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수제자(1)
소문이 번지긴 했어도, 이슈가 오래가진 않았다. 다른 능력치가 특출 나지 않은 데다가 이어지는 시험에서 심심치 않게 슈퍼루키가 등장하면서 가려졌다.
근래에 들어 힘캐는 대중의 시선을 끌지 못했었다. 워낙 다양한 속성들이 나왔고, 힘만 가지고는 현장에 적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대마물 사냥을 위한 전위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대인과 빌런에게는 오히려 사냥당하기 쉬웠다.
그렇다고 가능성을 무시하진 않았다. 일정 수준의 공력과 정신 방어만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쓰임새에 따라서 잠재력은 무궁무진했다.
하나, 사람들은 자극적인 이슈에 민감하고, 화려한 속성에 눈이 갔다. 대형 길드와 칠대가문의 대대적인 여론플레이와 시험 기간에 터진 a급 던전도 한몫했다.
말 한번 잘못했다 보름치의 가사 재정에 타격을 받는 중이다. 이 정도면 됐겠지, 싶었는데 플랜a를 완벽히 빗나갔다. 알아 갈수록 블랙홀 같은 녀석이었다.
하는 수 없이 플랜b로 방향을 틀었다.
우걱, 우걱!
앙, 사르르!
복스럽게 먹어서 귀엽기는 한데, 지난번과 달라서 의외였다. 게다가 말할 타이밍을 주지 않았다. 복어처럼 부풀어 오른 볼때기와 기름진 입술, 시선을 떼지 못하는 욕망의 눈빛에 압도되었다.
지수의 탐욕적인 먹방을 영상에 담고 싶으나, 허락 없이 촬영, 제작은 하지 않는다. 누구나 그렇듯,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었다.
후르륵, 후르륵!
아버지는 품위 유지를 위해 국물과 밥으로 연명하고 계셨다. 외적인 이미지를 중시하는 타입이시라, 평소의 게걸스러움을 볼 순 없었다.
단, 요리가 비어 갈 때마다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무진은 평소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솜씨를 발휘했었다.
아!
그제야 실태를 깨달은 지수는 부끄러움이 밀려왔지만, 때늦은 후회였다. 젓가락은 여전히 돼지갈비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보는 양념의 맛에 정신을 못 차렸었다.
“죄송해요. 제가 좀 흉했죠?”
“흉하긴, 복스럽고 좋기만 한데. 부담 갖지 말고 어서 먹어.”
“잘 먹겠습니다. 아버님!”
“생각나면 언제든지 찾아오렴.”
무진은 아버지와 지수의 자연스러운 대화에 흐뭇함보다는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정작 요리한 사람은 가만있는데, 생색은 아버지가 내고 있었다.
더욱이 지수가 푸드파이터일 줄은 몰랐었다. 혹시나 해서 요리를 더 해 놓지 않았다면 흐름이 끊겼을 것이다.
‘잘 먹네.’
‘원래 잘 먹었어.’
‘그럼 그때는?’
‘누구 땜에 속이 안 좋았거든.’
무진은 전음을 사용했다.
입에 한껏 담고 있어서 지수와 말로 하기는 어려웠다. 밥상 예절을 준수하기 위해선 전음이 필수였다.
‘부자면서 쪼잔하네.’
‘그것도 정도껏 처먹어야지.’
‘채식주의인 줄 알았지, 나는.’
‘채식주의는 개뿔!!’
무진도 유정의 식성에는 제법 놀랐었다. 순한 양인 줄 알았는데 굶주린 맹수였다. 음식값으로 300만 원이 나왔으니, 지수의 퉁명스러움도 이해는 되었다.
유정은 토마호크 갈릭버터 스테이크 킬러였는데, 지수의 눈에서 토마호크 미사일이 날아오는 줄 알았었다. 순간 집에다 사드를 배치해야 하나 고민했었다.
‘그렇다고 일주일 치 보릿고개는 너무하잖아?’
‘왜, 일사 후퇴라도 시켜 줄까?’
‘후퇴는 나중에 하고, 맛있지?’
‘뭔 소리야?’
‘맛있잖아.’
‘아니거든.’
‘다음엔 국물도 없어.’
‘조금.’
채신을 지켜야 했거늘, 지수의 입맛은 정직했다. 얄밉기는 해도 무진의 요리는 천하일미였다. 고등학생인 주제에 특급 요리사 자격증이라도 땄는지, 원.
메인 요리는 둘째 치고, 반찬 하나하나에 들어간 정성이 실로 놀라웠다. 특히 배추김치의 맛이 놀라웠다. 매운데도 단맛이 나는 질리지 않는 신맛이었다.
식탁에 있는 요리 전부 마약처럼, 식욕이 없다가도 생길 판이었다. 한편으로 지나치게 압도적인 요리 솜씨에 위화감이 들었다.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순영이도 좋아하고, 독거 아줌마도 좋아하던데.’
‘내가 처음이 아니었어?’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싸늘하다.
무진은 급히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갔다. 별거 아닌 일로 치부하기에는 지수가 담아 둔 것 같았다.
‘처음이 뭐가 중요하다고.’
어떤 일이든 마지막이 중요했다. 초심이라면 또 모를까. 매번 사소한 일로 날을 세우면 정신 건강에 좋지 않았다.
“무진류 특제 초코아이스크림이야.”
“됐거든.”
“아이스크림은 처음인데.”
“성의를 봐서 맛만 볼게.”
뻔뻔하게도 자기 이름을 잘도 갖다 붙이고 있었다. 진짜로 맛만 보고 거들떠보지 않으려고 했다.
사르르!
아~~~!
맛있다, 젠장!
멈춰야 하는데, 손과 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입안에 들어갈 때마다 없어지는데, 혓바닥을 통해 전두엽을 심하게 자극했다.
차고, 달고, 당긴다.
씨익!
무진이 미소를 짓자 지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음식 남기면 벌 받아.”
“누가 뭐래?”
양심에 찔린 지수는 패배를 인정했다. 무진과 가까워질수록 그간의 모진 고생이 허무해졌다. 겨우 고딩에게 패배감을 맛보려고 돌아오지는 않았다. 이대로라면 시류를 주도하기는커녕 무진에게 끌려다닐 텐데.
“아버님, 아카데미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책임지고 무진이를 무사히 졸업시키겠어요.”
“지수가 있어서 아주 든든하구나. 부탁하마.”
지수는 타깃을 변경하여 무진의 아버지를 공략하기로 했다. 무진은 날 때부터 음흉한 녀석이라, 도무지 비집고 들어갈 구석이 없었다. 아버님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것 같으니, 우군으로 포섭할 필요가 있었다.
‘쓸데없는 짓을.’
무진은 지수의 요망한 개수작에 코웃음을 쳤다.
자고로 팔은 안으로 굽게 되었다.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따위 수작에 넘어갈까? 역지사지로 지수 부모님이 무진을 위해서 딸을 버리겠나. 자고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다.
“하하하, 우리 지수밖에 없구나.”
“저도 아버님뿐이에요.”
……아닌가?
아버지의 생소한 찐 미소에 무진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게다가 고딩 주제에 누구보고 아버님이래! 잘하면 고백도 안 하고, 시집오겠어!
하나, 아버지에 대한 나의 신뢰는…… 굳건하다.
“아버지, 조만간 만년삼왕을 드실 수 있을 겁니다.”
“보채기는, 어련히 지수가 챙겨 주겠냐.”
무진의 날카로운 카운터에 지수는 휘청거렸다.
아버지는 그저 사람 좋은 미소만 짓고 있으면 된다. 지수로선 빠져나가지 못할 외통수였다. 여기서 안 된다고 하면 지금껏 아버지와 쌓은 신뢰가 박살 나기 때문이다.
하아아.
패배를 인지한 지수는 이쯤에서 물러섰다. 한마디만 더 하면 만년삼왕 다음에 뭐가 나올지 예측하기 힘들었다.
지수는 초코아이스크림 다섯 통으로 패배의 쓴맛을 달랬다.
“배 안 아프냐?”
“나는 아직도 배가 고파.”
무진은 이겼음에도 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이스크림이 보기와 달리 최상의 맛을 내기가 수월치 않았다.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거실에서 TV라도 보고 있으라고 했더니 방을 구경하겠단다.
칫!
하나만 걸리기를 바랐거늘.
지수가 그리던 남자의 방과는 거리가 멀었다.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방 안에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았다. 지나치게 깨끗한 건 둘째 치고, 자로 잰 듯한 구조는 숨 막히게 했다. 인간미라고는 보이지 않는 반듯함이었다.
어!
순백의 벽지 한쪽에 낙서가 있었다.
-무진 ♡ 순영
해 본 적 없었던 지수의 급발작은 무진의 만류에 막히고 말았다. 절대 해 보지 못해서, 억울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고 항변했다.
“왜 그러는데?”
“낙서는 지워야지.”
“유성이야.”
“수정팬 있잖아.”
“더 더러워져.”
결단코 궁금하지 않았지만, 순영이는 이제 막 열두 살이었다. 그러고 보면 유독 무진의 주변에 여자들이 많았다.
한창 수련을 해도 부족할 시기였다. 무진의 건전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정리가 필요했다. 누차 천명(闡明)하지만, 오롯이 무진의 장래를 위해서다.
“유정이는 내가 알아서 할게.”
“그건 좀 곤란한데.”
“어째서?”
“정령술에 관심이 생겼거든.”
“잘한다 잘한다 했더니, 배가 불렀구나! 지금은 무공만 파도 부족할 시기라고!”
“노력은 해봐야지.”
무진은 굳이 선택의 폭을 좁히지 않았다. 5원소 계열 정령이라면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적합하고, 무공과 정령의 융합도 고려해 볼 여지가 있었다.
“헛수고야, 정령은 친화력을 타고나지 않으면 계약 자체가 불가능해. 둘 다 잡으려다 둘 다 잃는 수가 있어.”
“꼭 그렇지도 않을걸.”
무진은 며칠간 연구의 성과를 보여 주기로 했다. 시험이 끝나고 마냥 놀고만 있진 않았다. 유정의 정령력을 복기하며, 특이점을 찾아냈다.
휘잉!
살랑거리는 바람이 불었다.
어?
바람의 기운을 감지한 지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방 안은 창문조차 열지 않아 바람이 불지 않는다. 공력을 이용한 기류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예전에 경험해 봤기에 부정하지 못했다.
“……이런 미친!”
분명한 정령력이었다.
그래서 더 모르겠다. 다른 능력과 달리 정령력은 핏줄을 타고나지 않으면 극히 힘들었다. 희박한 가능성이 있기는 해도, 정령력이 하루아침에 생기진 않았다. 정령사의 경우 어릴 때부터 정령을 다룰 자질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그럴 리가.”
“그러면 더 말이 안 되잖아.”
“놀라기는, 아직 계약할 정돈 아냐.”
처음부터 정령력을 느꼈다면 이해라도 하지, 유정이를 만나고부터 알게 됐다는 소리다. 듣고서도 믿을 수가 없는지, 지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의식적으로 무진의 뺨을 꼬집어 보려고 했지만, 허공질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유정이에게서 다른 애들과 다른 기운이 느껴지더라고. 전력을 연구해 볼 겸 붙어 다녔지. 이제 막 각성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통제가 완전하진 않았어.”
“완전하지 않든 말든 보통은 모른다고, 그런 거!”
“내가 보통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열세 살에 각성하고, 독학으로 무공을 익힌 천재의 범주마저 뛰어넘은 괴물이었다. 다만, 대수롭지 않다는 식의 초연한 태도가 너무 재수 없다.
팔만대장경을 하루 만에 제작한 후, ‘쉽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러면 세상에 안 될 일이 대체 어디 있냐고!
지수는 무진의 사기적인 능력에 울화가 치밀었다. 누군 뼈가 빠지게 무공을 익혀도 안 되는데, 저 자식은 한 번만 봐도 감을 잡았다.
‘왜 하늘은 나를 낳고, 무진을 낳았단 말인가?’라고 한탄해 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무진이 있기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적을 혼자 상대했으면 막막했을 테니.
“그건 도둑질이라고!”
“유정이는 모르잖아.”
“내가 말할 거야.”
“그래도 되기는 한데, 괜찮겠어?”
젠장!!
스킬이나 속성이 아닌, 그냥 보고 익혔다고 말해 봤자 미친년 소리 듣기 딱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