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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인류최강 남사친-12화 (13/374)

12. 그러라고 만든 게 아닌데(1)

‘잘하고 있겠지.’

지수는 무진의 불합격을 걱정하지 않았다. 입학시험에서 무진을 떨어뜨릴 난이도라면 전원 불합격을 받아야 마땅했다.

‘멀쩡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엘리트 코스를 밟는 모범생으로 기억한 지난 시간이 부정당했다. 어쩌면 자신으로 인해 숨겨진 본성이 튀어나왔을 수도 있었다. 그에 대한 책임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다행이긴 한데.’

마냥 순진한 모범생이었다면 헌터로서의 삶이 녹록지 않을 것이다. 어설픈 각오와 나약한 마음가짐으론 버텨 내기 어려운 바닥이었다.

그 점을 고려하면 무진은 헌터로서 적합했다.

간간이 보였던 단호함은 베테랑인 자신조차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갓 시험을 치른 애송이들 따윈 문제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도 성격이 좀.’

더욱이 의도적으로 사고를 치지 않는데도 주변을 불편하게 만든다. 헌터계에서 이런 녀석들은 디재스터라 칭하며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이상하게 때리고 싶단 말이야!’

안 맞아서 더 열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수련을 빙자한 구타로 되돌아왔다.

더 짜증 나는 현실은 강해지고 있었다.

왜 강해져!

원래 처맞으면 골병들어야 정상이라고!

빌어먹게도 대단했다.

어떻게 된 녀석인지, 인체는 물론 기의 흐름과 각성까지 절묘하게 간극을 지켰다. 망가지지 않을 경계를 알고서 팼다. 이게 말이 쉽지,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한참을 처맞고 나서야 지수는 무진의 강함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한계를 정확히 파악했기에 극한까지 몰아붙일 수도 있으며, 회복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녀석이야.’

안다고 해도 스스로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일은 어려웠다. 주변에서 가르쳐 주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홀로 절제된 생활을 반복해 왔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변태가 된 건가?’

하긴, 평범한 사고를 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고통을 즐기는 녀석이었다. 그러니 소녀의 고통은 안중에도 두지 않은 것이겠지.

띠링!

무진에게서 문자가 왔다.

-정령소가 소유정 득템.

“……?”

***

“원래 이런 성격이었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걸.”

대체 언제 봤다고 성격 타령인지, 첫인상이 성향을 대변하진 않았다. 그런 게 가능하면 점집은 문을 닫아야지.

“와, 속았네!”

“누가 그러더군. 속은 년이 병신이라고.”

“내가 어쩌다가, 하아! 말을 말아야지.”

치졸하게 말려 버린 현실에 유정은 망연자실했다. 무진과 만난 시간은 짧았지만, 그 일련의 과정은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었다.

피하고, 싸우고, 말리고.

한 편의 장편서사시처럼.

유정에겐 난생처음 겪어 보는 생소함의 연속이었다. 이처럼 신통방통하다 못해 독특한 개성으로 뭉쳐진 놈이 어디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왔을꼬?

“배배 꼬인 주제에 잘도 은거기인처럼 살았구나.”

“성격의 3할은 숨기라고 하더라고.”

“실력의 3할이겠지.”

“배움이 틀에 박혔구나.”

유정은 주화입마의 초기 증상을 느꼈다.

어떻게든 우위에 서 보려고 했는데, 한마디를 지지 않는다. 되레 비수처럼 날아와 오금을 저리게 했다. 하물며 자신조차 몰랐던 부분을 날카롭게 찔렀다.

‘어떻게 알았데!’

유정은 고정관념을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활발한 성격도 어쩌면 틀에 박힌 관념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자유로움이야말로 정령을 다루기 위한 필수 기반이었다. 그래서일까? 마치 속을 들여다보고 얘기하는 것 같아서 찜찜했다.

“우리 이제 그만 보면 안 될까?”

“빚은 갚아야지.”

“빚? 난 우리 가족도 보증은 안 서 주는 사람이라고!”

“염치가 없구나.”

“사람을 방패로 쓰고선 염치를 따지는 너는?”

“그래서 둘 다 살려 줬잖아.”

납득하기 힘든 무진의 계산 방식에 유정은 항의했다. 고기방패로 썼으면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해야 하거늘, 적반하장이 필수 옵션이었다.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양심을 따지기 전에 저길 봐. 아까부터 시험관이 우릴 주시하고 있었거든. 만약 네 얼빠진 친구가 이쯤에서 끝내지 않고 불미스러운 사고를 쳤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렇게까지 막가지는 않았을 거야.”

“그거야 네 생각이고.”

시험관은 입시생을 강압적으로 대하진 않는다. 아직은 아카데미 생도가 아니기에 강제할 권한이 없다. 그러나 시험장 내에서 소란을 일으킨다면 퇴장시킬 수는 있었다.

무진은 그렇다 쳐도 당사자와 원인 제공자인 적운길과 유정은 시험장에서 나가야 했다. 가문의 힘으로 무마하기엔 보는 시선이 너무 많았다. 형식적이더라도 화해를 했기에 이쯤에서 마무리된 것이다. 사태가 불거졌으면 일파만파는 불을 보듯 자명했다.

예전부터 하도 봐주기식 논란이 많아서 아카데미에서도 이런 부분은 예민하게 보았다.

“1년 꿇고 다시 시험을 쳤다고 상상해 봐. 네가 아무리 인싸라도 버티기 힘들걸. 아니냐?”

“……맞아.”

유정은 설득당하고 있었다.

시험은 1년에 한 번이고, 놓치면 다음 해에 봐야 한다. 1년을 꿇은 상태로 아무렇지 않게 아카데미를 다닐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은 해 본 적도 없기에 끔찍했다.

“이 시기의 1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지는 않겠지. 어른들이 이때가 좋았다고,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에요. 안 그래?”

“……맞아.”

남들 다 성장하는 시기에 1년의 차이는 크다. 제아무리 가문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준다고 해도, 아카데미 생도에게 주어지는 권리와 보상보단 못했다.

그뿐인가, 가문에서도 입학시험에서 떨어진 실패작을 위해 대대적인 지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저 녀석한테도 갚으라고 해.”

“그걸 내가 왜?”

“내가 낯을 좀 가려서.”

“……개새!”

두 번 낯 가렸다가는 아무도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하겠다. 자기 못 들고 다닌다고, 남도 못 들고 다니게 할 놈이니까.

유정은 호기심이 이렇게나 무서운 결말을 유발하게 될 줄 미처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관심 끄고, 내 갈 길 갔어야 했다.

아카데미 시작부터 인생이 꼬일 것 같다는 불길한 기운이 샘솟았다. 이럴 때는 그냥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어쩌면 속 편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얼마면 되는데?”

“돈이면 다 되지.”

“……내 말을 기다렸구나!”

“얼마 줄지 기대된다.”

무진이 환하게 웃자 백지수표를 내밀려던 유정은 말문이 막혔다. 한마디만 더 했다가는 집안이 거덜 나는 수가 있었다. 0으로 가득 채워진 백지수표가 떠올랐다.

모양새는 빠지지만, 유정은 급히 말을 바꾸었다.

“우정은 돈으로도 못 산다고 했어.”

“맞아, 우리 친하게 지내자.”

……당했다.

애초에 무진은 돈을 달라고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유정이 헛다리를 계속 짚어 주자, 차라리 잘됐다는 심정으로 받아 줬을 뿐이다.

‘정령술도 나쁘진 않지.’

유정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무진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정령 친화력을 연구해 볼 기회였다. 정령은 공력이나 마력과는 성질이 달라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자연지기를 이용하면 될 것 같기도 한데.’

오늘만 날이 아니기에 시도하진 않았다. 지금은 유정에게 족쇄를 채운 것으로 만족했다.

정령은 내공이나 마력과는 쌓는 방식이 다른 듯하다. 친화력이란 뜻만 봐도, 교감이 중요했다. 정령은 사람이 아니지만, 감정을 가진 이성체였다. 확실하지 않은 이상, 굳이 의심을 살 행동은 하지 않는다.

‘본능이 날카로워.’

마치 감정을 읽는 느낌이었다. 정령의 등급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으나, 유정을 간과하진 않았다.

‘방심은 금물이고, 나태함은 죄악이지.’

주변의 도움 없이 홀로 수양을 하다 보면 성취가 높을수록 자만에 빠지게 된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항상 자신이 최고인 줄 알기 때문이다.

독선은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였다.

무진은 내재한 초월적인 천재성을 모르지 않았다. 항시 천재성에 함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절제, 단련, 연구는 자만에 빠지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다.

‘함몰된 천재는 재앙이 되겠지.’

지수에게는 아카데미를 가지 않은 연유를 설명하면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언급했지만,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자신과 같은 예가 흔하지는 않으나, 있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두려워해야 마땅한 일이거늘, 오히려 전율을 느꼈다. 지수가 아니었다면 영영 모르고 지나갔을 숨겨진 본능이었다.

-힘 측정을 하겠습니다. 호명하는 대로 나오세요.

상념은 이쯤에서 마무리했다.

힘을 측정하는 방식은 중력석 들기, 망치 박기, 펀칭머신으로 구성되었다. 세 가지로 구분하는 연유는 힘을 쓰는 방식이 다를 수 있어서다.

본인에게 맞는 시험이 한 가지라면 자연히 떨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테스트의 불합리함을 최소화한 시험룰이었다.

“아까는 체면을 구겼지만, 이번엔 다를 거야.”

“정령사에게 힘과 스피드는 어울리지 않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너야말로 틀에 박힌 거라고.”

“인정, 그럼 누가 이기나 내기할래? 싫으면 말고.”

“좋아, 이기는 사람 소원 들어주기로.”

“콜.”

무진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유정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가녀리다고 하니까 진짜로 가녀린 줄 아는 모양인데. 정령가의 핏줄은 타고난 신체를 지니고 있었다. 각성하지 않았어도 일반인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힘을 측정하는 단계는 10단으로 되어 있었다. 일정 단계까지 배수로 올라가기에 4단계를 넘어가기도 쉽지는 않았다. 대부분은 3단계에서 등락이 결정된다.

무진과 유정은 503번, 560번이라 순번을 기다려야 했다. 시작할 때까지의 준비 시간에 비하면 빠르게 진행되었다.

-1번 3단계

-2번 3단계

……

-240번 5단계

중력석 들기의 1단계는 200kg이다. 보통 사람은 들기는커녕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3단계만 돼도 1.6t으로 소형 트럭 1대의 무게였다.

막 각성해도 보통 사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물며 10단계까지 간다면 50t의 무게였다. 이제 막 각성한 입시생은 5단계만 해도 특별했다.

오오오오!

5단계를 들어 올린 학생이 나오자 이목이 쏠렸다. 여태 4단계도 올리지 못했던 걸 고려하면 놀라운 성적이었다.

‘후후후후, 어떠냐?’

240번은 쾌재를 부르며 무진을 노려보았다. 번호만 봤을 때는 적운길로 착각할 수 있으나, 이름표엔 배준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대형 길드는 아니더라도, 중형 길드인 타이거길드 길드장이 배준상의 아버지였다.

배준상도 무진에게 보인 소유정의 관심이 고까웠다.

‘비겁한 수작은 통하지 않아!’

무진이 실력으로 적운길을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자를 방패막이로 삼는 비겁한 녀석에 불과했다.

배준상으로선 약점이 잡힌 소유정에게 호감을 살 기회였다.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미녀를 구하는 정의의 용사로서.

그래야 하는데, 받아 줘야 말이지.

‘이 새끼가!’

당연하게도 무진은 배준상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의미 없는 TV 채널을 돌리듯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는 적을 만드는 재주가 타고난 것 같아.”

“잡것들은 관심 없어.”

헙!

무진의 적나라한 응수에 유정은 헛바람을 삼켰다. 그나마 듣는 사람이 없기에 망정이지, 짱돌 맞을 소리를 잘도 하고 있었다.

“그럼 나는?”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여기서 내가 좋아해야 하는 거야?”

“가문의 영광이겠지.”

대체 뭘 믿고 쪼개는 건지 이해가 되진 않았다. 본인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쳤다.

유정은 가르쳐주기로 다짐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년이 있다는 걸.

“이번 기회에 배워.”

“기회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보여 준다면 노력은 해 볼게.”

“아마 깜짝 놀랄걸.”

“그랬으면 좋겠다.”

참고로 마력이나 속성을 쓴다고 해도 감점이나 규칙 위반은 아니다. 정해진 규칙 내에서 모든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단, 아이템이나 장비를 이용하다 걸리면 평생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없다.

기다리는 중간에 적운길의 차례가 있었다.

-407번 5단계

적운길에겐 짜증 나는 현실이었다. 전력을 쓰기에는 내력의 역류로 인해 육체의 과부하가 컸다. 그렇기에 이목의 집중을 받기는커녕 평범하게 지나가고 말았다.

‘빌어먹을, 두고 보자!’

적운길로서는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무진을 용서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갚아 주지 않고서는 화가 풀리지 않을 것이다.

‘똑똑히 지켜보마!’

적운길은 무진의 일거수일투족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놈의 능력치를 확인한 후, 적합한 방도를 찾아야 한다. 스텟도 스텟이지만, 야비한 수작은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유정의 차례가 되었다.

-503번 7단계

오오오오!

호리호리한 체구의 유정이 7단계를 들어 올리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정령사라고 해서 정령만 다루리란 편견을 부수었다. 저 정도면 망치로 마물의 대가리를 깨고 다녀도 이상하지 않았다.

“괜히 칠대가문이 아니구나!”

“정령가가 저 정도면 다른 가문은 더하겠지!”

“세상이 변해도 금수저는 안 변하네!”

“혈통빨 무시 못 하지.”

부러움 반, 시기 반이 공존했다. 자신들도 칠대가문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처지에선 마냥 곱게만 보이진 않았다.

어때?

유정이 무진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의 장기가 힘이 아님에도 이렇게나 대단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뒤, 순번을 불렸다. 무진은 중력석을 들기 위해서 천천히 중심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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