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필벌(1)
-반드시 죽여야 할 놈들이라고?
-그래, 완전 개새끼들이야.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그리 분노하는 거야?
-내 동료를 잡아먹었어.
잡아먹는다는 의미가 은유적 표현이라면 그나마 이해하겠으나, 문자 그대로였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 식인(食人)을 뜻했다.
무진은 지수의 분노에 공감해 주었다. 토테미즘을 숭배하는 원시적 풍습으로 치부하기에는 도가 지나치다.
-미친놈들이구나, 사람을 왜 먹어?
-처음에는 고유 속성을 흡수하려고 먹었을지 모르지만, 이후에는 달랐어.
-그렇게 될 동안 방치하다니, 이해가 안 되는데.
-던전 브레이크기 생기고 침식 에너지가 한곳으로 몰렸을 때 놈들은 선택을 받았어.
-2차 각성?
-맞아, 한순간 남작급에서 백작급으로 올라갔어. 그날 수많은 사람이 죽고, 이후로도 놈들에 의해서 많은 이들이 잡아먹혔어.
악명 높은 식인오마의 탄생 비화였다.
처음 일어난 던전 공명과 침식이 그들에겐 천운이 되었다. 무분별하게 주어진 힘이 얼마나 무책임한지를 보여 주었다. 이후 수많은 이들을 잡아먹으며 능력을 키우고, 속성을 가로챘다.
‘확실히 죽일 놈들이긴 해.’
무진에겐 첫 살인이었다.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연쇄살인범이 아닌 이상 PTSD가 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살인의 후유증으로 평생을 괴로움에 시달리기도 한다던데.
‘딱히.’
덜덜 떨며 토악질을 해도 부족하거늘, 무진은 하체만 덩그러니 남은 사체에도 감흥이 없었다. 의식이 사라진 이상,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체질이려나?’
사람을 죽이고도 덤덤하다. 정신질환인 사이코패스로 오해를 받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하나, 살인으로 인한 흥분, 쾌감, 전율도 없었다. 마땅히 죽어야 할 흉악한 범죄자를 죽였을 뿐이다. 다섯을 죽여 3천을 살렸다면 남는 장사였다.
생명에 대한 잣대를 공과로 나누고, 효율성을 중시했다. 비인간적인 태도긴 한데.
‘감상적인 것보단 낫겠지.’
손을 써야 할 때 망설임은 불필요한 죄악이었다. 본인만 뒈진다면 쏘쏘하나, 모두에게 민폐였다. 하물며 무진은 믿고 맡겨 달라고 했었다. 그러고선 죄책감에 시달린다면 애초에 나서지 말았어야 한다. 하지도 못할 거면서 나대는 것만큼 추한 짓도 없었다.
우웅, 착!
창을 회수했다.
네 마리가 남았다.
한 마리론 감흥이 오지 않으니, 다 죽여 보면 더 정확히 알겠지. 악인 한 마리를 죽이나 만을 죽이나 별반 다를 것 같진 않지만.
헉!
움찔!
고등학교 때부터 붙어 다녔던 절친이 다리만 남았다. 현실을 인식하지도 못한 행복한 죽음이 친구들에겐 섬뜩한 공포를 선사했다.
“……어떻게?”
“네놈! 무슨 짓을 한 거야?”
“……죽었잖아!!”
“개수작을!! 이 비겁한 새끼가!”
워낙 만화 같은 죽음인지라, 온전히 받아들이진 못했다. 더욱이 천운이 닿아 백작급으로 각성한 상태다. 백작급을 일격으로 날려 버릴 헌터는 손에 꼽혔다.
저런 볼품없는 뚱땡이 새끼한테 죽다니, 환상이나 현혹이 아니고선 설득력이 없다. 하필이면 학창 시절 찐따랑 오마주가 되어서인지 현실의 부조화가 심했다.
“현혹 속성이 아니면 환상 계열의 마법이겠지!”
“그것이 아니더라도 분명 쿨타임이 있을 거야!”
“시간 끌지 말고 어서 놈을 죽이자고!”
2차 각성의 흥분에 취해 마약에 중독된 사람처럼 현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버젓이 솟아오른 버섯구름과 허공을 격한 허공섭물조차 허상으로 치부해 버렸다.
씨익!
무진은 달가웠다.
귀찮게 도망치지 않고 달려들어 줬으니, 그 보상으로 불나방들에게 불꽃같은 삶을 선사했다.
후웅!
하늘로 솟구쳐 오른 와류가 창의 흐름과 동화되어 수평선을 완성했다. 측정기로 각도를 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완벽한 선형에 노상진과 전기택의 상하체가 따로 놀았다.
어?
허리 아래가 시원해진 완벽한 하의 실종. 두 번 다시 하의와 만나지 못할 고별 무대가 되었다.
절단 부위를 봉지에 넣어 얼리기엔 상하의 균형이 완벽하다.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사체 복원에 지나지 않는다.
꽈다당, 털썩!
뉴턴의 제일 법칙인 관성에 의해 상체가 바닥을 구르다 엎어졌다. 뒤따르던 두 하체와 멈춰 선 병신 같은 놈들. 광기에 젖었던 눈빛은 어느새 공포로 물들었다.
“……이건 꿈이야!”
“……살려!”
하의 실종은 오래가지 않았다. 붉은 선지와 젓갈에 담근 듯한 창자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며 주변을 어지럽혔다. 받아들이지 못한 현실과 살고 싶은 욕망은 삽시간에 꺼져 갔다. 과다 출혈로 인한 쇼크사였다.
“……잠깐!”
“……멈춰!”
무진은 대화하지 않았다.
‘참, 말들 많네.’
나들이 나온 것도 아니고, 이제 와서 멈추란다고 멈추겠나? 그럴 거면 애초에 기습하지도 않았지.
이런 머저리 같은 새끼들이 후일 흉악으로 불리게 된다니? 세상이 참 어설프다. 인재가 그렇게도 없었나. 헌터 아카데미처럼 빌런 아카데미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처음이란 변명은 안 통한다.
나도 처음이니까.
-무진류 창식아 죽창무쌍.
횡격의 창로(槍路)에서 창극(槍戟)으로 변환되는 연계가 실로 놀라웠다. 하루아침에 이룬 어설픈 창술과는 거리가 멀다. 수백 년의 참오와 대종사의 반열에 들지 않고서는 행하기 어려운 최상승의 창법이었다.
푸욱!
심장을 꿰뚫은 창극이 횡으로 변했다.
탁조환은 중세 시절 드라큘라 백작의 처형식처럼 꼬챙이에 찔린 채 휘둘러졌다. 무지막지한 역발산기개세로 탁조환을 공깃돌처럼 휘둘렀다.
크아아악!
고통이 줄어들기는커녕 심해지며 의식마저 또렷해졌다. 심장이 관통되어 죽어 가는데도, 비명이 터져 나왔다.
허억!
특수 속성인 [그림자 전이]로 간신히 위치를 바꾼 고정택은 식은땀을 흘렸다. 완전히 피하지도 못했다. 워낙 창졸간에 벌어진 참상이라 속성을 쓸 타이밍을 놓쳤다. 그저 살고자 하는 본능에 지나지 않았다.
어?
찰싹!
분명 피했는데?
거센 충격에 고정택은 5m를 튕겨 나가야 했다. 날벼락 같은 충격이라 육신이 고통을 인지할 사이도 없었다.
크어어어억!
뒤늦게 고통이 찾아왔다. 어찌나 아픈지 벌거벗은 몸에 물을 뿌리고 가죽으로 세게 내리친 것 같았다.
“대체 뭘로…… 설마?”
출렁, 출렁!
움직일 때마다 늘어지는 뱃살, 고정택은 아픈 와중에도 이를 갈았다. 창도 아닌 부챗살처럼 퍼진 뱃살에 처맞고 날아간 것이다. 멍하니 있다가 무방비로 맞은 뱃싸대기, 비련의 주인공처럼 분노마저 뒤늦게 찾아왔다.
-무진류 다이어트 훌라후프.
급조한 면이 있긴 하다. 뱃살의 신축성을 활용한 백어택은 미처 계산에 넣지 못했었다. 빡빡한 육체와는 다른 여백의 맛이 있었다.
“멍청하긴.”
어렵게 피했으면 도망갈 궁리나 할 것이지, 이 와중에 분노하고 있었다. 뒈져 버린 놈들을 보고서도,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건가?
“뇌도 망가진 거냐.”
사람을 먹더니, 머리도 돌아 버린 모양이다.
한심하긴 한데,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프로파일러가 아닌 이상, 식인종의 사고 구조까지 분석할 필욘 없잖아.
“……잠깐!”
지적을 해 줘도 정신 못 차리고 병신 같은 소릴 남발했다. 무진은 그대로 나아가 창강을 발출했다.
슈우웅!
푸슥!
머리통은 연기가 되고, 몸뚱이만 남았다. 창강의 초열기가 목 부위를 태우며 출혈 과다는 막았다. 다소 허무한 최후긴 해도, 속전속결이야말로 전투의 미학이었다.
‘흔적이 남으면 곤란하지.’
무진은 죽은 몸뚱이를 한곳으로 모아 강환을 발출했다. 사전에 계획했던 흔적만 남기고 전부 소멸시켜야 한다.
화장하기 전에 지옥 가라고, 명복을 빌어 주었다.
-무진류 창식아 혹성대멸격.
두 가지 초식뿐이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차차 만들어 가면 되는 일이다. 그래도 처음치고는 제법 괜찮은 위력이 나온 것 같았다.
‘쥐새끼도 죽일 겸.’
무진은 지수의 말을 상기했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점이 있었다. 2차 각성으로 백작급에 도달했다곤 하나, 초인에 비하면 하찮았다.
제대로 활개 치고 다니려면 최소 공작급은 되어야 한다. 식인을 통해 속성을 흡입하여 완성할 때까지 정부, 가문, 길드가 손 놓고 있진 않았을 터.
-주시하고 있었다는 거야?
-나는 그렇다고 봐.
-당장의 실력보다 가능성이 중요하다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그때의 일들은 말이 되지 않아. 모두가 한통속이 아닌 이상.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보는.
빌런의 꿈나무들?
의도 자체는 사악한데, 방향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는 인재 양성의 교본이었다. 현재의 성취에만 목매며 미래를 외면한 정부, 길드, 가문에게는 뼈아픈 일침을 가했다.
쩌적!
허공에서 균열이 번지며 이질적인 흐름이 생겨났다. 다급함이 전해졌다. 예상하지 못했던 파괴력으로 인한 계산 착오였다. 발각된 이상 도망쳐야 한다. 공간 왜곡과 달리 고속 이동 시에는 정체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걸렸다, 요놈.”
무진조차 의식하지 않았다면 발견하기 어려웠을 정도로 은밀했다. 그들은 도구를 분류하여 조직과 연결하는 중계자였다.
“……안 돼!”
정체를 드러낸 순간 소멸했다. 짐작한 대로 은신과 왜곡에는 특화되었으나 전투력은 대단치 않았다.
무진의 혹성대멸격은 일격으로 끝나지 않았다. 기경이 지면으로 스며들었다가 솟구쳐 오른다.
꽈아아앙, 후아아아앙!
지구로 떨어진 혜성의 크레이터처럼 반경 수십 미터가 통째로 날아가 버린다.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흙먼지가 회전하는 접시처럼 퍼져 나갔다.
지구 종말의 영화를 보듯. 그래픽 처리를 따로 하지 않아도 얼추 비슷한 파괴력이었다.
‘심력 낭비는 사양할게.’
회귀 전 지수도 중계자를 사로잡았지만, 정보를 얻기는커녕 오히려 손해를 봤다고 했다. 워낙 철두철미한 점조직인 데다가 중계자가 알고 있는 범위는 극도로 한정적이었다.
‘정신 계열 고문도 배워 둘 필요가 있겠어.’
육체 고문은 일가견이 있는 편이나, 중계자는 꼭두각시여서 고통 자체를 못 느꼈다.
어차피 알아내지 못한다면 신속히 끝내는 편이 이로웠다. 능력이 되지 않는데, 두 마리 토끼를 잡다간 전부 놓칠 수 있었다.
그런 아쉬움을 알아챘을까?
[띠링, 던전 공략]
호오!
던전 침식의 보스가 마물이나 마수가 아닌 식인오마였다니, 인풋을 상회할 보상이었다. 차원 균열 시 던전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식인오마를 보스로 인식했다.
던전이 공략이 되자 일대의 흐름으로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했다. 확장되었던 던전 경계가 흐릿해지며, 왜곡되었던 공간이 안정화된다.
스윽!
무진은 입을 벌린 채 굳어 있는 사람을 보았다.
목격자긴 한데, 상관은 없었다.
그보다는.
‘사실대로 말씀드려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