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교두보(4)
테이머 훈련장은 사각의 철조망으로 되어 있는 장소였다. 위험 등급이 낮다고 해도, 마수가 도망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요나야, 전방 차단.”
-요나.
철조망 안으로 들어선 무진은 정령술을 발휘했다. 놀란 뿔 고양이가 발톱을 세우며 요나와 신경전을 벌일 때, 무진은 철조망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다.
가로 40보, 세로 30보.
계산한 범주 안에 들어서자, 무진은 마법을 발휘했다. 고양이든, 마수든 불에 관해서는 내성이 없는 편이다. 요나가 막아선 자리에서 반대 방향으로 화염을 일으켰다. 저계식의 대단치 않은 마력이긴 해도, 뿔 고양이에게는 위협적이었다.
-크아아아앙!
항복하지 않겠다는 뿔 고양이의 결사 항전이 이어졌다. 대부분은 이쯤에서 포기하고, 얌전한 마수로 전향하곤 했다.
테이머반을 관리하는 김인철 교관이 다른 마수도 아닌 뿔 고양이를 선택한 연유였다.
겉으로는 쉬워 보여도 뿔 고양이는 굉장히 까다롭고 예민하다. 그래서 길들이기만 해도 최고 점수를 주기로 했다.
‘허, 정령에 마도에 아주 골고루 잡탕을 만드는구나.’
가지고 있는 걸 쓰겠다는데, 만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생사가 오가는 전투에서 여유를 부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렇더라도 테이머 수업에서 대놓고 정령과 마법을 쓰는 건 좀 그렇지 않나?
교관 보기를 정말 돌같이 보고 있었다. 김 교관은 제주도에서 멍하니 선 돌하루방이 된 기분이었다.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여태 어떻게 참았데!”
“아주 그냥 보란 듯이 사용하네.”
“잘난 거 알지만, 그래서 뭐! 저런다고 최상급 테이머가 될 것 같아!”
“저딴 새끼가 잘되는 세상이 이상한 거라고!”
생도들의 수위 넘는 비난에도 무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물론,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확인했다. 생각은 할 수 있어도, 뱉어 낸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다.
보란 듯이.
무진의 무공이 발휘되었다.
정령, 마법에 이은 무공의 연합이었다. 정령반에서 익히 경험했던 생도들과 달리 반응은 신선했다.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가 뚜렷하다.
-야……옹(털썩).
날 선 반응을 보였던 뿔 고양이가 헛바람을 삼키더니 주저앉았다.
“……간장치기를!”
“뿔 고양이도 간장이 있나?”
“저건 동물 학대잖아!”
뿔 고양이의 유연한 신체가 아니었다면 갈빗대가 모조리 박살 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보기만 했는데도 다들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생도들은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간디로 빙의했다.
“아직 친구가 되기에는 부족하군.”
실패에도 무진은 미련을 두지 않았다.
뿔 고양이를 길들이는 작업은 분기 수업에 해당했다. 그 안에 길들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 전에 먼저 길들이는 생도가 있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길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다른 생도를 시기 질투하진 않는다.
“내일 다시 해 보자.”
-……끼요요양(벌떡)!
무진이 돌아서자 갑자기 돌변하여 일어선 뿔 고양이였다. 기절한 척 역공, 뿔 고양이의 주특기로 이 수법에 당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렇지, 생도들은 응원했다.
뿔 고양이를!!
획!
움찔!
무진이 재차 돌아서자, 뿔 고양이가 달려들다 멈췄다. 그리고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처럼 바라본다.
“……저건 전설의 버선 신은 고양이 수법!”
“너무 귀여워!”
“저걸 대체 어떻게 이겨!”
여생도는 뿔 고양이의 귀여운 반격에 홀딱 넘어가고 말았다. 발이라도 내어 준다면 연어와 멸치를 어선째로 갖다 바치리라. 더는 동물 학대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생도를 집사로 전락시키는 뿔 고양이의 악랄한 노림수였다. 인간의 약점을 노리는 것만 봐도 영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퍼억!
모두의 예상과 달리.
간장치기를 또!
-……야옹(털썩)!
반대쪽이라, 깐 데 또 까지는 않았다.
무진은 쓰러진 뿔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마지막까지 진의를 숨기다니 훌륭하다. 하나, 나는 누가 됐든 방심하지 않는다.”
씨발, 존나 진지하네!
방심 좀 한다고 인생이 달라지지도 않을 텐데. 무진의 빈틈없는 마무리에 테이머반의 생도들은 어이가 없어졌다.
“내일 보자.”
부르르르!
무진의 의욕적인 한마디에 뿔 고양이는 무의식적으로 떨었다. 마수생의 앞날이 순탄치 않았다.
걸려도 지독한 놈에게 걸렸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은 애초에 하지를 말아야 했다. 사람을 사귈 때나, 테이머를 할 때나 이치는 같았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진리를 추구하는 구도자로서.
무진은 도형을 바닥에 그렸다.
“테이머 술식이다.”
-크앙?
고유의 특수 속성을 활용해 계약을 맺는 것이 통상적이나, 대상의 강제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테이머 술식을 활용한다. 일종의 강제력을 가진 계약서였다.
계약에 강제력을 넣으려면 마수의 자발적인 동의가 필요했다. 동의하지 않는 계약은 애초에 강제력이 생기지 않았다.
테이머로서 무진은 신입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않았다.
“내가 많이 부족하군.”
-야옹?
부족하면 될 때까지.
실패는 성공의 아버지라고 했다. 무진은 포기를 모르는 사내였다. 무엇이든 꽂히면 끝까지 갔다.
“요나, 전투 모드 수압 백열킥.”
-요나.
중급 정령으로 진화한 요나는 청소년기의 소녀와 비슷한 형태였다. 외형도 이젠 완성형에 가까워 무진의 지시를 곧잘 따랐다. 저처럼 말만 듣고서 곧바로 실행하는 공방 일체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중간중간 요나는 응용 능력을 보여 주었다. 인간이 기계에 인공지능을 부여했을 때와 같은 유레카였다.
촤아악!
백열킥을 쓰기 전 물의 장벽으로 담벼락을 쳐서 뿔 고양이를 고립시켰다.
잡고 패기의 전형으로.
사면초가의 고립된 뿔 고양이가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요나의 발차기에 동네북 신세가 되었다.
처억, 처억!
마치 엉덩이에 물을 뿌리고, 곤장을 치는 듯. 요나의 발과 뿔 고양이의 일체감이 놀라웠다. 조선 시대에 곤장을 열 대만 맞아도, 장 패혈증으로 죽는 사고가 괜히 일어나지 않았다.
철퍼덕!
-……야옹!
무진은 술식을 가리켰다.
말이 안 통해도, 보디랭귀지는 만국공통이었다. 마수도 다르지 않았다.
순순히 사인하란 의도였다. 선택의 자유를 주어서 주변을 당황스럽게 했다.
관자놀이에 총을 대고 사인하란 말과 뭐가 달라?
“……저딴 게 무슨 테이머야!”
“요즘 고용계약서도 저런 식으론 안 해!”
“악덕 사장은 물러가라!”
“마수도 주말은 쉴 자격이 있다!”
무진의 테이머는 보름간 지속했다.
보는 사람도 질리게 하는 끈질긴 신경전이 계속되었다. 무진도 무진이지만, 뿔 고양이도 만만치가 않았다. 통상적인 뿔 고양이하고는 다르다.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하고, 야생성을 버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요나, 고속 연타, 물대포, 회전어류겐.”
-크어어어엉!
원래 그 정도의 끈기를 보이면 질리기 마련인데,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쁘다. 나완 상관이 없다는 듯이 요나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직원을 신뢰하는 사장의 마음이었다.
뿔 고양이는 끝까지 저항했다. 그러나 철조망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신세였다. 사방이 탁 트인 것도 아니고, 족쇄가 차인 상태로는 역부족이었다.
요나는 뿔 고양이를 신나게 두들겼다.
언뜻언뜻, 요나의 물리적인 타격에서 무진의 권로가 보였다. 주인의 의념에 점점 물들어 가고 있다. 당연하게도 아무나 되는 일은 아니다. 강력한 권능을 지닌 존재여야 했다.
-야옹!
더는 버티지 못한 뿔 고양이가 무진의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뭘 해도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답이 나와야 저항이라도 하지. 노답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흠, 아직 부족하군.”
-야옹?
“요나, 무차별 폭격.”
-요나.
왜냐는 의문이 들기도 전, 뿔 고양이는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봐야 했다. 네 번을 더 두들겨 맞은 후에야 뿔 고양이는 대오각성하고 말았다.
-야옹!
배를 하늘로 까고 사지를 늘어뜨린 채 누웠다.
뿔 고양이로선 수치스러운 행위였으나, 어떤 저항도 하지 않겠다는 항복의 표현이었다. 그냥 네 맘대로 하라는 백기 투항이나 다름이 없었다.
“제법 잘 버텼어.”
-야옹!
테이머 술식으로 계약을 맺은 후, 무진은 뿔 고양이의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쓰담쓰담.
까르르르르!
배알도 없는지, 뿔 고양이가 좋아 죽는다. 테이머반 생도들은 강제력을 발동하는 테이머 술식의 무지막지한 위력에 자못 놀랐다.
저게 되네!
한동안 무진의 방식이 통하는 줄 알고 테이머반에서 작용 반작용의 물리력이 유행을 탔었다. 다들 말보다는 주먹으로 승부를 보았었다.
그러나 생도들은 번번이 실패했다. 누구나 됐으면 교과서에 나왔겠지.
무진은 뿔 고양이에 이어 단계를 높여 가며 테이머를 성공시켜 나갔다. 처음에는 우격다짐처럼 보였으나, 고도의 기브 앤 테이크, 즉 네고였다.
마수, 영수 가리지 않고 특성을 파악한 후 현장 대응을 해 나갔다. 책상머리에 적혀 있는 교본만을 따르지 않은 고유의 네고야말로 테이머의 중요한 능력이었다.
‘다소 거칠긴 했지만, 실력 자체는 나쁘지 않아.’
김 교관은 무진이 테이머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은 있다고 판단했다. 마법, 무공, 정령술까지 동원하는 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최고점과 보상을 내어 주기로 했다.
‘하지만 저 방식으로 a급 이상을 테이머하기는 어려워.’
특히 영수나 신수급의 테이머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정령술과 마찬가지로 테이머도 고유한 속성이나 태생적으로 교감 능력이 빼어나야 했다.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아도 테이머의 전투력은 어떤 마수를 길들이느냐에 달려 있었다.
‘운이 따라 준다면 모를까.’
간혹 영수나 신수가 계약을 원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나, 정말로 특이한 케이스였다. 마치 감나무의 감이 떨어질 때까지 입을 벌리고 있는 형국과 같았다.
‘말릴 수도 없고.’
본업이 따로 있는 생도였다. 무공으로 버젓이 자신을 알렸다. 그럼에도 테이머를 우습게 여기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현재 서열만으로도 최상위고. 부정적인 미래가 보이긴 하나, 노력하는 생도를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기회는 줘야겠군.’
특출 난 헌터가 나라의 국력이 된 세상이긴 하나, 아카데미는 배움의 터전이었다. 노력하는 생도에겐 합당한 대접을 해 주어야 했다. 그래야 다른 생도들에게도 자극이 된다. 미리부터 포기한다면, 재능이 있어도 대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발판이 된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지.’
김 교관은 선생으로서의 도덕적 책임과 인사고과를 받아야 하는 월급쟁이로서 중립을 지켰다. 현실은 도덕적 의무만으로 살아가기에는 빡빡했다.
이번엔.
‘성과급이 나오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