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반연합(2)
그러니까 의문이다.
레벨이 낮은데도 강함은 상식적이지가 않았다. 아니면 강함을 얻기 위해 협소한 인벤토리를 얻었다는 해석이 나오는데.
음, 이건 구미가 당기는군.
슥슥!
무진은 반듯하게 자른 돌판에 기름을 바르고, 그 위에 선분홍의 아름다운 삼겹살을 올렸다. 상추, 깻잎, 마늘, 양파, 양념장, 고추장, 소금, 기름장으로 세팅을 갖추었다. 백미는 직접 담근 김치와 콩나물무침이었다.
치이이이익!
삼겹살이 노릇하게 익어 가는 불판 위로 김치와 콩나물무침을 올렸다. 그렇다고 특별하진 않은 기본적인 삼겹살 구이였다.
“자, 다들 드세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몇 번이나 맛을 본 지수는 식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본인의 용량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투기를 발산했다.
뭘 저렇게까지?
삼겹살 먹다 살인 나겠구먼.
제인과 나도후는 맛있어 봤자 삼겹살이란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먹기 전까지는.
아!
노랗게 익은 삼겹살은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또 촉촉하면서 육즙이 살아 있었다. 생전 처음 먹어 보는 삼겹살 구이의 맛이다. 지금까지 먹었던 삼겹살은 삼겹살도 아니구나, 인생 참 멋모르고 살았었다.
아삭, 아삭!
김치와 콩나물무침은 또 어떤가? 구이용으로 최적을 이루는 숙성도와 양념이 삼겹살의 기름과 만나 진화했다.
우걱, 우걱!
먹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특히 던전 경계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니 따봉이었다.
던전에 캠핑장 만들면 대박 나겠는데?
하루에 387,120원.
“어떻게 삼겹살에서 이런 맛이 나지?”
“손끝으로 고기를 만져 보면 기억이 보이거든. 자라 온 환경과 도축할 때의 고통이 느껴져. 확인하는 데 제법 고생했지만, 이후로는 최고의 삼겹살만 고를 수 있게 됐지.”
아!
무진의 친절한 설명에 지수, 제인, 나도후는 말문이 막혔다. 고기 고르는 방법을 가끔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긴 했어도, 저처럼 진심으로 고기를 고를 줄 누가 알았을까? 고기의 기억까지 읽어 내는데, 애초에 사기를 칠 수도 없었다.
무진은 정육점에서 원치 않는 블랙리스트였다.
“여기에 더해 자연기를 불어 넣으면 고기의 육질을 살아 있을 때처럼 맛볼 수 있지. 냉동 삼겹에 해 봐도 효과가 있으니 적극 추천해.”
“……?”
이거 활검(活劍)인데!
애초에 따라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삼겹살을 먹었을 뿐인데, 그 안에 담긴 안목과 무리(武理)가 인간적인 경계를 초월했다. 한편으로 신계의 맛을 내려면 그만한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방법은 생선 고를 때도 아주 좋아.”
“미친놈!”
“생참치 먹고 싶지 않아?”
“……아(쓰읍)!”
그 정성을 다른 데 쏟았으면 벌써…… 무진은 뭘 해도 될 놈이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완성도가 높았다. 그런데 노력까지 해서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었다. 같은 편이라 든든하면서도 속 터지게 했다.
이 새낀 진짜 뭐지?
지수의 가장 큰 고민이다. 처음 합을 맞추면 실수도 하고, 허점도 생겨야 정상인데. 지금까지 전부 무진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아아! 난 언제 더 강해질까?”
“……쿨럭!”
지수의 한숨에 제인과 나도후는 삼겹살 잘 먹다가 체할 뻔했다. 저래도 되나 싶을 만큼, 너무한 인간들이었다. 양심이 있으면 현재에 감사하며, 부모에게 효도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자신들 앞에서 한숨을 쉬어?
이럴 땐 미물도 발끈한다고!
제인과 나도후는 이 나이 먹고 여태 뭘 하며 살았나 후회가 밀려온다. 현실에 타협하고, 게으름을 피우고, 노력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했다.
‘망할, 노력한다고 될 턱이 있나?’
‘세상이 불공평해도 정도가 있지!’
노력이나 운만으로 닿지 못할 범주였다. 그래서 불안하기도 했다. 주인들은 분명히 말해 주었다. 다가오는 위험을 막기 위해서 힘을 합쳤다고.
얼마나 대단한 적이길래?
이거 우리가 낄 자리는 맞는 건가?
스케일이 만날 때마다 커지고 있는 기분이다. 지금보다 압도적으로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소시민인 나도후와 마찬가지로 제인도 소심해지고 있었다.
시무룩.
분위기가 소원해지는 것을 알아챈 무진은 화제를 돌렸다.
미래는 현재를 준비하면서 대비할 일이다. 미리부터 걱정한다고, 다가올 미래가 바뀌진 않았다.
“길드의 매출은 어때요?”
“예? 아! 솔직히 기대 이상입니다. 한데?”
“출처는 지수만 알고 있으니 물어봐도 소용없습니다. 이건 예지에 가까운 고유 능력이거든요. 그렇기에 함부로 사용해서도 안 되고, 사용하고 싶다고 맘대로 되지도 않아요.”
“아! 그렇군요.”
이럴 때를 대비해 무진은 지수의 고유 속성을 예지라고 둘러대기로 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미래를 살다 온 이상, 얼추 예지가 되기는 한다.
물론, 대충 알고 있는 지수의 미래를 분석해서 세분화하는 작업은 오롯이 무진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거의 짜 맞추는 수준이라, 분석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 와중에 드라마는 어떻게 다 본 거야?’
무진이 가장 어이없어하는 부분이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더니. 현재 절찬리에 방영되는 드라마의 결말을 알고 있었다.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짬짬이 봤다는 말을 도저히 신뢰할 수가 없다.
개소리 지껄이지 말라고 했더니, 결말을 폭로하겠단다.
호러, 액션, 스릴러 드라마인 ‘엠페러 킹덤’의 결말은 반드시 사수해야 했다.
‘절름발이 짝눈은 아니겠지?’
그건 너무 뻔한 클리셰였다. 분명 아닐 것이다. 그분께선 그리 호락호락한 작가님이 아니시다. 언제나 반전의 반전으로 기대 이상의 결과를 가져오셨다.
“절름발이 짝눈이 범인이야.”
“……?”
“김 실장하고 윤정이는 결혼하지만, 장모가 엄마였어.”
“……?”
동료를 위해 살신성인으로 삼겹살을 굽던 무진의 눈빛에 스산한 기운이 물들었다. 지수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내 반드시 절름발이 짝눈으로 만들어 주마!!
“농담인데. 혹시, 화났어?”
“큭, 우리 지수 많이 컸구나.”
무진으로선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결말을 사수했기에 안도했다. 드라마 시청은 유일한 취미 활동으로 돈 내고 유료로 보고 있었다.
‘그거 맞거든, 호호호!’
지수의 썩은 속내였다.
하아.
이렇게 보면 영락없는 열일곱 살이 맞는데.
제인과 나도후는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사태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시각과 선견지명을 고려하면 더더욱 혼란스럽다. 판단에 심각한 오류를 불러오게 하는 언밸런스의 극치였다.
“소화상의 염주, 무명의 철검, 도깨비의 혹부리는 경매에 나오는 대로 매수하세요.”
“알겠습니다.”
무진의 요구에 제인은 반문하지 않았다. 주문 내역만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그렇게까지 대단한 물건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2연타로 대박을 친 이상, 믿고 따르기로 했다.
“더 자세히 알려 드리고는 싶지만, 시일까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해요.”
이것도 지수의 미래를 박박 긁어내고, 따로 조사해서 알아낸 결과물이었다. 소상히 알고 있는 내용이 많지 않았다.
그럴 거면 왜 돌아왔는지, 의문이 들기는 한다. 본인 딴에는 회귀의 부작용이라고 하는데, 영~! 신뢰가 가지 않았다.
‘천불의 염주는 아버지한테 줘야겠다.’
수고비는 반드시 챙기고, 남은 건 팔아서 자금을 최대한 모아야 했다. 어떤 일을 하든 돈은 필수다. 권왕가의 자금력이 대단하긴 해도, 지수 맘대로 100억 이상 쓰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무엇보다 내부의 적들을 골라내기 전까진 안심하긴 일렀다.
“다른 길드의 반응은 어떤가요?”
“정보를 흘렸으니 저들의 편에 서진 않을 거예요. 이 바닥에서도 자존심은 있거든요.”
총통 길드와 그레이 길드의 연합을 알린다고 테라 길드와 보부상 길드가 순순히 편을 들어 주리란 기대는 순진한 생각이다.
일단 천진우가 가지고 있었던 정보와 길드 내부의 정황을 흘려 의혹을 키워야 했다. 이는 직접 수집한 정보를 근거로 설득하는 편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배신자긴 해도 쉐도우 길드의 2인자와 파벌이 갈려 나갔으니 의심하진 않을 것이다.
“무력적인 부분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이번에는 맡겨 주세요.”
“결심이 섰나 보네요.”
“이 정도는 해내야 신뢰가 가지 않겠어요.”
제인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도움을 원하지 않았다. 앞으로 상대해야 할 적은 분명 엄청난 힘과 세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암중 세력과 대적하려면 최소한 자신의 힘으로 블랙마켓을 장악해야 했다. 그 정도도 하지 못한다면 원수와 대적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
“과연, 지수가 선택한 분답네요.”
“거봐, 우리 언니가 잘할 거라고 했잖아.”
지수의 일방적인 응원이 제인에게는 낯설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 이면에 음모가 있다면 모를까, 그녀에겐 호의밖에 없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제외하곤 느껴 보지 못했던 어색한 감정이었다.
‘우리라고, 좋네.’
무진은 제인의 감정 변화를 감지하자, 지수의 친화력에 감탄했다. 이건 무진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이점이다.
솔직히 이해가 되진 않는다. 막무가내가 분명한데, 통하는 것 보면. 이성적인 논리를 개무시하는 지수만의 특기였다.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할까?’
하긴 무진조차도 그러한 지수의 막무가내에 넘어가서 아카데미에 왔으니 인정하지 않을 순 없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거절하기 힘든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 언니를 너무 부하 다루듯이 하지 마라. 자꾸 그러면 나 못 참아!”
“못 참으면 어쩌려고?”
“앞으로 나올 드라마는 전부 결말이 시시해질 거야.”
“크음, 확실히 심각한 위협이군.”
드라마의 결말을 약점으로 잡을 생각을 하다니, 무진은 그 점이 참으로 웃겼다. 실제로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진지하게 위협하니 얼렁뚱땅 넘어가게 되었다.
오도둑, 오도둑!
오돌뼈 씹는 소리가 찰지다.
무진은 삼겹살 삼매경인 도후 형을 보았다. 전투력은 여전하나, 강화력은 빠르게 늘고 있었다.
“하긴 그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훌륭해.”
“칭찬이지?”
“칭찬이야, 전혀 기대를 안 했거든.”
“흥, 날 너무 무시하진 말라고. 조만간 한국 제일의 강화술사가 될 테니까.”
“강화술사가 많지도 않을 텐데, 꼼수는 용납 못 하지.”
“헙, 역시 안 통하는구나.”
나도후는 천운과 악운이 교차하며 2차 각성을 했다. 당장의 능력만 해도 강화술사로선 손가락 안에 꼽힌다. 문제는 세계와 한국의 수준 차였다. 실제 한국 제일은 세계 순위와 비교하면 중간보다 못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사람도 강화할 수 있어?”
“해 보라고 하면 할 수는 있겠지만, 실패하면?”
강화는 확률 싸움이다. 사람을 확률에 대입해서 시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라질까?”
“그렇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딜 강화하느냐의 문제였다.
중급 마도서를 받은 무진으로선 프렌드의 육체를 성장시켜야 할 의무가 생겼다. 상급 마도서가 아니긴 해도, 10cm는 키워 줄 생각이다.
그 방법으로 근골의 강화를 염두에 두었다. 성장을 위한 혹독한 훈련을 하려면 기본 토대부터 바꿀 필요가 있었다. 몸을 만져 봤는데,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 봐 근육이 한 톨도 없었다.
그래도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라고 했다.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던 과업을 이룬다면? 마법사로서 역사에 남을 획을 긋는 일이 된다.
그러자 제인이 급히 만류했다.
“그거, 하지 않는 게 좋아요!”
“호, 누가 해 봤군요. 데이터는 남아 있습니까?”
“강화하자마자 터졌다고 들었어요. 누가 또 지원하겠어요?”
“혹시 모르죠.”
키를 위해서는 목숨을 걸 사나이가 있었다.
그렇지, 상원아?
난 물어는 봤다.
***
아카데미 1학년에서 지수는 독보적이다. 서열전의 우승이 운이 아님을 쟁탈전을 통해서 보여 주었다.
검신천가 천혜진.
도제진가 진천우, 진천예.
창황정가 정우민.
용신김가 김정구.
천상 길드 장민준.
쟁탈전이 이루어졌고, 지수는 모두 꺾었다. 일말의 여지나 틈을 주지 않았다. 구설수가 생길 수 없도록 s반 전부를 꼼꼼하게 짓밟아 주었다.
결투장 승자의 권한으로.
한 번은 실수지만, 재차 붙었던 김정구와 장민준은 격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권화는 그들보다 한 수 위에 있었다.
교관들조차 권화의 실전 전투술에 혀를 내둘렀다. 내외력이 완벽에 가까웠다.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권왕의 뒤를 이어 권후가 탄생할 거란 말이 돌았다.
‘괴물 같은!!’
s반의 생도들은 권화에 대한 경쟁심을 버리진 않았지만, 당장은 상대가 되지 않음을 인정했다.
내외력, 전투술, 심리전, 속성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은 데다 압도를 하니 승리를 기대하긴 어불성설이었다. 설령 빈틈이 있다 해도, 그 허점을 공략할 역량이 되어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s반의 생도들은 공략 대상을 바꾸었다.
서열전을 권화에게 양보한 수호무사로.
그때만 해도 동문의 직계를 위해 우승을 양보했으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권화가 워낙 압도적인 무력을 과시하니, 양보했다는 소문은 쏙 들어가 버렸다.
대신 평이한 내력을 보완하기 위해서 여러 학과를 전전하는 무진을 타깃으로 삼았다. 여러 가지를 배운다고 전투력이 상승하진 않았다. 되레 본인의 가장 강력한 힘마저 흐지부지되는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