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공공의 적(3)
‘이미 완성되었군.’
모처럼 권왕의 뒤를 이을 녀석을 봤음에도 정 교관은 아쉬움도 컸다. 저 상태에서 내력과 속성이 받쳐 주어야 했다. 권공을 완성하기까지의 피나는 노력을 상기할수록 안타까웠다.
‘지켜봐 주마.’
노력하는 생도를 교관으로서 외면할 수는 없었다. 정 교관은 무진에게 합당한 시련과 보상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교관으로서 악명이 자자하지만, 철혈십좌의 일좌를 맡은 이유였다.
-레벨업.
-레벨업.
평소 훈련으론 오르지 않는 무진의 레벨이 2단계나 올랐다. 아카데미 중심에 우뚝 솟은 탑의 영향으로 던전과 사냥이 아니더라도 레벨업이 가능했다.
특히 탑의 교육 증표를 받은 철혈십좌의 시련을 받으면 레벨업이 더 빨랐다.
오전은 공통 교육이고, 오후부터는 생도의 능력과 특성에 따른 전문 교육을 받는다. 1학년은 지루할 만큼의 기본적인 능력치와 속성 강화에 전력을 기울였다.
토대를 쌓고, 최적의 진로를 찾아야 하기에 가급적 모든 수업을 듣도록 간격을 조절했다.
교칙은 2학년까지 유지하며 3학년부터는 전문 분야와 속성을 특화하는 데 중점을 둔다.
아카데미에선 생도들의 동기부여를 위해서 이수한 수업에서 받은 평점대로 보상을 받는다. 또한, 학년이 거듭될수록 보상의 등급이 높아지기에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이해하기 힘든 구조였다. 지속적인 보상을 주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그 비용을 아카데미에서 자체적으로 충당하기는 불가능했다.
실제로 정부의 보조금만으론 어림없었다.
자금조달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에선 길드, 가문의 도움을 받았다. 길드나 가문은 스폰을 통해 인재를 스카우트하고, 정부에선 세금을 깎아 주는 형식이었다.
무엇보다 형평성을 어느 정도는 맞춰 줄 필요가 있었다. 가문과 길드에 소속되지 않으면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은 여론의 질타를 받을 소재였다. 불평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모두에게 형식적이더라도 공평한 기회를 주어야 했다.
하나, 기회를 준다고 해도 대형 길드, 칠대가문, 최상위 헌터의 자제들이 보상을 가져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문제는 기회라도 주느냐였다.
아카데미의 설립 목적은 해 보지도 않고 기회를 박탈하게 되었을 때의 불만을 해소하고, 잠재력이 있음에도 개화하지 못하는 경우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현시대의 헌터는 국력과 일치했다.
최강의 헌터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가 강대국을 평가하는 요소였다. 그렇기에 손해를 보더라도 잠재력이 높은 헌터를 적극적으로 찾아내려는 것이다.
“악명 높은 일좌교관이 순순히 보상을 내어 줄 줄이야!!”
“보상은 교관이 정해 놓은 단계를 통과하면 주는 거잖아.”
“그 단계를 통과한 생도가 입학식 날 나오진 않는다고!!”
“줄까?”
정 교관이 내어 준 보상은 ‘힘의 정수’였다. c급의 영약이긴 해도 복용자의 잠재력에 따라 비율적으로 상승하기에 누가 마시느냐가 중요했다. 게다가 복용 후 특성에 따라서 랜덤으로 보상이 주어졌다.
무진에겐 대단치 않을 수도 있겠지만, ‘힘의 정수’의 가치는 작지 않았다. 누군 없어서 못 마시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자 사방에 적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칫!
지수는 흘러나오는 한숨을 간신히 참아 냈다. 사실 정 교관의 수업 내용을 자세히는 몰랐다.
‘당시엔 s반이 아니었으니까.’
나중에야 s반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너무 늦고 말았다. 그땐 서열을 올리는 데만 정신이 팔려 다른 일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정 교관의 마음에 들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1교시 만에 정 교관의 환심을 사고 보상까지 받다니 세상 불공평했다.
‘혹시 3회 차 아냐?’
2회 차조차 따르지 못하는 능수능란함, 무진이라면 정 교관의 행동 패턴을 꿰고 있을 수도 있었다. 3회 차로 인생 꿀 빨려는 개수작이라면 이해가 되었다.
“정령, 테이머, 마법, 연금술 등등 들어 봐야 할 과목이 너무 많다.”
“역시나!”
“언제까지 헛다리를 짚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안 되잖아.”
무진은 지수를 뿌리치며 앞서 걸었다.
종말의 세상에서 돌아왔다면서 응석을 부려서야 쓰나. 무엇보다 정보가 극히 제한적이었다. 초대형 사고만 간략하게 알고 있을 뿐, 시기와 과정이 정확하지 않았다.
“그냥 해 달라니까!”
“은근슬쩍 올라타지 마라.”
“그렇다고만 해.”
“목 감지 마라.”
무진은 뒤에서 목에 초크를 거는 지수를 무시하고 걸었다. 매달린 모양새에 고목에 붙은 매미처럼 덜렁거렸다.
하아아!
유정은 무진과 지수의 옥신각신에 한숨을 쉬었다. 저것들의 개짓거리는 배가 부른 자의 투정이었다.
“쟤들은 진짜 양심이 없는 것 같아!”
“옳소!”
“서열전에서 우승해, 악마 교관에게 보상도 받아. 자기들끼리 다 해 먹고 있으면서 우리 같은 평범한 소시민은 어쩌라는 거야?”
“우린 죽어야지!”
“그런데도 뭐가 어쩌고저째!”
“우우우, 사탄들은 물러가라!”
유정은 상원이 적극적으로 맞장구를 치자 미간을 찌푸렸다. 이상하게도 상원이 호응하면 루저가 되는 기분이었다. 아 참! 꺼지라고 한 지가 언젠데, 말귀도 못 알아들었다.
유정의 불편한 낌새를 알아챈 상원이 급히 화근을 돌렸다.
“잠깐, 지수 팔에 힘줄 돋았는데!!”
“그딴 말에 내가 속을…… 진짜잖아! 저 미친년!”
멀리선 연인의 애교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무진의 목을 휘감고 악을 쓰는 지수의 얼굴엔 악귀가 씌었다.
스윽!
무진이 고개를 돌렸다. 매미처럼 대롱대롱 매달린 지수가 액세서리처럼 느껴졌다.
“수업 늦겠다. 어서 가자.”
“……?”
무진의 목소리는 바람이 불지 않은 숲의 호수처럼 고요하고 청정했다.
헐!
이번에는 혜진도 합세하여 정신줄을 놓을 뻔했다. 무진의 강건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저건 목이 아니라, 쇠기둥이 분명했다.
씩씩!
지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연기라고 하기엔 머리 뚜껑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
점점 관종의 삶에서 벗어나 정상인이 되어 가는 유정은 삶에 대한 회의감에 젖었다. 자신보다 더한 미친 연놈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뛰는 년 위에 나는 미친 연놈!
저러면서도 주변 따윈 신경 쓰지 않는 무심함이 압권이었다. 공공의 커플이 되어 여기저기서 대놓고 적개심을 불태우는데도, 지들만 태평성대였다.
독고다이들!
너희들은 짖어라, 우린 우리 길을 가겠다. 사람을 극한으로 빡치게 하는 가장 원초적인 재주였다.
“근데, 너희들 사귀는 거 맞지?”
“안 사귄다.”
무진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자, 목을 잡던 지수의 두 눈에서 광기가 번뜩였다. 이번에는 힘만 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골드미스의 단전이 활화산처럼 꿈틀거린다.
무진은 위기를 감지했다.
오싹!
등골이 서늘해진 무진은 지수를 떨쳐 내려고 했으나, 갑자기 힘이 몇 배나 강해졌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한겨울 스키장 곤돌라에 닿은 혓바닥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우린 동료잖아.”
“닥쳐!”
그 말에 아예 눈이 돌아갔다.
왜?
무진도 이해할 수 없는 지수의 변화였다. 기껏 고백하랄 때는 하지도 않았으면서. 자신은 그저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려고 했을 뿐이다.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
-레벨업!
이런, 난이도가 있었네.
빠드득!
멀찍이서 무진과 지수의 아옹다옹을 어이없이 쳐다보는 혜진, 유정을 관찰하며 이를 가는 멍게들이 있었다.
의도치 않게 전에는 없는 끈끈한 유대가 생겼는지, 일치단결이 되었다.
개망신을 당한 이민용, 적운길, 배준상은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동맹을 맺었다.
물론, 서열 차이가 큰 배준상은 시다였다.
어차피 핫라인이 필요한 이상, 파벌은 중요했다. 각자의 파벌이 있는 상태라 끼어들기가 어렵다. ‘타도 무진’을 위한 동맹이 그 타개책이 되었다.
‘병신 같은 놈이 잘난 체는.’
‘네놈의 오만이 발목을 죄게 될 거다!’
‘나를 무시한 대가를 치러 주마!’
무진을 향한 부정적인 감정이 곳곳에 있었다. 대단치는 않아도, 수가 어느 정도 모이면 방도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정면 대결로도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적운길과 이민용은 무진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자 승부욕을 드러냈다.
“비겁한 수작만 없었으면 내 손으로 처리했어. 그래? 안 그래?”
“알고 있지. 나도 저 새끼가 그따위 개 같은 전략을 쓸 줄 알았으면 당하지 않았어!”
뭐래, 병신이!
적운길과 이민용의 끈끈해 보이는 유대만큼이나 속도 똑같은 놈들이었다. 서로 진다고 생각하지 않는, 대등함과는 다른 저열함까지 닮았다.
‘이런 병신들을 믿고 잘될까?’
배준상도 다르진 않았다. 무진 타도만 아니었으면 뭉치고 싶지 않은 조합이다. 실력과 배경은 앞설지 몰라도, 본인들의 처지를 모르고 있었다. 애초에 무진이 만만한 놈이었으면 힘을 합치지도 않았다.
‘개발린 것들이!!’
배준상도 처음에는 무진을 가볍게 여겼었다. 권왕가 소속이긴 해도 일반 제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서열전 이후로는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구설수가 많고, 내력에 문제가 있어도 저 무지막지한 힘은 제어 불능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약이 올랐다. 저딴 놈이 아카데미 내내 설치고 다닐 걸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적운길과 이민용은 칠대가문과 대형 길드의 직계였다. 이 새끼들이 가진 배경과 아카데미 선배들과의 관계를 이용한다면 천지 분간 못 하는 무진을 단죄할 수 있으리라.
“지수만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지.”
“굳이 권왕가와 척을 질 필요는 없고.”
“우리랑 잘되는 편이 낫지.”
“저딴 놈과는 비교할 수 없잖아.”
무진을 대놓고 건드리기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지수, 혜진, 유정 때문이었다. 상원은? 어쨌든 저렇게 같이 몰려다니니 시비조차 걸기가 껄끄러웠다.
배준상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성질 더럽고 자존심만 강해서 어설프게 충고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었다.
“너희들이라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겠지만, 사건을 크게 키우면 손해잖아. 일단은 기회를 만들고, 차분히 준비부터 하자고.”
“네가 정 그렇게 부탁한다면 하는 수 없지.”
배준상은 이 구도가 맘에 들진 않지만, 다행히도 조력자가 있어서 결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내부의 적이었다.
***
무진은 떠오른 상태창을 보고 있었다.
[레벨 : 13]
수업이 끝나고 확인한 레벨이었다. 시련과 보상을 좀 받았다고 레벨업이 미쳤다.
비율에 따른 보상과 침식 공략에 따른 포인트가 있었다.
일단, 포인트는 유정을 표본으로 새로 만들어 낸 정령력에 쏟아부었다. 다른 능력치에 비해서 떨어지는 것 같아서 물량 공세로 나갔다.
배분을 마치고 나자, 문자가 왔다.
단문식의 인명록이었다. 나중에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기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스윽!
불쑥 핸드폰을 노리는 손이 있었다. 무진은 신속하게 핸드폰을 사수했다.
“어떤 년이야?”
“……?”
시련이 연계되었다. 레벨이 10을 넘으니 난이도도 덩달아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