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인류최강 남사친-33화 (34/374)

33. 작당(1)

화르르!

염화, 염풍, 염폭.

화염 3식을 적재적소에 연계하는 가운데, 둔탁한 초식이 팽팽하게 맞물렸다. 쇠를 녹일 화염이 폭발하며 연무장을 달아오르게 했다.

쐐애액, 타앗!

무진의 권격, 팔꿈치, 무릎이 빈틈을 노렸으나, 권왕의 와류경에 휩쓸리며 타점이 비틀렸다. 권세, 권압, 권기의 합일된 와류경은 그 자체로 강력한 방패였다.

휘잉, 퍼엉!

권심에서 어긋난 권격을 전환하여 스피닝엘보우로 바꾸었음에도 권왕의 대응이 실로 놀라웠다. 외형으론 힘만 앞세울 것 같지만, 고차원적인 공방 일체를 이루었다.

착!

무진도 허술하게 당하진 않았다. 타격 위주에서 체술로 전환, 권왕의 팔목을 잡고 끌어당겼다.

우지지직!

권왕의 왼팔을 잡아서 아래로 내린 후, 우(右)권을 찔러 검결지로 변환했다. 눈을 노리는 악랄한 수에도, 권왕은 기꺼운 듯 파고들어 라이트 어퍼를 꽂아 주었다.

후아아아앙!

아래에서 위로 수직을 그리는 권왕의 승룡권은 맞는 즉시 황천길이었다. 무진이 왼팔을 끌며 방향을 틀지 않았다면 말이다.

파파파팟, 타앗!

서로의 호흡이 닿는 좁은 거리에서 벌어지는 공방이 날카롭고 섬뜩했다. 사제 간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생사투에 비견되었다. 실전보다 살기 넘치는 대련이었다.

치이이익!

맞지 않았음에도 권풍과 권압에 사포로 철을 마찰시키듯 불꽃을 튀기며 스크래치가 생겨났다.

무진류 화염마도 회륜염!

권공에서 밀린 무진은 마법을 연사했다. 화염은 대단치 않지만, 시선을 분산시키는 데는 효과적이었다.

“허허, 어림없도다!”

권왕의 야생동물과 같은 반응과 화염마도의 구력은 녹록지 않았다. 분명 무진의 화염마도가 세련된 면이 있음에도, 권왕의 다듬어지지 않은 화염마도에 휩쓸렸다.

역시 짬밥은 무시할 수 없다.

솔직히 무진은 화염마도에서 사부님을 앞질러 나갈 자신이 있었다. 웬걸, 권왕의 주먹구구식 화염마도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불발차기, 불팔꿈치로 방심을 유도하고 격공화염으로 뒤통수를 노리는 연계가 본능처럼 발휘되었다. 이론의 부족함을 메우고도 남을 살벌한 실전성이었다.

‘마탑에서 정식 마법사로 인정할 만하구나!’

근본이 없다고 권왕을 얕봤다간 정식 마도사도 혼쭐이 났을 것이다. 실제로 권왕의 마탑 등반에서 망신당한 마법사가 적지 않았다. 말 같지도 않은 이론을 비웃다가 호되게 당했었다.

책상머리에서 주둥이질해 봤자, 현장에서 구르고 구른 노련한 힘법사를 이기긴 어려웠다.

더욱이 화염마도와 권공을 본능적으로 연계하고 있었다. 근래에 들어 놀라우리만치 발전했다.

무진으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사부님의 성장이었다. 저 나이에 정체나 퇴보가 아닌 발전이라니.

‘이게 고작 한 달 배운 마도가 맞나?’

무진의 놀람은 권왕의 황당함과 비교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자신이 가르쳤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성장 속도였다. 한 달 전만 해도 마나를 느끼는 수준이었는데, 이젠 화염마도를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이론은 한참이나 앞섰지.’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지만, 권왕은 이론적인 체계를 제자에게 배우고 있었다. 안 입던 옷을 억지로 입으면 되레 역효과가 일어날 것 같았는데, 예상과 달리 마법 체계가 바로 서면서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었다.

‘더욱이 권공이 실로 놀랍구나.’

무공만 놓고 봐도 가르칠 게 많지 않았다. 권왕가의 기본을 극한으로 수련한 녀석 같았다. 누가 이 녀석을 한 달만 배운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천년삼은 어떻더냐?”

“나쁘진 않았습니다.”

무진은 적당히 30년 공력을 얻었다고 했다. 천년삼 열 뿌리를 복용했을 때의 정확한 효력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정석을 따랐다.

“너만 한 자질이면 공력이 폭발적으로 늘었어도 이상하지 않거늘.”

“대신 힘이 늘었습니다.”

“그거야 꾸준한 하드트레인 덕이고.”

“공력이든, 힘이든 어떻습니까? 강해지면 장땡이지.”

“하하하하하, 진짜 내 수제자가 맞구나!”

정말 이렇게나 안성맞춤인 제자는 처음이다. 실제로도 처음이긴 하지만. 여하튼, 자신의 속마음마저 헤아리는 제자라니! 가르칠 맛이 나다 못해 흥이 솟았다.

“아카데미 생활은 어떻더냐?”

“아직 분수를 모르는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조만간 아카데미를 평정하겠습니다.”

“아무렴, 본왕의 수제자라면 언제나 당당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면 부담 없이 난장을 까도록 하겠습니다.”

“얼마든지 하려무나, 이 사부가 다 알아서 처리해 주마!”

“사부님만 믿겠습니다.”

무진은 사부가 깔아 준 멍석을 마다하지 않았다. 사부를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생활 녹음은 부수적이었다. 후일 권왕은 이때 한 약속을 땅을 치고 후회했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하온데, 다음 단계를 위한 마도서가 필요합니다.”

“벌써 다 익힌 게냐?”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래, 너만 믿으마.”

권왕은 자본을 대고 무진은 이론의 정립으로 새로운 마도 체계를 확립해 나가고 있었다. 각자가 잘하는 분야를 침범하지 않으니, 나날이 발전해 나갔다.

의외로 무진과 권왕의 조합은 궁합이 잘 맞았다. 생긴 건 자존심덩어리들인데, 깨어 있었다. 그런 점이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공간, 중력, 현혹은 익혀 두면 괜찮을 듯싶습니다.”

“그딴 거 없어도 주먹과 화염이면 괜찮다.”

“그런 게 아니라 폼이 삽니다. 무식하게 보일 순 없지 않습니까?”

“……그렇구나.”

훈련은 이쯤에서 마무리했다.

무진은 예를 갖춰 인사를 한 후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사부님도 원로들과 약속이 있어서 다리는 다음에 조지기로 약속했다.

연무장에서 나와 지수의 방으로 가는데, 불편한 시선이 느껴졌다. 나오기를 기다렸는지 무시하고 가려던 길을 막아섰다.

“어딜 그리 급히 가시나?”

“알아서 뭐 하게.”

“이 새끼 봐라, 선배한테 초면부터 말을 까네.”

“본론을 말해.”

백상호, 남우철, 김태기는 무진의 권태로운 몸짓에 인상을 구겼다. 막아설 때부터 기세를 뿜어 기를 죽이려고 했는데, 되레 한 방 먹고 말았다.

“전대 가주께서 오냐오냐 봐주니까,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사부님의 안목이 형편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나?”

예상을 상회하는 반격에 셋은 움찔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곡해의 여지가 충분하나, 아귀가 맞물렸다.

“우리가 언제?”

“아니면 화염마도를 우습게 여기는 건가?”

“자꾸 말 돌리지 마라! 너도 무인이라면 우리의 도전을 피하진 않겠지?”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권왕가에서 2년 차에 접어든 신입 무인들이었다. 정식 절차를 밟아 권왕가에 소속이 된 자신들과 달리 무진은 특혜를 받았다. 그것만으로도 거슬리는데, 전대 가주님의 총애를 받으며 천년삼까지 얻었다.

입학시험과 서열전에서 놀라운 성적을 올리기는 했어도, 그래 봤자 신입 생도에 불과했다. 갖은 고생을 하며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권왕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노력한 자신들은 뭐가 되냔 말이다.

불공정한 현실을 두고 볼 순 없다. 이번 기회에 누가 위고, 아래인지를 확실하게 알려 줄 작정이다. 선후배를 무시하는 후레자식에겐 엄벌이 필요했다.

이는 하늘이 주신 당당한 천명이다.

그래야 하는데.

뜻대로 되진 않았다.

무진은 무력대의 훈련장으로 따라가 대련을 가장한 싸움을 벌였고, 결과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시작과 동시에 무진은 달려들었었다.

아가리를 털며 약을 올리거나, 비아냥거리지도 않았다. 시간 낭비를 하기엔 그들은 단역에 지나지 않았다.

“……잠깐 ……크악!”

“여긴가?”

“……아냐 ……허억!”

“맞네.”

백상호, 남우철, 김태기는 순차적으로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았다. 볼일을 끝낸 무진은 미련 두지 않고 훈련장을 떠났다.

그러는 동안 누구도 막지 않았다.

허!

훈련장엔 무진의 실력을 알고 싶어 했던 무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들이 직접 나서기에는 나이와 경력의 차이가 컸었다. 전대 가주께서 화염마도의 전승자로서 후계자를 두었다고 하기에 경시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소문보다 더하군.’

‘안개 속성에 방향을 잃긴 했어도, 후속 대응은 어처구니없을 만큼 빨랐어.’

‘역시나 화염마도는 구색이었군.’

‘입학 생도 주제에 저토록 완숙한 권공이라니.’

‘대원들에게 보여 주고 싶을 정도야!’

2년 차라고 해도, 졸업한 후 권왕가의 무인이 되었다면 나름 엘리트 출신이었다. 그런데 성좌의 선택도 받지 않은 무인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무진에 대해서 신뢰하지 않았던 무력대의 대원조차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신들이 저 나이 때에는 무진만큼 완성도가 높지 않았다. 다소 기습적인 면이 있다곤 해도, 권왕가의 무인이라면 대처했어야 했다.

권왕이 손수 키운 비밀 병기라는 인식이 새겨졌다.

“차후 자네의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겠군.”

“당장은 모르겠으나, 차후에는 저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만큼 대단한 실력이었습니다.”

“하하, 겸손한 건 여전하군.”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권왕가 삼대 중 하나인 흑무대 대주 석경환은 4년 차 만에 백무대의 부대주에 오른 유지호야말로 천재로 보고 있었다.

가문의 직계라는 타이틀을 제쳐 두고서라도 놀라운 성장 속도였다. 그런데도 자신을 평가할 때 가혹하리만큼 냉정했다.

‘속도와 내력이 아쉽군.’

무진도 충분히 천재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기는 했다. 그 나이 또래는 물론, 아카데미 내에서도 대적할 상대가 많지는 않았다. 다만,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고려하면 한계가 뚜렷했다.

그에 반해 유지호는 여전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곧, 백무대의 대주를 넘어서게 되리라 판단했다.

훈련장의 행사가 끝났다.

흑무대주와 대원들이 떠나고, 유지호는 속으로 웃었다.

시험 삼아 확인해 본 무진의 전투력은 썩 괜찮았다. 동생들의 속을 썩일 만했었다.

‘하지만 그뿐이군.’

싹수가 보였다면 당장 손을 썼을 텐데, 시간을 두고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편이 나았다. 동생들도 무진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기도 하고. 그런 하찮은 걸림돌조차 버티지 못하면 자신과 마주할 자격도 없는 놈이었다.

‘부질없는 짓을 하는군요.’

직감일 수도 있겠지만, 준비한다고 해서 흐름이 바뀌진 않는다.

***

던전 브레이크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헌터 등급을 확인한 후에는 돌려보냈다. 실력 만능주의에 허망하긴 해도 귀찮게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매사에 조심했다.

개새끼들은 블랙마켓에 올렸던 아이템과 장비만으로 자신을 찾아왔었다. 또 다른 이들이 불현듯 찾아온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그날 이후 반성을 많이 했다.

삶이란 이렇게 행복한 것이거늘,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살았었나 후회가 밀려왔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넓은 세상을 봤어야 했다.

그렇긴 한데, 사람이 또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는다.

우선, 사람이 무섭다. 나가면 놈들이 또 찾아올 것 같았다. 사건 이후로 보름 동안 매일 악몽을 꾸었다.

집을 옮기고, 최대한 은인자중하며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을 때 나도후를 생각했다.

‘까인 건가?’

그날 보여 준 능력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누구나 탐을 내고도 남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연락처를 받아 간 이상, 반드시 올 거란 기대를 했었다.

‘아니, 왜?’

아싸긴 해도, 능력 있는 아싸였다.

속성까지 업그레이드를 당해서 월등히 괜찮아졌다. 이만하면 까이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갑자기 자존감이 떡락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주식도 손절하는 거였다.

‘너무 기대했나?’

예전과 비교하면 일취월장이긴 해도, 그가 보여 주었던 가공할 무력과 비교하면 초라했다.

그날은 너무 놀라서 직관적으로 판단을 내렸었다. 곰곰이 따져 볼수록 인간적이지가 않았다. 내가 죽었다 환생해도 가지지 못할 압도적인 강함을 상기할수록 매료되었었다.

‘나 같은 건 필요 없을지도.’

지금보다 강화술을 높이지 안 되었다. 능력이 업그레이드되면서 무엇이라도 된 줄 알고 들떠 있었던 것이다. 현실을 자각할수록 시궁창이란 생각이 뇌리를 맴돌았다.

-띠리리리리링!

휴대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모르는 발신 번호였다.

나도후는 직감했다.

-나야.

“얏호! 기다렸습니다!”

-……그렇군.

“어딥니까?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

“여보세요, 안 들립니까?”

-들리니까 작게 말해.

전화를 받은 후, 꽃단장한 나도후는 급히 방을 나섰다. 오매불망 기다렸기에 한시라도 빨리 찾아가고 싶었다.

한 달이 흐르도록 연락이 없어서 다시 일을 나가야 하나 고민했었다. 이 험한 세상 든든한 배경이 없으면 살기가 힘들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카페의 2층으로 올라갔다. 한적한 카페 안에서 빈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단 매너로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 놓았다. 다행히 카공족이 없어서 마음이 편했다.

약속한 시각이 되자.

나도후의 앞자리에 낯선 커플이 앉았다. 허락도 없이 남의 자리에 앉자 인상을 찌푸렸다. 낯을 가리는 편이긴 해도, 은인을 위해서 햇살 잘 드는 자리를 맡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태 솔로라서 화를 내는 것이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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