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조금 난폭해도 되겠지(2)
의사를 타진하는 무진의 포용적인 발상에도 공포에 젖은 유지철은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목이 잡혀 힘을 쓰기가 어려워졌다. 특수 속성도 붙잡힌 상태에선 무용지물이었다.
‘……비겁한 새끼!’
유지철은 무조건 억울했다. 지수가 없는 틈에 정신적, 육체적 교육을 하려고 했거늘, 되레 무진의 비겁한 수작에 걸려 옴짝달싹 못 했다.
툭툭!
처억!
무진은 유지철의 견정혈을 건드렸다. 그러자 어깨관절이 맥없이 빠지며 추욱! 늘어졌다.
이젠 발버둥은커녕 힘조차 들어가지 않았다.
툭!
커어어억!
그 상태에서 무진은 유지철의 단전을 두드렸다.
깨지거나 부서지진 않았지만, 내력이 역류하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입조차 뻥끗하지 못했던 유지철이 비명을 지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미친놈!!”
터져 나오는 비명엔 공포가 실려 있었다. 상상도 못 할 현실과 마주하자 유지철은 경악에 몸서리쳤다.
단순한 겁박인 줄 알았는데, 무인의 생명인 단전을 두들겼다. 힘이 조금이라도 더 강했다면 두 번 다시 공력을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아까워?”
“……뭐?”
“어차피 뒈지면 공력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왜, 공력이라도 남기고 죽고 싶어?”
“……날 죽이면 네가 무사할 것 같아!”
“인벤토리가 있잖아.”
“……그런다고 숨길 순 없어!”
“아, 몰라! 난 귀찮은 건 딱 질색이야. 될 대로 되라지.”
무진은 단순한 컨셉으로 밀고 나갔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겠다는 무덤덤한 발상에 유지철은 죽음의 공포를 직감했다. 괄약근과 전립선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죽는다고? ……싫어!”
무진보다 두 살이 많다고 해도, 스무 살도 안 된 애송이였다.
거드름을 피우며 남들보다 우월한 척해 봤자 까놓고 보면 어리광 부리는 애새끼들과 다름없었다. 혼자 결정하고, 책임지지 못하는 이상 애는 어른이 되지 못한다.
질질질!
하의가 축축이 젖어 오는 것조차 유지철은 못 느꼈다. 그만큼 무진이 주는 공포가 상당했다. 살면서 겪어 보지 못했던 감정이기에 추태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질질 짜지 마. 그런 모습 보이면 더 죽이고 싶잖아. 네놈은 후배한테 목숨이나 구걸하는 그런 사람이야?”
“……살려 줘, 제발!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
무진이 구속을 풀었음에도 유지철은 혼이 나간 듯 빌고 또 빌었다. 살고 싶다는 인간적인 본능이 정신과 육체를 지배했다.
바들바들!
평소 쿨하게 살고 싶은 애송이들의 바람이 얼마나 가당치도 않은지를 알 수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한 점의 티끌도 없이 살아가고 싶으나, 어디 그게 쉽나.
인생이란 원래 이불킥의 연속이었다.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낯부끄러움을 느껴야 제맛이다.
“진심이야?”
“진심이야, 믿어…… 커억!”
“이런 실수. 다시 말해 봐.”
“이 개새…… 실수야. 절대 오늘과 같은 일은 없을 거야.”
실수인 척 무진은 유지철의 단전을 건드렸다. 그럴 때마다 유지철은 학을 떼듯 발작을 일으켰다. 죽지 않는다고 해도, 단전을 잃으면 무인으로서 끝이었다.
찰칵, 찰칵!
빌고 또 빌었던 유지철은 핸드폰 촬영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앞에서 무진이 덤덤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무슨 짓을?”
“괜찮아, 동영상이야.”
동영상 중간중간에 기념할 만한 사진을 찍었을 뿐, 다른 의도가 너무 많았다.
꽈악!
크윽!
무진은 유지철의 핸드폰 잠금을 얼굴을 잡고 푼 후, 전화번호를 찾았다. 전화번호가 상당히 많았다. 생각보다 인싸라서 성질을 돋운다.
“……설마?”
“우린 이제 비밀 친구다. 알지?”
“……?”
“대답?”
“……알아!”
세계의 친구들과 오늘 일을 공유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철판을 깔아도 되었다. 그러나 유지철의 평소 쿨찐따 컨셉을 고려하면 반항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관종에겐 이보다 무서운 협박은 드물었다.
“훈련하다 보면 실례도 하고 그러잖아?”
“……그래!”
“사실 오늘 일 말해도 상관은 없어.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내가 아닐 테니까.”
“……말하지 않아! 절대!”
“전화하면 받고.”
“……받을게.”
원만한 합의를 이뤘다.
무진은 옷매무새를 추슬러 주면서 빠졌던 관절을 친절하게 끼워 주었다. 손을 대자 바르르! 떠는 유지철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강한 척해도, 한계가 뚜렷했다.
그렇다고 탓하진 않았다.
인간은 고문과 죽음 앞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긴 어렵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가 대단한 것이다.
“잘 자.”
“그래…… 응?”
별안간 목 뒤를 처맞은 유지철은 의식을 부여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무의미했다.
나가려던 무진은.
“아, 결계.”
깨우고 다시 기절시켜야 하나?
움찔!
친군데 그래도 되겠지.
***
검신류 육검 육천검우(六天劍雨).
삼천(三天)을 완성한 검극이 공간을 뒤덮는다. 피할 공간을 집어삼키는 검이 빗방울처럼 쏟아져 내렸다.
슈웅!
그 순간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기둥은 수천 년을 웅크렸던 활화산처럼 맹렬히 치솟아 오른다.
쩌저엉!
쇠가 깨지는 파공음이 천지 사방을 울렸다. 사방으로 파문이 번지면서 검역이 유리잔처럼 부서져 내렸다.
차악, 비틀!
바닥에 착지했지만, 균형을 잃었다. 검을 받침대 삼지 않았다면 꼴사납게 넘어졌을 것이다.
하나, 재차 검을 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녀의 기반인 검천공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라, 이 이상의 겨룸은 서열전에 지장을 주었다.
천혜진은 답을 내려야 했다.
“졌어.”
“운이 좋았어.”
지수의 겸허한 평가에도 혜진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기엔 3전 3패였다. 입학시험 이후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동 나이에서 패배한 경험이 없었던 혜진에게는 충격적인 현실이었다. 더욱이 전력 대결임에도 둘 간의 차이가 극명했다.
기식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지수와 달리 혜진은 기복이 거칠었다. 비틀거리는 신형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어떻게?”
“잘.”
지수는 친절하지 않았다. 굳이 그럴 의무도 없을뿐더러 대련은 혜진의 제안이었다. 검을 향한 순수한 열망은 가상하나, 심득을 간단히 내어 주진 않는다. 같은 칠대가문일지라도 경쟁 상대일 뿐, 완벽한 아군이라고 하긴 힘들었다.
‘너도 고생을 좀 해 봐야지.’
혜진에게 한 방 먹인 지수는 고소를 지었다.
회귀 전 지수는 혜진과의 대련을 수차례나 했었고, 간발의 차이로 졌었다. 돌이켜 보니 확실히 봐주고 있었다. 제 딴에는 배려일 수도 있으나, 사람 마음이 참 간사했다.
‘아는 배려는 배려가 아닌 것 같아.’
몰랐을 때는 그저 억울했는데, 알고 나니 화가 났다. 무인은 전력으로 겨루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자신은 전력인데, 상대는 봐주고 있다면 가지고 논다고 여기겠지. 그걸 용납할 무인은 많지 않았다. 혜진의 격정은 지수가 익히 겪어 봤던 일이었다.
‘어쩌겠어, 억울하면 너도 갔다가 돌아와.’
지수는 승자로서 이 시간을 만끽했다.
근래에 자존감이 꽤 훼손당했다. 적어도 동년배에선 적수가 없을 줄 알았는데, 무진과 겨루고 나선 패배의 연속이었다. 회귀해도 안 되는 년은, 끝까지 안 되는 건지 자괴감이 들었었다. 혜진을 통해 패배를 잊고, 승리의 만족감을 맘껏 고양했다.
에헴.
그래도 겸허하긴 해야겠지.
지수가 자존감에 취해 있는 사이 다른 쪽에선 경악으로 휘둥그레진 눈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
유정은 지수의 전화를 받고 나올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진 못했었다. 둘이 대련을 한다고 하기에 적당한 선에서 끝낼 줄 알았다.
웬걸, 죽지 못해 사는 인생들처럼 사생결단의 결전을 펼쳤다. 그리고 결과가 나왔을 땐 아연실색했다. 칠대가문 내에서도 도도한 얼음공주로 소문이 자자한 검화 천혜진이 패하고 말았다.
‘쟤도 저런 표정을 지을 줄 아네.’
다른 이들이라면 모를까, 넋을 놓은 혜진은 색달랐다. 그러나 혜진이 약해서 졌다고 하기엔 충분히 경악스러운 실력을 보유했다. 솔직히 또래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같은 칠대세가인데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다르다.
‘권왕가의 공주님이 아니라 비밀 병기 아냐?’
유정은 아카데미에서 나름 순위권 안에 들 자신이 있었다. 정령술이 아니더라도, 신체적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월등히 뛰어났으니 자신할 만하잖아.
‘비슷하긴 어디가?’
직접 맞상대하지 않고 제3자의 눈으로 봤으니까 희미하게나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마저도 전력인지 의구심이 들 만큼, 지수는 남다른 무위였다.
휙!
지수가 돌아보자, 유정은 살짝 움츠러들었다.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굶주린 맹수와 마주친 기분이다. 환하게 웃으니까 더욱 스산했다. 묘하게도 그 자식과 비슷해 염장을 긁어 댔다.
“유정이도 해야지. 너무 우리만 했네.”
“나는 괜찮은데.”
“내가 불편해서 그래.”
“전혀 불편해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네 맘 다 알아.”
“……잠깐!”
‘알긴 뭘 알아’를 시전조차 못 한 채 유정은 지수의 주먹을 마주해야 했다.
정령술을 기반한 정령투법을 무의식적으로 펼쳤다. 주인의 위기를 느낀 바람의 정령력이 스며들며 운신을 가볍게 했다.
“와, 빠르다.”
“……그런 말은 안 맞고 나서…… 까악!”
지수의 주먹은 유정의 복부를 두드리고, 다음 목적지를 노리고 있었다. 황급히 돌아서지 않았으면 고스란히 타격점을 완성했을 것이다.
“와, 이걸 피해.”
“……못 피했다고!”
칭찬하면 뭐 하냐고? 계속 처맞고 있는데.
피하는 족족 유도미사일에 걸린 듯 주먹이 따라붙었다. 게다가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모호하다. 맞았지만, 피한 것도 맞기 때문이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도 아니고.
‘어째서 자꾸 맞는 거야?’
다른 건 몰라도 회피력은 유정도 자신이 있었다. 정령력의 원활한 사용을 위해 만들어진 정령투법은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를 활용한다. 따라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정령투법을 익히면 육신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
‘안 통해?’
정령투법의 절대회피가 만능이 아님을 실감하는 유정이었다. 차라리 압도적인 무위를 보였다면 이해라도 할 텐데.
지수는 절기를 선보이지 않았다. 기본 중의 기본으로만 상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복장이 터진다.
퍽, 퍽!
뇌리에서 번갯불이 지나가고 나서야 유정은 겨우 알아챘다.
의식과 무의식의 수까지 읽히고 있다는 걸.
어떻게?
“조건반사가 만능은 아냐.”
“그게 무슨?”
“내가 이쪽으로 가겠다고 했잖아.”
“잠깐, 그 말은 내가 유도당했다는 거야?”
“정령투법의 단점이긴 한데,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네 단점이라고 봐야겠지. 궁극의 자연체에 이르렀으면 내 주먹이 닿지도 않았을 테니까.”
“……아!”
정령투법의 극의는 기술의 완성도보다 육체를 얼마나 더 정령체와 동화를 이루느냐에 달려 있었다. 정령의 기반은 위대한 자연을 모태로 할 테니, 궁극의 자연체야말로 정령투법의 극의였다.
“정령투법을 완성하고 싶지?”
“그걸 말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라니, 하고 있잖아.”
“……뭐?”
자연체든, 조건반사든 익숙해지려면 처맞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정령가가 근래에 들어 자연체에 들지 못하는 연유였다. 자신도 모르게 극도의 회피 수단을 얻게 되니, 자연스럽게 맞는 걸 두려워하게 되었다.
까아아아악!
유정의 찢어지는 비명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가련하고, 또 가련한지고.
어쨌든 지수의 주먹질은 멈추지 않았다.
‘정령가는 이게 좋아.’
맞는 걸 싫어하면서, 또 회복력이 뛰어났다.
언밸런스한 스텟이 아닐 수 없었다.
지수로선 맘껏 두들길 수 있는 샌드백…… 좋은 동료가 생겼다. 이래서 무진이가 주먹을 쓰나?
‘그러게 상도의는 지켜야지.’
예로부터 임자 있는 사람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물론, 동료로서의 마음가짐일 뿐이다.
본녀는 유치하게 시기나 질투를 하지 않는다.
털썩!
한참을 맞다가 유정은 기절해 버렸다.
“고거 맞았다고 기절하기는.”
몸은 여전히 팔딱팔딱 반응하고 있었다. 기절한 연유는 유정의 나약한 정신이 버티지 못해서 벌어진 사고였다.
다만, 나약하다고 하기엔 지수의 주먹이 청양고추 100배는 되었다. 게다가 악의가 없다고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후련한 듯한 지수의 표정이 진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러다 지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우웅!
한동안 멍해 있었던 혜진은 대결을 복기하다가 명상에 젖어 들었다. 대오각성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련을 통해 소성을 얻었다. 패배를 딛고 일어서는 신성다운 모습이었다.
부글부글!
오늘은 깨달음을 줄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혜진은 스스로 무공을 높이고 있었다.
지수는 갈등했다.
자고로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가 된다는 학계의 고명한 정석이 있었다. 남자도 대머리면 스트레스를 받는데, 여자는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혜진이의 모발이 걱정되었다.
그때.
불쑥!
그림자 하나가 결계를 뚫고 들어왔다. 원래 남의 결계는 들어오기 어렵지만, 법칙의 열쇠를 나누면 예외적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지수가 결계의 법칙을 공유하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너답지 않게 명분에 의존하는 거 아냐?”
“무슨 소리야?”
“배 아프잖아.”
“……안 아프거든.”
“내가 보기엔 거의 설싼데.”
“더럽게!”
비유를 해도 꼭!
젠장, 찰떡이잖아.
“떡 먹을래?”
“닥쳐!”
화장실에서 우아하게 스테이크 썰 놈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