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반연합(3)
s반 생도들은 무진의 그러한 노력이 무공으로 더는 진전이 없기에 행한 궁여지책으로 보았다.
하나, 그런 안일한 마음가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를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다.
타아앙!
쇠를 묵직한 쇳덩어리로 내리친 듯 거친 파공음과 진동이 길게 울렸다. 중심축을 유지한 후 회전력을 극대화한 정우민의 창이 맥없이 밀렸다.
‘뭔 놈의 힘이!’
정우민은 이를 갈았다.
충분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승산이 있다고 보고 달려들었거늘, 직접 맞붙어 본 무진은 보는 것 이상으로 강력했다.
사륵!
정우민은 급히 표풍보를 펼쳤지만, 무진이 어느새 따라붙었다. 좁은 공간의 움직임이 놀랍도록 기민하고 정확했다.
‘이런!’
창의 이점인 거리를 최대한 활용했고, 파괴력을 집중시켰다. 철갑처럼 단단한 신체를 지녔어도, 천극창의 폭풍세를 5성 이상 터득했기에 무너지리라 확신했다. 더욱이 자신이 사용하는 은룡창은 타점 시 파괴력을 3배까지 증폭할 수 있었다.
폭풍세의 진정한 위력은 7성부터지만, 5성의 성취와 은룡창이 결합한다면 적수가 없을 줄 알았다.
‘빌어먹을 권왕가!!’
만약을 대비해서 권화에겐 감추었던 비기였다. 한데, 무진에게도 통하지 않자 정우민은 분기가 차올랐다.
권화에게 당한 패배는 수긍한다 쳐도, 무진과는 팽팽하게 시작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팽팽함은 무너지고 일방적인 흐름이 되었다.
‘타점이 비껴 나가고 있잖아!’
분노와는 별개로 정우민은 이성을 잃진 않았다. 은룡창이 제 위력을 내지 못하도록 컨트롤당하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 타격 시 폭발력이 극대화되는 시점에서 비틀렸다.
결국, 수 싸움에서 밀린 것이다.
누구보다 눈치가 빠르고, 보는 눈이 정확하다고 자부했던 정우민에겐 치욕적인 현실이었다.
또한, 가문이 뜻하지 않은 오해를 받은 이때, 자신의 입지를 확실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다른 가문이나 대형 길드보다 뛰어난 성적이 필요했다.
-절삭.
정우민은 감추었던 속성을 꺼내 들었다.
절삭을 개방하면 만물을 잘라 내는 예리함을 갖춘다. 어떤 속성에도 몇 배 이상 강하지 않으면 잘려 나가게 될 것이다. 예기만큼이나 위험한 수법이라 최대한 감추어 놓았었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봐라!’
정우민은 찌르기보다 재차 회전력을 가미해서 무진을 내려찍었다. 이번에도 좀 전과 같이 튕겨 내려고 한다면 평생을 후회하며 살게 될 것이다.
스윽!
무진이 팔을 들어 올리려고 하자, 정우민은 쾌재를 불렀다. 어차피 절삭은 알려지지 않았다. 쟁탈전에서 의도치 않게 일어난 불상사에 지나지 않았다.
씨익!
응?
맞닿으려는 순간 정우민은 무진의 미소를 보았다. 왜? 라는 의문이 들기도 전에 창대가 빨려 들어가듯 휩쓸린다.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강격의 대치가 아니었다.
“……이화접목!”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무진의 반전이었다.
정우민은 울화가 치밀었다. 손바닥 안에서 농락당했다는 걸 알아챘다. 그러나 화만 내고 있진 않았다. 창을 회수하기보다는 각법으로 무진의 턱을 노렸다.
“본가에는 창만 있는 게…… 큭!”
“그렇다고 밥만 먹고 권각술만 훈련한 우리보단 못할 거 아냐.”
이화접목으로 끌어들였다고 해서 사량발천근으로 이어질 거란 판단은 명백한 오판이다.
무진은 힘을 아끼지 않았다. 창대를 팔로 후려친 후 균형을 잃은 정우민의 명치에 팔꿈치를 선사했다.
퍼억!
병기를 놓지 않는 무인의 자세를 누군가는 칭찬하겠지만, 무진이 보기엔 쓸데없는 자존심이었다.
막말로 병기를 놓고서 다시 줍는다고 어디 달라지나? 전투 상황에 맞추어서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야 했다. 병기를 목숨처럼 여기기보다는 자기 목숨부터 챙겨야 한다. 그래야 반격의 여지라도 생기지.
쿠다다당!
허공을 날았던 정우민은 결투장의 투명 결계에 부딪히고 튕긴 채 바닥을 굴렀다. 명존세를 당한 정우민은 의식을 잃어 가며 체면도 잊고 바르르! 떨었다.
‘음산한 놈인 건 맞네.’
무진은 이화접목을 쓰기 전부터 정우민의 대처를 면밀히 살폈었다. 싱겁게 끝나긴 했어도, 별안간 정우민에게서 증폭한 살의는 진짜였다.
‘감은 좋은 녀석일지도.’
가문에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고, 범인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답은 정확히 찾았다. 시험지를 전부 찍었는데, 만점 받는 새끼였다.
“진천예, 올라와.”
“난 쉽지 않아!”
결투장에서 승리한 생도는 다음 대결 상대를 지목할 권리가 있었다. 정우민과의 결투가 시작할 때부터 차례를 기다렸던 진천예였다.
‘진짜 강하네, 씨발 놈!’
정우민의 선전을 기대하면서 무진의 전반적인 전투 기반을 알아보려고 했는데, 감을 잡기도 전에 정우민이 쓰러지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의 음산함도 통하지 않았다.
‘왜 내 시대에 이러는 거냐고!’
작금의 현실이 진천예에게는 많이 부담스러웠다. 지수는 어떻게든 인정하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속가제자인 무진에게도 패하면 집에 가서 뒤진다.
‘예전하고 아예 다르잖아!’
솔직히 지수의 성장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간 봐줬다는 건데.
“와라.”
“날 우습게 여기지 말라고!”
도제진가의 오의 적운공이 진천예의 신형을 붉게 물들인다. 폭발적인 기세가 결투장을 뒤덮었다. 왜소한 체격과는 달리 패도적인 기운이었다.
파앗!
타아아앙!
오라고 하고선!
무진의 선제공격에 진천예는 치를 떨었다. 작금의 상황마저 이용한 전술적인 대처였다. 한순간이라도 신형을 놓쳤다면 솥뚜껑 같은 주먹이 얼굴을 박살 냈을 수도 있었다.
적운도법 일식 적운벽.
무진의 권격을 막아 내고 반동을 이용하여 방향을 전환한 진천예의 도가 무섭도록 빠르게 휘둘러지며 붉은 막을 형성한다.
슈슈슈슈슉!
일수에 수천 번을 휘둘러 완성되는 도막에 비하면 헐렁하긴 해도, 무진이 워낙 거구라 빠져나가긴 용이치 않았다.
쨍그랑!
무진은 빠져나가지도, 물러서지도 않았다. 생긴 대로 냅다 후려갈겼다. 주먹에 맞은 얼핏 도기 같은 적운기(赤雲氣)가 유리잔처럼 부서졌다.
“흥, 걸렸다!”
깨져 버린 적운기가 낱알처럼 부스러지더니 무진에게 달라붙는다. 적운도법 사식 적운무(赤雲霧)의 묘리를 적운벽으로 숨겨 놓은 것이다.
진천예는 적운벽으로 적운무를 도금한 후 의도를 감추었다.
기회를 잡았다 여긴 진천예는 적운공을 최대한 뽑아낸 후 적운뢰(赤雲雷)를 발출했다.
찌지지직!
백만 볼트까지는 아니더라도, 뇌력에 당하다 보면 육체는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유도미사일이구나.”
“똑똑하네!”
적운뢰, 적운뢰, 적운뢰!
한 방으로 끝나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진천예는 이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걸 걸었다. 첫 수를 막으면서 체감했다. 정면 대결로는 노답 그 자체였다. 파괴력에선 뒤진 적 없다고 자신했던 도법이 일권에 밀리는 것만 봐도 괴물 같은 놈이다.
‘내력도 아니고 힘만으로!!’
말도 안 되는 신력을 기반으로 내력을 극도로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굳이 막대한 내력이 없어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적운뢰는 그녀가 펼칠 수 있는 최강의 초식으로, 내력 소모가 적지 않았다.
그걸 연사하고 있으니.
하아, 하아!
이런 미친!!
진천예는 연속적으로 전력을 다해 적운뢰를 발출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무진의 전진을 막기는커녕 거리가 좁혀졌다.
“시도는 좋았지만, 나한테는 안 통해.”
“이 피뢰침 같은 새끼가!!”
뭔 놈의 육체가 뇌기를 그냥 흡수하냐고! 쇠처럼 단련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진짜 쇠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무쇠로 만든 사이보그 같은 새끼였다.
파앗!
기어이 근접 거리를 확보한 무진은 오른발을 앞으로 강하게 내디디면서 권경을 발출했다.
진천예도 무방비로 당하진 않았다.
-특수 속성, 철인(鐵人).
파워업한 로봇처럼 육신의 기능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린 진천예는 회피 기동을 시도했다.
“요나, 수압 체인.”
“……뭐, 이 치사한!”
집을 지키는 크림과 달리 같이 놀다 홀로 소환된 요나가 진천예의 육신을 압박했다. 몸이 천근만근으로 변하면서 회피 기동은 무산되었다.
퍼어엉!
쩌저적!
잡아 놓은 후 패는 원패턴.
무진의 권경에 천예의 철인은 균열이 가고 있었다. 이러다간 철인으로 강화된 외피보다 내장이 먼저 박살 나게 생겼다.
쿨럭, 주르르르!
천예의 입에서 핏물이 발사되었다.
“호오, 제법이야.”
“……아니라고!!”
핏물을 피한 무진은 재차 권경을 발출했다. 철인이 풀린 천예의 까무러치는 비명이 결투장을 메아리쳤다.
아!
결투를 지켜본 s반 생도들은 한숨을 흘렸다. 시간 자체는 짧았지만, 굉장히 치열한 공방이었다. 그러나 결국 대결의 승자는 무진이 되었다.
‘까다로운 놈이네.’
‘여러 반을 다닌 이유가 있었구나.’
‘정령에 마도에, 또 뭐가 있지?’
‘하나하나 따지면 별거 아닌데.’
‘저 힘이 문제야!’
여러 능력을 하나로 아우르며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적인 성장과 기본적으로 모두를 압도하는 힘이 결합하니 무진을 공략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실전처럼 현혹, 환상, 독, 암수를 전부 쓸 수 있다면 또 모를까. 결투장에서 사용하기엔 어려운 조건이었다.
s반 생도들은 다른 반과 달리 자존심도 강하고, 체면도 있었다. 패가 쌓이는 걸 원치는 않았다. 하물며 권화도 아니고, 무진에게 당한 패배는 자존심이 상했다.
무진은 s반 생도들의 자존심을 고려하지 않았다. 결투를 원한 이상, 끝까지 가야 했다. 도중에 멈추지 않고 다음 순서를 맘껏 부르며 두들겨 팼다.
“……무진아, 나 상원이야!”
“근데.”
“나 유정이라고!!”
“알아.”
그렇게 대답하면 할 말은 없지.
상원, 유정, 혜진도 같은 파벌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았다. 편애 따윈 없는 무진의 공평무사한 대처에 뒷말조차 하지 못했다.
“……위험!”
“늦었어.”
무진의 주먹이 혜진의 대가리에 닿았다. 검영을 분쇄하고, 혜진의 검격을 무력화한 상태였다. s반의 얼음공주 혜진도 다른 생도와 다르지 않았다. 결투장의 투명 결계에 부딪힌 후 튕겨 나와 중앙으로 돌아왔다.
까르르르!
거품을 물고 쓰러진 검화의 처참한 광경에 s반 남학생도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얼음공주란 말 이전에 s반 최고의 미녀로 손꼽혔다. 쌍둥이가 있기는 하나, s반 서열 2위라 은연중 인기가 많았다.
‘저 새끼는 고잔가?’
‘고자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다른 데도 아니고 대가리를!!’
‘와, 진짜 무자비하네!’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 생도로서 화합을 이룬 무진의 대처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평온함이 냉혈한처럼 보였다.
더욱이 혜진, 유정, 상원은 같은 파벌이었다. 적아를 구별하지 않아 판단을 헷갈리게 했다.
‘웃네.’
무진은 결투를 하는 동안 주변을 꼼꼼히 살폈다. 생도들의 기운, 신체 리듬의 변화를 확인했다. 특히 지수가 거론했던 가문과 길드의 생도들을 집중적으로 보았다.
‘두고 보면 알겠지.’
결투는 다음 날, 그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여러 결투 가운데 혜진의 도전이 인상적이었다. 검화는 자존심을 버린 채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어떻게든 무진의 공수를 뚫어 내고 타격을 주기 위해 검공을 가다듬고, 또 가다듬었다.
“또, 위험!”
“그렇네.”
무진도 피하지 않고 검화의 대가리를 내리쳤다. 서로의 고집에 다들 혀를 내두른다.
다만, 결투를 이어 갈수록 무진과 여러 번 손 속을 나눈 생도들의 실력도 상당히 늘었다. 여러 가지 수법을 다양하게 쓰기에 생도들에게 부족했던 임기응변이 놀랍도록 발전했다.
물론,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았다. 더는 도전하지 않는 부류도 있었다.
빠드드득!
이민용, 적운길, 배준상은 적의를 불태우며 복수를 다짐했다. 그중에서도 이민용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괜찮아?”
“당연히 괜찮지. 설마 진짜로 진 줄 알았어?”
“그럴 리가. 비기를 숨겼잖아.”
“저 새끼가 웃을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이야!”
양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판다 이민용이었다. 어쨌든 s반이기에 무진에게 지목을 당한 채 결투장으로 개처럼 끌려가 일방적으로 처맞았다.
‘비기는 개뿔!’
‘이거 될까?’
서열전에선 제법 대결이 되었는데, 그새 격차가 벌어졌다. 그것이 배준상에게는 부담이 되었다. 적운길도 자신의 주제를 알고 도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내력 싸움으로 끌고 가야 하는데.’
힘과 기술이 내력을 커버치고, 정령과 마도로 변수를 만드니 이민용은 상대가 되지도 않았다. 멀뚱히 서 있다가 가죽 공이 되도록 두들겨 맞았다.
‘그 전에 저놈의 힘만 무력화할 수 있으면.’
이제 1대1로는 불가능하단 사실을 이민용, 적운길, 배준상도 느끼고 있었다. 주변에 모여드는 생도들도 늘어나고 있어 이대로는 불리했다.
‘근데, 이 새끼가 가만히 있지를 않잖아!’
자꾸 새로운 걸 익히는 바람에 대비해야 할 게 많아졌다. 더욱이 대결이 이어질수록 기술의 유출이 심해졌다. 생도들이 무진을 연구 분석하는 것 이상으로, 무진도 생도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지금도 봐라, 이민용이 그리 간단히 패할 녀석인가? 어떻게든 한 방 먹이려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지만, 같은 수는 통하지 않았다.
‘우리도 힘을 모아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무진에게 반감을 품은 생도들을 규합할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