈수록 이성린과 도문수는 급격하게 밀렸다. 힘과 속도에선 비슷하나, 내구력에서 차이가 벌어졌다.
‘음험한 기운인데.’
타격을 받을 때마다 무진은 이성린과 도문수의 내력이 범상치 않음을 파악했다. 일반적인 내공과 달리 심기체에 영향을 주었다. 오래 마주할수록 내상을 입히는 성질이었다.
‘이놈들이려나?’
어느 정도 확신이 서자, 무진은 기세를 바꾸었다. 제압이 아닌 살수를 권격에 심었다.
찌릿!
방향을 급작스럽게 바꾼 무진의 일수는 이성린과 도문수의 사혈을 노렸다.
꽈아아아앙!
15년의 내력을 아낌없이 권공에 퍼부었다. 신력과 합일된 무진의 권격은 가볍지 않았다. 대충 맞아도 중상이지만, 사혈이라면 죽을 수도 있었다.
쩌저저저적!
후아아아앙!
급소를 노렸던 무진이 폭발적으로 상승한 기운에 5m나 날아가서 바닥에 착지했다.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숨겨 놓은 본질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우우우웅!
멈칫!
암반을 막다가 기혈이 뒤틀렸던 이민용, 적운길, 정우민은 무진의 뒤를 노리다가 망연한 표정이 되었다. 전력에서 밀린 타이밍을 노려야 할 텐데, 그럴 수가 없다.
“……저 기운은?”
“……설마 마공!”
“……말도 안 돼!”
30년 전 마혈대전 이후로 마공을 쓰는 마인은 대외적으로 활동하지 않았다. 남아 있다고 해도, 마공은 칠대가문의 협의로 엄격하게 규제했다.
투득, 투득!
무진은 고개를 돌리며 몸을 풀었다. 방금은 타격을 줬어야 했는데 멀쩡했다. 극강의 내구력과 단단함이 가지는 무시무시한 장점이었다.
“아카데미에 마인이라니, 알려지면 파급력이 크겠는걸.”
“그거야 알려질 때나 문제지.”
“멍청한 놈들이긴 해도 쟤들도 보는 눈이 있을 텐데.”
“생각이 있으면 입을 다물지 않겠어? 후후후후!”
잠혈마공을 개방하고도 이성린과 도문수는 거리끼지 않았다. 마치 알아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너희들이 말할 수 있겠냐는 엄포나 다름이 없었다.
부르르!
이성린과 도문수의 말대로였다.
이민용, 적운길, 정우민은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무진에게 당한 치욕을 갚아 줄 심경으로 반무진연합을 만들었을 뿐이다. 마인과 결탁할 의도 따윈 애초에 없었다. 사실이 외부에 퍼진다면, 부정해 봤자 믿어 주기 힘든 정황이었다.
‘입을 맞춘다고 될 일이 아냐!’
‘저 새끼가 얌전히 있는단 보장도 없고!’
‘……어쩌지?’
사태가 더럽게 꼬였다. 인공 던전에서 조용히 처리한 후, 다 같이 입을 맞춰 끝을 내려고 했다. 그런 안일한 선택이 최악으로 치닫고 말았다.
돌아가는 사태를 이해할수록 답답해졌다. 의도가 없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이대로라면 퇴학당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우리만 알면 되는 거야.”
“그러니 네놈만 사라지면 돼.”
이성린, 도문수의 살기등등한 엄포에 이민용, 적운길, 정우민은 내적 갈등에 휩싸였다. 어차피 여기 있는 생도들은 전부 공모자가 된다. 무진만 처리한다면 아무 문제 없이 끝날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악마의 유혹이었다.
‘병신들, 크크크!’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이성린과 도문수는 속으로 조소했다. 저들은 한 번의 선택으로 끝나기를 바라겠지만,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약점을 틀어쥔 이상, 언제든지 옭아맬 수 있었다.
“날 제물로 삼아 생도들을 포섭할 요량이었군. 아마 교관이나 교사도 포함되어 있겠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죽어 줘야겠어!”
무진의 추리에 이성린과 도문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짧은 순간 돌아가는 사태를 간파한 예리한 통찰력에 보통이 아님을 실감했다. 확실히 숨통을 끊어 놓지 않으면 차후 문제가 될 소지가 많았다.
“제약도 없이 포섭하긴 어렵겠고, 금제를 거는 방법이 최선이겠어.”
“시끄럽다! 얌전히 죽어랏!”
무진의 차분한 대응에 도문수와 이성린은 시간을 끌어선 안 된다는 위화감을 감지했다. 그러고 보니 여태 조롱하던 태도조차도 거짓말처럼 무덤덤하다.
우우우웅!
잠혈마공을 개방한 도문수와 이성린의 기세가 굉장했다. 도저히 또래의 생도라곤 믿어지지 않았다. 어째서 칠대가문에서 마공을 제한하는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단시간 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마기는 인간의 원초적인 악의를 자극했다. 주변마저 마성을 폭증시키는데, 본인은 어떠하겠는가.
솨아아아!
잠혈마기를 폭증시켜 무진을 노렸다. 마공은 그 자체로 내외력을 손상시키며, 마성을 끓어오르게 했다. 마기는 극도로 정제된 악의였다. 마공의 성취가 높을수록 마성이 폭발하여 광인에 가깝게 변했다.
스륵
마기가 휘몰아치는 광경 속에서도 무진은 파고들었다. 도문수와 이성린이 흉포한 마기를 발산하며 히죽였다.
파파파파파파팟!
투파앗!
전력이 담긴 격전은 살벌한 광경을 자아냈다. 한 방이라도 맞는다면 치명타를 입을 공수공방이었다. 내지른 권각술에 담긴 마기가 무진의 권공과 충돌했다. 쉴 새 없이 내지르며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파앙!
마공이 폭발할 때마다 거죽이 뒤집히며 하늘로 솟구쳤다 내려앉는다. 반경 수십 장에 달하지는 않더라도, 생도 수준은 넘어섰다. 강력한 데다가 다가서는 걸 모조리 다 분쇄하는 기류를 발생했다.
“이게 마공이구나.”
“……너 어떻게?”
일반적으로 마공과 마주하면 내력과 정신에 타격을 입는다. 생도가 처음 마공을 대하고도 이처럼 오래 버티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었다.
쩌억, 큭!
더욱이 무진과의 공수가 까다로워지고 있었다. 몇 차례의 공방에 익숙해지더니 합격을 막아 내고 반격까지 해 왔다.
“요나.”
“……이런!”
요나를 재소환해 반투명한 물의 장벽을 만든 후, 무진은 전투 방식을 바꾸었다. 전면 타격전 양상으로 승부를 보려던 방식에서 순식간에 선회하여 체술로 변형했다.
스륵!
내지른 이성린의 주먹을 끌어내며 잡아챘다. 무진은 안으로 파고들면서 팔을 잡아당겼다.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체술에 이성린은 점점 더 숨통이 조였다. 돌아서 백을 장악한 무진은 두 팔과 왼 다리로 이성린을 제어했다.
“……놔!”
“놓겠냐?”
애써 잡은 걸 놓는 바보가 어디 있나.
사실 이런 식으로 나올 걸 예상해서 일부러 타격전만을 고집했다. 결투장에서도 체술은 감추었기에 대응하기 까다로웠다.
‘……뭔 놈의 힘이!’
잠혈마공을 폭발시켰음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성린은 조이는 무진의 가공할 힘에 기겁했다. 힘이 강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건 예상을 벗어났다. 목이 타이트하게 잠기면서 의식이 흐릿해졌다.
크아아아!
공기의 소중함을 깨달은 이성린은 발악을 하듯 몸부림을 쳤다. 그러자 무진도 벅찬 듯 신형이 흔들렸다.
“죽어랏!”
물의 장벽을 뚫어 낸 도문수가 무진의 배후를 노렸다. 이성린과 힘 싸움을 벌이는 타이밍을 이용한 것이다.
잠마혈권, 잠혈폭.
-특수 속성, 이중폭발.
단숨에 끝장을 보려고 했다.
그 순간.
휘익!
버거워하던 무진이 별안간 이성린을 앞세웠다. 눈앞에서 폭발하는 마공에 이성린은 공포에 젖었다.
“……안 돼!”
퍼어엉!
가죽 공이 터지는 파열음이 연속으로 들리며 이성린의 몸체가 찢겨 나갔다. 전력을 심은 잠혈폭은 굉장했다. 또한, 동료의 생사마저 아랑곳하지 않는 손속은 마인다운 잔혹함이었다.
츠으으!
잠혈폭에 격중당한 이성린의 숨통이 끊어졌음에도, 도문수는 기회를 포착한 야수처럼 무진에게 달려들었다.
퍼엉!
도문수의 쌍장을 무진도 같은 수로 받아쳤다. 서로의 쌍장이 교차하면서 파공성이 울렸지만, 이대로 끝나지 않았다. 자석처럼 서로를 당기더니 내력 대결이 되었다.
부르르르르!
핏줄이 드러나며 누구의 진력이 더 높은지를 시험하는 위험한 사태가 벌어졌다.
“멍청한 놈!”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네놈의 공력으론 날 못 이겨! 얌전히 죽엇!”
“그럴 순 없지.”
잠혈마공을 사용한 이상, 평소의 3배까지 내력을 운용할 수 있었다. 도문수로선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속도가 약점이란 정보를 비웃듯,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내력 대결로 끝내지 못하면 곤란한 처지가 될 수 있었다.
“이 병신들이, 언제까지 서 있을 거야?”
도문수의 일침에 어정쩡하게 관망하던 이민용, 정우민, 적운길은 화들짝 놀랐다. 마인과의 협조가 껄끄럽기에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