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인류최강 남사친-23화 (24/374)

23. 서열전(4)

형성 시간과 마물의 등급에 따라서 혈정의 가치가 결정되는데, 오우거 혈정은 꽤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되었다. 하나, 이를 정제하는 기술이나 마나컨트롤이 없으면 오히려 독이 된다.

이민용에게는 혈연으로 이어진 혈족술을 타고나 혈정을 온전히 받아들일 능력이 있었다.

‘뭐, 그런 이유만 있는 건 아니지만.’

칠대가문이나 대형 길드의 직계도 아닌, 특정한 스텟치가 높아서 주변의 관심을 받았다. 하찮은 피를 이어받은 녀석에게는 과분한 대접이었다. 피의 계승자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지배자였다.

‘보여 주마, 진정한 혈족의 힘을!!’

이민용은 패배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어떻게 처리를 해야 좋을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과한데.’

이민용의 언행과 투기를 분석해 성향을 읽었다. 서열전이 진행되는 동안 무진은 흐름을 파악하고, 확률을 계산했다.

분석한 대로 대결의 인과를 백분율로 나타내고, 최대한 높였다. 결과적으로 95% 이상의 적중률을 과시했다.

-시작하세요.

대결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무진은 나아가면서 주먹을 내질렀다. 자세를 잡지도 않은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내지르는 권격이었다. 박자를 쪼개고, 없애는 일련의 동작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다.

파아앙!

우웅!

목표물을 맞히지 못한 주먹에서 쇠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사방으로 퍼지는 권압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절대, 이제 막 입학한 신입 생도의 권격이라 할 수 없는 질이 다른 위력이었다.

휘잉!

내지른 후, 허리를 회전하여 이민용을 찾는다. 잡아챘다고 여긴 무진은 왼 주먹을 뻗었다. 스텝이 느리다고 해서, 팔다리가 느리진 않았다. 뻗고, 회수하고, 내지르는 과정 사이에 불필요한 움직임이 없었다. 또한, 파고 들어오는 상대에 대한 대응도 기민했다.

파아앙!

휘리리릭!

무진의 주먹은 연이어 허공을 쳤지만, 누구도 비웃지 못했다. 스쳐도 사망설이 어울리는 권격이었다. 권왕의 패권을 이어받은 것이 분명했다. 내지르기 전이나 후의 완성도 높은 패권이었다.

파앙, 퍼엉!

무진은 연속으로 이어진 권격의 실패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번만 맞으라는, 묻지마식 권격의 향연이었다.

흠.

연무장의 귀빈석에 앉은 이들, 아카데미의 교장과 상급 교관들이다. 교관의 참석이야 만약을 대비한 조처지만, 교장은 오늘만 자리했었다.

아카데미 교장 전태원은 젊은 시절 풍신(風神)으로 불릴 만큼 대단한 헌터였다. 부상으로 일선에서 물러나 교장이 되었지만, 여전히 위상이 높았다.

“어떤가?”

“패권의 정석입니다. 움직임도 나쁘지 않고, 배우기는 제대로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민용의 속도를 잡기에는 부족해 보입니다.”

“그래서 이민용이 이길 것 같은가?”

“확신하기는 어려워도, 저 속도를 잡지 못하면 결국 당하겠지요. 다만, 내구력과 체력이 기대 이상이라면 예상과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군.”

다분히 객관적이고도, 논리적인 평가였다. 무진의 패권이 완성도가 높기는 하나, 이민용의 특출 난 속도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평균 스텟이 높아도 승리하지 못하는 연유와 같았다. 한 가지에 특화된 경우가 오히려 유리했었다.

무진도 힘 스텟만큼은 현역의 헌터를 가뿐히 상회하지만, 이민용과의 상성이 좋지 않았다. 힘이 아무리 강해도 맞히지 못하면 쓸모가 없듯, 이민용의 블러드댄스와 블러드피어스의 조합이 막강했다.

휘리리리릭!

피에 젖은 나비의 춤이 시선을 어지럽히고, 빈틈을 공략하는 손톱이 붉은 선혈처럼 예리했다.

퍼엉!

쇄액, 최아아악!

권격이 빗나갈 때마다 이민용의 그림자가 갈기갈기 찢어져 나갔다. 한 방이라도 스치면 저세상으로 직행할 저승사자의 주먹질이었다. 그걸 간발의 차이로 피해 낸 후 날카로운 손톱으로 무진을 노렸다.

흐흐흐흐!

무진은 공격을 당하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지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힘과 내구력을 활용한 무식한 전술처럼 보였다.

그러나 무진의 왼손은 수면제에 오른손은 황천길이었다. 이걸 피하고 반격을 하는 이민용의 간담이 대단했다. 막상 속도를 믿고 피하려고 해도, 무진의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경험하면 스텝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후우웅, 후우웅!

스텝이 다소 느릴 뿐, 무진의 권격도 굉장히 빠른 축에 속했다. 속도만 믿고 덤볐다가는 붕붕! 휘두른 주먹에 스치는 순간 호랑나비 스텝행이었다.

촤아아악!

쩌저저적!

창과 방패의 물고 물리는, 전진과 백스텝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었다. 무진은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고, 이민용은 투우사처럼 피하며 날카로운 카운터를 먹였다.

와~~~!

함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이때까지의 대결도 대단했지만, 차원이 달랐다.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것 같으나, 경각의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흘렀다.

꿀꺽!

사방을 조여 오는 압박감.

누가 이길지 모르는 긴장감이 교차하는데도 이민용은 작금의 스릴을 즐겼다. 확실히 전투 감각과 배짱이 남달랐다.

‘좋아, 아주 좋아!’

이민용의 자신감은 압도적인 스피드와 혈족술을 기반으로 한 블러드스피어에 있었다. 제아무리 단단한 신체를 지녔어도, 블러드스피어를 무력화할 순 없다. 결국, 피를 흘리다 지쳐서 제풀에 쓰러질 것이다.

‘재밌어, 크크크크!’

이민용은 승리를 자신했다. 그렇기때문에 이 대결이 재미가 있었다. 하등한 놈들이 끝까지 발악하다 절망에 빠지는 순간을 보고 싶었다.

‘네놈도 결국 똑같은…… 어?’

각성하기 전 대다수 생도는 전투 경험이 희박했다. 칠대가문이나 대형 길드에 속하지 않으면 개인 훈련으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실제 비무를 하게 되면 자기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했다. 개인 훈련과 비무는 엄연히 차원이 달랐다. 결국, 자기 뜻대로 되지 못했을 때의 표정은 대동소이했다.

그에 반해 무진은 당황하기는커녕 덤덤하다. 차라리 감정을 드러냈다면 또 모를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자기의 길을 관철하고 있었다.

모기가 물었나?

빠득!

공포에 질리지 않았어도 화를 내거나 욕을 해야 했다. 그 순간 쾌감과 전율이 아닌 짜증이 치밀었다. 마치 자신을 비웃고 있는 것 같아서 화를 돋웠다.

‘네놈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야 말겠다!’

적당한 선에서 끝을 내려고 했던 이민용의 얼굴에 악의가 담겼다. 반드시 그리하고 말겠다는 악의가 투기와 결합하면서 섬뜩한 기세를 발산했다.

“늦었어.”

이민용의 악의에도 무진은 되레 웃었다. 즐기는 것도 좋지만, 늦은 사태 파악의 대가는 가볍지 않았다.

어?

그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달은 이민용이었다. 비무대의 끝에 발이 닿아 있었다. 외부로 파문이 번지지 않도록 투명한 결계가 쳐져 있으나, 비무대에서 발이 떨어지는 순간 장외패였다.

쐐애액!

비무대의 코너에 몰린 이민용은 빠져나가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블러드피어스를 연속으로 사용했다. 최대한 눈을 비롯한 급소를 노렸다.

파팟!

무진은 눈을 찌르는 블러드피어스는 쳐 내고, 나머지 공격은 몸으로 때웠다. 그러자 공간을 완전히 장악했다.

뻐어어어억!

흐억!

어퍼와 훅의 중간 지점에서 짧게 끊어치는 무진의 권격에 옆구리를 처맞은 이민용은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다리에 힘이 빠졌다.

헙!

그 순간 같이 숨 막혀하는 유정이었다. 맞아 본 사람만이 아는 고통으로 동질감을 느꼈다.

질질질!

다물어지지 않는 이민용의 입에서 침이 흘러내렸다. 맞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작금의 상황을 용납하지 못했다.

하나, 반격은 하책이었다.

백 번의 타격에도, 무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역으로 완벽한 공간을 내주면서 치명타를 입었다.

혈족술, 블러드도핑!

일순 혈류의 흐름을 빠르게 하여 모든 능력치를 극단적으로 끌어 올렸다. 힘이 빠져 버린 상태지만, 이 위기만 극복하면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

슈웅!

어?

비기를 꺼낸 이상 이민용은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한데, 예상과는 달랐다. 처음보다 수월하게 막히고 있었다. 어디로 움직여도 무진이 막아섰다.

“……어째서?”

“익숙해졌으니까.”

기회를 잡은 무진은 속도의 강약을 섬세하게 조절했다. 이민용이 본인의 속도에 취하도록 연속적으로 기회를 내어 주었다. 그 결과 무진의 권격과 속도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리고 내가 좀 빨라졌지.”

“……이 개새끼가!”

이민용은 무진의 한계 속도를 재단했지만, 실제로는 역으로 제어당한 것이다. 원격 시스템으로 휴대폰을 백도어한 것처럼.

주도권을 잡기는커녕,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자 이민용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퍼억, 뻐어어억!

휘청!

분노하여 냉정함을 잃은 이민용을 무진은 철두철미하게 요리해 나갔다. 화려하고, 현란했던 이민용의 움직임은 무진이 펼친 침묵의 늪에 가라앉고 있었다.

크하하하하하하!

비무대 밖에서 유정이 큰 소리로 웃었다. 솔직히 대결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자신만만하게 나서기에 다른 수가 있나 싶었는데, 자신과 똑같았다.

뚝!

그러다 유정은 깨달았다. 자신도 저 늪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평생 내기에 발목이 잡힐 사나운 팔자였다.

‘얘가 미쳤나?’

지수는 별안간 미친 듯이 웃는 유정이 제정신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우울해하는 것으로 봐서 조울증 말기였다.

‘좀 적당히 하지!’

얼마나 숨이 막혔으면 얘가 정신 줄을 놨겠냐고! 더욱이 희생자가 늘어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퍼어어억!

철퍼덕

진의 일격이 이민용의 턱을 날리면서 끝이 났다. 악을 쓰며 버티지만, 몸이 따라 주지 못했다.

풍 맞은 개처럼 바르르! 떠는 이민용의 상태가 위험해 보였다. 개기다가 한 대 더 맞고 기절했다.

-강무진 승!

허!

한동안 조용해졌다.

와아아아아아아!

둑이 무너지듯 환호성이 폭발했다. 동시에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지며 결과를 보내는 기자들도 바빠졌다. 언론플레이와 권왕가의 이상한 저의로 무진에 대한 평가가 낮아졌지만, 이번 승리로 예상을 뒤집었다. 혈제의 아들을 이겼다는 사실만으로 무진은 탑10까지 가능해졌다.

“저런 식으로도 이길 수 있구나!”

“속도는 이민용이 훨씬 빠르지 않았어!”

“손가락에서 나오는 붉은 기운은 또 어떻고!”

“그래도 한 방이었네.”

“한 방을 날릴 때까지 보통이 아니었어!”

“그렇게 당했는데, 내구력 쩌네!”

힘, 체력, 내구력으로 스피드를 찍어 눌렀다는 평가였다. 반면 교장 이하 상급 교관, 헌터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유인당했군.”

“내구력보다 전투를 읽는 안목과 장악력이 놀랍군요.”

“또래에선 적수가 없겠어.”

“하지만 그 점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설령 그렇다 한들, 버릴 순 없었겠지.”

현재의 전투 능력으론 무진을 이길 녀석이 다섯을 넘지 않았다. 그것도 가능성일 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장담하지 못했다. 하지만 장래성을 두고 보면 무진보다 패배한 이민용이 나았다.

특히 무진의 내력이 걸렸다.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긴 하나, 특출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신력과 결합하여 최적의 조합을 보여 주었다. 적은 공력을 효율적으로 극대화하니 생도들로선 상대하기가 버거웠다.

더욱이 전투에서 중요한 관찰, 직관, 통찰, 유인을 완벽히 갖추었다. 경험이라도 많았으면 모를까? 따지고 보면 노력형이라기보단, 천재성을 갖추었다.

물론, 저 육체를 완성한 노력을 폄하하진 않았다. 피나는 훈련을 했을 것이다.

“아카데미 내내 최상위에 있을 테지.”

“홍보용으론 딱이겠군요.”

아카데미는 장래성 있는 헌터를 양성하기 위한 훈련소지만, 초창기와 달리 대형 가문과 길드의 명성을 홍보하기 위한 장소로 전락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무진은 아카데미 내내 손가락 안에 꼽힐 실력이었다. 그만큼 무진은 무인으로서 완성도가 높았다.

‘다음에는 더 절망적이겠군.’

성좌의 선택을 받기 전까지 무진을 이길 생도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상대를 관찰하여 분석하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대결할 때마다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하물며 저 압도적인 힘을 받치는 내구력도 현장이 아니라면 상처조차 내기 힘들었다.

“성좌의 선택만 잘 받으면 공작급도 노려 볼 만하겠어.”

“변덕이 심한 성좌들이 아닙니까.”

“원하는 대로 성좌의 선택을 받기란 어렵습니다.”

“또 모르지 않나.”

교관들은 무진의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한계가 뚜렷하다고 판단했다.

딱 아카데미용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